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가 법을 모름-62화 (62/78)

제4장 텃세

원 부장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태산은 다시 5층으로 내려갔다. 5층에는 검찰연구관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5층 대형 연구관실에는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수사관과 실무관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태산은 그 속에서 전윤지 검사와 최진우 검사를 발견했다. 최 검사가 전 검사에게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 어린아이 같아서 태산은 자신도 모르게 빙글 웃고 말았다.

전 검사가 시선을 느끼고 이쪽을 돌아보니 최 검사 역시 고개를 돌린다. 두 검사는 태산과 눈을 마주치고는 반가운 얼굴로 달려 나왔다.

“과장님!!”

최 검사가 큰 소리로 부르며 뛰어나가니 사무실 안의 직원들 시선이 온통 이쪽으로 쏠린다. 직원들은 이쪽을 힐끗거리며 삼삼오오 수군거렸다.

“새로 오신 3과장님?”

“진짜 젊네.”

“젊은 정도가 아니라 어리잖아. 몇 살이야?”

직원들의 시선이 어쩐지 따갑게 느껴졌다. 낮게 목소리를 죽여 얘기한다 해도 태산의 귀에는 가감 없이 들려왔는데 그게 썩 호의적인 뉘앙스로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 자! 일합시다.”

검찰연구관 중 하나가 직원들에게 주의를 주고는 이쪽을 빤히 본다. 태산과 눈이 마주치자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외면하고 할 일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상사인데 이쪽도 썩 살가운 반응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태산이었다.

“검사님, 다시 뵈니 정말 반갑습니다.”

먼저 달려 나온 최 검사는 손부터 덥석 잡아 흔들었다. 전 검사와 업무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만 해도 제법 진지해 보였는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모습은 여전히 소년 같은 풋풋함이 있었다. 1년 만이라지만 아직도 이런 얼굴이라니 아무래도 서른을 막 넘긴 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태산은 웃으며 최 검사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뒤따라 나온 전 검사가 수상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무슨 재주를 부리셨기에 이렇게 왕년의 멤버들이 다 모이게 된 건가요?”

태산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별로 내가 손쓴 일은 없는데 말입니다. 우연이겠죠.”

말이야 바른말이지 자신이 아니라 의욕 넘치는 법무부장관이 힘을 쓴 것 아닌가.

“그걸 참 사람들이 퍽도 믿어주겠네요. 안소영 검사님까지 오셨던데.”

“아, 맞다. 안 검사님은 11층이죠? 인사 갈까요?”

최 검사가 눈을 빛내며 제안했지만 전 검사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오늘 회식이래요. 어차피 오후에 인사할 건데 전 패스할게요.”

그러더니 등 뒤를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는 것이다.

“안 그래도 홍 검사님이 뭐 꼬투리 잡을 거 없나 도끼눈을 뜨고 보고 있어서 부담스러워 죽을 지경이라서요.”

전 검사는 양손 검지로 눈을 쭉 찢어 도끼눈을 만들어 보이고는 킥 웃었다.

홍 검사라는 것은 아까 자신을 소 닭 보듯 바라보던 그 검사인가 생각하는 태산이다.

“전 이만 들어갈게요. 회식 때 봬요.”

전 검사가 미련 없이 돌아서 들어가 버리자 최 검사는 울상이 되어 망설였다. 태산이 등을 밀어준다.

“나중에 인사하면 되니까 그만 들어가 봐. 복도에서 긴 얘기 하기도 불편하고.”

최 검사는 아쉬운 듯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럼 조금 이따가 봬요. 들어가세요.”

“그래.”

태산은 자꾸만 돌아보며 실없이 웃는 최 검사를 손을 훠이훠이 저어 들여보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아무래도 연구관실 직원들과 홍 검사의 태도나 전 검사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곱씹는 사이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11층에 도착해 있었다.

태산은 아무래도 쑥스럽고 어색해 맨 나중으로 차례를 미뤄두었던 11층 연구관실로 다가갔다. 연구관실 문을 여니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새로 부임한 감찰3과장 강바른입니다.”

직원들이 아아~ 하고 탄성을 뱉으며 꾸벅꾸벅 고개를 숙인다.

“안소영 검사 잠시 보러 온 거니 신경 쓰지 말고 일 보세요.”

집무실로 다가가 문을 여니 안소영 검사가 자리에 단정히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리해 보이는 단정한 이마가 하얗게 반짝인다.

안 검사는 문이 열리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태산의 얼굴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조금 쑥스러운 듯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다시 뵙네요, 과장님.”

* * *

검사들까지 합쳐 감찰부서의 직원들은 서른 명이 조금 넘었다. 1차로 다 함께 고깃집에서 환영회 겸 회식을 하고 검사들만 따로 모여 펍으로 2차를 갔다. 전원이 다 모인 자리는 너무 북적여서 얘기를 나누기 힘드니 조금 더 긴밀한 얘기를 나눠보고자 원신영 부장이 제안한 자리였다.

원신영 감찰부장 아래 감찰1과장 장도식, 감찰2과장 임순철, 그리고 감찰3과장 태산이 부장급 이상이었고, 검찰연구관 홍희준, 안소영, 전윤지, 최진우가 평검사로 자리했다.

오전에 연구관실에 들렀을 때도 생각한 것이지만 태산은 기존 감찰부원들의 태도가 묘하게 뻣뻣하다고 느꼈다. 딱히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영 냉랭했고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흉금을 터놓고 의견을 나누고자 자리를 마련한 원 부장이었지만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고 원론적인 말로 변죽만 울리고 말았다.

“그래요. 그럼 앞으로 서로 도와가며 잘해봅시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원 부장이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할 기색을 보이자 감찰과장들은 자리가 끝나는 것을 반색하듯 넙죽 대답했다. 술 몇 잔을 더 나누고 자리를 파했지만 어쩐지 마시다 만 기분이라 찜찜하기만 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펍에서 나온 후 감찰과장들과 홍 검사는 얼른 인사를 하고 미련 없이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던 원 부장이 돌연 기세를 높이며 태산을 향해 돌아섰다.

“신임들끼리만 한잔 더 하는 거 어때요?”

그렇지 않아도 개운치 못한 기분이었던 태산은 얼른 찬성했다.

“좋죠.”

“찬성이요!”

최 검사도 신이 나서 대답했고 안 검사와 전 검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괜찮은 와인 바를 알고 있어요. 가서 딱 한 잔씩만 더 해요.”

원 부장이 앞장서 일행을 바로 안내했다.

바에서 와인 잔을 기울이며 원 부장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딱딱하네.”

다시 만난 후 나누었던 첫인사를 떠올리며 태산이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원 부장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사소한 텃세 같은 거죠.”

원 부장의 입에 다른 검사들의 시선도 집중되었다. 슬그머니 넘어갈 셈이던 원 부장도 검사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결국 설명을 더하고 만다.

“보통 대검 과장은 부장급으로 임명하는 게 통례죠. 하지만 감찰1과장의 경우는 지방의 소규모 지검에서라고 해도 차장을 거친 사람이에요. 내가 거쳐온 서울중앙지검 부장은 차장급을 임명하긴 하지만 어쨌든 직함 자체는 부장이었고 다른 지검에서 차장을 거친 적도 없어요. 그런 사람이 자기 위로 부임해 왔으니 불만을 가질 만도 하죠.”

태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원 부장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번에는 태산 쪽을 가리킨다.

“게다가 감찰3과장이라는 이 인사는 또 어떤가요?”

태산은 쓰게 웃으며 원 부장의 말을 받았다.

“그렇네요. 두 분 다 사십 대 과장님들인데 저는 겨우 삼십 대고 심지어 차장까지 거치신 분에게 이제 갓 부장 단 놈이 감 놔라 배 놔라 하게 생겼으니.”

감찰1과는 검찰청 소속 공무원들의 비위를 조사하고 감찰2과는 이들의 전반적인 사무를 감사한다. 감찰3과는 검찰청 소속 공무원 중에서도 고검검사급 이상, 즉 부장급 이상 검사들의 비위를 특별히 조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부서였다.

따지고 보면 감찰3과는 다른 감찰부서보다 더욱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감찰1과가 수사하는 사건이라도 고위직 검사가 연관되었다는 혐의가 있으면 감찰3과가 개입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감찰1과의 수사를 감찰3과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감찰3과는 감찰부 안에서도 특별부서 취급을 받고 있었다. 고위직 검사의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임시로 만들었던 특별감찰단을 정규조직화하며 만들어진 부서이므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두 분뿐 아니라 저희도 눈칫밥 먹고 있어요. 연구관실에 저희가 강 과장님 라인이라고 소문이 쫘악 나서 직원들 눈길이 곱지가 않아요. 우리가 무슨 낙하산이기라도 한 것처럼. 특히나 홍 검사님이 어찌나 사사건건 눈총을 주는지. 아마 지금도 우리 뒷담화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전 검사가 투덜거린다. 태산은 괜히 부임 첫날부터 인사를 갔나 싶어 머쓱하다. 오가는 뒷말에 쐐기를 박아준 셈이다.

“안 검사님은 어때요? 그쪽 연구관실 분위기는?”

“저는 감찰3과 직속이고 직원 수도 적어서 그런 분위기는 모르겠던데요.”

검찰연구관 보직은 부만 나눠서 임명하고 과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모든 업무를 다 같이 분담해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하는 연구관실에 따라서 대강의 업무가 분장되었다.

안 검사는 감찰3과와 함께 11층에 위치하고 있는 연구관실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감찰3과의 일을 맡아서 하게 된다. 전 검사와 최 검사는 감찰부 직원들이 다 함께 근무하고 있는 5층의 대형 연구관실에서 일하므로 감찰1·2과의 일을 함께하게 될 것이다.

“되게 남의 일처럼 말씀하시네요. 눈치 안 보고 일하셔서 좋으시겠어요.”

전 검사가 뾰로통해져서 투덜거리니 안 검사가 머쓱해 사과했다.

“그랬나요? 미안합니다.”

“아니 뭐… 미안하실 건 없고…….”

전 검사가 말끝을 흐린다. 애매하게 대화가 끊어지고 한동안 검사들은 아무 말 없이 와인만 홀짝였다. 최 검사는 어쩐지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 같아 웃음을 지으며 밝은 이야기를 꺼내본다.

“아, 그래도 저는 넓은 사무실에서 여러 사람들이랑 으쌰으쌰 하며 같이 일하는 게 신선하기도 하고 좋더라고요.”

전 검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공판검사 때 큰 사무실에서 다 같이 일해봐서 난 완전 신물이 나요. 프라이버시 보장되는 개인 집무실이 훨씬 좋다고요. 그러면 홍 검사님 얼굴 매일 안 봐도 될 텐데.”

주먹까지 꼭 쥐고 으쌰으쌰 해 보였던 최 검사가 본전도 못 찾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태산은 웃으며 최 검사의 어깨를 두드렸다.

“뭐야? 그런 일 정도로 기가 죽어서야 되겠어? 그래 가지고 검사 잡는 검사가 될 수 있겠냐 이 말이야.”

“오오~ 검사 잡는 검사! 그거 개간지 나네요.”

“개…….”

아무튼 요즘 애들의 어휘 구사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는 태산이다. 간지가 난다는 건 좋은 뜻일 텐데 왜 하필 ‘개’가 붙은 것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최 검사는 신이 나서 몇 번이나 중얼거린다.

“검사 잡는 검사… 으흠… 무슨 히어로 이름 같기도 하고.”

그 말을 듣고 전 검사가 낄낄 웃는다.

“그렇네요. 그럼 난 감찰부 마녀! 내 헤어스타일이랑 딱이죠?”

전 검사가 고무줄로 간신히 묶여 있던 악성 곱슬머리를 풀어헤치며 말했다. 그러고는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희한한 제스처를 취한다. 최 검사가 그것을 보더니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오오~ 스칼렛 위치다!”

분위기가 급격히 풀어지자 원 부장도 유쾌하게 말을 보탠다.

“난 대검의 염라대왕이 좋겠어요.”

다음으로 안 검사에게 기대감 어린 시선이 집중되었다. 뭐라도 한마디 내놓아야 되겠다는 압박에 시달리던 안 검사가 더듬더듬 말했다.

“어… 음… 저울과 칼을 든 처녀?”

신이 나서 싱글벙글했던 일동은 일순간 얼어붙었다.

“그거… 무슨 수식언입니까?”

“정의의 여신인가요?”

“아, 안 돼. 이 사람은 너무… 너무 진지충이야…….”

전 검사는 숫제 이마를 짚으며 경악한다. 안 검사는 머쓱해 얼굴을 붉히며 얼른 와인 잔을 기울였다.

그 모습을 보고 쿡쿡 웃고 있는 태산에게 다음 화살이 날아왔다.

“과장님도 하나 만드셔야죠.”

전 검사의 독촉에 최 검사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과장님은 예전부터 우리끼리 붙인 별명이 있는데요.”

최 검사가 안 검사와 눈을 맞춘다. 안 검사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동시에 툭 던져놓는 것이다.

“무법검사!”

* * *

“무법검사!”

안 검사와 최 검사가 동시에 뱉어놓은 말에 원 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강 과장이 좀 그런 면이 있죠. 명색이 검사라는 사람이 법 제도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 것 같잖아요. 수틀리면 무엇도 개의치 않고 다 밀어버릴 것처럼 저돌적이고. 확실히 그런 면이 딱 무법자네요.”

다른 검사들도 고개를 끄덕여 태산은 영 민망한 기분이 되었다.

최 검사는 들뜬 얼굴로 재잘거렸다.

“이거 캐릭터 확실하고 좋네요. 염라대왕, 무법자, 마녀, 블레이드, 여신…….”

“아, 잠깐만요… 여, 여신이라니…….”

안 검사가 당황해서 얼굴을 붉히며 얼른 저지했지만 최 검사는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감찰부 어벤져스를 위해서 건배 한번 하죠!”

최 검사가 잔을 높이 드니 다른 검사들도 즐거운 얼굴로 잔을 가져다 댄다. 말리려던 안 검사도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우물쭈물 잔을 들었다.

“감찰부의 활약을 위하여!”

“위하여!”

원 부장의 선창에 따라 검사들은 잔을 높이 들었다.

잔을 다시 입으로 가져가는 최 검사에게 전 검사가 슬쩍 물었다.

“근데 최 검사는 왜 블레이드예요?”

“블레이드가 뱀파이어 잡는 뱀파이어잖아요. 검사 잡는 검사라고 할 때 딱 떠올랐는데.”

최 검사는 그렇게 말하며 등 뒤에서 장검을 꺼내 휙휙 휘두르는 시늉을 한다. 전 검사가 옆에서 오오~ 하고 환호하더니 자신도 스칼렛 위치의 액션을 다시 한번 선보인다.

태산은 전 검사와 최 검사가 등을 맞대고 선보이는 개인기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의외로 두 사람이 꽤 죽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안 검사와 함께 일할 때만 해도 눈치 없고 철없는 행동거지로 안 검사의 은근한 구박을 받곤 했던 최 검사건만.

처음엔 간단히 한 잔만 하고 가자고 했던 원 부장도 이야기가 깊어지자 쉽게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홀짝홀짝 마시는 마시던 와인에 다들 꽤 거나하게 취해 어느새 격론이 오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법문에 딱딱 맞춰 정량적으로 처벌 수위를 정하는 일이 가능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거예요. 세상 일이 원칙으로만 정확하게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하나하나의 사례를 깊게 고찰해 보면 비슷한 사례로 보여도 디테일은 사건마다 다 달라요. 사안의 디테일과 외부적인 요소까지 고려해 합리적인 수준의 처벌 수위를 검찰 단계에서부터 고민해야 된다고 봐요.”

원 부장의 말을 안 검사가 바로 반박했다.

“피의자의 사정을 고려해 처벌 수위를 정하는 것은 법원의 역할 아닙니까? 피의자의 기소를 책임진 검찰에서부터 온정을 보인다면 재판 단계에서는 더욱 처벌이 약해질 것이고 결국 피의자가 합당한 수위의 처벌을 받는 데서 더 멀어질 뿐입니다. 검찰의 구형만이라도 대중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정량적이면서도 엄격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의 구형이라면 검사가 뭐가 필요하겠어요? AI가 구형하면 되지.”

“아, 그러고 보니 미래에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법조인은 없어질 직업 중 하나라면서요?”

최 검사가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가 눈총을 받고 흠흠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했다. 원 부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법원의 양형 수위도 검찰의 구형에 영향을 크게 받아요. 그러니 구형 단계에서부터 처벌 수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에요.”

안 검사는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 은근히 반박했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방금 전 부정부패를 일벌백계해서 검찰을 개혁하신다면서도 이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일견 모순되게 들리는데요. 설마 기존의 감찰부처럼 자기 식구 감싸는 검찰의 행태를 반복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죠?”

술이 들어간 마당이라서인지 안 검사의 비판의 칼날은 수위 조절도 없이 날카로웠다. 원 부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했다.

“어머, 이 사람 말하는 것 좀 봐. 고지식하다는 평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하네.”

원 부장의 말에 안 검사는 누가 그런 평을 전했을까 하는 눈으로 태산을 은근히 곁눈질했다. 태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태산이 전한 말은 아니었지만 안 검사가 고지식하다고 평가했을 검사들이야 한 트럭일 것이다.

“상사가 틀린 말도 아니고 원론적인 얘기를 했을 뿐인데 그렇게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다니요. 나 때는 상사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앞에서는 네, 네 했었는데 문화가 참 많이 달라졌네요.”

“오오~ 나왔다! 라떼는…….”

전 검사가 와인 잔을 든 채로 킥킥 웃으며 중얼거렸지만 원 부장은 미처 듣지 못한 듯했고 태산과 안 검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최 검사만이 움찔해서 다른 검사들의 눈치를 살필 뿐이다.

“조직문화 참 좋아졌네. 상사들이 룸살롱 회식에 여검사까지 끌고 가도 두말없이 따라가서 폭탄주 말아야 할 때도 있었는데…….”

원 부장이 중얼거린 말에 안 검사는 경악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그게 자랑이십니까?”

원 부장도 기분이 상해 덩달아 목소리를 높인다.

“언제 내가 따라갔다고 했어요? 그런 압박을 받을 때도 있었다는 거지. 지금은 세상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여검사들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런 일까지 감당해야 될 때도 있었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살아남은 여검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안 검사가 의연하게 일할 수 있는 거고요. 그러니 그렇게 혐오스럽다는 얼굴로 자기만 깨끗한 척하지 말아요. 어려운 환경을 견뎌낸 선배들에게 마땅한 존경심을 보여달란 말입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지 저는 이해 못 하겠습니다. 그런 문화를 견딘 분들 덕분이 아니라 반기를 들고 저항한 분들 덕분에 제가 의연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겠죠.”

“지금도 완전히 의연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닐 텐데요. 안 검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상황에서 타협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나요?”

안 검사는 뭐라 답하려다가 분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성 접대를 받았다는 것을 암시하며 추행성 발언을 하던 상사, 몇 번이나 겪었던 은근한 성희롱들. 그 정도는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눈감고 지나갔던 적이 안 검사에게도 많지 않았던가.

원 부장이 평검사 시절이라면 그 기준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주춤한 안 검사였지만 원 부장은 아직도 잔뜩 흥분한 채로 이번에는 화살을 태산에게로 돌렸다.

“강 과장 의견도 한번 들어봅시다. 내가 틀린 말 했어요?”

원 부장과 안 검사의 격론을 남의 일처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던 태산은 갑자기 돌아온 화살에 잠시 당황했다. 턱을 문지르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태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기본적으로는 안 검사처럼 원칙에 따라 엄벌해야 된다는 입장입니다만…….”

원 부장은 태산까지 상사가 아니라 반항적인 부하의 역성을 들고 나서자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안 검사는 태산이 자기편을 들어주는 것을 온전히 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원 부장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때론 원칙만 고수할 수는 없는 때가 있게 마련이죠.”

태산의 입가에 악의적인 미소가 씨익 떠오른다.

“저는 우리 법의 처벌 수준이 기본적으로 지나치게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범죄자를 죗값에 합당하게 강력히 처벌하기 위해서는 조금 융통성을 가져도 좋다고 보는데요.”

원 부장과도, 안 검사와도 완전히 다른 의견이었다. 범죄자를 강력히 처벌하기 위해서는 초법적인 조치도 불사하겠다는 뉘앙스였다. 원 부장도, 안 검사도 황당해 입을 떡 벌렸다.

최 검사만이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오오~ 역시 무법검사!!”

원 부장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번에는 전 검사를 돌아보았다.

“전 검사 의견은 어때요?”

“저요?”

아까부터 조용히 술을 홀짝이고 있던 전 검사가 이미 많이 취한 듯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반쯤 감긴 눈으로 원 부장을 돌아보았다.

“쓰레기 같은 범죄자 새끼들 다 죽여 버려야죠.”

전 검사는 이를 뿌득 갈더니 살기등등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손을 번쩍 들고는 선언했다.

“저는 강 과장님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말을 마치고 뭐가 우스운지 킥킥 웃던 전 검사가 문득 이마를 쿵 하고 테이블에 박고는 낮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와인을 우습게 보고 혼자 양껏 마신 모양이었다.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법조인이 할 말은 절대 아니었다. 얼어붙은 검사들에게 최 검사가 대신 변명이라도 해주듯 둘러댔다.

“아하하… 전 검사님 많이 취하신 모양이네. 인사불성으로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요. 그럼 최 검사 얘기도 들어봅시다.”

원 부장의 말에 최 검사가 비실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저는 어디까지나 강 과장님 편이죠. 저는 겁도 많고 약해서 매사에 잘 흔들리거든요. 다 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저라면 절대 그렇게 못 하니까 대신 강 과장님을 응원하고 싶어져요. 그게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 해도요. 어차피 과장님이 너무 막 나가면 잡아주실 분은 여기 계시니까…….”

최 검사가 안 검사를 가리키며 말하자 안 검사가 얼굴을 붉혔다. 자신 또한 몇 번이나 강 검사의 폭주를 차마 막지 못한 일이 있었으므로.

“저 하나쯤이야 강 과장님을 무조건 응원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근데 의외로 속으로는 응원하셨던 분이 또 있으셨네요.”

최 검사는 산발이 된 고수머리를 테이블에 박고 있는 전 검사를 힐끗 보며 말했다.

원 부장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감찰부 검사 중 내 편 하나가 없다니.”

실망하는 듯했던 원 부장이 갑작스럽게 눈을 빛내며 웃음을 지었다.

“이러니 내가 뭐라 지시를 해도 들어먹지도 않을 테고. 부하들이 폭주해도 위에는 변명할 말이 생겨 좋네요. 통제가 안 되니 어쩔 수 없다고.”

태산은 원 부장의 전매특허가 또 나왔구나 생각한다. 무력한 방임주의 상사인 척 상부의 압력은 교묘하게 막아주면서 부하들에게 수사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물론 후에 성과가 나오면 그 실적은 꼼꼼히 뽑아먹겠지만.

“고분고분 시키는 일만 하는 검사보다 난 이쪽이 더 좋아요. 마음껏 날뛰어도 되니까 대신 실적들은 확실하게 내주세요.”

아니나 다를까 원 부장은 시원시원하게 선언했다. 안 검사가 당황해서 되물었다.

“네? 정말 검사들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시겠다고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통제는 안 검사가 알아서 해주겠죠. 안 그래요? 혹시 문제 될 만한 일이 생기면 나한테 보고하세요.”

안 검사는 황당한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태산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부장님, 부하들에게 다 떠맡기고 완전히 공짜로 드실 작정이십니까?”

“안 되나요? 기왕 만들어진 특별 팀인데 나도 부하 덕 좀 봅시다.”

원 부장의 말에 안 검사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런 게 있어요.”

원 부장이 태산에게 찡긋 윙크를 했다. 아마 원 부장도 사전에 법무부장관에게 무언가 언질을 받은 모양이다.

“아무튼 수사는 알아서들 잘해주세요. 난 감찰 1·2과 사람들과 의견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예정이니까. 벌써부터 골치가 다 아프네요.”

원 부장이 이마를 찌푸리며 슬쩍 꺼내놓은 말에 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하루 동안에만 느낀 은근한 텃세의 분위기를 보았을 때 원 부장이 감당해야 할 것은 비단 상부의 압력만은 아닐 것이었다. 감찰부 내의 정치 싸움을 조율하는 것도 원 부장의 몫이었다.

“전 검사가 뻗어버렸으니 마지막으로 건배하고 그만 일어나죠.”

원 부장이 슬슬 자리를 정리했다. 검사들은 건배와 함께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켜고 바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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