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 염승신 밑에 7천사, 그 밑으로 24장로, 48집사, 72성도 이런 식으로 간부들의 계급이 내려갑니다. 영생기도원은 7천사 중 하나인 김창득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김창득은 한누리성전에서 교주 염승신과 더불어 요한계시록의 두 증인으로 섬기고 있을 만큼 교단 내 영향력이 큰 인물입니다.”
태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으으~ 벌써부터 구린내가 진동을 하는군.”
“말씀하신 대로 수상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기도원을 신도들의 정신 수양을 위한 수련 장소로 쓰고 있다고 하는데요. 일단 규모부터가 상당한 크기여서 실질적으로는 교단에 재산을 전부 기탁하고 오갈 데 없는 신도들의 공동 거주 장소가 아닌가 추정됩니다. 철저하게 비공개로 운영되는 폐쇄적인 기도원이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인즉슨 뭐든 할 수 있다는 얘기겠죠. 강제 노동, 학대, 갈취, 납치, 감금 등등…….”
태산의 중얼거림에 안 검사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태산은 얼른 최 검사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최 검사 쪽은 뭐가 더 나왔어?”
질문에 답하는 최 검사도 심난한 표정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고소인 엄명희 씨를 다시 소환해 조사했습니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인 것을 고려해서 모친을 함께 입회시켰고요. 기도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나는 대로 전부 말해보라고 했더니 많이 힘들어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협조해 줬습니다.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을 고려한다 해도 끔찍하더군요. 악취 나는 별채에 갇혀서 묶인 채로 지냈는데 들리는 소리로 짐작해 보면 자기 말고도 다른 방에 몇이 더 있는 것 같았답니다. 밥을 가져다주고 오물을 치워주는 신도도 행색이 남루하고 피골이 상접한 것이 감금된 사람들과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고 하고요. 신도들끼리 누가 죽어나갔다 그런 얘기까지 나누는 것도 들었다고…….”
얘기를 하다 말고 최 검사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이 미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데… 미친 사람의 헛소리라고 치부하고 수사를 종결해 버렸으니… 제 잘못입니다. 제가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태산은 자책하는 최 검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누구나 실수는 해. 게다가 홍혁권 사건이 없었다면 나라도 엄명희의 말을 믿어주진 못했을 거야. 지금이라도 제대로 잡아들여서 바로잡자고.”
태산은 안 검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기도원 압수수색영장 청구합시다.”
하지만 기세 좋게 선언한 태산에게 안 검사는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다.
“부장님, 한시가 급한 상황인 줄은 압니다만 영장 받아내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왜요? 교단의 영향력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이런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은폐할 수 있을 정도로?”
태산은 삐딱하게 되물었다. 사이비종교가 이 정도 범죄를 저지르고도 은폐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국가라면 과연 그것을 법치국가라 할 수 있을까?
“교단 특성상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신도 중 사회 지도층이 상당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법원의 결정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겠죠.”
안 검사는 대충 인정하고 넘어갔다. 정말로 하고 싶은 건 다음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건 그 이전의 문제입니다. 증거가 너무 부족합니다. 영생기도원을 특정한 것 자체가 추측에 가깝고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엄명희의 진술은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겁니다. 추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영장 발부는 어렵습니다.”
태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면 현장에서 증거를 찾아보죠.”
무슨 말인가 하고 안 검사와 최 검사가 긴장한 채 태산을 돌아보았다.
“엄명희의 말로는 추가로 감금된 사람들이 더 있다 했습니다. 현장을 덮쳐서 그 사람들을 찾으면 현행범으로 바로 관련자들을 체포할 수 있습니다.”
현행범 체포 시에는 영장 없이 압수수색이 가능하다. 아직 혐의를 확정하지는 못했지만 범행 현장을 잡아내기만 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압색영장 없이 바로 현장 출동하시겠다는 건가요?”
최 검사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정말로 답을 구하는 물음은 아니었다. 평소 강 검사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그런 방식을 취할 거라는 데에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안 검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현장을 덮치고도 범죄 사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강제수사절차에 대해 문제가 제기될 겁니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당연히 내가 책임집니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겠습니다.”
안 검사는 분명히 반대하리라 생각하며 태산은 슬쩍 퇴로를 열어주었다.
“반대한다면 빠져도 좋습니다. 현장 수사는 나 혼자 단독으로 진행한 일로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섭섭한 말씀이세요.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최 검사가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의욕적으로 나섰다. 안 검사는 잠깐 고민했지만 현장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피해자를 생각하면 차마 절차를 이유로 반대할 수 없었다.
“이의 없습니다. 언제 출동합니까?”
안 검사도 찬성하자 최 검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되면 내 지시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하세요.”
“어휴~ 의리가 있지 어떻게 그래요?”
“그럴 일 없습니다. 반드시 피해자를 찾아내면 됩니다.”
두 검사가 다투어 반박했다. 태산은 빙그레 웃고는 선언했다.
“한시라도 빠른 게 좋겠죠. 더 지체하지 말고 바로 출동합시다. 최소 인원으로 신속하게 갑니다.”
태산은 각 검사실의 수사관들만을 대동하고 수사차량에 올랐다. 현장으로 가는 동안 안 검사는 전화로 관할 경찰의 협조를 구했다. 증거가 포착되는 대로 바로 경찰을 출동시켜 관련자들을 즉각 검거하기 위해 필요한 경찰력을 미리 대기시킨 것이다.
사이렌을 울리며 북한산 자락에 있는 기도원에 도착했을 때는 사이렌 소리를 들은 관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달려 나와 수사차량에서 내리는 태산의 앞을 막아섰다.
“무슨 일입니까?”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 강바른 부부장입니다.”
태산은 신분증을 내보이며 말했다.
“수사에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
* * *
영생기도원 관리자인 김창득은 태산의 협조 요청에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영장은 가지고 왔습니까?”
“홍혁권 씨 사망사건 수사 중입니다. 홍혁권 씨가 이 기도원에 감금되어 있었다는 제보를 받고 왔습니다. 긴급체포 해야 하는 상황이니 협조 바랍니다.”
태산은 김창득에게 대충 답하며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엄명희의 진술로 미루어 다수를 수용할 수 있고 감금에 사용될 수 있을 만한 폐쇄성이 있는 별채를 찾는 것이었다.
기도원 뒤쪽 산 중턱에 작은 별채가 있는 것을 보고 태산은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검사와 수사관들도 재빨리 태산의 뒤를 따랐다.
기도원 본관에서 당직자들이 몰려와 태산의 앞을 막아섰다.
“뭐 하는 거야, 당신들?”
“검찰이면 주거침입 해도 돼?”
“이건 종교탄압이야. 우린 헌법에서 보장한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물러서세요. 협조하지 않으면 공무집행방해로 모두 연행하겠습니다!”
당직자들이 일행과 씨름하는 사이 태산은 재빨리 별채로 달려갔다. 뒤늦게 당직자들이 뒤쫓아 왔지만 태산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별채 입구의 문손잡이에는 굵은 쇠사슬이 칭칭 감겨 있었고 그 위에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태산이 단숨에 쇠사슬을 잡아당기자 자물쇠가 망가지며 떨어져 나왔다. 비로소 쇠사슬이 스르륵 풀린다.
태산은 쇠사슬을 걷어 던지고 바로 별채 안으로 뛰어들었다. 빛이 잘 들지 않아 눈이 어둠에 적응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지독한 냄새였다. 코를 찌르는 락스 냄새 뒤로 채 지워지지 않은 악취가 풍겼다. 짐승 냄새 같기도 하고 오물 냄새 같기도 한 악취에 태산은 저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욕지기를 참으며 태산은 길게 나 있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복도 옆으로 작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문에는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난 것이 감옥과 판박이였다.
하지만 모든 방을 다 들여다봐도 갇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낭패로군.”
태산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서두른다고는 했지만 홍혁권이 탈출해서 사체로 발견된 이후 기도원 측도 혹시나 모를 수사에 대비를 했을 것이다. 이곳에 감금되어 있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별채는 폐쇄한 것이 분명하다.
태산이 별채를 다 둘러보고 나왔을 때 수사관들과 당직자들은 아직도 아래에서 아우성을 치며 밀고 당기고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 올라온 김창득과 당직자 몇은 박살이 나 뒹구는 자물쇠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태산은 아랑곳없이 김창득에게 물었다.
“여기는 뭐 하는 공간입니까?”
“옛날에 쓰던 기도실입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곳이라 너무 노후되어서 폐쇄했습니다.”
태산은 흥 하고 코웃음을 웃었다.
“옛날에 쓰던 곳이라더니 냄새는 어제 것처럼 신선한데요?”
“사람이 안 쓰니 쥐가 들끓어서 말입니다. 얼마 전에 대대적으로 구제하고 청소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듯 빈틈없는 답이었다.
간신히 별채로 올라온 안 검사가 울분을 참고 있는 태산의 표정을 살피더니 실패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과학수사 팀을 투입해서 현장 감식을 하면 DNA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였지만 범행 현장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없는 한 과학수사 팀 투입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 당장 범죄의 증거를 포착해야 한다.
태산은 착잡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란이 벌어지자 본관 쪽에서도 사람들이 나와 무슨 일인가 힐끔거리며 살폈다. 당직자가 아닌 듯한 이들은 멀리서 보아도 행색이 남루하고 혈색이 나쁜 데다 깡말라 있었다.
당직자가 구경하는 이들을 채근해 본관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일반 신도들은 당직자의 눈치를 보며 얼른 본관 안으로 사라졌다. 어쩐지 두려움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악취 나는 별채에 갇혀서 묶인 채로 지냈는데 들리는 소리로 짐작해 보면 자기 말고도 다른 방에 몇이 더 있는 것 같았답니다. 밥을 가져다주고 오물을 치워주는 신도도 행색이 남루하고 피골이 상접한 것이 감금된 사람들과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고 하고요. 신도들끼리 누가 죽어나갔다 그런 얘기까지 나누는 것도 들었다고…….]
불현듯 최 검사가 얘기했던 엄명희의 진술 내용이 떠올랐다.
이곳에 갇혀 있던 사람들 중 제 발로 나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엄명희가 갇혀 있을 동안에도 누군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이곳에서 죽은 사람이 하나둘은 아닐 것이다.
사체는 대체 어떻게 처리했을까? 폐쇄적인 산속의 시설에서 시체가 나왔다면 암매장일 가능성이 높다.
태산은 기도원 부지를 주의 깊게 둘러보았다. 산 중턱을 깎아 만든 본관 앞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고 그 앞에는 신도들이 직접 푸성귀를 재배하는 듯 꽤 넓은 규모의 텃밭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텃밭 한쪽 옆에 시멘트로 바닥을 덮어둔 공터가 있었다.
태산이 그곳을 수상쩍다는 눈으로 유심히 보니 김창득이 어쩐지 초조한 기색을 보인다.
“저긴 뭡니까? 왜 시멘트로 바닥을 덮어놓았죠?”
“창고 부지입니다. 농기구 창고가 필요해서 작업 중이었습니다.”
“흐음…….”
태산이 애매하게 신음하고는 한달음에 언덕을 내려왔다. 당직자들이 허둥지둥 태산을 따라 내려온다.
태산은 시멘트로 덮인 바닥을 만져보았다. 시멘트가 아직 완전히 마르지도 않았다. 바닥 작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울퉁불퉁 높낮이가 고르지 않은 데다 바닥 모양도 반듯하지 않았다. 이후 벽을 올릴 것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대충 덮어둔 느낌이다.
바닥을 살펴보고 있는 중에 문득 오감이 날카롭게 일어선다. 등골이 쭈뼛해지며 코끝에 기묘한 냄새가 감지되었다.
“악취가 나는 것 같은데?”
태산이 시멘트 바닥 주위를 맴돌며 중얼거리니 뒤따라온 김창득이 애써 태연하게 둘러댔다.
“텃밭에 뿌린 비료 냄새겠지요.”
태산은 코웃음을 쳤다.
“이런 시기에?”
지력을 높이기 위해 밑거름을 뿌려두는 시기는 보통 휴경기가 끝나고 파종이 시작되기 전인 늦겨울에서 초봄 사이다. 소량씩 추가로 비료를 뿌리는 시기라 해도 한여름이다. 텃밭에 한창 작물이 무성한 가을에 내놓은 변명으로는 궁색했다.
“여기 좀 파봐야겠어요.”
태산이 막 내려온 안 검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태산의 말에 김창득이 화들짝 놀라 반발했다.
“아니, 멀쩡한 바닥을 왜 파낸단 말입니까? 영장도 없이 이래도 되는 거요? 손해는 누가 책임질 거요?”
태산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내가 책임지죠. 아무것도 안 나오면 새 창고 하나 올려 드리겠습니다.”
안 검사 역시 김창득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태산을 향해 말했다.
“중장비가 필요할 거 같네요. 경찰에 포크레인 지원 요청할까요?”
“중장비 차출해서 여기까지 올려 보내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태산은 턱을 문지르면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텃밭 옆에 쌓아둔 농기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불현듯 다가갔다. 곡괭이를 골라 든 태산이 창고 터로 돌아오며 말했다.
“내가 한번 해보죠.”
말을 끝내자마자 태산은 곡괭이로 힘껏 시멘트 바닥을 내려쳤다. 바닥은 단번에 쩍 하고 금이 갔다. 태산이 몇 번 내리찍자 바닥에 난 금이 점점 길게 뻗어나갔다.
태산의 기세에 당직자들이 놀라 멈칫했다. 당직자들과 씨름 중이던 수사관들은 그 틈에 태산의 곁으로 달려와 농기구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괭이, 갈퀴, 쇠스랑을 들고 와 태산이 깨놓은 시멘트 덩어리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최 검사와 안 검사도 삽과 호미를 들고 달려들었다.
“대, 대체 무슨 짓이야?!”
“그만둬!!!”
말리려 달려들던 당직자들도 시멘트 바닥이 벗겨지기 시작하자 얼굴에 두려움이 서리며 점점 몸이 굳어 꼼짝하지 못했다. 시멘트 바닥이 제거되고 맨땅이 드러나니 이제는 다른 사람들도 희미하게 풍기는 악취를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태산은 이내 곡괭이를 최 검사에게 넘기고 대신 삽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속도를 높여 바닥을 파내기 시작했다. 파 내려갈수록 악취는 점점 더 심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삽 끝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걸렸다.
태산은 삽 끝으로 조심조심 그것을 끌어냈다. 욕지기를 불러일으키는 악취와 함께 누더기를 걸친 인골이 끌려 나왔다. 땅을 파고 있던 검사와 수사관들이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릴 지경이었다.
안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전화를 꺼내 들었다.
“강북서죠? 협조 요청했던 서울중앙지검 안소영 검사입니다. 감금살인증거 포착했습니다. 바로 출동해 주세요. 감식반도 함께 보내주시고요.”
안 검사의 전화 통화 내용에 얼어 있던 당직자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어떤 이들은 범행이 발각되었다는 절망감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고 어떤 이들은 주춤거리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줄행랑을 치려는 기미를 눈치채고 수사관들이 얼른 달려들었다. 도망치려고 아우성인 당직자들을 수사관들은 등 뒤에서 덮쳐 수갑을 채웠다. 하지만 사방으로 흩어지는 당직자들을 모두 체포하지는 못했다.
태산은 혼란의 와중에 잽싸게 내빼고 있는 김창득을 가만히 눈으로 좇았다. 김창득은 주차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차를 타고 도주할 셈인 듯했다.
태산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한 번 내저었다. 그러고는 손에 든 삽을 던져놓은 채 순식간에 내달아 맹수처럼 김창득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으, 으악! 이거 놔!!”
태산은 김창득의 비명에도 아랑곳 않고 목덜미를 잡아 질질 끌고 암매장 장소로 다시 돌아왔다. 김창득은 소리 지르고 발버둥 치며 저항했지만 신고 있던 구두만 벗겨졌을 뿐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었다.
태산은 김창득을 그대로 악취 풍기는 구덩이 속에 던져 넣었다. 구덩이 속을 구르던 김창득은 삐죽이 비어져 나온 인골을 보고 히이익! 하며 기겁했다. 버둥거리며 빠져나오려는 김창득을 태산은 발로 차 다시 구덩이에 처넣었다. 그러고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들고 있던 삽을 주워 김창득의 옆에 던져주었다.
“묻은 놈이 파야지, 안 그래? 감식반 도착할 때까지 전부 파낸다. 실시!”
시퍼런 서슬에 김창득은 자신도 모르게 삽을 쥐었지만 덜덜 떨며 차마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거기 같이 묻히고 싶어?! 빨리 움직여!”
태산이 고성을 지르자 그제야 김창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식반 도착 전에 현장을 훼손할 수 있는 일은 수사상 금기였지만 이번만은 안 검사도 굳어진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창득이 헛구역질을 하며 시신을 파낼 동안 태산은 수사관들과 함께 사방으로 도주한 당직자들을 모두 잡아들였다.
당직자들을 굴비 엮듯 엮어 수사차량에 실었을 때 비로소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언덕길을 올라왔다. 김창득은 그제야 안도하며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경찰이 오는데 오히려 안도하는 꼴이 태산의 심기를 거슬렀다. 태산은 다시 한번 발길질을 날렸다.
“누가 쉬라고 했어?!”
파고 있던 시신 위에 주저앉은 김창득이 후다닥 일어서더니 서둘러 다시 삽을 잡았다. 태산은 경찰들이 암매장 현장까지 도착한 후에야 김창득을 인계하고 검사들과 함께 본관으로 향했다.
* * *
본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1층에는 식당과 사무실이 있었고 2층, 3층은 기숙사처럼 방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각 방에는 학교 교실처럼 복도로 난 창이 있어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감시를 수월하게 하기 위한 구조일 테지만 덕분에 태산도 방 안에 있는 신도들의 움직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신도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복도를 지나가는 태산 일행을 흘끔거리면서도 밖으로 나오지는 않고 있었다. 당직자들이 미리 나오지 말고 대기하라고 일러둔 탓이었다.
방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과 여자들이었다. 그들의 행색을 보면 사이비종교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하층에 있는 이들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피를 빨릴 대로 빨린 후 더 이상은 효용이 없어 값싼 노동력만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들. 말 그대로 교단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방마다 퀭한 눈빛으로 내다보는 교인들의 얼굴을 보며 최진우 검사는 충격을 받고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끔찍하네요.”
하지만 더욱 처참한 광경이 기다리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3층 복도 끝 맨 마지막 방은 다른 방보다 크기가 작았고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도 없었다. 태산이 문손잡이를 잡고 돌려보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잠가둔 모양인데.”
“비품 창고 같은 건가.”
“사무실에 가보면 열쇠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대화를 나누며 무심히 지나치려는 순간 태산이 멈칫 발을 멈추었다. 안에서 들리는 희미한 인기척을 포착한 것이다.
“왜 그러세요?”
신경을 바짝 세우고 돌아보는 태산을 보며 최 검사는 제가 더 놀라 두리번거렸다.
“안에 뭔가 있어.”
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발 물러났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문을 향해 돌진했다. 어깨에 온 힘을 실어 문에 부딪치자 경첩이 박살 나며 단번에 문이 떨어져 나갔다. 그와 함께 문 안에서 가냘픈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창고였던 것으로 보이는 공간에는 피골이 상접한 세 사람이 갇혀 있었다. 중년 여자와 노파는 서로 머리를 맞댄 채 덜덜 떨고 있었고 뒤쪽 벽 앞에 눕혀진 노년의 남자는 의식 없이 누워만 있었다.
별채에서 나던 악취가 창고 안에도 떠다니고 있다. 미루어 짐작컨대 별채에 갇혀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진 사람들인 것 같다.
“사, 살려주세요. 뭐든 시키는 대로 할게요. 제발 때리지 마세요.”
중년의 여자가 간신히 소리를 쥐어짜 애원했다. 태산 일행을 당직자로 착각한 것이다.
“안심하세요, 검찰입니다.”
태산의 답에 여자들은 멍한 얼굴을 하더니 이윽고 안도의 울음을 터뜨렸다.
“살았다! 이제 살았어요.”
“아이구~ 하느님, 부처님!”
황망한 얼굴로 상황을 보고 있던 안소영 검사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급히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누워 있는 노인에게 달려가 목을 짚어보았다.
“맥은 약하지만 살아 있습니다!”
기가 질려 굳어 있던 최 검사도 안 검사의 외침에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구급차 부를게요.”
최 검사는 119에 전화해 노인의 상태를 설명하며 곁에 남았고 태산과 안 검사는 여자들을 부축해 1층으로 내려왔다. 경찰이 여자들을 인계받아 산 아래로 내려보냈다.
감금되어 있던 여자들이 경찰차를 타고 내려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산비탈을 올라왔다. 구급대원들이 이동 침대를 내리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있습니까?”
“3층 맨 오른쪽 끝 방입니다.”
태산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급대원들이 3층으로 달려 올라갔다. 노인이 침대에 실려 내려올 때 최 검사도 함께 내려왔다.
노인을 실은 구급차가 막 떠났을 때 당직자들을 체포해 실은 수사차량도 그 뒤를 따라 출발하려 했다. 창가에 붙어 서서 상황을 살피던 교인들이 일제히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천사님! 천사님! 우릴 두고 가지 마세요.”
“장로님!! 힘내세요. 끝까지 기다릴게요.”
“이놈들아, 하나님이 내려보낸 천사를 박해하다니! 천벌을 받을 것이다!!”
세뇌당한 신도들은 자신들을 착취한 당직자들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괴로워하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 모습을 올려다보며 최 검사가 심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요?”
태산은 대답하지 못했다. 저들의 후일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안 검사가 태산을 대신해 애써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든가 노숙자 쉼터 같은 데로 가게 되겠죠.”
애초에 전 재산을 교단에 바치고 수용소로 들어온 사람에게 받아줄 가족이 남아 있을 것인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한들 한번 사이비 교리에 세뇌된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인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또 다른 착취자의 제물이 되지는 않을까?
세 사람의 마음속에는 같은 생각이 피어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내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 * *
“김창득에게 아버지와 회사 경영상 갈등이 있다고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김창득이 이제 슬슬 아들들이 사업을 물려받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더군요. 아버지가 서슬 퍼렇게 버티고 있는데 별수 있느냐 했더니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노망난 아버지가 가출했다고 하고 기도원에 가두어두면 손쉽게 회사를 장악할 수 있을 거라 했습니다. 가짜 치매 진단서를 받는 건 어렵지 않다고 하면서. 그 말에 혹해서 동생들과 논의 끝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홍혁권의 장남은 머뭇거리더니 결국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
“결정을 내린 바로 그날, 아버지 커피에 수면제를 타서 재운 후에 김창득에게 넘겼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무슨 짐짝처럼 얘기한다. 본인의 부친인데도.
태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김창득이 아무런 이득 없이 그런 제안을 하지는 않았을 테죠. 뭘 줬습니까?”
“요양원에 맡기려고만 해도 상당한 돈이 든다며 성의껏 헌금을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돈 때문이었나. 태산 자신도 돈 때문에 혈육처럼 믿었던 이웅배에게 배신을 당해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진짜 피가 이어진 혈육 사이에도 돈 때문에 이렇게 쉽게 서로 등을 지는 것인가.
홍혁권의 장남은 회한에 차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충격을 먹고 식음을 전폐해 오늘내일한다고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김창득에게 연락이 와서는 방심해서 풀어놨다가 배식 시간에 달아나 버렸다고… 김창득이 그놈이 제대로만 했어도 들킬 일은 없었는데…….”
이런 놈들의 후회야 어차피 범행이 발각되고 난 뒤 뒤늦게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들키지 않았더라면 평생 품지도 않았을 후회라지만 그 마저도 아버지를 감금학대해 죽음으로 몰고 간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범행을 들켰다는 것에 대해서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태산 역시 딱히 도덕적인 세계에서 살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인륜이 땅에 떨어졌구나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예, 홍상호 씨.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다는 것 아주 잘 알겠습니다. 그 점은 기소할 때 적극 반영 하도록 하죠.”
태산의 말에 홍상호는 아차 하고 허둥거렸지만 태산은 바로 신문을 마무리 짓고 일어섰다.
“데려가세요.”
태산의 지시에 송봉근 계장이 홍상호를 끌고 나갔다. 태산도 원신영 부장에게 중간보고를 하기 위해 함께 검사실을 나서려는데 마침 검사실로 들어오던 노파가 홍상호를 보더니 옷자락에 매달려 오열했다.
“아이고~ 상호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홍상호의 모친인 모양이다. 송 계장이 차마 떼어내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보고 태산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박초월 씨? 참고인 진술 오셨죠? 이쪽입니다.”
태산이 노파의 팔을 잡고 부축하듯 이끌었다. 그사이 송 계장이 얼른 홍상호를 데리고 나갔다.
“앉으시죠.”
의자를 권했으나 노파는 자리에 앉지 않고 태산의 팔에 매달렸다.
“검사님, 세상에 이런 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내 아들놈들이 죽을죄를 지었어도 한집안의 아들 셋을 전부 구속하는 법은 없어요. 남편도 잃은 늙은 과부 곁에 제발 한 자식만이라도 남겨주세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무릎이라도 꿇을 태세로 매달리는 노파를 태산은 번쩍 팔을 들어 의자에 끌어다 앉혔다. 그제야 노파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며 간신히 진정했다.
“지금 아드님들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요.”
태산이 맞은편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으며 말을 꺼냈다. 예상치 못한 말에 노파가 멈칫한다. 태산은 아랑곳 않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아드님들이 사이비 교단과 손을 잡고 부친을 감금할 계획을 세운 것치고는 그렇게 신앙심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아무리 범죄가 발각이 되었다 해도 7천사 중 서열 두 번째인 김창득에게 감히 이놈 저놈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가족 중에 가장 먼저 신도가 되어 아들들에게 교단을 소개한 것이 박초월 씨가 아닌가 싶더군요.”
노파의 눈이 당황하여 커지는 것을 태산은 놓치지 않았다.
“아들들이 남편의 커피에 수면제를 타서 재운 후 집에서 끌어낸 사실을 정말 몰랐습니까? 갑자기 남편이 행방불명이 되고 아들들이 회사를 나눠 가졌는데 전혀 수상한 점을 못 느꼈습니까? 정신 멀쩡한 양반을 치매로 몰았는데도요? 함께 생활하던 아내가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겠죠.”
노파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리며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태산은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사실은 아들들과 공모한 것 아닙니까? 아니, 아들들을 시켜 이 모든 범행을 저지른 것이 바로 당신 아닙니까?”
태산의 추궁에 노파는 갑자기 심장을 부여잡더니 호흡을 격하게 내쉬었다.
“헉… 구, 구급차 좀… 불러줘요…….”
하지만 태산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이럴 줄 알고 참고인으로 불렀습니다. 피의자로 소환하면 노인들은 자꾸 건강 핑계를 대면서 출석을 피해서 말이죠. 제 발로 건강하게 달려와 놓고 꼼수 쓰지 마세요.”
연기가 통하지 않는 것이 드러나니 노파는 이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기에 묵비권을 행사하려나 생각했을 때 노파가 문득 입을 열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평생 바깥양반한테 구박당하며 부엌데기로 살았수.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도 나한테 쓰는 돈은 한 푼이 아까워 손을 덜덜 떠는 양반이었지. 그런 늙은이한테 무슨 사는 낙이 있었겠수. 내세에는 천국에 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천사님 말씀밖에는.”
노파는 담담히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얘기했다. 범행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얘기였지만 태산은 일단 들어주었다.
“아들들에게도 말씀 한번 들어보라고 몇 번이나 권했지요.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자식 놈들이 열심히 교회 다니고 말씀 듣기에 교화되었구나 하고 기쁘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사업상 이득이 되는 게 있어서 그랬던 모양이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계획까지 세웠을 줄은…….”
노파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간신히 입을 뗐다.
“그날따라 어쩐 일인지 아들들이 찾아와서 살갑게 굴며 커피를 내갈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지. 하지만 알았다 한들 어쩌겠수. 내 새끼들을 고발이라도 해요?”
노파는 그렇게 되묻고는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검사 양반, 난 자식들이 한 짓 눈감아준 것 후회 안 하우. 내가 자식들 입장이었어도 그 고약한 양반 어디로 치워 버리고 싶었을 거요. 그 양반 없어지고 내 속이 어찌나 편하던지. 천사님이 자식들 시켜서 내 행복을 찾아주셨구나 그런 생각까지 했다오.”
노파는 후련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미련 없이 말을 맺었다.
“그게 다요. 난 이제 다 털어놓았으니 감옥을 보내든 어쩌든 마음대로 하시우.”
태산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들들의 진술을 종합해 보아도 모친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정황은 약했다. 만약 감금에 공모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범행을 목격하고도 묵인한 데 그쳤다면 범인도피죄 이상은 적용하기 힘들고 그마저도 친족 간의 특례에 의해 처벌할 수 없다.
“알겠습니다. 일단 댁으로 돌아가 계세요. 곧 다시 부르겠습니다.”
* * *
“현장에서 구출한 세 명 역시 동일한 수법으로 감금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김창득이 가족과 재산 분쟁이 있는 신도에게 접근해 정신질환을 위장하여 가족을 기도원에 감금하고 재산을 독차지하는 수법을 설계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 대가로 거액의 헌금을 받았고요.”
태산의 보고에 원신영 부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심각하게 물었다.
“암매장된 사체가 모두 그런 식의 행방불명자들인 건가요?”
현장에서는 무려 스물세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파내도 파내도 계속 유골이 나와 구덩이는 처음보다 훨씬 넓고 깊어졌다.
“현재 국과수에서 조사 중입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태산은 눈살을 찌푸리며 단서를 달았다.
“다만 육안으로만 보아도 유골들이 묻힌 시기가 서로 상당히 달라 보입니다. 위쪽에서 나온 시신은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부패가 다 진행되지 않았지만 아래쪽 깊은 곳에서 나온 유골은 시일이 상당히 오래된 듯 백골화되어 있었습니다.”
태산은 조심스럽게 추측을 내놓았다.
“기도원에 수용된 일반 신도들도 강제 노역에 동원되며 학대를 당해왔다고 합니다. 아마 그중에서도 사망자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원 부장이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기도원을 거쳐 간 신도 명부 같은 것이 있다면 대조해서 신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겠는데요.”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습니다만 신도 명단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지 사전에 미리 없앤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압수품 중에는 쓸 만한 것이 좀 있던가요?”
“예, 현재 회계장부를 분석 중입니다. 신도가 기도원에 헌납한 재산, 재산 분쟁을 해결해 주고 받은 헌금, 기도원에서 운영하는 사업에서 발생한 수익금 등의 내역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업 운영에 신도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면서도 임금은 전혀 지급하지 않았더군요. 그렇게 확보한 자금 중 일부는 한누리성전 본당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원 부장은 심각한 얼굴로 재차 물었다.
“교주와도 관련이 있다는 건가요?”
“김창득은 부인하고 있습니다만 연관이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암매장된 시신들의 연대로 보았을 때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은폐해 온 일입니다. 게다가 기도원 운영으로 인한 수익이 본당으로도 들어갔는데 교주가 전혀 이쪽 사정을 모르고 있을 리 없습니다.”
태산은 확신을 가지고 답했다.
“게다가 교주 염승신과 김창득은 7천사 중 제1천사와 제2천사로 미래에 예수의 양쪽 옆에 앉게 될 사람들이라며 교단의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교단의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함께한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분명 모든 정보를 긴밀하게 공유하고 있었을 겁니다.”
원 부장이 희미하게 미소를 띤다.
“강 부장, 사이비 교리에 대해 공부 좀 한 모양이네요? 그래서 계획이 뭡니까?”
“한누리성전 본당 압수수색 후 교주 염승신을 구속할 생각입니다. 영장청구서는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검사장님이 결재하도록 설득해 주십시오.”
“좋아요. 진행하세요.”
원 부장이 너무나 흔쾌히 그러마 하고 답해 태산은 얼떨떨할 지경이었다. 어렵겠지만 힘써보겠다 정도의 반응일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사전조사를 했던 안소영 검사의 말마따나 한누리성전 신도 중에는 사회 지도층도 상당수 있다고 하니 교주 구속을 승인해 달라는 것은 부담스러운 요청이 분명했다. 만약 원 부장이 난색을 표한다면 설득할 말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교주가 살인에도 개입했는지를 밝히고 증거를 확보하려면 본당 압수수색이 반드시 필요하다.
불법이 있었던 기도원에서 본당으로 자금이 상납되는 흐름을 장부를 통해 확인했으니 법원에 본당 압수수색 필요성을 소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배임횡령 혐의로 압수수색 하는 김에 살인에 대한 증거도 확보하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살인 혐의는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불법의 증거는 반드시 존재할 것이며 교주를 구속시킬 자신이 있다. 더불어 압색을 통해 신도 명단까지 확보하면 사체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도 훨씬 빨라질 것이다. 결코 무용한 압색이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런 말들을 쏟아내려던 태산은 거의 입 밖까지 나온 말을 뱉지 못하고 그대로 삼켜야 했다. 당황하여 머뭇거리는 태산을 보고 원 부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아니요. 솔직히 어렵다 하실 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수락하셔서 놀랐습니다.”
원 부장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어지간한 사건이었다면 어려웠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사이비 교단 산하의 기도원에서 변사체가 무더기로 발견되었어요.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요. 교주가 개입했건 아니건 묵과할 수는 없는 사안이 된 거예요. 이 정도면 이미 부담스러워할 단계가 아니죠. 어떻게든 교주와의 연관을 찾아내서 구속시키고 그것을 자신의 공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할걸요? 두고 봐요.”
원 부장은 자신만만하게 장담하고는 이내 피식 웃었다.
“강 부장이 일을 키운 덕분에 검사장님이 그렇게 증명하고 싶어 했던 자기 가치를 제고할 수 있겠는데요. 이번 사건 잘 마무리되면 입지가 상당히 올라갈 텐데 정말로 검찰총장까지 하시는 거 아닌가 몰라. 강 부장 덕에 승진하시겠네.”
원 부장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쿡쿡 웃었다.
결재가 올라가자 신승렬 검사장은 정말로 그 어느 때보다 의욕을 불태우며 태산을 직접 불러 격려하기도 했다.
“큰 거 하나 물었구먼. 거물인 만큼 적당히 해서는 안 돼. 반드시 구속시키겠다는 각오로 끝까지 물고 늘어지라고. 잘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신 검사장은 영장청구서 결재란에 사인을 해 건네며 말했다.
“필요한 만큼 인원 차출하고 수사비도 아끼지 말고 써. 사후에 모두 승인해 줄 테니.”
검사장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태산은 한누리성전 본당에 대한 대규모 압수수색을 감행했다.
검찰수사관들이 수사차량에서 내려 본당 진입을 시도하려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 신도들이 몰려들어 스크럼을 짜고 입구를 막고 있었다.
“물러나세요! 영장 집행 중입니다!”
“감히 네놈들이 천사를 잡아가려고 신성한 성전을 침입해?! 네놈들 모두 벼락을 맞아 죽을 것이다!”
“이놈들아, 안 된다! 우리 교주님 데려가려면 날 죽이고 가라!”
“지금 당장 구속하는 거 아닙니다. 합법적으로 압수수색만 하는 거니까 길 터주세요.”
“못 간다. 못 간다, 이놈들아.”
“자꾸 이러면 공무집행방해로 당신들 먼저 잡혀가는 수가 있어!”
“아이고~ 검찰이 사람 잡네~”
수사관들이 번갈아 어르고 달래도 보지만 신도들은 바지 자락을 잡고 늘어지거나 팔짱을 끼고 아예 바닥에 드러누웠다. 태산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교단이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달리 사이비겠습니까?”
최진우 검사가 그렇게 대꾸하고 되물었다.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어떡할까요? 경찰에 지원요청 해서 강제해산 시킬까요?”
“내키지 않는군. 핍박받는 순교자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싶진 않은데…….”
태산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내가 교주와 한번 이야기해 보지.”
“예? 어떻게요? 진입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인데…….”
최 검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태산은 그대로 신도들의 대열을 향해 돌진했다. 발소리를 듣고 신도들과 대치하고 있던 송 계장이 깜짝 놀라 돌아보았지만 태산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속도를 훌쩍 높인다.
‘부딪친다!’
최 검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송 계장은 어쩌지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태산은 송 계장의 어깨를 짚으며 그 기세 그대로 공중에 몸을 띄웠다. 그리고 체조선수처럼 가볍게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신도들 너머에 착지했다.
“어, 어! 저거!!”
신도들이 당황하여 버벅거리는 사이 태산은 순식간에 본당 입구로 사라졌다. 감았던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사라진 후였으므로 최 검사는 영문을 모르고 눈만 껌벅거렸다.
“뭐, 뭐야? 어디로 가신 거야?”
송 계장이 그 말을 듣고 돌아보며 답했다.
“안으로 들어가셨어요.”
태산의 돌발 행동에 신도들은 잠시 주춤해서 대열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수사관들을 밀어내기에 열심이었다. 신도들이 완강한 데다 함부로 물리력을 써서 강제진압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수사관들은 진땀을 흘렸다.
“경찰 지원요청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송 계장이 초조하게 최 검사에게 물었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강 검사 때문에 졸지에 최 검사가 현장 지휘를 맡게 된 셈이다. 최 검사는 잠깐 고민했지만 교주와 얘기를 해보겠다던 강 검사의 말을 믿기로 했다.
“괜한 힘 빼지 말고 강 부장님 나오실 때까지만 기다려 보죠.”
최 검사의 말에 송 계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 검사가 목소리를 높여 검찰수사관들에게 지시했다.
“잠시 차에서 대기합니다!”
최 검사의 지시로 검찰수사관들이 주차장 쪽으로 철수했다. 신도들은 자신들이 막아냈다고 생각하고 기세등등하게 함성을 올렸다.
뒤통수를 때리는 함성 소리에 최 검사는 초조하게 자신이 잘못 결정한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괜히 신도들의 사기만 높여준 것은 아닐까. 부디 강 검사가 좋은 해결책을 가지고 내려와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 시각 태산은 본당 안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당직자도 신도도 모두 검찰수사관들이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본당 안은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태산은 1층 로비에 붙어 있는 본당 안내도를 살핀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교주의 집무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정면에 부속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부속실 역시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태산이 집무실로 다가가는데 집무실 안에서 여자가 하나 나온다. 동그란 금속 테의 안경을 끼고 머리카락 한 올 흘러내리지 않게 말끔히 넘겨 묶은 긴 머리에 회색 정장을 입은 모습이었다. 아마도 부속실에 근무하는 비서인 모양이다.
여자가 태산을 보고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누구시죠?”
태산은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 강바른 부부장입니다. 염승신 씨 안에 있죠?”
태산은 그대로 반쯤 열린 문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비서가 황급히 따라 들어온다.
웅장하고 거대한 집무실 가운데 머리가 벗겨진 백발의 노인이 휠체어에 앉은 채 뒤돌아 있었다.
“염승신 씨?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비서가 후다닥 달려가 휠체어를 밀어 태산을 마주 보도록 돌려놓았다.
태산은 휠체어에 앉은 노인을 보고 예상외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한때는 카리스마 있는 교주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노환으로 기력이 쇠한 것이 한눈에도 분명해 보였다. 눈은 흐리고 메마른 피부에는 주름이 가득하다. 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이자가 그 악명 높은 한누리성전 교주 염승신이라고?’
* * *
“…누구라고?”
염승신은 쉰 목소리로 기어들어 갈 듯 물었다. 귀도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비서가 얼른 고개를 숙여 염승신의 귓가에 말했다.
“검사랍니다.”
“검사가 왜?”
태산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영생기도원 사건 관련해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본당 앞에 신도들이 막고 있어 절차를 진행할 수가 없는 이유로 협조요청 드리러 왔습니다. 신도들이 물러나도록 설득해 주십시오.”
염승신은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멍한 표정이었다. 답답한 심정을 애써 누르며 태산은 재차 강조했다.
“만약 신도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신도들을 사주해 영장집행을 방해한 현행범으로 염승신 씨를 즉시 체포하겠습니다.”
“하, 하지만 그건 교주님이 지시하신 게 아니라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거예요. 게다가 교주님은 지금 연세도 있으시고 건강도 안 좋으신데 당장 구치소로 가신다면…….”
비서가 깜짝 놀라 반박했다.
“그러니 더욱 협조해야겠죠. 압수수색 후 구속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테니 그동안 신변 정리를 할 수 있겠지만 지금 바로 체포되어 구속으로 직행한다면 노구를 끌고 조사받는 동안 버틸 수나 있겠습니까?”
비서가 곤란한 표정으로 망설이더니 염승신의 귓가에 다시 말해주었다.
“교주님, 신도들을 물리지 않으면 체포하겠답니다.”
입을 헤벌리고 듣던 염승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지.”
비서의 도움으로 염승신은 휠체어에 탄 채 밖으로 나갔다. 태산도 뒤따라 집무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1층 문을 나가니 입구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신도들이 돌아보며 웅성거린다.
“교주님! 교주님이시다!”
“교주님!!!”
“천사님! 천사님!”
비서는 휠체어를 끌고 신도들 사이로 나아갔다. 신도들이 염승신의 주위를 빙 둘러섰다. 휠체어가 멈추자 신도들은 염승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교주님이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비서의 말에 신도들이 교주의 입만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죽였다.
“여러분, 저를 위해 나서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겁니다. 안심하시고 길을 열어주십시오.”
염승신은 집무실에서 봤던 것과는 딴판인 또렷한 눈빛과 음성으로 신도들에게 호소했다. 이제까지 해온 가닥이 있어서인지 신도들의 기를 받아서인지 잠깐이나마 카리스마를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염승신의 말에 신도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몸을 던졌다.
태산이 황망한 얼굴로 통곡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주차장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최 검사가 부랴부랴 달려왔다.
“부장님, 내려오실 때까지 차에서 대기 중이었습니다. 이제 진입할까요?”
“그래, 올라가지.”
태산은 검찰수사관들을 이끌고 본당으로 들어갔다. 검찰수사관들이 본당 내의 컴퓨터 하드와 각종 문서들을 파란색 박스에 담아 실어냈다. 교주는 이미 귀가했건만 신도들은 해산하지 않고 본당 주위를 지키며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수사관들을 노려보거나 주문처럼 기도문을 외우기도 했다.
압수수색의 결과 교주와 7천사를 비롯한 교단 당직자들의 새로운 혐의가 속속 밝혀졌다.
당직자들은 신도들을 속여 재산을 가로채기도 했고 헌금을 횡령해 강남의 룸살롱 등지에서 유흥비로 거액을 탕진했다. 종교 단체는 세금을 내지 않는 점을 이용해 개인 재산을 교단 명의로 돌리고 탈세를 하기도 했다.
홍혁권의 장남인 홍상호와 엄명희의 남편 역시 교단을 이용한 탈세의 공범이었다.
아태그룹 제지 사업 분야를 담당하고 있었던 홍상호는 교단이 운영하는 제조업의 골판지 포장 박스를 독점 공급 하고, 엄명희의 남편은 외식 체인의 원재료 공급계약을 교단 소유의 농장과 체결하면서 사업파트너로 손을 잡은 것이 발단이었다.
홍상호가 사업상의 필요로 신도가 되었다는 모친의 진술을 입증하는 사실이었다.
국과수에 맡겼던 부검 결과도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다. 김창득은 기도원에 거주하던 갈 곳 없는 이들 중 노환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묻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검 결과 노환으로 사망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폭행이나 기아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이었다.
김창득과 영생기도원 당직자들은 살인, 감금, 약취, 학대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교주인 염승신에게는 사기, 배임, 횡령, 탈세 등의 혐의에 살인 방조까지 더해 구속기소 하기로 했다.
노령으로 현재는 젊은 당직자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했지만 기도원 설립된 초창기에는 운영에도 적극 개입했었다. 발견된 유골 중에는 부검 결과 기도원 창립 초기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상당수였다.
그러니 염승신이 기도원에서 강제 노동과 학대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다만 살인을 적용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해 살인 방조로 기소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구속일 직전, 갑작스레 염승신을 구속 당일 포토 라인에 세우고 기자회견을 허용한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그건 대체 누가 결정한 일입니까?”
태산은 결정을 알리는 원 부장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누구겠어요? 검사장님이 잔뜩 들떠서 자신의 공을 만방에 알리고 싶으셨던 거지요. 기자들의 요청도 있었을 테니 겸사겸사 잘되었다고 생각하시지 않았겠어요?”
“전 반댑니다. 그런 놈한테 마이크를 쥐여줄 수는 없어요.”
태산은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검사장님께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산은 그대로 검사장실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아, 저기 잠깐만…….”
문이 부서져라 들이닥친 태산에게 부속실 비서관이 뭐라 한마디 하려 했지만 태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사장실로 뛰어들었다.
“검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신승렬 검사장은 태산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활약상에 전국의 시선이 집중되는 데 큰 공을 세운 장본인이니 반가울 만도 할 것이다. 본인의 위상도 덕분에 크게 올라갔다. 생각만 해도 어깨가 으쓱할 것이었다.
신 검사장은 애써 입꼬리를 잡아 누르며 짐짓 엄숙하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염승신 구속 시 기자회견을 허용하기로 한 방침 철회해 주십시오.”
“내 생각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대중이 사건의 자세한 경위에 대해 매우 궁금해하고 있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이런 중차대한 사건은 언론에 발표해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게 내 의견이네.”
신 검사장은 부드러운 어조로 설명했지만 양보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국민이 알고 싶어 한다는 이유보다 신 검사장 자신이 국민에게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나 보였지만 태산은 굳이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취지에는 공감합니다만 사이비 교주에게 마이크를 쥐여주는 방식만은 안 됩니다.”
태산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검사장을 설득했다.
“본당 압수수색을 나갔을 때 신도들이 몰려들어 방해하는 바람에 크게 애를 먹었습니다. 교주가 방송에 나와 비참하게 사과하고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일수록 신도들은 정부에게 박해당한다고 생각해 더욱 결속할 겁니다. 사이비 교주가 전국의 신도들에게 어떤 메시지도 전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흐음…….”
신 검사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턱을 문질렀다. 태산의 말에 일리가 있었으나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지금 법조기자들한테도 이미 공문을 돌렸는데. 그래 놓고 기자회견을 취소한다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거야.”
신 검사장은 기자들을 핑계로 결정을 철회하기 싫은 심정을 은근히 내비쳤다. 다른 카드를 내어놓지 않으면 좀처럼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포토 라인에는 세우되 기자회견 자리에는 염승신을 올려 보내지 않는 것으로 하죠. 대신 검사장님이 언론에 수사 상황을 직접 브리핑하시고 질의를 받는 겁니다. 그 정도면 보도의 무게감에 있어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검찰의 언론 브리핑이 금지된 지 좀 되지 않았나?”
법무부훈령에서는 형사사건에 대한 검찰의 언론 브리핑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할 경우에도 형사사건 공개심의위의 의결을 거쳐 전문공보관이 발표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다만 필요한 경우 검사장이 직접 발표하거나 전문공보관 외의 다른 담당자를 지정할 수 있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한 예외를 두고 있지 않습니까? 검사장님께서도 방금 말씀하셨듯이 이 사건이 정확히 그런 사례니 무난하게 공개심의위를 통과할 수 있을 겁니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전문공보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브리핑하셔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태산의 제안에 신 검사장은 혹하는 표정이었으나 덥석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이례적으로 검사장이 직접 나서 브리핑을 하게 되면 생색내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실제로 그러한 의도가 있어 기자회견을 허용했기 때문에 더 뜨끔하게 느끼는 심리도 없지 않았다. 자기 공은 알리고 싶지만 구차하게 생색내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아무래도 그건 영 모양새가 좋지 않겠고…….”
신 검사장은 태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문득 표정이 밝아지며 제안했다.
“자네가 브리핑을 하는 건 어떤가?”
“예? 제가 말입니까?”
태산은 얼떨떨해서 되물었다.
“그래. 자네는 인천지검에 있었을 때 마약수사로 유명해진 스타 검사니 언론도 화제성 면에서 환영할 테지. 직접 수사한 사건이니 사건에 대해서도 잘 알 테고. 딱 적임자야.”
“하지만 규정상 당해사건의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는 공보 업무를 맡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살짝 편법을 쓰도록 하지. 기자회견 시작은 내가 열고 질의가 시작되면 주임검사에게 세부 정보를 확인한다는 핑계로 자네에게 마이크를 넘기겠네.”
태산은 자신이 브리핑 제안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염승신의 기자회견을 검찰 브리핑으로 대체하자는 카드부터가 검사장을 설득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더구나 수사를 맡고 있는 검사는 원칙적으로 기자들과 접촉해 사건 정보를 전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리해서라도 강 검사를 카메라 앞에 세우려 하는 신 검사장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범죄자가 아니라 수사한 검찰에 포커스를 맞추는 편이 신 검사장 본인의 공을 부각시키기에도 더 좋다.
하지만 염승신이 직접 카메라에 비치는 것과 검사장이 나와 수사 상황을 보고만 하는 것과는 화제성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날 것이다. 애초에 염승신을 취재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기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을 테다.
하지만 이미 인천지검에서의 활약으로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은 강바른을 내세운다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는 계산이다. 꽤 화제성을 갖춘 인물이니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도 좋고 기자들의 불만도 무마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신 검사장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태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편법으로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상황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도 염승신이 마이크를 잡게 하는 것보다야 낫다는 생각에 태산은 결국 검사장의 제안을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 * *
구속 당일 염승신은 휠체어를 탄 채로 검찰수사관들에게 이끌려 검찰청 포토 라인 앞에 섰다. 카메라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지는 중에 염승신은 초라한 몰골로 맥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짧은 촬영 동안에도 기자들은 염승신에게 한마디라도 끌어내려 아우성이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염승신이 떨리는 손으로 돋보기를 꺼내 썼다. 그러고는 품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더니 주섬주섬 펴 들었다. 미리 준비한 회견문인 듯했다.
“에~”
염승신이 운을 뗀 순간 검찰수사관들이 얼른 휠체어를 뒤로 물렸다. 염승신은 당황해 콧등에서 흘러내린 돋보기를 급히 추슬렀다.
검찰수사관들이 후다닥 염승신을 검찰청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자 기자들이 웅성거린다. 그 틈에 공보관이 앞으로 나와 기자들에게 알렸다.
“일정이 변경되었으니 기자님들은 강당으로 자리를 옮겨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들은 영문 모르고 투덜거리며 일어섰다.
“염승신이는 갑자기 왜 데리고 들어가는 거야? 사진도 몇 장 못 찍었는데.”
“아~ 자리 다 잡았는데 번거롭게.”
“빨리 들어가서 자리 잡아. 난 이거 송고하고 바로 따라갈게.”
기자들이 서둘러 강당으로 옮겨 자리를 잡고 나니 공보관이 전원 착석한 것을 확인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예정되었던 한누리성전 교주 염승신의 기자회견은 취소되었습니다. 대신 검사장님의 간략한 수사 상황 브리핑과 질답이 있겠습니다.”
공보관의 발표에 기자들이 격렬하게 항의했다.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염승신을 취재하러 온 거지 검찰 입장 들으러 온 게 아닙니다.”
“염승신을 내보내 주세요!”
아우성 속에서 검사장이 검사들을 이끌고 연단에 올랐다. 그러고는 마이크 앞에 서서 기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서울중앙지검장 신승렬입니다. 제가 해명하겠습니다.”
신 검사장은 흠흠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은 후 다시 말문을 열었다.
“당초 기자들의 취재 요청이 거셌고 피의자 염승신도 대국민사과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허용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피의자에게 굳이 발언 기회를 줄 이유가 없다는 내부 의견이 제기되었으며 최종적으로 한누리성전 교단이 신도들에게 더욱 결집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부득이 기자회견을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기자님들의 너른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너무나 정석인 답변이었으므로 기자들도 더는 반박하지 못했지만 불만스러운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신 검사장은 이를 모른 척 외면하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기자회견을 대신해 지금부터 염승신을 비롯한 한누리성전 교단 당직자들의 피의사실과 수사진행상황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염승신 일당의 체포에 혁혁한 공을 세운 담당검사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검사장은 손짓해 등 뒤에 일렬로 선 검사들을 앞으로 한 발 나서게 했다.
“최초에 관련 사건을 인지한 형사3부 안소영 검사입니다.”
안 검사는 딱딱한 얼굴로 슬쩍 고개를 숙이고는 얼른 제자리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이런 자리에 영 적응이 되지 않는 기색이었다.
“현장에서 압수수색을 지휘한 반부패수사2부 최진우 검사입니다.”
최 검사도 상기된 표정으로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로 돌아가 데룩데룩 눈을 굴리고 섰다.
“이번 사이비 교단 수사의 총지휘를 맡아 활약한 반부패수사 2부 강바른 부부장입니다.”
검사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강바른? 강바른이라고? 인천지검 슈퍼검사?”
“어? 진짜 강바른인데? 이 사건 강바른이 수사한 거야?”
“와~ 대박! 뭐 해? 빨리 찍어!”
“일단 강바른 사진 붙여서 제목만 달고 바로 송고해.”
태산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물러서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기자들은 언제 불만을 토로했냐는 듯 경쟁적으로 플래시를 터뜨리고 키보드를 눌러댔다.
신 검사장은 예상했던 반응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브리핑을 계속했다.
“수사 결과 한누리성전 교단 교주 염승신은 영생기도원에서 발생했던 신도 감금학대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던 것으로 밝혀져 살인 방조 혐의를 추가해 기소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김창득을 비롯한 당직자들은…….”
신 검사장은 간단히 수사 상황을 브리핑하고 질답 시간으로 넘어갔다.
“이제 질문받겠습니다.”
신 검사장이 손을 든 기자 중 하나를 지목하니 공보관이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법률신문 민서영 기자입니다. 영생기도원에서 발견된 변사체의 신원은 전부 확인되었습니까?”
신 검사장이 공보자료를 뒤적이는 척하다가 태산을 돌아보며 말했다.
“강바른 부장?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태산이 마이크 앞으로 다가서서 답변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전체를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한누리성전의 신도 명단을 확보하여 그중 행불자가 있는지, 행불된 시기가 언제인지 등을 대조하며 확인 중입니다.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경우 가족에게 연락해 DNA 분석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신도 명단에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시일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미 신원이 밝혀진 피해자만으로도 피의자들을 기소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태산이 답변을 마치자마자 기자들이 다투어 손을 들었다.
“검사님!”
“강바른 검사님!”
* * *
“뭐야? 악명 높은 사이비 교주라기에 엄청 살벌하게 생겼을 줄 알았더니 그냥 다 늙어빠진 노인네였네.”
TV를 보고 있던 식당 주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병천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와 자리에 앉던 범진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뉴스 화면에는 휠체어를 탄 머리가 허연 노인이 비치고 있었다.
병천이 호기심을 보이며 식당 주인에게 물었다.
“누군디요?”
“그 왜 한누린지 뭔지 하는 사이비 있잖소.”
“아~ 그 얼마 전에 기도원에서 시체가 허벌나게 나왔다는?”
“맞아요. 거기 교주라네. 오늘 구속이랍디다.”
“에헤~”
병천은 TV화면을 힐끔 보고는 식당 주인에게 말했다.
“여그 순댓국 두 개 주쇼.”
두 사람은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뉴스를 보며 기다렸다.
염승신이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서 읽으려는데 갑자기 검찰수사관들이 후다닥 휠체어를 빼 끌고 간다. 휘청 몸이 기울며 코끝에 걸려 있던 돋보기가 미끄러져 삐딱하게 걸렸다. 잘 넘겨놓았던 머리카락도 휙 흘러내려 넓게 벗겨진 이마 위에 가닥가닥 흐트러졌다.
염승신도 예상치 못한 상황인 듯 당황하여 허둥거렸다. 하지만 어, 어… 하며 허둥거리기만 할 뿐 속절없이 끌려가 버렸다. 그 꼴이 참으로 볼품없기 짝이 없었다.
범진은 그 꼴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고 식당 주인은 혀를 찼다. 병천은 아예 대놓고 폭소를 터뜨린다.
“푸하하핫~ 노인네 꼬락서니하고는!”
교주가 끌려 나가고 나자 갑자기 화면이 스튜디오로 연결된다. 스튜디오에 앉은 아나운서가 답했다.
[잠시 일정에 변경이 있어서 지연되는 모양입니다. 연결 기다리는 동안 사이비종교를 심층취재 해 온 PD파일의 김민철 PD에게 한누리성전 교단과 교주 염승신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김민철 PD?]
[예, 김민철입니다.]
아나운서 맞은편에 앉은 PD에게로 포커스가 넘어가자 PD가 교단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누리성전 교단은 1964년 교주 염승신과 김창득이 설립한 영생기도원이 그 전신입니다. 이후 교세를 넓히며 7천사라는 당직자들을 세우고 교단 이름을 한누리성전으로 바꾸었습니다.]
“지럴들 헌다. 천사는 뭔 놈의 천사여?”
병천은 범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성님도 저 뉴스 보셨소? 참으로 흉악한 넘들 아니요?”
사실 외양으로만 보면야 늙은 교주보다 병천이가 더 흉악해 보이긴 하지만 범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더라.”
그새 식당 주인이 순댓국 두 그릇을 후다닥 날라 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맛있게 드십쇼~”
범진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순댓국을 보니 어쩐지 조급한 마음이 들어 얼른 숟가락을 들었다.
“먹자.”
병천은 순댓국에 밥을 말기 전 먼저 국물을 한 숟가락 뜨고는 캬아~ 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여그 국물이 아주 진국이구마요.”
하지만 범진은 대꾸도 없이 벌써 국에 밥을 말아 다대기를 풀어 넣고 후루룩 삼키고 있었다. 그런 범진을 병천이 물끄러미 본다.
범진은 병천의 시선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열심히 밥을 퍼 넣었다.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병천이 범진의 숟가락 위에 큼지막한 깍두기를 턱 하니 올려주어 범진은 멈칫했다.
“성님, 우찌 그리 항상 밥을 급허게 드씨오? 이제 겉보기로는 여타 회사 CEO 뺨치게 멀끔헌디 드시는 모양새는 예전이랑 한결같구마요. 그래서야 누가 큰 회사의 대표님이라고 보겄습니까?”
범진은 머쓱하게 웃고는 깍두기와 함께 밥을 입에 퍼 넣었다. 병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태산이 성님이 천천히 묵어라, 천천히 묵어라 헐 때는 왜 그러시나 혔는디 나란히 밥을 먹어보니 알겄구마요. 늘상 굶고 다니는 사람모냥 허겁지겁. 하기사 옛날에는 먹다가도 다른 조직 놈들이 막 덤벼들고 경찰이 덮치고 그러던 때도 있었응게 먹으면서도 항시 긴장 타고 있어야 혔겄지만 이제는 그라지 않을 때도 됐지 않았어라?”
범진이 씹던 것을 꿀꺽 삼키고 불쑥 입을 열었다.
“병천아.”
“예?”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범진을 마주 본 병천이 범진의 미간에 잡힌 주름을 보고 뜨끔해 멈칫했다.
“일 절만 하자.”
“예, 성님.”
병천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부지런히 숟가락을 놀렸다.
범진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어버렸다. 이제는 급하게 먹어도 염려해 줄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병천이라도 곁에 있어 잔소리를 해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잔소리가 길어져 끊어내긴 했지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방금 현장에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오늘 예정되어 있던 한누리성전 교주 염승신의 기자회견은 취소되었으며 대신 서울중앙지검장의 사건 브리핑으로 대체된다고 합니다. 현장 연결하겠습니다.]
아나운서가 태산이 근무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을 언급하자 범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TV 화면을 주시했다.
“뭐야? 염승신이 이제 안 나오는 거야?”
식당 주인이 중얼거리며 리모컨을 찾아 채널을 돌리려 했다.
“잠깐만요. 채널 그대로 두세요.”
범진이 불쑥 말하니 식당 주인이 슬그머니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병천이 왜 그러나 하고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범진이 밥 먹는 것도 잊고 TV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병천은 어리둥절해 덩달아 화면을 노려본다.
“어어? 쩌그 강바른 검사 아니요?”
브리핑 중인 신승렬 서울중앙지검장의 등 뒤로 강바른 검사의 모습이 보였다. 병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긴가민가하고 보는데 신 검사장이 바로 강 검사를 소개했다.
[이번 사이비 교단 수사의 총지휘를 맡아 활약한 반부패수사 2부 강바른 부부장입니다.]
병천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탄식하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헛참! 저 인간은 쩌그 또 왜 나온다요?”
범진도 내심 못 말리겠구나 생각하며 탄식했다.
저 형님도 참, 잠시라도 조용하게 있을 일이지 또 일을 벌였나? 언제나 시끄러운 일에 엮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인천에 있을 때나 서울로 가서나 변함이 없었다.
* * *
서울중앙지검장은 간단한 브리핑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더니 금세 강바른 검사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한누리성전의 신도 명단을 확보하여 그중 행불자가 있는지, 행불된 시기가 언제인지 등을 대조하며 확인 중입니다.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경우 가족에게 연락해 DNA 분석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신도 명단에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시일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미 신원이 밝혀진 피해자만으로도 피의자들을 기소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안주인이 한가해진 틈을 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오다가 TV를 힐끔거리면서 물었다.
“뭐예요?”
“뉴스. 오늘 한누리성전 교주 잡혀 들어가는 날이잖아. 담당검사라는데?”
“어머나~ 검사라고요? 아니, 무슨 검사가 저렇게 잘생겼대? 난 무슨 드라마 하는 줄 알았지.”
“당신 아주 깜깜무소식이구먼. 저 검사 엄청 유명한 검사야. 인천에 있을 때 막 조폭 사시미 맞아가면서 마약조직 소탕하고 그랬던 검사라고.”
“아아~ 그 사람이면 나도 알지. 뭐였더라, 이름이 강 머시기였는데?”
“강바른.”
“맞아요! 특이한 이름이다 싶었는데. 근데 그때는 저렇게 카메라 앞에 떡 선 걸 보지는 못했잖우. 어휴~ 인물 참 좋네~ 어지간한 탤런트 뺨치겠어.”
안주인이 본격적으로 TV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광경을 병천은 눈꼴시어 죽겠다는 듯 불만스러운 얼굴로 노려보았다.
“눈 뜨고 보덜 못 허겄구먼. 성님, 딴 데 틀라고 헐까요?”
“됐다. 내버려 둬라.”
범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면서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숟가락질도 진즉 멎었다. 병천은 바른을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있는 범진에게 괜히 심통이 났다.
“성님은 저놈 보고 있으면 열불도 안 터진다요?”
“뭐가 말이냐?”
범진이 TV를 보며 건성으로 되물었다.
“저놈이 태산이 성님을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을 안 혔습니까? 태산이 성님은 그렇게 허무하게 가셨는디 저 새끼는 태산이 성님 가신 후에 더 승승장구허니 속이 안 쓰릴 수가 있당가요.”
범진은 피식 웃어버렸다. 겉모습은 강바른이라도 속은 태산 형님이라고 한다면 병천은 어떤 표정을 할 것인가?
“어따! 시방 웃음이 나오씨오?”
병천은 범진이 웃어넘기자 어처구니없다는 듯 타박했다.
“너무 그렇게 미워하지 마라.”
형님 서운해하시겠다. 범진은 그 말을 꾹 눌러 삼켰다.
“형님도 강 검사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으셨을 거다. 강 검사는 자기 위치에서 제 할 일을 열심히 한 거고. 어떻게 보면 형님과 꽤 닮은 구석도 있다.”
“대체 어디가 말여라?”
병천이 불퉁하게 물었다.
“저렇게 불도저처럼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점이 말이다.”
병천은 범진의 시선을 따라 다시 TV 화면 속의 강 검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려 해도 좀처럼 그리되지 않았다.
“어지간히 나대야 좋게 봐주지라. 뻔질나게 TV 오르내리다가 검찰총장도 해 묵고 법무부장관도 해 묵고… 혹여 나중에 대통령까지 해 묵는 거 아녀라? 그 꼴을 속 쓰려서 우찌 본다요.”
병천이 혀를 차며 개탄했다.
예상치 못한 말을 들어 범진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한동안 눈만 끔벅거렸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도록 태산을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태산의 미래에 대해 그렇게 구체적으로 그려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병천의 입에서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되니 문득 손에 잡힐 듯한 목표로 여겨졌다.
그래, 안 될 것이 무언가. 강바른이 된 지 채 몇 년 되지도 않아 저렇게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는데. 만약 그리될 수만 있다면 범진도 어떻게든 힘을 다해 돕고 싶었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들떠 범진은 상기된 얼굴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휴~ 저 씨불놈 저거 존나게 잘난 척허네.”
TV 속의 강바른에게 웅얼웅얼 욕지거리를 뱉는 병천을 범진이 가만히 부른다.
“병천아.”
“예, 성님.”
병천이 여전히 TV 화면에 눈을 둔 채 답했다.
“오늘 저녁에 애들 데리고 회식이나 할까?”
병천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 범진을 본다. 범진은 어쩐지 들뜬 얼굴이다. 범진이 이렇게 즐거운 기색을 보이는 것은 드문 일이라 병천은 내심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뭔 일로다가요?”
“꼭 무슨 일이 있어야 회식을 하냐?”
“아니, 그래도 회식헌 지 얼마 되어불도 안 혔는디…….”
“싫으냐?”
범진이 정색하고 묻자 병천이 얼른 태도를 바꾸어 답했다.
“아녀라. 지가 또 회식하면 껌벅 죽는당게요. 직장인은 역시 회식허는 맛에 직장 다니는 거 아니겄습니까? 바로 예약허겄습니다.”
병천은 핸드폰에서 고깃집 전화번호를 찾으며 범진을 힐끗 보았다. 범진은 다시 숟가락을 놀리기 시작했지만 생각은 영 딴 데 가 있는 표정이고 귀 끝이 붉었다. 뭔가 음험한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대체 저 형님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일까? 설마 그 꿍꿍이가 강바른 검사와 관계된 것은 아니겠지?
어떤 일이 있어도 범진을 믿기로 마음을 정한 지 오래지만 궁금증이 모락모락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 *
“검찰이 신도 명단을 확보했다던데 뒤탈은 없겠지요, 천녀님?”
이종길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은근히 물었다.
서울 소재의 한 심리상담소 사무실에서 이종길 의원과 마주 앉아 있는 여인은 태산이 만났던 염승신의 수행 비서였다.
책상 위에는 ‘한울 심리상담소 소장 심리상담사 염민중’이라고 찍힌 명판이 세워져 있었다. 심리상담소라고는 하지만 실은 심리상담을 미끼로 한누리성전 신도를 포섭하는 데 쓰이고 있는 곳이었다. 공신력 있는 상담심리사가 아니라 사설 단체에서도 딸 수 있는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내세워 전문가인 척하고 있는 것이었다.
“걱정 마세요. 어차피 VIP 명단은 처음부터 본당에 없었습니다. 제가 은밀히 따로 보관하고 있었죠.”
염민중은 이종길을 안심시켰으나 이 의원의 근심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교주님과 7천사가 구속되었으니 이제 교단의 앞날도 불투명해졌습니다. 걱정이 안 될 수가 없군요.”
염민중은 빙긋이 웃었다.
“아버지는 노환으로 정신이 흐리시고 사실 날도 얼마 남지 않으셨어요. 오래전에 이미 이 사태를 예견하시고 깨달음의 정수를 저에게 물려주셨습니다.”
염민중은 도취된 어조로 꿈꾸듯 설명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받으신 말씀의 두루마리를 뱉어 저에게 건네주시며 ‘너에게 주노라’ 하시매 제가 그 두루마리를 받아먹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7천사로 칭하지 않으심은 아버지와 제가 한 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말씀의 두루마리를 받아먹으매 제가 제1천사의 지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제가 있는 한 우리 교단은 건재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구절에 따라 염승신은 환상 속에서 천사에게 받은 성스러운 두루마리를 먹었노라 주장해 왔다. 그것이 뱉어서 다시 다른 이에게 먹일 수 있는 설정인 줄은 이종길도 몰랐다.
이종길은 내심 어처구니없는 개소리라고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이종길은 한누리성전의 VIP 신도이긴 했으나 교리를 조금이라도 믿은 적은 없었다. 다만 돈이 되고 선거에 도움이 되니 믿는 척할 뿐이다.
사이비종교 단체는 세금을 내지 않고 제대로 추적조차 되지 않는 현금밭이다. 그런 눈먼 돈을 정치자금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구미 당기는 거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저는 천녀님, 아니, 천사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돈이 계속 들어온다면야 교단의 이름이 뭐라 바뀌든, 교주가 누구로 바뀌든 전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염민중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의원님의 굳건한 믿음에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을 주실 겁니다.”
“아멘~”
이종길은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저 여자조차도 자기가 하는 말을 믿고 있지 않을 거라고 이종길은 확신했다.
염민중은 교주 염승신의 수양딸이었다. 수행 비서 행세를 하며 외부에는 철저히 신분을 숨겼지만 염승신을 대신해 교단의 실세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노화해 동력을 잃은 한누리성전의 조직을 개혁해 젊은 신도들을 대거 확보하고 새롭게 도약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염민중은 창원에서 꽤나 이름을 날린 노동운동가였다.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야망이 좌절당한 운동가들은 대체로 현실에서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제도권 정치에 투신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의감보다 권력욕이 강했던 자들은 좌절 끝에 비뚤어진 욕망을 품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염민중은 그러한 사례의 전형이었다. 노동운동에서 좌절을 맛본 후 사이비 교단에 투신했고 운동권 조직을 관리하던 실력을 한껏 발휘해 교단을 제2의 부흥기로 이끌었다.
제 손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왕국을 건설하기를 원할 뿐 염민중 역시 교리 따위는 전혀 믿고 있지 않을 거라고 이종길은 확신했다. 아니, 어쩌면 남들을 믿게 만들기 위해 그 자신이 누구보다 열렬히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부터 속여야 다른 이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을 테니까.
“그보다 의원님 지역구는 어떻습니까? 이제 총선이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던데요.”
염민중의 물음에 이종길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이종길의 대구 지역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아성이었다. 이름만 걸어놓고 선거운동에 전혀 얼굴을 비치지 않아도 너끈히 당선될 수 있을 정도로 굳건한 콘크리트 지지층이 떠받들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 콘크리트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아들놈의 마약 문제로 가족회사가 흔들린 데다 정치적 이미지에도 손상을 입었다. 언론에 로비해 어떻게든 수습을 하기는 했으나 타격이 없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한누리성전 수사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강바른 검사가 아들의 구속 때도 속을 썩였더랬다. 그야말로 악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아들의 문제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대구지검으로 부임해 온 반부패수사부 부장이 이종길의 텃밭을 흔들기 시작했다. 기존에 관행으로 허용되고 있던 모든 일들을 사사건건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이 새로운 부장 때문에 대구지검 검찰들이 몸을 사리면서 검찰의 스폰서 역할을 도맡던 지역 유지들도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접대를 숱하게 했는데도 그에 따른 특혜는 받지 못하니 본전 생각이 난 것이다.
스폰서를 그만두는 정도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이들 중 하나라도 이탈해 검찰의 비위를 고발하게 되면 줄줄이 유착된 모든 이들이 위험하다.
이종길만 해도 지역 유지들이 검찰을 접대하는 자리에 숱하게 함께했었고 그들에게 불법정치자금을 건네받고 공무원들과의 자리를 알선해 관급사업을 따준 일도 많았다. 그리고 관급사업을 따낸 회사에는 가족회사인 빅월드 인베스트먼트가 투자를 들어가 쏠쏠히 재미를 보았다.
“성가신 쇠파리 하나가 붙었습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러셔야죠. 저희도 밀어드린 보람이 있으려면 다음 선거에서도 반드시 의원 자리를 지켜주실 분을 밀어드려야 할 테니까요.”
의원 자리가 위태로울 지경에 처한다면 지원할 수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염민중의 본색이 드러나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믿음이고 뭐고 상관없이 될 놈을 밀겠다는 얘기 아닌가.
속에서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누르며 이종길은 미소로 답했다.
“당연한 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