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가 법을 모름-13화 (13/78)

제12장 덫(1)

태산이 칼에 맞은 사건은 개코가 혼자 설치다 스스로 베어서 난 피라고 얼버무려졌다. 개코는 손목이 부러져 팔에 깁스와 붕대를 친친 감고 있었으므로 현장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했다. 현장에서 직접 상황을 목격한 젊은 수사관은 여전히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태산을 보았고 이흥렬 계장 역시 뭔가 석연치 않다는 얼굴을 할 뿐이었다.

개코가 칼까지 빼 든 상황이므로 손목을 부러뜨린 것은 정당한 수사상의 행위로 넘어가지긴 했지만 태산은 상부로부터 또다시 과잉수사 아니냐는 질책을 들어야 했다.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사전 보고 없이 독단으로 검거를 진행한 것도 문제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총책과 센터 여러 군데를 적발해 낸 실적이 모든 것을 덮어주었다.

박중성 이사는 도박 조직의 운영에 직접 나선 바 없이 전적으로 개코를 내세웠으므로 감쪽같이 꼬리를 끊었다. 형량 협상을 거듭해 보았지만 개코는 끝까지 묵비했고 총책으로서 모든 죄를 짊어지고 기소되었다.

그러나 박 이사의 인터넷 도박 조직이 완전히 와해되어 지하로 숨어들었다는 것만은 성과라 할 만했다. 아마도 상당한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범진 역시 박 이사가 당분간은 자중할 것이라 전했다.

그렇게 도박 조직 소탕 사건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을 때 안소영 검사가 내밀하게 집무실을 찾아왔다.

“사건에 대한 조언을 얻고 싶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태산은 별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자존심 강한 안소영 검사가 이렇게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다니 말이다.

“무슨 사건이죠?”

“살인사건입니다만 더 이상 단서가 없어 진행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범인을 꼭 잡고 싶은데 제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까 봐 불안해서요. 바쁘시겠지만 한번 검토를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안 검사가 고개를 숙였다.

강바른 검사 쪽이 연차가 높다고 해도 지도검사도 아니고, 위계가 있는 부장검사급도 아닌데 자기 사건을 기꺼이 내놓으며 지도를 부탁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안 검사 본인의 말처럼 어떻게 해서든 범인을 잡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한번 봅시다.”

과연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안 검사가 워낙 절박해 보여 태산은 뭐라도 도와주자 싶어 응했다.

안 검사가 사건기록을 태산에게 건네주었다. 태산이 기록을 들춰보는 동안 안 검사는 곁에서 지켜보며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피해자는 밤늦은 시간 귀가 중이던 20대 여성이었고요. 범인이 성폭행을 시도했다가 반항하자 목 졸라 살해한 것 같습니다. 사체는 농수로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날 새벽 비가 내렸기 때문인지 범인의 모발이나 정액 등 DNA가 검출될 만한 것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안소영 검사가 침통하게 말했다.

안 검사실은 검사와 수사관, 실무관이 전원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어 피해자나 피의자가 여성인 강력사건을 많이 맡았다. 아무래도 남성이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을 수사하기 유리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성 피해자의 처지에 감정이입 할 수밖에 없는 면이 있어서 수사 과정에서 심적인 고통을 느끼기도 했다. 검사의 지상 과제가 정의 구현이라고 믿는 안 검사는 더욱 남다른 분노와 슬픔을 겪을 테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건을 맡았을 때의 안 검사는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분위기를 풍겼다.

“농수로에서 발견되었다면 인적이 드문 곳이었나 보군요.”

“예, 피해자의 자택이 대로에서 논밭을 따라 한참 들어간 곳에 있는 전원주택입니다.”

“근방 CCTV는요?”

“없습니다. 지하철역 부근 CCTV에서 택시를 타는 모습만 찍혔는데요. 택시 운전사는 집 근처 대로변에 내려주고 돌아왔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안 검사의 표정이 어쩐지 떨떠름하다. 태산이 그냥 넘기지 못하고 되물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까?”

“섣부른 단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택시 운전사가 가장 강력한 용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안 검사가 아무런 근거 없이 섣부른 가정을 입 밖으로 내놓을 사람은 아니었다. 그 택시 운전사에게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동종 전과라도 있습니까?”

태산은 그렇게 넘겨짚어 보았다.

“전과는 전혀 없습니다. 깨끗합니다만…….”

안 검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털어놓았다.

“과거에 비슷한 사건으로 용의선상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안 검사는 그렇게 말하며 따로 챙겨두었던 파일을 하나 꺼내 건넸다. 태산은 파일을 받아 펼쳐보았다. 손 글씨로 쓴 조서에 타이프로 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된 수사 기록이었다.

인천 근방 소도시에서 일어난 강간 살인 사건이다. 피해자는 여중생. 당시 용의자였던 성춘모는 18세.

모든 정황이 성춘모가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분명한 물증이 없었다. 담당검사가 끈질기게 자백을 유도했으나 18세의 어린 나이었던 성춘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을 기소할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 결국 수사는 무혐의로 종결되고 말았다.

“당시에는 아직 DNA 검사 기술이 미흡해서 안타깝게도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분명히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을 겁니다. 현재는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되어 자백한다 해도 처벌할 수 없습니다만…….”

안 검사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 규정은 최근 폐지되었으나 폐지되기 전에 시효가 만료한 범죄는 여전히 처벌할 수 없었다.

태산은 빠르게 기록들을 넘겨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파일을 덮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의를 챙겼다.

“나가죠.”

“예? 어디를요?”

“용의자 보러요. 이런 건 백날 기록 보고 있어봤자 감이 안 와요. 상판을 봐야 삘이 딱 오죠.”

과거 한국 경찰의 수사 행태를 생각하면 유력한 용의자였던 성춘모에게 가혹 행위가 있었을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어린 나이에 끝까지 부인했다는 것은 정말로 결백하든가, 아니면 엄청난 독종이라는 것이었다.

결백한 사람과 두 번의 강간 살인을 치밀하게 은폐한 자의 차이는 척 보면 파악할 수 있다고 태산은 자신했다.

안 검사가 용의자 성춘모에게 연락해 수사 협조 요청을 하고 문제의 지하철역 택시승강장에서 성춘모를 만났다. 택시에서 내리는 성춘모를 보고 태산은 단번에 알아챘다.

초점이 흐릿하고 번들거리는 눈, 단정하지 못한 표정과 행동거지, 은연중에 흐르는 배덕한 분위기. 이놈은 짐승이었다.

짐승은 짐승을 알아보는 법이다. 태산은 요것 봐라 하며 킥 웃었고 성춘모는 먼발치에서도 태산의 기색을 눈치채고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내 장담하죠. 저놈, 이번 건이든 저번 건이든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저질렀어요.”

태산이 안 검사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안 검사는 움찔 긴장했다. 어찌 되었거나 흉악범 앞에서 내심을 숨기고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태산은 성춘모가 다가오기를 기다려 물었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만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태산은 그렇게 운을 떼고는 형식적인 질문들을 했다. 사건 당일 피해자를 내려주고 어디로 갔느냐는 내용으로 경찰이 작성한 참고인 신문조서에도 상세히 언급되어 있는 내용이었다. 성춘모는 태산을 경계해서인지 같은 것을 여러 번 묻는데도 순순히 답했다.

“내려주고 손님이 있나 살피면서 주변을 좀 돌다가 다른 손님이 없기에 천천히 집 방향으로 운전해 갔습니다. 집 근처에 올 때까지도 손님이 없어서 그냥 들어가서 잤죠.”

수사 기록에는 당일 밤 집까지 가는 길에 성춘모의 택시가 근방 CCTV에 찍힌 기록이 한 번 있다고 한다. 시간은 사망 추정 시간 내. 성춘모가 범행을 마치고 급히 돌아왔다고도, 혹은 피해자를 내려주고 주위를 천천히 돌다 돌아왔다고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차 안을 좀 봐도 될까요?”

“경찰이 이미 싹 쓸어 갔는데요.”

성춘모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별 거리낌 없이 택시 쪽으로 앞장섰다.

태산은 뒷좌석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차 안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너무 깨끗해서 기이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성춘모의 말처럼 경찰이 이미 택시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태산은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깨끗하게 관리한들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택시에서 머리카락 한 올, 지문 하나 안 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태산은 허리를 숙인 채로 물었다.

“차 관리를 대단히 깔끔하게 하시네요.”

“예, 영업하는 차니까 매일매일 세차하면서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춘모는 뜨끔해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답했다.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느낌도 있었다.

태산은 몸을 일으켜 성춘모를 돌아보았다.

“사건 당일에도 세차를 하셨나요?”

“당일은 아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했죠. 그날 새벽에 비가 많이 왔거든요. 많이 더러워져 있더라고요.”

성춘모는 청산유수로 답하며 싱긋 웃었다. 아마도 세차를 하면서 차 내부까지 철저히 닦아냈겠지. 태산은 춘모의 뻔뻔한 낯짝을 무너뜨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 그런데 조사하다 보니 과거에도 강간 살인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더군요.”

태산은 방금 생각났다는 듯 툭 던져 말하며 성춘모의 기색을 살폈다. 잠깐 얼굴을 굳힌 성춘모가 이내 담담하게 답했다.

“오래전에 조사 다 받았고 무혐의로 풀려났는데요. 그게 문제가 됩니까?”

태산은 성춘모에게 한 발 쓱 다가갔다. 성춘모는 움찔했으나 물러서지는 않았다. 태산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굳이 숨길 것 없어요. 어차피 시효도 끝났고 얘기한다 해도 처벌받을 것도 아닌데. 성춘모 씨가 죽인 거 맞죠?”

성춘모가 음험하게 씨익 웃었다. 자랑하고 싶어 안달인 얼굴이었다. 그 표정만으로 모든 게 설명되었다. 이자는 살인범이다.

하지만 성춘모의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이보세요, 검사님. 내가 그렇게 멍청한 놈으로 보입니까? 그렇게 말하면 덥석 내가 죽였다고 할 것 같아요? 과거 사건을 시인하면 이놈은 살인범이니 이번 사건도 내 짓이 분명하다고 몰아가려는 거잖아요. 내가 그 시커먼 속을 모를 것 같아요? 검사라는 족속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범인 잡아넣으려고 안달을 하는 놈들 아닙니까?”

성춘모는 이를 으득 갈았다. 검사에게 쌓인 악감정이 큰 모양이다.

그러나 자백으로는 부족하다 해도 그 말에는 자신의 범행이 맞다는 뉘앙스가 다분히 실려 있었다.

태산은 씩 웃으며 한발 물러섰다.

“그래, 니 말이 맞다. 다른 검사들은 어떤지 내 알 바 아니고. 난 대단한 정의감이 있어서 나쁜 놈들 싹 다 잡아 처넣겠다 이런 욕심은 없어. 근데 너란 놈을 보고 있자니 꼭 잡아 처넣고 싶어진단 말이야. 기대해도 좋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고 말 테니까.”

태산은 미련 없이 뒤돌아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차를 향해 걸었다. 안 검사가 뒤따라오며 물었다.

“괜히 도발했다가 남은 증거까지 인멸하려 들지 않을까요?”

“이미 없앨 수 있는 건 다 없앴을 겁니다. 쉽게 자백할 놈도 아니고요. 괜히 시간 낭비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죠.”

* * *

강바른 검사를 따라 집무실로 돌아온 안 검사는 아예 강 검사의 집무실에 눌러앉아 함께 사건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뒤졌다. 뭔가 꼬투리를 잡을 만한 것이 없을까 하고 글자 한 자, 한 자를 비롯해 행간까지 눈에 불을 켜고 뒤집었다. 하지만 성춘모를 기소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안 되는 것일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강 검사에게 도움을 청했던 안 검사는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힐끗 돌아보니 강 검사는 완전히 손이 멈춰 있었다. 손에 든 무언가를 미간을 찌푸린 채 뚫어져라 보고 있다. 단서라도 발견한 것일까?

“양말이 한 쪽밖에 없네…….”

강 검사가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 아마도 사건 현장에서 찍은 시체 사진을 보고 있는 것일 테다.

피해자는 비교적 벗겨지기 쉬운 발목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왼쪽만 남아 있고 오른쪽은 맨발이었다. 아마도 반항하다가 한쪽이 벗겨져 나갔거나 시신을 유기하는 과정에서 흘렀는지도 모른다.

“예, 신고 있던 단화는 시신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양말 한 쪽은 주변을 샅샅이 뒤졌습니다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그날 새벽 비가 많이 왔으니 수로를 따라 떠내려가 버린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강 검사는 부연 설명을 바란 것은 아닌 듯 별다른 대꾸 없이 한참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궁금증이 인 안 검사는 슬그머니 다가가 강 검사가 보고 있는 사진을 넘겨다보았다.

흙탕물에 젖은 여자의 발이 클로즈업된 사진이었다. 한쪽은 하얀 맨발이 드러나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원래 흰색일 듯했으나 흙탕물에 젖어 황토색 얼룩이 배인 양말이 신겨져 있었다.

별다른 무늬도 없는 평범한 무지 양말이다. 다만 발목 부분의 밴드에 작은 꽃 모양이 수놓아져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안 검사가 넘겨다보자 강 검사는 슬그머니 사진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이라도 단서가 될 만한 건 다 찾아봅시다. 피해자의 자택, 지금 가볼 수 있나요?”

“가족에게 연락해 보겠습니다.”

안 검사는 피해자의 모친에게 연락해 바로 약속을 잡았다.

“상심이 크실 텐데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관 앞에서 파리한 안색의 모친에게 안 검사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모친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넋 나간 표정으로 마주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는 약속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사건이 영 풀리지 않는 지금, 무책임하게 그런 약속을 했다가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딱한 생각에 차마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안 검사에 비해 강 검사는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올라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강 검사가 모친을 향해 물었다.

“김나윤 씨 방은 어딘가요?”

모친이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거실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이에요.”

강 검사는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 검사는 피해자의 모친에게 고개를 다시 한번 꾸벅하고는 강 검사를 뒤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주인이 이미 세상에 없다는 것을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생활감이 남아 있었다. 화장대에 놓인 빗에는 머리카락이 남아 있었고, 사용하고 되는 대로 올려둔 듯 화장품도 들쭉날쭉 놓여 있었다. 피해자가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강 검사는 피해자의 옷장부터 열어서 수색했다. 마구잡이로 들춰보는 것이 아니라 뭔가 목적이 있는 듯 절도 있는 손놀림이었다. 안 검사는 어리둥절해 물었다.

“뭘 찾으시는 건가요?”

“딱히 뭘 찾는 건 아니고… 혹시 성춘모가 범인이 아닐 경우 다른 동기가 있는 자가 없나도 알아봐야죠. 안 검사도 피해자 주변 인물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증거가 없는지 찾아봐요. 일기장이나 앨범 같은 거.”

강 검사는 애매하게 답하고는 안 검사를 채근했다. 딱히 수긍이 가는 대답은 아니었다. 강 검사는 성춘모를 처음 본 순간부터 범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검사 역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므로 부지런히 화장대와 책상, 침대 협탁 등을 수색해 보았다.

하지만 별다른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요즘이야 개인의 모든 정보가 핸드폰 안에 있다. 다이어리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시대다. 핸드폰은 피해자의 핸드백 안에 고이 든 채로 시체 옆에서 발견되었다.

핸드폰 안에서 딱히 단서가 될 것이 없었던 이상 방 안에서 뭔가 대단한 것이 나오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었다면 경찰이 이미 확보하지 않았을까?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현타가 오려고 할 때쯤 한참 옷장 쪽을 뒤지고 있던 강 검사가 문득 허리를 일으키며 무심히 말했다.

“별것 없네. 다 봤으면 이만 갈까요?”

“예?”

안 검사는 귀를 의심했다. 강 검사는 대꾸도 없이 성큼 방을 나왔다. 그러고는 피해자의 모친을 향해 안 검사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건넸다.

“범인은 저희가 반드시 잡겠습니다.”

그러고는 꾸벅 인사를 하고 바로 현관으로 나가는 것이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던 모친이 결국 소파 의자에 쓰러지듯 앉으며 눈물을 쏟고 만다.

안 검사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친에게 뭐라 건넬 말이 없어 고개만 꾸벅 숙이고 도망치듯 뛰어나왔다. 그러고는 차를 향해 앞서 걷는 강 검사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그동안 좀 이상했던 강 검사가 최근 신뢰를 많이 회복하긴 했지만 또 한 번 실없는 짓으로 안 검사를 실망시켰다. 경찰이 이미 다 털고 간 피해자의 집은 왜 오자고 해서 쓸데없이 피해자의 가족만 뒤흔들어 놓는단 말인가. 뱉어놓은 말을 대체 어떻게 책임지려고.

안 검사의 속도 모르고 강 검사는 차로 발걸음을 옮기며 얘기했다.

“지금부터 성춘모가 위법을 저지른 사항이 있나 싹 털어봅시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요. 잠깐만 잡아둘 수 있는 거면 됩니다. 그사이에 반드시 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별건구속을 하자는 말씀입니까?”

“구속까지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죠.”

별건으로 구속을 해놓고 그사이 당해사건의 증거를 확보하는 일은 수사상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었다.

안 검사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열심히 위법 사항을 찾아보았다. 사소한 신호위반이나 속도위반 같은 범칙 행위까지 샅샅이 털었다. 그러다 결국 실낱같은 틈을 발견할 수 있었다.

“10년 전 쯤에 구형 택시 미터기 조작으로 적발되어서 과징금 처분을 받은 적이 있네요. 한 번 위반 했으니 두 번 못할 거 없죠. 요즘엔 미터기 조작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형식적으로나마 미터기 조작 혐의를 걸면 자동차관리법 위반으로 조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속까지는 어렵겠지만 말씀하신 대로 잠시 잡아둘 수는 있을 것 같네요.”

“미터기 조작이라! 아주 좋은데요.”

강 검사는 쾌재를 불렀지만 안 검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구속하지도 못하고 짧은 시간 조사만 할 수 있을 뿐인데 그사이 대단한 증거가 나오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미터기 조작만으로는 수색할 수 있는 범위도 너무나 제한적이다.

곧 성춘모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불려 왔다. 안 검사는 성춘모를 앞에 앉히고 형식적으로 신문했다. 그사이 안 검사실의 공민아 수사관이 강 검사와 함께 성춘모의 택시를 다시 수색하러 갔다.

“성춘모 씨 택시를 탄 승객한테서 신고가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요금 올라가는 게 이상하다고 미터기 조작이 의심된다더군요. 지금 수사관이 미터기 봉인 상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안 검사의 설명에 성춘모는 픽 웃었다.

“검사님, 되게 한가하신가 봐요. 미터기 조작 정도를 직접 수사하시고.”

안 검사는 대꾸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조작한 사실이 있으면 부인하지 말고 빨리 털어놓는 게 좋아요.”

“요즘 미터기는 조작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방법을 알았으면 벌써 손을 댔지.”

성춘모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상체를 안 검사 쪽으로 기울이며 빈정댔다.

“취조하는 척 안 하셔도 돼요. 뻔한 거 아니겠어요? 여기서 이렇게 조사받는 동안 살인 증거 찾으려고 용쓰는 거 아닙니까? 애써봤자 아무것도 안 나올 거예요. 포기하세요.”

성춘모의 시선이 끈적끈적하게 감긴다.

“근데 검사님… 이렇게 보니 꽤 미인이시네요.”

놈은 안 검사를 먹잇감처럼 여기고 있었다. 핥는 듯한 노골적인 시선에 안 검사는 혐오감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곁에서 신문 과정을 기록하고 있던 이유정 실무관도 불안한지 힐끔힐끔 이쪽의 눈치를 본다.

여기서 밀릴 순 없었다. 자신은 이자의 죄를 추궁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범죄자와의 기 싸움에서 밀려서야 검사의 자격이 없다.

“눈 깔아. 한 번만 더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 눈알을 뽑아버릴 테니까. 닥치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안 검사는 이를 악물고 성춘모를 노려보았다. 성춘모는 여전히 피식거리며 웃었지만 일단은 손을 들고 뒤로 물러나 앉았다.

취조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양쪽 다 이 취조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문답은 겉돌기만 했다. 안 검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미터기 조작 사실이 없는지 물었고 성춘모는 그런 적이 없노라 기계적으로 답했다.

택시를 조사하러 나간 수사관 쪽에서 뭐라도 답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안 검사는 가능한 한 시간을 끄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때, 검사실 문이 벌컥 열리며 공민아 수사관이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흥분한 기색으로 보고했다.

“검사님, 나왔습니다! 택시 안에서 피해자의 유류품이 나왔어요!”

공 수사관이 증거물이 든 비닐 백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발목 밴드에 꽃무늬 자수가 놓인 흰색 무지 발목 양말이었다.

안 검사도, 성춘모도 한참을 홀린 듯이 증거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어디에서 나왔죠? 택시 안은 이미 경찰이 샅샅이 훑었을 텐데…….”

“뒷자석 시트 사이 틈에서 나왔습니다.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곳이었어요. 저도 강바른 검사님이 시트 사이로 희미하게 흰색 천 조각 같은 게 보인다고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양말이 한 쪽밖에 없네…….]

어째서일까? 시체 사진을 보며 강 검사가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이 퍼뜩 생각났다. 설마…….

“그럴 리가 없어! 그게 거기서 발견될 리가 없다고!!!!”

갑자기 성춘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성춘모는 광기에 휩싸여 펄펄 뛰었다.

“수로에 같이 던져버렸단 말이야. 그게 왜 내 차 안에 있어?! 이건 음모야! 조작이라고!”

분노로 눈이 먼 성춘모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말았다.

“그 새끼지? 그 검사 새끼 짓이 분명해. 그놈이 분명히 그랬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잡아넣고 말겠다고!”

검사가 법을 모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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