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3화 (3/145)

# 3 < <스페이스 워즈> 제작에 참여하다 (1) >

루브론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조지 루이스 감독이 많은 흥행작을 가지고 있는 감독은 아니잖아? 전작을 몇 번 말아먹은 이력도 있고. 무엇보다 SF라는 장르가 대중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말이야. 그래서 다른 영화사들이 죄다 거절한 것을 인맥을 동원해서 겨우 ‘20세기 폭스’의 지원을 따내게 됐고.”

나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스페이스 워즈> 1탄 제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영화인이라면 대부분 공부 차원에서라도 세계적인 대작 영화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따르면......

이전까지 별다른 히트작이 없던 조지 루이스 감독은 첫 상업 영화인 <청춘>으로 꽤 괜찮은 흥행 성적을 거두게 된다.

이에 힘입어 그는 새로운 SF영화 <스페이스 워즈>를 기획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사들이 그의 영화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 SF물은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한 장르였고, 그 때문에 투자 위험 부담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조지 루이스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사 가운데 하나인 ‘20세기 폭스’사의 지원 약속을 받게 된다.

하지만 지원 예정인 제작비는 총 800만 달러에 불과했다.

물론 이 돈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몇 년 뒤에 촬영되는 같은 장르의 <스타트렉>이란 영화의 제작비가 총 3,500만 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상대적으로 얼마나 적은 제작비가 들어갔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조지 루이스 감독이 부족한 제작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야?”

“응.”

순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돈이 있다면 이 <스페이스 워즈>라는 영화에 투자를 할 텐데.

그럴 수만 있다면 앞으로 돈 걱정 없이 내가 찍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찍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

“뭐, 제작비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지. 이미 꽤 많은 돈이 영화 제작에 투입된 이상 ‘20세기 폭스’사도 그냥 외면하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 싫은 소리를 좀 듣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추가 제작비를 지원해주겠지.”

루브론의 예상은 사실이었다.

실제 조지 루이스 감독은 제작비 부족 문제를 여러 차례 제작사에 어필했고, 그 결과 300만 달러의 제작비를 추가로 얻어내게 된다.

<스페이스 워즈> 제작에는 총 1,100만 달러 정도의 돈이 투입된 것이다.

“문제는 만약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할 경우, 영화감독으로서 조지 루이스 감독의 인생도 완전히 끝이 날 수 있다는 거야. 생각해봐. 무려 1,0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을 말아먹은 감독을 어떤 제작사에서 써주겠어?”

루브론의 말에 내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스페이스 워즈>는 영화 역사상 최대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 영화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기, 루브론.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

“부탁?”

“응.”

“뭔데?”

“아까 너네 아버지가 ‘20세기 폭스’사에서 일하신다고 했지?”

“응.”

“미안하지만 너네 아버지께 이야기해서 날 <스페이스 워즈> 영화 촬영팀에 좀 넣어줬으면 해.”

“뭐?”

“일은 뭐든 상관없어. 소품 운반, 아니 하다못해 촬영장 청소와 같은 허드렛일도 괜찮으니까 어떻게든 촬영장에 들어가게만 해줘.”

“킴, 너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갑자기 영화 촬영팀이라니?”

“내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내 최종 목표는 바로 영화를 제작하는 거라고. 지금 무명이지만 배우로 활동하는 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이야.”

“아, 맞다. 전에 킴 네가 나한테 그랬었지. 언젠가는 직접 네 손으로 영화를 만들거라고.”

“그래.”

“그럼 나중에 유명한 감독이 되면 날 주연 배우로 써줄 거야?”

“글쎄......”

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오디션 봐서 정식으로 합격하면 써줄게.”

“읔! 이 야박한 녀석.”

“흐흐. 어쨌거나 부탁 좀 할게, 루브론. 아버지께 내 이야기 좀 잘 해줘.”

“그래. 알았어.”

친구인 루브론 덕분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사에서 일하는 루브론의 아버지 덕분에,

나는 앞으로 전 세계를 뒤흔들 영화 <스페이스 워즈> 촬영장에 출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허드렛일 하는 하찮은 잡부에 불과하기는 했지만.

5.

<스페이스 워즈> 영화 촬영장.

SF영화인 만큼 대부분의 촬영이 특별히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정밀하게 제작된 미니어처를 이용해 촬영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세트장에는 항상 많은 일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봐, 저기 있는 조명 좀 이쪽으로 가져와.”

“예.”

“저거 치우라고 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저기에 저러고 있어? 지금 당장 다른 곳으로 옮겨!”

“예, 예. 지금 바로 옮기겠습니다.”

세트장 여기저기를 두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분주히 뛰어다니며 일을 하고 있는 남자.

그는 바로 나였다.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그 이유는......

‘세계적인 영화 <스페이스 워즈> 촬영 현장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물론 기술적인 면이나, 조직력 면에서는 내가 살던 시대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70년대 영화 촬영장은 그 나름대로 충분히 배울 것이 있었다.

특히 이를 통해 나는 왜 할리우드가 세계 영화의 중심지가 되었는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어이, 거기 동양인.”

세트장 여기저기를 분주히 오가는 내 뒤로 한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순간 내 몸에 전율이 흘렀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영화 <스페이스 워즈>의 메가폰을 잡고 있는 세기의 감독 조지 루이스였기 때문이다.

“예, 옙.”

“잠깐 이쪽으로 좀 와봐.”

한걸음에 자신의 앞으로 달려온 나를 아래 위로 훑으며 조지 루이스 감독이 말했다.

“누구지? 못 보던 얼굴인 것 같은데?”

“아, 저는 얼마 전부터 여기서 일하게 된 제임스 킴이라고 합니다.”

“제임스 킴?”

“예. 원래 국적은 한국이지만, 지금은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한국이라. 굉장히 생소한 나라이군.”

그렇겠지.

1970년대 한국은 이제 겨우 경제 성장의 첫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후진국에 불과했으니까.

“그나저나, 내가 아까부터 쭉 지켜봤는데 일하는 모습이 아주 열성적이군. 마치 내 일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어.”

“사실은 제가 감독님처럼 유명한 영화 제작자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그래서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하. 영화감독이 꿈이라고?”

조지 루이스가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다음 촬영을 위한 준비 시간이면 그는 스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그럼 내가 한 가지 테스트를 해보지. 자네가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말이야.”

“영광입니다, 감독님.”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영화, 어떻게 생각하나? 대중들이 좋아할 것 같은가?”

사실 <스페이스 워즈> 촬영이 시작된 이후로,

조지 루이스는 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기 스스로도 이 영화가 성공할지, 실패할 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영화 개봉 당일도 관객들의 반응이 두려워 자신의 스튜디오에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 그의 이 질문은 이러한 그의 불안감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 양반아. 당신이 만든 <스페이스 워즈>는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게 되고, 그 결과 당신은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게 될 테니까.’

“제 생각에......”

내가 조지 루이스 감독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감독님의 영화는 분명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곳 북미 시장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요.”

“하하, 빈말인 줄 알면서도 기분은 아주 좋군.”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가요.”

“문제?”

조지 루이스 감독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표정을 보아하니, ‘네깟 애송이 놈이 감히 내 영화를 지적하려 들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말해 봐. 내 영화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가 쭉 지켜봤는데,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매 전투 신마다 등장하는 ‘라이트 세이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이트 세이버.

일명 ‘광선검’이라 불리는 라이트 세이버는 <스페이스 워즈>에 등장하는 가공의 무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스페이스 워즈>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머릿속에 이 라이트 세이버를 떠올린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나오는 광선검을 휘두르며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화려한 전투 장면.

이는 곧 <스페이스 워즈>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맞아. 라이트 세이버는 이 영화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가장 핵심적인 소품이라고 할 수 있지.”

“문제는 현재 영화상에서 구현되고 있는 라이트 세이버가 너무 조악하다는 데 있습니다.”

“뭐, 뭐라고?”

나의 ‘조악’이라는 단어가 그의 심기에 거슬렸는지,

조지 루이스의 표정이 몹시도 험악해졌다.

하지만 이는 분명 사실이었다.

1970년대는 영화 촬영 기술이 그리 뛰어나지 못한 시대이다.

CG 기술 또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현재 <스페이스 워즈>에서는 라이트 세이버를 실제로 직접 제작을 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라이트 세이버가 만족할 만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살던 시대였다면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손쉽게 현란한 빛을 만들어 냈겠지만 1970년대의 기술로는 광선이 나오는 검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조지 루이스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카메라 플래시의 커버를 벗긴 후, 이를 개조해 라이트 세이버를 만들었다.

하지만 때론 근사하게 빛을 발하다가도 특정 각도에서는 그냥 막대기처럼 보이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강도 또한 몹시 약해서 전투 도중 검과 검이 부딪칠 경우 쉽게 부러지기 일쑤였다.

“너 지금 촬영에 사용하고 있는 라이트 세이버가 조악하다고 말했나?”

“제 표현이 너무 과했다면, 그래서 감독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일단 제 설명을 들어보시면 감독님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해 봐.”

살짝 긴장이 됐다.

여기서 조지 루이스 감독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의 환심을 사는 것은 고사하고, 앞으로 촬영장에는 발도 들이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감독님도 여러 번 겪으셨겠지만, 카메라 플래시를 개조해서 만든 라이트 세이버는 잘 부러지고, 특히 특정 각도에서는 제대로 빛을 구현해내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이 장면이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 송출된다면 분명 관객들도 이를 느끼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영화의 사실감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네는 라이트 세이버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물론이지.

대안 없는 비판은 비판이 아니라, 비난에 불과할 뿐이니까.

자신있는 표정으로 내가 조지 루이스 감독을 향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감독님.”

“뭔가? 그 방법이라는 것이.”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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