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가 법을 모름-77화 (77/78)

제7장 대통령이 법을 모름

안소영 부장이 점심을 먹고 돌아와 한창 업무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내선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 실무관이 알려왔다.

-부장님, 법무부장관님이십니다.

“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얘기하려는데 실무관은 설명도 없이 바로 통화를 연결했다. 실무관도 갑작스러운 장관의 연락에 심히 당황한 듯했다.

-안소영 부장? 오랜만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강바른 장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통화를 하는 것도 상당히 오랜만이지만 목소리는 여전하구나 생각하는 안 부장이다.

“예, 장관님. 취임 축하드립니다.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강바른 의원이 장관에 임명된 후 안 부장은 축하 인사를 해야 하나 몇 번이나 고민했다. 여전히 현직에 있는 안 검사였으므로 개인적인 인사를 하는 것이 부적절하지는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결국 고민만 하다가 연락은 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 인사를 지금에야 건네는 것이었다.

-참 빨리도 축하해 주는군요.

강 장관이 농담 섞어 말해 안 부장은 민망함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죄송합니다.”

강 장관은 안 부장의 사과는 듣는 둥 마는 둥 바로 용건을 전했다.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 게 있는데 지금 바로 장관실로 올 수 있겠어요? 전화로 긴 얘기 나누기는 불편해서요.

강 장관은 용건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그렇게만 말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안 부장은 전화를 끊고 업무를 대충 정리한 후 부랴부랴 집무실을 나왔다.

“과천청사에 좀 다녀올게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 실무관에게 짧게 알리고 안 부장은 차를 몰아 과천으로 달렸다.

비서관의 안내로 법무부장관실에 들어섰을 때 책상에 앉아 있던 강 장관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안 부장을 맞이했다. 강 장관은 미소를 지으며 안 부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잘 지냈습니까, 안 부장?”

“네, 장관님도 건강하셨어요?”

“건강하지요. 뉴스 보면 알지 않습니까?”

강 장관이 우스개를 더했다. 현재 정부 부처 중에서 가장 시끌시끌하고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 바로 법무부일 것이었다. 강 장관이 얼마나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지는 말마따나 뉴스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앉으세요. 차나 한잔하면서 얘기하죠.”

강 장관은 안 부장에게 자리를 권하고 차를 내오게 한 후 본격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안 부장의 의견이 듣고 싶어 불렀습니다. 현재 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검찰개혁 정책에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부 방침에 대해 물었지만 강 장관의 방식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리라. 안 부장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답했다.

“근본적으로 개혁 필요성에는 동의합니다.”

마냥 긍정적인 뉘앙스의 대답은 아니었다. 강 검사는 미소 지은 채 이어질 안 부장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식은 조율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반대를 설득해 가는 과정이 크게 생략되어 있어 조직 구성원들의 불만이 높습니다. 속도 조절을 하셔야 할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키겠다고 미적대다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끝날 수 있어요. 빠르게 제도를 먼저 변화시키면 구성원은 멱살 잡혀 끌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해도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을 취하게 되면 반발만 살 뿐입니다. 개혁에 대한 저항이 더 커질 겁니다.”

강 장관이 비릿하게 웃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검찰조직은 원래 강하게 틀어잡아야 말을 듣지 않습니까? 만만한 놈에겐 덤벼들고 강한 놈에게는 꼬리를 숨기는 게 조직의 생리라서요. 목줄을 당겨 잡지 않으면 주인을 무는 놈들이죠.”

안 부장은 황당해 입을 떡 벌렸다. 식당에서 부하 검사가 했던 말과 내용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법무부장관이 검찰조직을 개에 비유하는 극단적인 표현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씀이 심하십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이에요. 공식적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지만 사실 아닌가요?”

안 부장 역시 전혀 아니라고 차마 부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강 장관의 말을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다.

“개로 취급하면 언제까지나 개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개를 사람 취급해 준다고 사람이 되지는 않지요.”

강 장관과 안 부장의 눈빛이 팽팽히 맞섰다. 한동안 양보 없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던 중 강 장관이 돌연 빙그레 웃음 지었다.

“안 부장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항상 정론만을 말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더니 슬쩍 화제를 돌리는 것이었다.

“내가 이번에 검찰개혁을 함께 수행할 파트너로 원신영 총장을 선택한 이유를 알겠습니까?”

안 부장은 부하 검사들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성실하고 사심 없고 정권과 코드도 잘 맞는 사람. 게다가 강 장관과는 함께 일한 적도 있으니 서로의 스타일을 이미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강 장관에게 함께 일할 파트너로 원 총장만 한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안 부장은 생각한 바를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강 장관도 딱히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닌 듯 말을 이었다.

“개혁 의지가 있는 몇 안 되는 고위 검사인 동시에 회유책을 잘 쓰는 분이시죠. 온화하고 중립적인 태도에 자신을 낮추고 들어가며 상대에게서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스킬도 상당하시고. 내가 채찍이 된다면 원 총장님은 당근이 될 겁니다.”

안 부장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강 장관이 검찰을 개에 비유하며 양보 없는 강경책을 쓰겠다고 했던 것이 온전한 진심은 아니었다는 것을. 강 장관도 다른 수를 고루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온전한 진담으로 여기고 날을 세웠던 것이 순간 부끄럽게 느껴져 안 부장은 절로 얼굴을 붉혔다.

순간 강 장관이 화제를 바꾸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항상 정론을 이야기해 줄 사람.”

안 부장은 설마 하고 생각한다.

“나는 검찰을 떠난 지 꽤 세월이 흘렀고 원 총장님은 어디까지나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할 사람이죠. 검찰의 입장에서 현장의 의견을 전해주고 정책을 비판해 줄 사람이 따로 필요해요. 나는 안 부장이 그 역할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강 장관이 마침내 결론을 내어놓았다.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와주세요.”

안 부장은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이런 중책을 맡기겠다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 부장이 차마 답을 하지 못하자 강 장관이 슬쩍 덧붙인다.

“사실 사전에 의사를 타진하지 않고 바로 임명해서 갖다 써도 될 일이지만 그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앞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상되는데 멀쩡한 사람 진흙탕에 던져 넣기 전에 미리 언질도 안 해주는 건 너무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농담을 던진 강 장관이 재차 물었다.

“괜히 이전투구 속으로 끌려 들어가기 싫다면 현장에 남아도 됩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안 부장은 생각했다. 오래전 강바른 검사가 사고를 겪고 뭔가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난 그때부터 이것은 정해진 미래였을지도 모른다고.

강 검사와 함께 일하고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공범이 되기도 하면서 폭주하는 그를 통제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 맹세는 아직 다 이행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법무부장관이자 앞으로 어디까지 날아오를지 알 수 없는 그의 곁에서 끝까지 냉정한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는 것이 운명이 정한 자신의 역할인지도.

안 부장은 자신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안 부장은 고개를 꾸벅 숙인 후 강 장관을 마주 보며 활짝 웃었다.

* * *

태산은 어딘지 모를 곳을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은 채 끝없이 펼쳐져 있어 여기가 어디인지 얼마나 걸었는지 전혀 가늠할 길이 없었다. 하늘과 땅은 온통 맑고 푸르러 끝없이 펼쳐진 물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태산은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어느 한 점을 바라보며 집요하게 걸어갈 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어쨌든 그리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거의 보이지 않던 작은 점이 점점 커지고 형체가 뚜렷해지더니 사람의 형상을 띄었다. 태산은 부지런히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며 보니 검은 정장을 입은 키가 훤칠한 사내다. 더 가까이 다가가자 사내가 서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활짝 웃는다.

“기다렸습니다, 임태산 씨. 그동안 잘 지냈어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강바른 검사의 모습이었다. 비쭉하게 키만 큰 말라깽이에 두꺼운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이 살아 있던 젊은 검사. 태산은 그때 강바른이 이렇게 어렸었나 새삼 생각한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강 검사는 어때요?”

“저요? 아주 잘 지냈죠.”

바른은 유쾌하게 웃었다. 살아생전 만날 때마다 으르렁거렸던 두 사람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바른을 마주 보며 태산은 마음이 아팠다. 강 검사의 몸을 빌려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태산이다. 하지만 강 검사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태산의 강력한 생존 의지에 몸을 빼앗기고 어딘가에서 구천을 헤매고 있지는 않았을까? 저렇게 젊었던 청년에게 태산은 영 못 할 짓을 한 것만 같았다.

“미안합니다. 당신이 살아야 했을 삶을 빼앗아서…….”

태산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바른의 입가에 미소가 서서히 번진다. 눈이 부실 만큼 환하게 웃으며 바른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임태산 씨 당신이 바로 나잖아요.”

바른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래를 눈짓했다. 태산은 무의식중에 바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거울처럼 맑은 지면 위에 자신의 얼굴이 투영되어 보이고 있었다.

그 얼굴은 영락없이 강바른이다. 나이를 먹고 주름이 늘고 체구가 커졌지만 청년 강바른과 같은 사람임을 결코 부인할 수 없었다.

태산은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다. 묘한 꿈을 꾸었다. 꿈의 여운이 가슴에 오래 남아 태산은 눈을 뜨고도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핸드폰 알람 소리에 태산은 비로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은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이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태산은 욕실로 가 세수를 한 후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초인 같은 신체적 능력은 여전했으나 확실히 얼굴은 나이를 먹었다. 동안이다, 나이를 안 먹는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어왔지만 그렇다 해도 세월을 완전히 비켜 갈 수는 없는 법이다.

태산은 거울 속의 사내가 임태산인지 강바른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강바른의 신체와 임태산의 영혼으로 살아왔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니 신체도 젊은 강바른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고 성정도 과거의 임태산과는 딴판이 되었다.

[임태산 씨 당신이 바로 나잖아요.]

꿈속에서 젊은 강바른이 했던 말이 새삼 다시 생각났다.

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울 속의 사내는 강바른도 임태산도 아닌, 강바른과 임태산이 합일된 전혀 새로운 인간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태산이 이룬 여러 성취는 임태산으로서는 물론이고 강바른 혼자서의 힘으로도 이룰 수 없었을 것들이다. 강바른의 지성과 도덕성, 그리고 임태산의 바위 같은 의지와 집념이 합쳐져 지금의 삶을 이루었다.

이제는 남의 삶을 대신 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온전히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훨씬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강바른에게 오래 품고 있던 죄책감도 털어낼 수 있었다.

태산은 거울 속의 남자에게 씩 웃어 보이고는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어느 때보다 꼼꼼하게 면도를 하고 머리도 매만진다. 그리고 전날 미리 준비해 놓은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준비가 끝나자 또 한 번 핸드폰 알람이 울리고 문밖이 시끌시끌해지더니 비서관이 부산을 떨며 들어와 물었다.

“당선자님, 준비 다 되셨습니까?”

“예, 끝났습니다.”

“취임식까지 시간이 빠듯해서요. 메이크업 도착해서 간단하게 하고 들어가시고 바로 국회로 출발하시겠습니다.”

비서관은 급하게 주워섬기고는 바깥을 향해 외쳤다.

“당선자님 출발하십니다!”

태산이 문을 나서자 보좌관들이 주욱 따라붙는다.

“손보라 하셨던 취임사입니다. 프롬프터로 나가겠지만 대강의 내용은 숙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태산은 문서를 건네받아 훑어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좋군요. 이대로 확정하죠.”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 보좌진들과 동승한 후 드디어 차가 출발했다.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차도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군중들이 와아~ 함성을 올렸다.

태산은 차창을 열고 운집한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더욱 높아지는 함성들 사이로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강바른 대통령님, 당선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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