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가 법을 모름-11화 (11/78)

제10장 제3의 인물

“정치인이라고?”

-예, 서 검사 말로는 검사 출신일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흠…….”

범진의 보고를 듣고 태산은 고민에 빠졌다. 범인을 사주한 사람이 박중성 이사가 아니라 해도 적어도 조직 주변의 인간일 거라고 짐작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치인이 유력하다니. 의심 가는 인물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배후의 정체가 갑자기 오리무중이 된 것이다.

-교도소에 있는 우리 애들 시켜서 한번 털어보라고 할까요?

“아니다. 내가 직접 가보마. 애들한테는 감시만 잘하고 있으라고 해라.”

태산이 전화를 끊고 바로 집무실을 나서자 이흥렬 계장이 물었다.

“어디 나가십니까?”

“외근이요.”

“예?”

외근은 보통 함께 나갔기 때문에 부랴부랴 혼자 나가는 태산을 보고 이 계장은 어리둥절해 되물었다. 하지만 태산은 대꾸도 없이 휙 사라졌다.

태산은 범인이 수감되어 있다는 여주 교도소로 가 면회 신청을 넣었다. 검사라고 신분을 밝히고 수사차 필요해 수형자를 만나러 왔다고 했더니 총무실을 따로 내주고 특별 면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이럴 때야말로 검사 신분이 유용하구나 생각하는 태산이었다.

잠시 후 교도관에게 이끌려 신흥동 사거리 교통사고 사건의 범인이 들어왔다. 3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사내는 낯선 얼굴을 발견하고는 조금 긴장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태연한 태도로 돌아왔다.

교도관은 사내를 태산의 맞은편 소파에 앉히고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는 태산과 범인, 둘만 남았다.

태산이 상대의 얼굴을 찬찬히 본다. 서 검사의 말처럼 실수로 두 사람을 죽이고 졸지에 징역형까지 살게 된 사람의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표정은 편안해 보였고 얼굴에는 윤기가 돌았다.

“이대원 씨?”

“그런데요. 누구시죠?”

“인천지검 강바른 검사입니다.”

검사라고 신분을 밝히자 상대는 더욱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무슨 일이신가요?”

“이번에 재판받으신 교통사고 사건이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 않아서 말이죠. 이대원 씨에게 상세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데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대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건은 정당하게 재판받았고 죗값을 다할 겁니다. 더 할 말 없습니다.”

이대원이 돌아서려는 순간 태산은 대번에 표정을 바꾸고 으르렁거렸다.

“사람 죽여놓고 마음이 아주 편한가 봐? 하긴 여주 교도소가 시설이 상당히 좋긴 하지. 여기 범털 아니면 들어오기 힘든 곳인데… 뒤 봐주고 있는 게 누구야?”

태산의 말에 이대원은 그대로 그 자리에 굳어 돌아서 가지도, 이쪽을 보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앉아.”

이대원은 충격을 받은 듯 주춤주춤 다시 의자에 앉았다. 누군가 그 사건의 내막을 알고 추궁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듯하다.

“마음만 먹으면 이 사건 수사 다시 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난 굳이 너한테 콩밥을 더 먹이고 싶은 생각은 없어. 수사 다시 해서 또 재판받고 하려면 얼마나 피곤하냔 말이야. 시간 낭비지.”

‘빨리 나오는 쪽이 더 빨리 손봐줄 수 있는데 기다릴 이유가 없잖아.’

이대원은 그런 태산의 속마음을 추호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감히 태산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다.

“누군지만 말해주면 돼. 너한테 그 일을 사주한 사람이.”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전 정말로 졸다가…….”

눈에 띄게 떨면서도 이대원은 애써 부정하려 했다. 대원의 어깨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말하기 힘들 거라는 건 알아. 뭘 약속받았나? 돈이야? 그거 그대로 다 가지고 딱 이름 석 자만 대면 되는 거야. 협박을 받았어? 그럼 내가 보호해 주지. 잘 생각해 봐. 니가 끝까지 입을 안 열면 난 재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그 사건이 자꾸 시끄러워지면 넌 약속받은 그걸 받을 수도 없을 거고, 받는다 해도 다 늙어서 출소하면 제대로 써보기나 하겠어? 어느 쪽이 현명한 선택인지는 명백하잖아.”

이대원은 입을 꾹 다물었지만 더 이상은 부정하지 않았다.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당장 결정하라는 건 아냐. 시간을 주지. 그래도 오래는 못 기다려. 딱 일주일만이야. 감방에서는 시간도 많을 테니 잘 생각해 보라고.”

태산은 일어나 이대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총무실을 나왔다. 태산이 나가고 교대로 교도관이 들어왔을 때도 이대원은 넋을 놓고 있었다. 교도관이 팔을 잡고 끌어서야 이대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이대원에게 내준 일주일의 기한 동안 태산은 검사 업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다시 교도소를 찾아가 볼 때가 되었나 했을 때 갑작스레 기대치 않았던 소식이 전해졌다.

“검사님, 여주 교도소에서 수형자 사망사건이 생긴 모양입니다. 우리 실로 사건 배정이 되어서요. 검시한다는데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흥렬 계장의 보고에 태산은 순간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리 흔치도 않은 교도소 내 사망사건인데 왜 하필 이대원이 수감되어 있는 여주 교도소란 말인가.

“사망자가 누굽니까?”

태산이 조바심을 내며 물으니 이 계장이 어리둥절해 공문을 뒤적여 보며 답했다.

“이름이 이대원이라고 하네요. 수감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친군데…….”

이 계장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불길한 예감은 사실로 드러났다. 대체 왜? 혹시 이대원에게 사주했던 배후자가 살해한 것은 아닐까?

“사망 원인은요.”

“부검해 봐야 알겠지만 스스로 목을 맨 것 같은데요.”

“자살이라고요?”

“그런 것 같습니다.”

이 계장은 태산이 특별히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태산은 곧바로 양복 상의를 챙겨 들고 나섰다.

“가시죠.”

검사실을 빠져나가는데 대포 폰이 울린다. 범진이다. 급한 마음에 이 계장이 있든 말든 일단 받았다. 범진 역시 다급한 목소리로 알렸다.

-형님, 트럭 운전자가 죽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애들 붙여서 감시한다고 했는데… 화장실 배관에 목을 맸답니다. 자살인 것 같습니다.

“확실하냐?”

-안에 있는 애들 말로는 딱히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새벽에 혼자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들여다봤다가 목맨 걸 발견했답니다. 아무래도 자살이…….

태산은 의아하게 보는 이 계장의 시선을 의식하고 급히 범진의 말을 끊었다.

“알았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이 계장은 태산을 대학병원 안치실로 데려갔다. 이대원이 자살 시도 한 것을 발견한 후 교도소 측에서 119에 연락해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한다.

검시의가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가 태산이 들어서자 꾸벅 인사를 하고 바로 검시에 들어갔다. 완전히 탈의한 이대원의 시체가 시상 위에 누운 것을 보고 태산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다른 외상은 없고요. 목 주위에 졸린 흔적 보이십니까? 교도관들 말로는 죄수복을 찢어서 화장실 배관에 목을 맸다고 하네요. 현장에서 수거한 천과 목 졸린 자국이 일치합니다.”

검시의가 그렇게 말하고 이번에는 이대원의 툭 튀어나온 눈꺼풀을 핀셋으로 뒤집어 보인다. 눈꺼풀 안쪽으로 붉은 점이 무수히 찍혀 있다.

“점상출혈 보이시죠? 질식으로 인해 유발된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자살이 확실하네요. 부검해 볼 것도 없겠는데요.”

“타살 가능성은 없습니까?”

태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검시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항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확률은 매우 낮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목 졸라 죽이거나 외관상으로는 티가 안 나는 독으로 독살 후 자살로 위장할 수도 있겠죠. 그런 경우는 부검을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그러고는 조금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런데 타살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라도 있나요?”

태산은 대답할 수 없었다. 범진도 대원이 혼자 화장실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타살 가능성은 적다.

만약 자살이라면 시기가 너무나 공교롭다. 태산의 추궁이 대원을 압박한 것일까? 사주한 이를 부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아니라면 사주한 쪽에서 대원의 입을 막기 위해 자살을 종용한 것은 아닐까?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이감되자마자 발생한 사건입니다. 아무래도 좀 찜찜한 구석이 있어요. 타살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철저히 수사하고 싶습니다. 유족에게 시신을 넘기는 것은 당분간 보류해 주십시오. 부검 영장 받아 오겠습니다.”

태산은 검시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검시의는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투로 호소하듯 이 계장을 바라보았다. 이 계장은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태산을 뒤따라 나갔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태산의 심중을 떠보는 것이다.

“그다지 의심스러운 면은 없어 보이는데…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신가요?”

자살이 유력하다는 것은 태산도 알고 있었지만, 타살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하겠다 한 것은 살인사건 수사를 핑계로 이대원의 주위를 싹 털어보려는 의도였다.

“자살이 확실하다 해도 우리에게는 자살의 배후를 수사할 의무도 있지 않나요? 배후를 털어보려면 자살 사건보다는 살인사건을 타이틀로 내세우는 것이 더 먹힐 테고요.”

“뭐 그렇죠… 자살 사건을 수사할 때는 자살을 교사하거나 방조한 자가 있는지도 조사하는 것이 매뉴얼이니까요.”

이 계장은 사법경찰관의 수사준칙규정을 떠올리며 떨떠름하게 동의했다.

태산이 이 계장과 함께 안치실을 나오는데 입구에서 안색이 파리한 초로의 여성이 맥없이 벽에 기대어 있다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우리 아들… 어떻게 된 건가요?”

“이대원 씨 어머님이신가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대원과 이목구비가 닮은 것 같다.

노인의 푹 꺼진 눈 안에는 갑작스러운 비보로 인한 충격과 절망이 가득했다. 차마 마주 보기 힘든 눈빛이었다.

“인천지검 강바른 검사입니다. 잠시 앉으시죠.”

태산은 노인을 부축해 복도로 나왔다. 의자를 찾아 나란히 앉은 후 운을 뗐다.

“검시 결과로 봐서는 자살인 것 같습니다.”

“…그, 그럴 리 없어요.”

“예, 저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살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할 셈입니다. 혹시 교통사고 사건 이후로 수상한 사람을 만난다거나 갑자기 큰돈이 생겼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까?”

“아니요… 전혀…….”

“그럼 최근에는 이상한 기미가 없었습니까?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다거나.”

노인은 필사적으로 생각해 보려 애썼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는 듯했다.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라도 뭐든 생각나는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가족에게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거라 기대했건만 허탕인가 생각하며 태산은 자리에서 일어설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노인은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운 듯 울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분명 어제도 아무렇지 않게 통화를 했었는데… 그렇게 갑자기…….”

노인이 무심히 흘린 말에 태산이 조심스레 되물었다.

“어제 통화를 하셨다고요? 무슨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그냥 잘 지내느냐, 건강은 괜찮으냐 그런 얘기였어요. 제가 건강이 많이 안 좋아서 대원이가 항상 걱정이거든요. 난 괜찮으니 네 몸이나 챙겨라, 구 선생님이 종종 들여다봐 주시니 걱정 마라, 구 선생님도 네 걱정 많이 하신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태산은 별 뜻 없이 반사적으로 물어보았다.

“구 선생님요?”

“아, 네. 우리 대원이 옛날부터 보살펴 주신 분이에요. 구준태 선생님이라고…….”

“…설마 구준태 인천시장 말입니까?”

“네, 맞아요.”

순간 범진의 말이 귀에 쟁쟁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검사장에게 로비를 넣은 자가 검찰 출신의 정치인인 것 같다는.

* * *

구준태 인천시장.

검사 출신의 정치인으로 인천 토박이다. 인천 남동구 갑 선거구에서 3선 국회의원까지 지낸 후 인천시장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현재는 재선되어 임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구준태는 지역 토박이에 강직한 검사라는 이미지가 강해 인천에서는 상당히 인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정치에 관심 없는 이라고 해도 인천시민이라면 구준태의 이름 석 자는 알았다. 보수 정당 소속이지만 정파를 막론하고 호감도가 높아 진보성향을 띤 유권자도 구준태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평할 정도였다.

“구준태 시장과 이대원 씨는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강력한 용의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흥분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태산은 침착하게 물었다.

“우리 애가 어렸을 때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서 잠시 방황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쳤었는데 마침 담당검사님이 구 선생님이셨죠. 우리 대원이를 아깝게 보셔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바른길로 이끌어주셨어요. 남편이 집 나가서 행불자 되고 형편이 어려울 때였는데 결손가정 청소년 후원 같은 것도 알아봐 주시고 장학금도 챙겨주셨죠. 그 후에도 잊지 않으시고 일자리도 구해주시고 계속 살펴주셨어요. 참 고마우신 분이에요. 대원이도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었고요.”

대원의 모친은 검사가 캐묻는 말에 잘못 대답했다가 구 시장에게 누가 될까 봐서인지 구 시장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유독 강조하며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산이 가진 수상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예, 정말 좋으신 분인 것 같군요.”

태산은 영혼 없이 답하고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로운 인물과의 관계를 털어보고 싶어 안달이 났기 때문이다.

“그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자리를 뜨며 태산은 이 계장한테 속삭였다.

“들어가는 대로 이대원 주변을 싹 파봅시다. 계좌 내역, 재산 변동 상황 다 뽑아주세요. 구준태 시장과 조금이라도 관계되는 건이 있으면 더 상세하게 봐주시고요.”

“구준태 시장이 이 사건과 관련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이 계장은 설마하니 아니겠지 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이 계장이야 검사 출신 정치인이 이대원 사건의 로비를 한 것 같다는 서 검사의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으므로 뜬금없는 전개라고 느낄 법도 하다.

“어쨌든 이름이 나왔으니 만전을 기해야죠.”

젊은 검사 양반이 대체 무엇에 꽂혔는지 알 수 없지만,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사건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심지어 시장까지 조사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 계장은 자신도 모르게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검사실로 복귀한 후 태산은 다른 일을 모두 미루고 이대원 사건에 매달렸다.

먼저 자신이 이대원을 면회한 후 접촉한 사람이 없는지부터 조사했다. 범진에 따르면 교도소 내에서 딱히 이대원에게 접근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외부의 누군가와 만나지 않았을까 싶어 교도소에 요청해 면회 기록과 전화 통화 기록도 살펴보았다.

태산의 방문 후에 따로 면회를 온 사람은 없었다. 전화 통화도 딱 한 건. 바로 대원의 모친이 얘기했던 자살 전날의 통화가 전부였다.

자살 직전 모친과 나눈 대화라면 분명 대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결심한 이유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구 선생님도 종종 들여다봐 주시니 걱정 마라, 구 선생님도 네 걱정 많이 하신다…….]

대원은 어머니의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봐준 은인을 위해 아픈 어머니를 맡기고 목숨을 거둘 셈이었을까? 아니면 모친의 안위가 구 선생의 손에 달려 있다는 암시나 협박으로 받아들였을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심증일 뿐, 분명한 물증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소득이 없기로는 이 계장 쪽도 마찬가지였다.

“별거 없네요. 눈에 띄는 재산 변동 사항이라고 하면 교통사고로 구속되기 직전에 상가를 하나 분양받았다는 정도인데요.”

“자금이 어디서 나서요.”

“글쎄요. 그동안 모아둔 돈에 은행 대출도 받은 것 같은데… 차액이 좀 크긴 하지만 나름대로는 대형트럭 운전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생활인이라 따로 모아놓은 재산이나 돈 빌린 데가 있다고 해도 무리는 없어서요. 딱히 수상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모친은 뭐라고 합니까?”

“제가 말하기 전까지는 상가 분양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던데요. 성실히 생활하고 딱히 씀씀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일해 모은 돈으로 분양받은 것이라면 모친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지 않았을까?

혹시 이것이 교통사고로 위장한 살인을 청부받은 대가가 아닐까?

“구 시장과 연결되는 점은 없었습니까?”

“딱히 없었습니다만… 굳이 따지자면 하나 있기는 합니다. 이대원 씨 모친이 중증 신부전을 앓고 있는데 인천시에서 운영하는 의료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으며 신장이식을 기다리고 있나 봅니다.”

태산은 대원 모친의 파리했던 안색과 푸석한 얼굴을 떠올린다.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는 신부전 환자의 병색이었던가.

“거기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의료원이라 원래도 치료비가 싼 편이지만, 중증질환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되어서 무료로 치료받고 있다고 합니다. 근데 이게 문제 삼으려면 문제 삼을 수도 있는 것이 원래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같은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거든요. 이대원 씨 가족은 크게 넉넉하지는 않아도 생활이 어려운 정도는 아니라… 아무래도 선정 과정에서 구 시장의 입김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구 시장이 대원의 모친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심증이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이 계장은 난색을 표명했다.

“그런데 이런 정도로는 엮기가 힘든데요. 부검 영장도 절대 안 나올 겁니다.”

“한번 시도는 해봅시다.”

태산은 공들여 부검 영장 신청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다. 예상대로 영장 전담 판사는 가차 없이 반려했다.

그사이 태산은 타살이 의심된다는 핑계로 이대원의 교우 관계를 샅샅이 훑었다. 이대원은 직장에서도, 사적으로도 딱히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는 조용한 인간이었다. 자주 접촉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정서적으로 깊이 교류한 사람이 있다면 구 시장이 유일했다.

시간을 끌며 부검 영장 신청서를 다시 보강해 법원에 제출하고 반려당하기를 세 번째, 갑자기 검사장에게서 호출이 내려왔다.

‘드디어 태클이 들어왔나?’

태산은 투덜거리며 8층 검사장실로 올라갔다. 태산이 검사장실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호통이 날아왔다.

“강 검사! 지금 소설 쓰나?”

“예? 업무가 바빠서 취미 활동 할 틈이 없는데요?”

“지금 농담이 나와?! 내가 법원에서까지 볼멘소리를 들어야겠나?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안 되는 거로 수사 질질 끌지 말고 바로 종결해.”

“저 나름대로 심증이 있어 그러는 겁니다. 좀 더 파보겠습니다.”

검사장은 한동안 말없이 태산을 노려보았다.

“전에도 고집불통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복귀 후 사람이 더 이상해진 것 같군. 그동안 무리한 수사로 물의를 일으킨 것도 적응 기간이라 생각하고 근신으로 넘어갔네. 하지만 더 이상 막무가내로 날뛰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 밀실에서 자살한 것이 뻔한 사안을 두고 타살이 의심된다니. 이건 완전히 망상 수준이 아닌가?”

검사장은 격앙되어 목소리를 높였다.

“듣자 하니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지? 진단서 제출하게. 그걸 보고 징계를 할지, 업무에서 제외할지 결정하도록 하겠네.”

검사장이 태산의 가장 큰 약점인 정신적인 문제를 들고 나오니 더는 고집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수사는 종료해도 구 시장의 꼬리를 쫓는 것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태산은 내심을 숨긴 채 짧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검사장은 뒤돌아 나가는 강 검사를 보며 혀를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외로 쉽게 포기해 주어 안도했다.

* * *

“존경하는 인천시민 여러분, 인천시장 취임 1주년을 맞아 오늘부터 다시 취임이라고 생각하고 시정을 더욱 쇄신해 나갈 것임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인천은 다양하고 복잡한 도시 구조로 인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발생하지만, 그래서 더욱 발전 가능성이 높은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지역 간의 상생, 중앙정부와의 협력, 남과 북,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결속 강화를 통해 현재의 혁신과제를 10년, 20년 후의 장기적인 발전으로까지 이어가는 것이 저의 비전입니다. 인천의 미래에 대한 저의 비전은 조만간 자리를 마련해 시민 여러분께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준태 시장이 단상에 서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자 인천시청 회의실 안에서는 호의적인 박수가 터져 나왔다. 태산은 회의실 뒤쪽에 앉아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별다른 이슈도 없는데 취임 1주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다니 구준태 시장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기자회견문 낭독이 끝나자 기자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취임 직후 시행하신 교통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는데요. 광역버스 일부 노선이 파업하는 등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만,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인천의료원이 최근 의료진과 장비 보강을 통해 난치성 질환 치료 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의료취약계층이라도 최선의 치료를 받게 한다는 시장님의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재정문제 등 현실적인 추진 방안은 어떻게 세우셨는지요.”

모두 사전에 협의된 듯 호의적인 질문뿐이었고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될 듯했다.

“더 질문 없으신가요?”

구준태 시장이 웃음기를 띠며 좌중을 향해 물었다. 슬슬 기자간담회를 끝내려는 것 같았다.

태산이 손을 번쩍 든다. 구준태 시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보더니 잠시 내키지 않는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예, 거기 뒤에 앉으신 기자분.”

태산은 천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답했다.

“저는 기자는 아니고요. 인천지검 강바른 검사라고 합니다. 시장님께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아서 오늘 기자회견에 참석했습니다.”

검사 신분을 밝히자 운집한 기자들이 웅성웅성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정치인이 검사의 관심을 받을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것.

벌써부터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보이는 기자들이 몇 보인다.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전개되자 회의실 한구석에서는 보좌관이 직원들을 닦달한다.

“대체 누가 들여보냈어요?”

“패스를 걸고 있길래…….”

태산의 목에는 검찰청 출입패스가 걸려 있었다. 대충 보면 기자출입증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침 인천의료원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 시장님이 인천의료원 중증 환자 지원사업 대상자로 자격이 없는 사람을 추천해 선정이 되었다는 의혹이 있던데요.”

구준태 시장의 표정에는 전혀 동요가 없었다. 빙긋 한 번 웃고는 바로 청산유수로 대답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말씀하시는지는 알 것 같네요. 그런데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부터 오래 후원해 오던 결손가정이 있는데 그 댁 모친이 중증질환에 걸려 치료비 부담이 커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인천의료원에 이러이러한 지원사업이 있으니 신청하라고 언질을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대상자 선정은 어디까지나 의료원 측에서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한 것이며 저는 그 과정에 추호도 개입한 바 없습니다.”

거침없이 바로 인정해 의혹을 남기지 않는 동시에 오히려 훈훈한 미담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훌륭한 방어 기술이었다. 태산은 능구렁이 같은 놈이라고 생각한다.

“질문 더 없으시면 간담회를 마치겠습니다.”

보좌관이 급히 단상으로 올라와 간담회를 종료했다. 태산은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구 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구 시장은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태산을 마주 보고 있다가 천천히 단상에서 내려와 다가왔다.

“강바른 검사라고 했죠? 바쁘신 중에 걸음 하셨는데 차라도 한잔 같이하시죠.”

* * *

“저에게 관심이 많다고요? 어떤 종류의 관심인지 궁금하네요.”

구준태 시장은 태산을 집무실로 데려가 커피를 한 잔씩 앞에 두고 보좌관까지 다 물린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인천의료원에 연결시켜 주신 이대원 씨 말입니다. 제가 그 친구 사망사건을 담당하고 있는데 조사하는 과정에서 구 시장님 성함이 나오더군요.”

태산은 대원이 이름을 꺼내며 구 시장의 반응을 살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갱생시키려고 그렇게 오래 공을 들였건만.”

구 시장은 애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굉장히 각별한 사이셨던 모양입니다. 검사장에게 사건 청탁까지 하신 것을 보면.”

태산은 단숨에 허를 찌르고 들어갔다. 구 시장의 눈이 커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미소를 머금고 태연하게 받았다.

“무슨 말씀을 들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천의료원 건도 그렇고 단단히 오해를 하신 것 같군요. 검사장님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사적인 자리에서 대원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안타깝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은 있습니다. 그 정도를 청탁이라고 보지는 않을 텐데요.”

“청탁이 없었는데도 수사부터 공판까지 한 검사에게 맡겨 범인 자백만 듣고 수사를 마무리하게 한답니까? 선고가 내려진 후 검찰 측에서는 항소도 하지 않았던데요.”

“사실입니까? 금시초문이군요. 검사장님이 제 말을 듣고 특별히 배려해 주신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저는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구 시장은 태산의 심문에 전혀 말려들지 않고 어깨를 으쓱하며 잡아뗐다.

“배려란 말씀이지요? 그런데 저는 왜 배려가 아니라 은폐로 보일까요?”

“무슨 말씀이신지…….”

구 시장은 웃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대원 씨가 일으킨 교통사고 사건, 정말로 단순한 사고였을까요? 누군가 이대원 씨를 사주한 것은 아닐까요? 살인을 사주한 사람이라면 사건을 은폐하고 싶었을 테죠. 할 수만 있다면 수사와 재판을 조속히 마무리해 달라고 청탁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구 시장이 잠시 눈을 부릅뜨더니 이어서 폭소를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그래서 제가 살인 교사 용의자란 말입니까? 그것 참 재미있는 가설이긴 한데 비약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구 시장은 배를 잡고 한참을 웃었다. 태산은 가만히 그런 구 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참 만에야 구 시장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되물었다.

“제가 보기엔 너무나 단순한 교통사고인데 강 검사님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사건에 그렇게 집착하는 건가요?”

“피해자가 제가 수사하던 사건의 피의자였습니다.”

그제야 구 시장이 웃음기를 거두고 태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어째 사건을 자꾸 숨기려는 시도가 느껴져서 말입니다. 단순해 보여도 누군가 자꾸 숨기려 한다는 건 뭔가 구린 부분이 있다는 얘기거든요.”

구 시장은 이제껏 보지 못한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사망한 피의자가 누굽니까?”

“임태산이라고 와룡회라는 폭력 조직의 중간 간부입니다.”

“어떤 혐의로 수사하고 있었죠?”

“재건축비리죠. 건설회사 대표로 행세하고 있었으니까요.”

검사의 입장에서 자신의 예전 신상을 말하는 기분이 묘했다. 태산은 자신의 이름이 나왔을 때 구 시장의 반응을 면밀히 살폈지만 특별한 동요는 없었다. 그저 잠시 곰곰이 생각하나 싶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누군지 전혀 모르겠군요. 검사님 말씀대로라면 제게 살해 동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동기로 살해했다고 추정하시는 거죠?”

태산이 당사자라면 당사자였지만 스스로도 동기를 알 수 없었다. 태산 역시 이전까지 구 시장이라면 그저 인천 출신의 정치인으로만 인식하고 있었지, 개인적인 접점은 없었던 것이다.

“그건 저도 모르죠. 구 시장님이 아시겠죠.”

태산의 말에 구 시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웃었다. 하지만 태산은 웃지 않았다.

“시장님도 검사 출신이니 잘 아시겠죠. 동기라는 것은 사건의 배경을 설명해 주는 것일 뿐, 절대적인 게 아닙니다. 명백하게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면 동기는 중요치 않아요. 동기가 불분명하다 해도 사건이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죠.”

그렇게 말하는 태산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와 구 시장은 순간 움찔했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동기는 매우 복잡미묘하거든요. 분명한 단 한 가지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없어요. 후에 그 동기에 편리하게 이름을 붙여 버릴 뿐인 겁니다.”

범죄자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강 검사의 태도에 구 시장은 압도당했다. 검사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름대로는 살벌한 범죄자들을 많이 만나봤다고 자부하고 기 싸움에서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이 젊은 검사의 아우라에는 섬뜩한 면이 있었다.

태산은 굳어 있는 구 시장을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슬쩍 덧붙였다.

“어쨌든 저는 아직 시장님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테니 조심하십시오.”

“그래요. 나도 그쪽을 지켜보도록 하죠. 좀 상상력이 지나치긴 해도 이렇게 사건에 열정적인 후배 검사를 본 것은 오랜만이라 흐뭇하네요.”

애써 좋은 쪽으로 포장하려는 구 시장의 답을 무시하며 태산은 집무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우리 전에 어디서 만난 적 없습니까?”

갑작스러운 구 시장의 질문에 이번에는 태산이 몸을 굳혔다.

이전에 안면이 있는 사이일까? 회의실에서 손을 들었을 때는 몰라보는 것 같았는데.

하지만 모른 척했을 수도 있는 것이고. 검찰 출신이니 어딘가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해도 무리는 없다.

태산은 고개를 돌려 구 시장을 돌아보았다. 떠보는 것일까 하고 얼굴을 살폈지만 모호한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당연히 어디선가 봤겠죠. 선배님이신데.”

태산은 애매하게 눙치고는 그대로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힌 후 구 시장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떠오른다.

“…정말로 기억이 없는 모양인데?”

* * *

구준태 시장의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 다녀온 후 태산이 현장에서 제기한 의혹을 제목으로 뽑은 관련 기사가 인터넷 뉴스에 떴다.

[[충격][속보]구준태 시장, 인천의료원 특혜 의혹]

“그럼 그렇지. 떡밥을 던져줬는데 기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태산은 쾌재를 부르며 기사를 열어보았지만 알맹이가 눈곱만치도 없었다. 별다른 취재 없이 태산이 현장에서 제기한 의혹과 구 시장의 해명을 그대로 옮겨놓았으며 오히려 구 시장의 미담을 강조하여 마무리한 것이다.

-기레기 새끼들 제목 낚시 봐라. 어그로로 조회수 벌어서 살림살이 좀 넉넉해졌나요?

-아~ 기레기에 또 낚였어. 존나 자존심 상해~

-이런 장난 치는 기자 새끼들 다 망하게 해야 됨. 얘네가 안 망하면 우리가 망할 듯.

-<충격>, <속보> 이런 거 남발하는 찌라시들 단속 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저질 제목 달고 낚시 기사 쓰는 애들을 언론사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낚시성 제목을 성토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지만 언론사로서는 덕분에 폭주한 조회수를 보며 기뻐하고 있을 터였다.

태산은 쓴 입맛을 다시며 다른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다.

[[단독]구준태 시장, 인천의료원 특혜 사건의 진상]

이번에는 꽤 성의 있게 취재를 한 듯한 제목이라 기대를 하고 열어보았다. 그러나 이 기사가 오히려 후속취재를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구 시장을 변호하고 있었다.

규정상 중증질환 지원사업 대상자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기타 이에 준하는 중증질환자’라고 정하고 있으므로 이대원의 모친은 기타에 해당되어 선정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구 시장이 선정 과정에 관여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구준태 시장님, 언제나 믿고 응원합니다. 파이팅!

-어떤 새끼가 근거도 없이 우리 구 시장님 모함하냐?

-안타까운 마음에 행한 선행이 이런 식으로 오해받네요. 구 시장님 너무 짠합니다. 힘내세요.

-구준태 나도 별로긴 한데… 그래도 비판하려면 뭔 근거를 가지고 하든가. 싫다고 되는 대로 의혹 제기해서 몰이 하는 건 너무 미개하지 않냐? 이래서 우리나라 정치가 발전이 안 된다니까.

기사 댓글에는 구 시장의 지지자들이 몰려와 구 시장을 두둔하는 한편, 이런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한 누군가를 맹렬히 씹어대고 있었다. 구 시장의 이미지에 균열을 내고 싶었으나 졸지에 욕만 실컷 먹게 된 태산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구 시장이 언론 또한 빈틈없이 장악하고 있음은 잘 알 수 있었다. 이 언론인들이 돈이나 권력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인간 구준태에 감화된 진성빠라는 것이 더욱 무서운 사실이었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으로 기사와 댓글을 읽으며 탄식하고 있는데 문득 전화벨이 울린다.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니 이흥렬 계장이다.

“예, 계장님.”

[검사님, 출근하셔야죠. 복귀하랍니다.]

검사장은 태산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정신과 담당의에게 진단서를 발부받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태산은 거리낌 없이 진단서를 제출했다. 범죄 심리 쪽을 심층적으로 진단받는다면 결과가 어떨지 장담할 수 없지만, 일반적인 수준에서는 건강한 정신상태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검사장은 심각한 병명을 기대했겠지만 진단서에 기재된 내용은 간단했다.

과거 기억이 다소 불완전하기는 하나 정신적 문제 없음.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등 모든 검사 결과에서 문제 소견 없음.

울며 겨자 먹기였겠지만 결국 검사장이 태산을 업무에 복귀시키기로 결정했나 보다.

“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시원스럽게 답한 태산은 다음 날 바로 출근했다.

업무로 복귀한 태산은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로 복기해 보고 당장 구 시장을 살인으로 엮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범행을 실행한 이대원은 사망한 상태고 정작 태산 자신조차도 구 시장이 배후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 시장이 검사장에게 청탁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사건을 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지인의 재판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한 청탁일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구 시장을 계속 감시하되 다른 범인이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태산은 진상을 밝히는 일이 장기화될 것을 각오하고 이대원 사망사건을 자살로 종결시켰다.

결국 부검 영장은 받아내지 못했고 시신은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이대원의 모친에게 넘어갔다. 그나마 홀로 남은 노모가 부검되지 않은 온전한 시신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것만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이대원 사건을 종결시킨 후 한동안 태산은 묵묵히 업무를 보며 지냈다. 틈틈이 부족한 법률 공부를 하고 몸을 단련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 대한 복수심을 쌓아가는 시간들이었다. 태산의 신체와 정신은 더욱 단단해져 갔다.

그러나 태산의 조용한 일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서 검사님! 정말 이 사건 이대로 끝내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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