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가 법을 모름-65화 (65/78)

제7장 반동(1)

-과장님, 총장님께서 잠시 보자시는데요.

내선으로 김민하 실무관이 알려왔다.

“알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태산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까지 위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조용했다. 간부급 검사들을 줄줄이 소환해 조사하고 있는데도 크게 개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감찰부 내부에서 다른 과장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태산의 수사 의지에 흔들림이 없었고 원신영 감찰부장 역시 태산을 지지했으므로 큰 장애물은 없었다.

개입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개입했는데도 원 부장 선에서 잘 막아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니, 그럴 확률이 더 높은가.

그렇게 생각하며 태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내려가 검찰총장실에 들어서자 부속실 비서관이 돌아본다.

“감찰3과장 강바른입니다.”

“들어가세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비서관이 일어나 집무실 문을 열어주며 안에 대고 말했다.

“강바른 과장입니다.”

태산이 집무실로 들어서자 검찰총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소파를 권하며 말했다.

“앉게.”

검찰총장이 상석에 앉아 자리에 앉는 태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요즘 많이 바쁘지?”

검찰총장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아닙니다’ 하고 의례적으로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태산은 왠지 심술이 발동해 삐딱하게 받아친다.

“예, 그렇네요. 높으신 분들이 어찌나 자잘하게 많이도 받아 드셨는지 내역 파악하는 것만도 보통 오래 걸리는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검찰총장이 불편한 기색으로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묻는다.

“그래, 정진용 접대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증거가 확실한 최근 내역은 모두 파악하여 기소를 앞두고 있습니다. 다만 공소시효나 징계시효를 지난 건들까지 모두 조사하려면 시간이 꽤 소요될 듯합니다.”

“시효가 지난 것까지?”

“예, 법적 처벌이나 징계는 피한다 해도 도덕성이 문제 되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비위 사실이 중한 검사들은 지금이라도 인사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총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쯧쯧 혀를 찬다. 이것은 받아먹은 놈들에 대한 개탄일까 아니면 삐딱한 부하에 대한 나무람일까.

“듣던 대로 참 완고한 인사구먼. 감찰부장도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젓긴 했지만. 하도 말을 안 듣는다고 엄살을 해서 내가 직접 얘기하려고 불렀네.”

아니나 다를까 후자였다. 태산은 내심 그러면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원 부장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확실히 압력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마다 ‘설득해 보겠다’, ‘설득은 해봤는데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둘러대며 시간을 끌었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정작 태산에게는 수사 방침에 대해 일언반구도 참견하지 않았던 원 부장이었다. 애초에 부하를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상사 타이틀이 달리는 것 정도에는 그다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너무 원칙만 고집하다가 조직을 위태롭게 할 수 있네.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딱히 대가성도 없어 보이는데 질질 끌면서 분란 일으킬 것 있나? 그렇지 않아도 검찰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인 판에. 그만하면 간부들에게 경고는 됐을 테니 여기서 슬슬 정리하게. 평검사 선에서 기소하고 끝내지.”

검찰총장은 태산의 의견을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짧게 지시하고 나가보라는 듯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원 부장 말은 안 들었지만 검찰총장의 권위에는 두말없이 꼬리를 내리리라 생각했을까?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태산이 잘라 말하자 검찰총장이 도끼눈을 뜨고 돌아보았다.

“왜 못 하겠다는 건가? 청탁 들어주며 몇 억씩 턱턱 받은 것도 아니고 아무 대가 없이 찔러주는 용돈 좀 받았다고 검사직 내놓으라는 건 지나친 처벌 아닌가?”

태산은 검찰총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총장님은 사건이 걸려 있을 때 거액의 뇌물을 찔러주는 것과 평소에 푼돈을 꾸준히 찔러줘서 친분을 다지는 것 중 어떤 것이 검사를 매수하는 데 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그건…….”

검찰총장은 답을 하지 못하고 이마를 찌푸렸다. 총장 역시 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한 번에 거액을 받고 청탁을 들어줄 만큼 간 큰 검사는 흔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평소 찔끔찔끔 푼돈을 받는 건 양심에 크게 찔리지 않죠. 그렇게 지속적으로 관계를 형성해 두면 장래 청탁을 받았을 때 단순한 일회성 청탁에 비해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태산은 단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당장 걸려 있는 사건이 없고 받은 금품이 푼돈이라 해서 대가성이 없는 게 아닙니다. 엄연히 미래의 대가를 노리고 주는 것이죠. 일상적인 접대도 강하게 단속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총장이 불쾌한 기색으로 답했다.

“내가 법리를 몰라 이러는 것 같나? 그 건으로 걸려 있는 검사들 지금 한창 검찰 중추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견들이야. 그 중요한 인재들을 모두 다 쳐내면 조직이 뿌리부터 흔들릴 거네. 나는 총장으로서 조직을 걱정하고 있는 거야.”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조직이 더 건강해집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다른 청렴한 검사들이 승진할 기회가 생기니 사기도 더 올라갈 테고요.”

“그렇지 않아도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는데 검찰간부들이 대규모로 연루된 접대 스캔들이 터지면 검찰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거네.”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 평검사를 선처해 주지는 못할망정 평검사에게만 모든 혐의를 씌우고 종결한다면 국민들이 과연 납득하겠습니까? 불신이 더욱 높아질 뿐입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엄격히 처벌하는 쪽이 옳습니다.”

태산은 총장의 말을 반박하며 정곡을 찔렀다.

“정말로 조직을 생각해서 하시는 말씀이 맞습니까? 혹시 총장님도 누군가에게 청탁을 받고 압력을 행사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검찰총장의 가까운 선후배 중에도 사건에 연루된 자가 없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태산의 말에 총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다. 총장은 애써 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내 평생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수사해 왔다고 자부하네. 누군가의 청탁을 받아 업무를 처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오직 검찰조직만을 위해 열심히 일했네. 나보다 우리 조직을 염려하는 사람은 없어. 내 직업적 자부심을 얕보지 말게.”

검찰총장은 당당하게 말했지만 태산은 내심 의문을 가진다. 일개 회사원도 아니고 검사가 정의가 아닌 조직만을 위해 일했다는 것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할 일인가.

“자네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사에 임하고 있는지는 잘 알겠네. 열심히 해보게. 대신 기소 전까지는 감찰 사실이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보안에 신경 써주게. 결과가 나오기 전에 밖에서 먼저 말이 나와 왈가왈부하면 될 일도 안 되니.”

검찰총장이 그쯤에서 물러나 주자 태산 역시 한발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 * *

“거참 눈치 없는 친구 아닙니까?”

감찰1과장 장도식이 은근히 맞장구를 치며 나섰다. 장도식은 검찰총장의 고교 후배였다. 기수는 꽤 차이가 나지만 서울중앙지검 부장이던 시절 같은 부서 평검사로 호흡을 맞춘 후부터 가까워졌다. 이후 부임지가 달라진 후에도 선배님, 선배님 하며 자주 연락을 해와 지금은 종종 개인적인 술자리도 가질 정도로 꽤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오랜만에 같이 술잔을 나누는 자리에서 강바른 감찰3과장을 누르려다가 오히려 반발만 사고 물러났다는 하소연을 하던 참이었다. 앞뒤가 꽉 막혀서 말을 알아먹지를 못하니 부리기에 골치가 아프다는 얘기였다. 앞으로의 풍파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라는 말도 했다.

검찰총장은 술잔을 기울이며 장도식에게 슬쩍 눈길을 주었다. 검찰총장이 호기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는 기색이니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던 장도식도 본격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세상에 자기 손으로 자기 뺨을 치는 법은 없지요. 감찰부가 어디 검사들 비위 가리라고 있는 곳이겠습니까? 문제가 생겼을 때 내부에서 적당히 수습해서 외부에 보기 좋게 정돈해 보여주기 위한 부서 아닙니까?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검찰 치부를 들추겠다니 눈치가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 원.”

장도식이 한 눈으로 검찰총장의 기색을 살피며 짐짓 쯧쯧 혀를 찬다. 검찰총장은 아무 말이 없다. 다만 부정하는 기색은 아니다. 아니, 차마 긍정할 수는 없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저대로 설치게 놔두시겠습니까? 조직이 흔들리는 것은 둘째 문제고 이러다 기고만장해서 나중에는 총장님까지 치겠다고 나서는 거 아닐까요?”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을까? 총장에게도 찔리는 구석이 한두 군데는 있을 것이다. 아니, 찔리는 구석이 전혀 없다고 해도 통제가 안 되는 시한폭탄 같은 부하를 곁에 끼고 있는 게 달가울 상사는 아무도 없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상명하복이라고는 하지만 검사는 개개인이 독립된 수사기관인데 억지로 수사를 못 하게 할 수도 없고.”

“남의 비리를 털려면 자기 손이 깨끗해야지요. 그런데 강바른 본인의 손이 깨끗하지 않다면요?”

검찰총장이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강 과장에게도 비리 혐의가 있다고?”

“싹 털어보면 티끌 하나라도 나오겠지요. 그리고 허물이 없으면 또 어떻습니까? 하나 만들어내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죠. 기자들에게 그럴싸한 떡밥만 하나 찾아 던져주면 알아서 침소봉대하는 거야 걔들 주특기고요. 언론에 먼저 터뜨려서 여론전 시작하면 그거 수습하다가 일 끝날 겁니다. 일단 자기가 조사받으러 다니느라 바쁜데 남의 사건 수사할 틈이 어디 있겠습니까?”

검찰총장은 술잔을 기울이며 고민했다. 솔깃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지만 그래도 동료 검사를 그런 식으로까지 음해해 수사를 중단시켜야 하는가 하는 일말의 양심이 고개를 들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강바른 저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장도식의 유혹에 검찰총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출근해 집무실로 돌아와서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심사숙고하던 검찰총장은 결국 마음을 굳히고 수화기를 들었다.

“서울중앙지검장 연결해 줘.”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내선으로 지시하니 잠시 후 비서관이 서울중앙지검으로 전화를 돌려주었다.

-예, 총장님.

“심 검사장, 내가 긴히 부탁할 일이 있어 전화했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반부패수사부 총동원해서 최대한 빠르고 조용하게 사람 하나 조사해 줘요. 견적은 상관없고 아주 작은 건이라도 좋으니 싹 훑어주세요.”

서울중앙지검장이 말하는 뉘앙스를 눈치채고 은밀한 어조로 물었다.

-알겠습니다. 캘 사람이 누굽니까?

“대검 감찰부 강바른 감찰3과장입니다.”

전화기 저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이내 모두 이해했다는 듯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가 화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티끌 하나까지 샅샅이 훑어보겠습니다.

검사가 법을 모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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