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가 법을 모름-41화 (41/78)

제1장 소탕

“검찰이다! 꼼짝 마!”

태산은 소리치며 창고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순간적으로 창고 한가운데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야! 불 꺼!”

박중성 이사의 외침에 입구 가까이 서 있던 스포츠머리가 재빨리 스위치를 내렸다. 그와 함께 창고 안은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수사관들은 창고 안으로 발은 디뎠지만 방향을 잡지 못하고 멈칫했다. 하지만 창고 안에 있던 놈들도 앞이 안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라 허둥거리며 달렸지만 출구를 찾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태산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던 남자에게만 정신이 쏠려 있었다. 은섭의 안전부터 제일 먼저 확인해야 했다.

태산은 남자가 쓰러져 있던 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정신을 집중하자 눈은 어둠에 놀랍도록 빠르게 적응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먹잇감을 사냥하는 맹수의 눈처럼 안광을 발하며 어둠 속의 물체들을 속속 포착했다. 창고 가운데 쓰러져 있는 사람의 실루엣이 분명히 잡히자 태산은 날듯이 달려갔다.

“서은섭! 괜찮나?”

하지만 쓰러진 사내는 반응이 없이 축 처져 있었다. 태산은 사내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맥박이 없었다.

태산은 충격을 받고 손을 거두었다.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손을 들여다보니 따뜻하고 끈적한 액체가 잔뜩 묻어 있었다. 체온이 남아 있다는 것은 방금 전까지도 살아 있었다는 뜻이다.

[날 이런 사지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 바로 강 검사님인데 하마터면 감동할 뻔했네요.]

빙긋 웃던 서은섭의 얼굴이 떠올랐다. 결국 이렇게 목숨을 잃고 만 것인가.

강렬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끓어올랐다. 태산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눈에 불을 켜고 살인범을 찾았다. 순간 뒷문을 열고 튀어 나가는 두 놈을 발견했다.

눈에 익은 놈들이라 실루엣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한 놈은 평생의 앙숙이었던 박중성, 또 한 놈은 최성일이다.

태산은 두 놈을 쫓아 바람처럼 뒷문으로 뛰어나갔다.

태산이 문을 나간 직후 입구를 더듬거리던 이흥렬 계장이 스위치를 발견하고 불을 켰다. 눈이 부셔 움찔하는 사이 스포츠머리가 입구로 튀어 나갔다. 박경구 수사관이 남은 두 놈에게 권총을 겨누고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 쏜다!”

달아나려던 두 놈이 그대로 멈칫했다.

“손 들어!”

두 놈이 멈칫거리며 손을 드는 것을 확인하고 이 계장이 창고 문을 뛰어나가며 말했다.

“박 수사관이 여기 맡아. 도망친 놈은 내가 쫓아갈 테니.”

척 봐도 강골인 스포츠머리를 이 계장 혼자서 어떻게 붙잡나 생각하며 박 수사관은 만류하려 했지만 이 계장은 이미 문밖으로 뛰어나간 후였다.

“손 제대로 들어!”

박 수사관이 슬그머니 손을 내리려는 두 놈에게 소리치며 권총을 다시 겨누었다. 두 놈이 다시 번쩍 손을 든다.

박 수사관은 천천히 놈들에게 다가가 수갑을 꺼내 한 놈씩 채웠다. 수갑을 채우고 무릎을 꿇린 후 창고 안을 돌아보니 피투성이가 되어 축 늘어진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박 수사관은 창고 중앙으로 다가가 쓰러진 사내 하나를 뒤집어 보았다. 박 수사관은 절로 얼굴을 찌푸렸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남자는 이미 숨이 붙어 있지 않았다.

다음으로 배관에 수갑으로 손이 묶인 사내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오른손이 완전히 부서져 있었고 사방에 피가 튀었지만 다른 곳은 멀쩡해 보였다. 비록 사진으로밖에 본 적이 없지만 얼굴을 살펴보니 서은섭이 분명하다.

박 수사관은 급히 맥을 짚어보았다. 정신을 잃고 있지만 숨은 붙어 있다. 바로 핸드폰을 꺼내 119로 전화를 걸었다.

“화성에 있는 아성환경 쓰레기 하적장 창고입니다. 구급차 빨리 보내주세요. 검찰수사관이 부상을 당했는데 외상이 깊습니다.”

스포츠머리를 따라 창고 문을 뛰쳐나간 이 계장은 하적장 문에서 빗장을 벗기려는 스포츠머리를 간신히 따라잡았다.

“이 새끼가 어딜 도망치려고!”

기세 좋게 외치며 스포츠머리의 덜미를 잡아챘지만 도저히 힘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스포츠머리는 매달리는 이 계장을 아랑곳 않고 빗장을 벗긴 후 문을 열었다. 이 계장은 그대로 내달리려는 스포츠머리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스포츠머리는 이 계장을 떼어놓으려 애쓰며 사무실 건물 앞 주차장에 세워둔 승합차로 향했다. 하지만 이 계장의 투지도 만만치 않다. 등 뒤에서 끝내 잡고 늘어진다.

스포츠머리는 결국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이 계장의 팔을 단단히 잡은 후 어깨 너머로 내다 꽂았다. 이 계장은 으헉!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축 늘어지고 말았다.

스포츠머리가 다시 발을 옮기려다 멈칫한다. 이 계장이 발목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스포츠머리는 성가시다는 얼굴로 이 계장을 내려다보았다. 이 계장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못 가, 이 새끼야. 우리가 지금까지 니들을 어떻게 추적했는데…….”

스포츠머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더니 발목을 잡고 있는 이 계장의 손을 밟아버리려 다른 한 발을 높이 들었다.

그때 사이렌을 울리며 아성환경 진입로로 승합차 두 대가 올라왔다. 스포츠머리는 그대로 멈칫 굳어버렸다.

“하아~ 이제야 오셨네.”

이 계장이 그제야 손을 놓고 끄응 신음을 내며 대자로 드러누웠다.

그와 함께 승합차가 스포츠머리의 앞을 가로막고 헤드라이트를 정면으로 쏘았다. 차 문이 열리며 승합차 안에서 권총을 든 수사관들이 우르르 내려 스포츠머리를 겨누었다. 스포츠머리는 별수 없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 * *

태산은 달아나는 박중성의 뒷덜미를 표범처럼 낚아챘다. 박중성은 양철 담장에 날아가 부딪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담장에는 박중성의 등짝 크기만큼 움푹 팬 자국이 생겼다.

태산은 신음을 내며 쓰러진 박중성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박중성의 눈에는 두려움이 비쳤다.

키도 체구도 평균을 훌쩍 넘는 박중성이었다. 평생 자신을 이렇게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정도의 괴력을 지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살아생전 짐승 같은 힘을 가졌다고 혀를 내둘렀던 임태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박중성, 니가 서은섭을 죽였냐?”

질문과 함께 갑자기 주위가 밝아졌다. 창고 안에서 다시 불을 켠 탓에 뒷문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에 분노한 태산의 얼굴이 드러났다. 야차같이 귀기를 띤 얼굴에 눈에서는 형형한 빛을 뿜고 있었다. 박중성은 그 눈빛에 압도되어 얼어붙었다.

자신이 검찰수사관이며 자신에게 손을 대면 대가를 치를 거라던 서은섭의 말이 퍼뜩 떠올랐다. 박중성은 자신도 모르게 부정했다.

“아, 아니야. 난 그놈한테 손가락 하나 안 댔다고. 최성일이야. 그 야쿠자 새끼가 제멋대로…….”

박중성의 말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태산이 다시 한번 박중성을 집어 던졌다. 어찌나 호되게 던졌는지 양철 담장이 우그러지며 박중성은 그 안에 그대로 처박혀 정신을 잃었다.

태산은 박중성의 말이 사실일 거라 생각했다. 시체를 만졌던 태산의 손에는 아직도 피가 범벅이었지만 박중성의 몸은 깨끗했다. 박중성이 죽였다면 피 한 방울 묻지 않았을 리 없다.

태산은 최성일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최성일은 쌓여 있는 재활용 쓰레기를 미끄러질 듯 밟고 올라가 양철 담장을 타 넘고 있었다. 담장 너머는 야산으로 경사가 있어 담장에서 발을 내리면 바로 바닥에 발이 닿았다. 최성일이 담장을 뛰어넘더니 후다닥 산속으로 사라졌다.

태산은 바로 곁에 있는 담장을 뜯어버리고 그대로 하적장 밖으로 나가 산을 타고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B팀이 도착한 것 같다. 이제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태산은 사이렌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귀를 세우고 집중했다. 남자의 거친 숨소리와 풀숲을 헤치는 소리, 다급한 발소리가 작지만 생생하게 귀에 잡혔다. 마치 사냥감의 뒤를 쫓는 야수처럼 태산은 본능에 의지해 그 소리들을 향해 달렸다. 아드레날린이 펑펑 솟구치며 흥분이 극에 달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코앞에 도망치고 있는 최성일의 모습이 나타났다. 최성일은 사람의 기척에 돌아보았다가 흠칫 놀랐다. 태산은 돌아보는 최성일을 그대로 덮쳤다. 한 덩이가 되어 한참 비탈을 구르다가 태산이 최성일을 깔고 앉은 채 일어나 앉았다.

태산은 최성일의 멱살을 잡고 박중성에게 물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니가 서은섭을 죽였냐?”

최성일은 킥 웃었다.

“그 정도로 죽어? 아주 약골이로군. 꼴좋다, 쁘락치 새끼.”

태산이 최성일의 턱에 주먹을 날렸다. 으득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턱이 박살 난 것이다.

순간 차가운 것이 태산의 이마에 와 닿았다. 달빛에 차갑게 빛나는 은색 권총이었다.

“너도 죽여줄까?”

턱이 아작 난 최성일은 반쯤 새는 발음으로 어눌하게 위협했다.

“물러서!”

하지만 태산은 물러서기는커녕 총구에 머리를 더욱 밀어붙였다. 슬라이드가 뒤로 밀리자 태산은 그대로 총신을 꽉 움켜잡았다. 최성일은 방아쇠를 당기려 했지만 태산이 슬라이드를 잡고 있어 방아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태산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권총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우그러든다. 아무리 낡은 권총이라지만 가공할 힘이었다. 최성일은 당황한 나머지 권총을 놓쳐 버렸다. 태산은 빼앗아 쥔 총 손잡이로 최성일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으아악!!!”

최성일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친다. 태산의 옷에도 피가 튀었다. 최성일은 몸을 뒤집고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더듬거리며 기어서 도망쳤다. 태산이 뒤쫓아 오며 호된 발길질을 날렸다. 옆구리가 칼로 찌른 것처럼 후끈한 고통에 최성일은 비명을 지르며 비탈을 굴렀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으나 어김없이 태산이 따라와 발길질을 해 또다시 쓰러졌다. 몇 번이나 맞고 구르면서도 최성일은 포기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정신없이 도망치던 중 갑자기 발밑이 무너져 내렸다. 최성일은 간신히 팔을 뻗어 매달렸다. 아래를 내다보니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어둡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길을 잘못 든 것이었다.

태산이 낭떠러지 끝에 와서 한 손으로 겨우 매달려 있는 최성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최성일이 애원하며 말했다.

“제발… 살려줘…….”

태산은 최성일을 냉랭하게 내려다보았다.

[꼴좋다, 쁘락치 새끼.]

최성일이 했던 말이 아직 귓가에 쟁쟁해 태산은 이를 악물었다.

“서은섭이 얘기 안 했냐? 검찰수사관을 건드렸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잘 가라, 최성일.”

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몇 걸음 떼지 않아 손을 놓친 최성일의 긴 비명 소리가 울렸다.

태산은 사이렌 소리를 따라 산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최성일의 죽음은 격투 끝에 사고로 실족한 것으로 둘러대면 된다. 최성일이 권총까지 들고 있었으니 이쪽이 불리한 상태에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격투를 벌였다고 하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태산은 확실히 하기 위해 총을 한 발 정도 발사해 두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총소리 정도면 지금 하적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도 들릴 것이고 목숨을 건 격투를 벌였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태산은 공중을 향해 권총을 높이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철컥 하는 소리만 들릴 뿐 총알이 발사되지 않는다. 몇 번 더 방아쇠를 당겨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태산은 대충 양복 상의에 문질러 권총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탄창을 분리해 보았다. 약실에는 총알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제기랄! 이 새끼가 잔머리를 썼군.”

정당방위 상황으로 무마하려 했던 것에 차질이 생겼다.

“끝까지 성가시게 만드는 놈이로군.”

태산은 혀를 차며 탄창을 다시 채운 권총을 호주머니에 넣고 산을 내려갔다.

* * *

“똑바로 걸어!”

하명중 수사관과 우형진 수사관이 수갑을 채운 박중성을 하적장 안에서 끌고 나왔다. 박중성은 정신을 못 차리고 비척비척 걷고 있었다.

우 수사관이 박중성을 승합차에 밀어 넣는다. 승합차 안에는 이미 박중성의 수하 셋이 수갑을 차고 앉아 있었다.

하적장 앞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안소영 검사에게 하 수사관이 보고했다.

“저놈이 마지막입니다. 어떻게 된 건지 창고 밖 뒷담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박 수사관 말로는 강 검사님이 창고 뒷문으로 쫓아 나가셨답니다. 아마 강 검사님이 잡아두신 것 같습니다.”

“강 검사님은 지금 어디 계시죠?”

“모르겠습니다. 최성일도 안 보이는 거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놈을 뒤쫓아 가신 게 아닐까요? 흔적을 보면 산 위로 올라간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섣불리 추적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날이 밝아봐야 수색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안 검사는 어쩐지 불안한 예감에 몸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최성일은 야쿠자 출신의 마약밀매업자다. 그런 위험한 자를 혼자서 쫓아갔다가 무슨 위험한 일이라도 당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강 검사 자신이 무슨 위험한 일이라도 벌이는 것은 아닐까.

어두워지는 안 검사의 표정을 보고 하 수사관이 넌지시 위로를 건넸다.

“별일은 없을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강 검사님 워낙 강골이시니까요.”

그때 하적장 뒤쪽에서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이쪽으로 걸어 나왔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이 실루엣만으로도 강 검사임을 알 수 있었다. 안 검사가 반색하며 다가갔다.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계속 안 보이셔서 걱정…….”

안 검사는 말하다 말고 깜짝 놀라 멈칫했다. 강 검사의 몸에 핏자국이 튀어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안 검사의 시선을 의식하고 강 검사가 설명했다.

“최성일을 체포하려다가 몸싸움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최성일이 실족했는데 찾을 수가 없네요. 날 밝는 대로 관할 경찰에 지원 요청해서 시신을 수색하도록 하죠.”

안 검사는 강 검사가 ‘시신’이라는 워딩을 쓴 데에 깜짝 놀랐다. 강 검사는 최성일의 죽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 수사관이 안 검사와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최성일이 죽었습니까?”

강 검사가 아차 하는 표정을 하더니 얼른 말을 수정했다.

“죽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보이질 않아서 정확한 높이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 같습니다. 죽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네요.”

강 검사는 무심히 말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의아한 눈으로 멈칫한다. 왜인가 하고 안 검사도 따라 돌아보았다. 강 검사의 시선은 현장에 출동해 있는 구급차에 머물고 있었다.

“누가 다쳤습니까?”

걱정스럽게 묻는 강 검사에게 안 검사가 보고했다.

“이 계장님이 체포 과정에서 부상을…….”

안 검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 검사는 성큼성큼 걸어 구급차로 다가갔다. 안 검사도 급히 강 검사의 뒤를 쫓아간다.

강 검사가 대뜸 구급차 뒷문을 벌컥 열었다. 이 계장이 멀쩡히 앉아서 멀뚱멀뚱 돌아본다. 얼굴에는 생채기가 잔뜩 나 있고 목에는 보호대를 찼지만 그 외에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어? 강 검사님, 어디 갔다 오셨어요?”

이 계장이 태평하게 되물었다. 강 검사는 그런 이 계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안 검사가 뒤따라오며 미처 하지 못한 남은 말을 덧붙였다.

“…입었지만 구급차를 부를 정도는 아니었고요. 서은섭 씨가…….”

그제야 강 검사의 시선이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서은섭에게 꽂힌다. 의식을 잃고 누운 서은섭은 척 보기에도 부상의 정도가 이 계장보다 훨씬 심해 보였다. 의식을 잃고 있는 데다 얼굴은 맞아서 잔뜩 부어 있었고 특히 피투성이가 된 오른팔의 부상이 심각했다.

“폭행을 당해 부상이 심합니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안 검사의 설명에도 강 검사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멍하니 서은섭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응급처치를 하던 구급 대원이 태산의 옷자락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물었다.

“이분도 다치신 건가요?”

강 검사가 즉답했다.

“제 피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문 가까이 앉아 있던 여성 구급 대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좀 비키세요. 지금 빨리 후송해야 합니다.”

강 검사가 허둥지둥 차에서 물러나자마자 문이 닫히고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출발했다.

강 검사는 그제야 희미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미간을 모으며 안 검사를 돌아보았다.

“그렇다면 창고 안에 죽어 있는 사람은 누굽니까?”

“아, 보셨습니까? 최성일이 거래하던 딜러 중 하나입니다. 호스트바 사장 김성종이라고. 아마도 내부 갈등이 있어 살해당한 것 같습니다.”

강 검사가 안 검사의 보고를 듣고 눈을 크게 뜨더니 문득 허탈한 표정으로 하! 하고 헛웃음을 웃었다. 안 검사는 그런 강 검사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대체 이건 무슨 반응이란 말인가. 어째서 죽은 자의 정체를 듣고 이런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

“아, 그리고 이거… 증거물입니다.”

강 검사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은색 권총이었다. 총신에는 무언가로 닦아낸 듯 옅게 피가 묻어 둔중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긴다라 아닙니까? 이걸 어디서…….”

야쿠자들이 주로 쓰는 크롬 도금한 토카레프를 하 수사관도 바로 알아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최성일이 가지고 있던 겁니다. 격투 중에 간신히 빼앗았습니다.”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큰일 날 뻔하셨네요.”

“운이 좋았습니다.”

강 검사는 그렇게 답했지만 어조는 담담했다. 아슬아슬하게 기사회생했다는 안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강 검사가 무사히 돌아왔음에도 안 검사의 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안 검사는 고개를 드는 의구심을 달래려 애썼다.

뒤쫓던 용의자가 격투 중에 사망했다. 상대가 권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면 과잉수사로 용의자를 죽게 했다는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었다.

가뜩이나 지검 수뇌부와 척을 지고 비밀 수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강 검사의 머릿속은 복잡할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졌다 해도 마냥 안도할 수만은 없을 테다.

그러니 저 묘하게 가라앉은 반응도 수상하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하 수사관이 증거 수거용 비닐봉투를 가져와 강 검사가 건넨 권총을 넣고 밀봉해 차에 실었다.

잠시 후 날이 부옇게 밝아왔다. 구태호 검사와 수사관들은 체포한 범인들과 주요 증거물을 싣고 검찰청으로 돌아갔다. 강 검사와 박경구 수사관은 관할 경찰이 올 때까지 현장보존을 위해 하적장에 남았다.

원래는 안 검사도 B팀과 함께 복귀해야 했으나 가슴에 남은 의구심을 지우기 위해 계속 남아 현장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잠시 후 지원 요청을 받은 관할 경찰이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그리고 산자락을 따라 산개해 사라진 최성일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안 검사는 최성일의 사망이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니 언제나처럼 강 검사가 수색에 앞장서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강 검사는 지휘 본부가 된 검찰 수사 차량에 앉아 수색이 끝날 때까지 태연히 잠을 청했다. 이미 최성일의 생사나 체포 여부에는 완전히 관심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도 최성일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전날부터 밤을 새운 데다 아침도 거른 상태였지만 안 검사는 피로도 배고픔도 잊고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렸다.

안 검사는 최성일이 부상을 당했더라도 살아 있기를 바랐다. 동료들과 함께 밤낮으로 수사한 사건이 최성일의 죽음으로 인해 제동이 걸리는 것은 원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강 검사가 최성일의 죽음에 기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소하고 싶었다.

오후로 넘어갈 때쯤에야 비로소 경찰 무전으로 기다리던 소식이 울렸다.

-도주한 용의자 찾았습니다. 절벽 아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미 사망한 것 같습니다.

결국은 죽은 것인가. 강 검사가 확신했듯이.

안 검사는 충격을 받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하지만 강 검사는 무전을 듣자마자 부스스 일어나 앉더니 기지개를 켜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시체 찾았으니 돌아갑시다. 안 검사, 전혀 못 잤지요? 바로 퇴근해서 좀 쉬고 와요.”

너무나도 태연한 어투였다. 그 태연함에 안 검사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안 검사도 형사부에서 강력범죄를 담당해 왔으므로 직간접으로 수많은 죽음을 겪었다. 하지만 그것이 피해자든 범죄자든 사람의 죽음에는 언제나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데 강 검사는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이렇게 일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안 검사는 떠보듯이 물었다.

“사고사니 검시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할까요?”

“사인이 명백하니 부검까지 할 것은 없을 것 같고, 검안이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저는 시체 내려오는 것 봐서 국과수에 검안 맡기고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십시오.”

강 검사는 안 검사의 속을 들여다보듯 빤히 마주 보았다. 안 검사는 강 검사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괜찮겠습니까? 피곤해 보이는데?”

지금 육체적 피로는 대수롭지 않았다. 정신적 피로가 육체적 피로를 압도하고 있었으므로.

“괜찮습니다. 늦게 퇴근하는 대신 충분히 쉬고 출근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강 검사는 흔쾌히 답했다. 그리고는 현장 지휘를 안 검사에게 맡기고 박 수사관과 함께 차를 몰아 복귀했다.

안 검사가 하적장에서 서성거리며 수색을 나간 경찰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산자락에서 경찰들이 들것을 들고 나타났다. 들것에 실려 있는 사람에게는 흰 천이 머리까지 씌워져 있었다.

안 검사는 들것으로 가까이 다가가 흰 천을 들춰보았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게 뭉개진 몰골이었지만 최성일이 확실해 보였다. 지독하게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이며 튀는 패턴과 색깔의 정장까지 최성일의 평소 스타일과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런데 정말 실족한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얼굴이 망가진단 말인가?

안 검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트를 덮었다.

“여 검사님이 보시기에는 좀 험한 모습이죠?”

현장 지휘를 맡은 중년의 형사가 안 검사의 속도 모르고 헛다리를 짚는다. 끔찍한 시체를 보고 비위가 상해 보이는 반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안 검사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형사를 노려보았다. 형사가 머쓱해 시선을 피한다.

“검안을 하려고 하는데요.”

“화성 경찰서에 경찰 소속 검시관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모실까요?”

“아니요. 경찰 검시관은 법의학 비전공자가 대부분 아닙니까? 어디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안 검사는 말 속에 뼈를 심어 툭 던졌다. 이쪽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무신경하게 뱉는 자에게 경찰의 전문성을 인정해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내 유들거리던 형사의 표정이 떨떠름해진다.

“국과수로 바로 가겠습니다. 차량과 이송할 인력 차출해 주세요.”

“예…….”

형사는 껄끄러운 듯 슬그머니 안 검사에게서 떨어져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안 검사는 두 명의 경찰과 함께 승합차에 올랐다. 승합차 뒷자리에 앉아 안 검사는 잠시 눈을 붙였다. 안 검사의 좌석 뒷자리에는 최성일의 시신이 타고 있었지만 피로 때문에 순식간에 잠으로 빠져들었다.

깊이 잠든 것도 아니고 깬 것도 아닌 의식의 경계 속을 헤매다 문득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안 검사는 간신히 수마에서 헤어 나왔다.

“검사님, 도착했습니다.”

눈을 떠보니 가장 가까운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 도착해 있었다. 안 검사는 화장기 없는 얼굴을 두 손으로 비벼 피로를 쓸어내고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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