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가 법을 모름-2화 (2/78)

제1장 지옥에서의 귀환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 천장이었다. 태산은 여기가 어딘가 떠올려 보려 애썼지만 혼란스럽기만 했다.

분명 큰형님을 독대한 후 재호와 함께 차를 타고…….

순간 태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부우웅~~

굉음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오던 덤프트럭이 순간적으로 뇌리에 떠올랐다.

덤프트럭이 태산의 벤츠와 충돌한 순간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깨어보니 주위는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재호는 다리가 차체에 끼어 움쭉달싹하지 못했다. 어서 피하라는 재호에게 혼자 갈 수는 없다 고집했을 때 재호는 뭐라고 했던가.

[트럭 운전한 놈이 내려서 확인하고 튀는 거 봤구만요. 우린 눈빛만 봐도 알잖어요. 이거 절대 사고 아녀라.]

재호의 마지막 말이 귀에 쟁쟁했다.

[형님이 꼭 갚아주씨요.]

그와 함께 끔찍한 고통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온몸의 피부가 불타오르는 듯 뜨겁고 숨 쉴 때마다 허파를 인두로 지지는 것 같은 고통. 몸부림치다가 혼절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가.

그 지옥 같은 고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절로 거칠어졌다.

태산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앉았다. 태산이 누워 있던 곳은 병원 1인실의 침대 위였다.

몸에 주렁주렁 달린 줄을 걷어치우고 발을 내려놓으려 애써보지만, 몸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링거 바늘이 빠져 환자복에 핏방울이 점점이 흩뿌려졌다.

마침 카트를 밀고 병실로 들어오던 간호사가 일어나 앉아 있는 태산을 보고 멍하니 넋을 놓았다. 태산은 간호사를 보고 안도해 입을 열었다. 입안이 모래알을 씹은 듯 까슬거렸다.

“…무… 물 좀 주씨오.”

간신히 쥐어짠 목소리가 남의 목소리처럼 낯설었다.

간호사는 태산의 말은 들은 척 만 척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뒷걸음질을 치더니 후다닥 병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선생님, 선생니임~~!!!”

그냥 여기서 호출하면 되지 않나 싶었지만 길게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머리가 어질어질 혼란스러웠다.

피하라는 재호의 말을 거부하고 결국에는 재호를 차 밖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둘 다 심한 화상을 입었고 뒤이어 폭발까지 있었다. 살아났다면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일까? 온몸이 아프긴 했지만 의식이 오락가락하던 중에 느꼈던 끔찍한 고통에 비하면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 태산은 신이 자신을 그리 쉽게 데려가지 않을 셈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문득 내려다보니 침대에 덮인 몸이 너무 가늘고 길다. 감각도 이상해졌는지 몸이 엿가락처럼 길쭉하게 늘어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런 골격이 아닌디. 우째 이렇게 말라 부렀다냐.’

이렇게 될 때까지 대체 얼마나 누워 있었던 것일까?

태산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사고가 났을 때는 한창 찬바람이 불던 겨울이었는데 지금 창밖은 봄꽃과 신록으로 알록달록했다. 적어도 3개월은 지난 것 같았다. 태산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리며 의료진들이 헐레벌떡 들이닥쳤다. 레지던트들이 당장 태산을 침대에 눕히고는 품을 헤치고 눈을 뒤집어보며 부산을 떤다. 주치의인 듯한 나이 지긋한 의사가 뒤늦게 달려와 젊은 의사들을 헤치고 태산 앞에 도달해 숨을 헐떡이더니 물었다.

“강바른 환자분, 정신 드셨습니까?”

누구? 지금 누구라고?

그 말을 듣고야 태산은 아까부터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지던 자신의 몸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팔을 번쩍 들어 눈앞에 놓고 들여다본다. 환자복이 스르륵 밀려 내려오며 드러난 팔은 너무나 하얗고 매끈하다. 분명 사고가 일어났을 때 온몸이 화염에 휩싸였었건만.

사고 전에도 자잘한 상처들이 수없이 얽혀 있는 팔이었다. 게다가 굵은 뼈를 감싸고 있던 억센 근육들. 아무리 말랐기로서니 그게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이렇게 한순간에 쏙 빠져 버릴 수 있다고?

이건 아무리 봐도 자신의 팔이라고 볼 수 없었다.

태산은 손을 들어 이번에는 얼굴을 만져보았다. 윤곽이 전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억센 턱은 갸름해져 있었고 뭉툭하던 코는 길게 쭉 뻗어 있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가 남의 얼굴을 만지는 것만 같다.

태산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의료진들을 밀쳐내고 화장실로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양쪽 다리가 모두 깁스가 되어 있는 탓에 비틀거리며 벽을 짚고 걸어야 했다. 몸은 뻣뻣하니 말을 듣지 않고 발걸음을 뗄 때마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그 정도의 고통으로는 태산을 막을 수 없었다.

의료진들이 미처 만류할 새도 없이 태산은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분명 눈에 익었지만, 태산의 얼굴이 아니었다. 평소보다 더 깡마르고 수염이 까칠하게 자랐지만, 변함없이 허여멀건 백면서생의 얼굴. 그가 그렇게도 성가셔했던 바로 그 젊은 검사였다.

인천지검 강바른 검사.

* * *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재호의 호출을 받고 나갔더니 양복 입은 젊은 검사가 형사들을 지휘해 사무실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었다. 태산이 미간을 모으며 다가가자 검사는 코앞에 서류를 들이밀었다.

“영장 집행 중입니다.”

서류에는 뭐라고 잔뜩 쓰여 있었지만, 태산은 봐야 골치만 아픈 문서 따위는 밀어버린다.

“뭐 종이 쪼가리는 됐고. 이왕 영장 받아 오신 거 편히 찾아보고 가세요. 근데 저희 깨끗하게 사업하는 놈들입니다. 와꾸만 보고 나쁜 짓 하는 놈들이다 단정 짓고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는 거… 그거 유식한 말로 뭐냐… 공권력 남용이에요.”

젊은 검사는 느물거리는 태산을 빤히 노려보았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도 쏘아보는 눈빛은 형형하다.

어지간한 놈들은 태산의 덩치와 인상만 봐도 겁을 집어먹고 꼬리를 말게 마련이었다. 존만 한 애송이 주제에 자신을 보고도 쫄지 않는다.

깡은 좀 있는 놈이군. 태산은 요것 봐라 생각하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임태산 대표님이시죠? 평소 공권력의 부름을 많이 받으신 모양입니다? 구린 데가 있으니 그렇겠지요.”

“아무리 들춰봐도 구린 데가 없으니 지금까지 버틴 것 아닙니까? 신임이신가 본데 위에 물어보시면 다 압니다. 괜한 고생 마시고 저희 회사엔 관심 끄십쇼, 영감님.”

“지금이 어느 시댄데 영감님이라뇨. 인천지검 강바른입니다. 강 검사라고 부르십시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은데.”

윗선을 이미 잘 구워삶아 놓았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해 보았으나 젊은 검사는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전혀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턱을 바짝 들고 태산을 노려보는 것이다. 체구는 말라서 태산의 반도 되지 않을 것 같았지만 키는 태산보다 손가락 하나 정도는 더 컸다. 은근히 내려다보는 것 같아 불쾌했다.

태산은 눈을 치뜨고 바짝 다가섰다. 태산과 강 검사의 눈빛이 팽팽하게 교차한다.

* * *

“놔, 이 새끼들아! 내 몸 어떻게 된 거야?! 내 몸 찾아야 돼!!! 이거 놓으라고!!!”

의료진들은 길길이 뛰는 태산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날뛰는 태산에 밀려 나가떨어진 인턴 하나가 엉덩이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막 깨어난 환자가 무슨 힘이 저렇게…….”

하지만 태산은 자기 마음껏 몸이 움직이지 않아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제 몸이 아닌 몸이 익숙지 않을뿐더러 아직 회복이 덜 되었기 때문이었다.

젊었든 늙었든 과로에 지쳐 얼굴이 누렇게 뜬 의사 나부랭이들 정도야 평소라면 한 손 거리도 안 되었겠지만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에 다 함께 달려들어 짓누르니 당해낼 수 없었다. 그나마 태산의 의지력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병동의 남자 간호사들까지 동원되어서야 태산에게 간신히 진정제가 투여되었다. 주삿바늘을 꽂아 넣자 태산은 의료진들에게 눌린 채로 짐승처럼 소리를 질렀다.

“니들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건드리지 마! 손대지 말라고!!”

진정제를 맞고도 한동안 날뛰고 소리를 지르다가 태산은 침을 흘리며 잠잠해졌다. 의료진들이 즉시 태산을 침대에 꽁꽁 포박했다.

옴짝달싹할 수 없이 꽁꽁 묶인 태산은 몽롱히 생각했다. 처음 남의 몸속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충격이 커서 자신도 모르게 날뛰었지만 진정제의 영향으로 흥분이 차츰 가라앉고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사고가 난 후 생사를 헤매다 깨어났더니 남의 몸속이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누가 믿어주겠는가. 당장 정신병원에 처넣는다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태산은 이성을 조금씩 되찾음에 따라 전략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강바른 검사 행세를 하기로 한 것이다.

미친놈이 되어 정신병원에 갇히는 것만은 피해야 했다. 정신이 멀쩡한 것으로 보여야 운신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한시라도 빨리 상황을 파악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좀 혼란스러워서 그랬습니다. 이젠 괜찮습니다.”

태산은 침대에 앉아 애써 담담한 얼굴로 의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말투에서 사투리 어조를 없애려 신경 쓰며.

전략을 바꾼 것은 주효했다. 태산이 얌전하게 굴며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까지 하자 포박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금세 풀렸다.

“그럴 수 있지요. 꽤 오래 의식불명 상태였으니까요.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기억이 납니까?”

“아니요. 그건 아직 잘…….”

태산은 얼버무리며 골치가 아픈 것처럼 이마를 찡그리고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드라마 같은 데 보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들이 과거가 생각나지 않을 때면 꼭 이런 표정을 했던 것 같다. 아니, 두통약 광고였던가?

태산은 어설픈 연기를 하며 흘낏 의사의 표정을 살폈다.

“아직 단기기억상실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고요. 기억은 몸이 회복되면 차차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보통 큰 사고가 아니었으니 충격이 컸겠지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수도 있으니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중에 기억을 찾은 척해야 할 때가 오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어 태산은 의사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제가 어떤 사고를 당한 건가요?”

태산의 질문에 의사의 얼굴에 잠깐 당황한 기색이 흐른다. 그러나 이내 사무적인 태도로 설명했다.

“고층 건물에서 실족했습니다. 1차로 가로수에 부딪히고 2차로 도보에 떨어지면서 충격이 감쇄된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요.”

의사는 최대한 논평이 가미되지 않은 사실만을 간략히 얘기해 주었다. 그러고는 바로 화제를 돌려 부상 정도와 치료 과정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신 복합골절에 장기도 심하게 손상되었습니다. 천만다행인 것은 1차로 가로수에 충격한 탓에 추락 방향이 바뀌어 두부 손상은 입지 않았다는 것이었지요. 다만 한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던 것은 극심한 신체 손상으로 인한 쇼크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미 심정지가 왔던 것을 CPR로 살려낸 것이기도 하고. 영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했었는데 이렇게 의식을 찾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게다가 이런 무시무시한 회복력은 제 의사 생활 중에서도 본 적이 없는 사례예요. 한 달쯤 전부터 급격히 부상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장기는 물론이고 복합골절 된 부위도 완치는 힘들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예후를 보면 후유장애 없이 회복되는 것도 희망 사항만은 아니지 않나…….”

설명을 들으면서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 어쩐지 실족 원인에 대해서는 일부러 언급을 회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숨기는 것 같은데…….’

“그보다 떨어진 이유가 뭐랍니까? 고층 건물이면 그냥 실수로 떨어지기도 힘들 거 같은데요.”

피하려는 주제를 태산이 정확하게 지적하자 의사는 당황해 우물쭈물 망설였다.

‘확실히 뭔가가 있군!’

태산은 확신하고 의사를 채근했다.

“선생님,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전 괜찮습니다.”

* * *

“선생님,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전 괜찮습니다.”

태산의 채근에 의사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의식이 없으실 때 형사가 다녀갔습니다. 자살로 추정된다고 하더군요.”

예상치 못한 답에 태산은 황당해 넋을 놓았다. 그 강 검사가?

처음 만났을 때 마주했던 강 검사의 매서운 눈빛을 떠올린다. 강 검사는 확언했듯이 그 후로도 태산을 계속 귀찮게 했다.

다른 검사들은 말끝마다 깡패 새끼 어쩌고 하며 무시하다가도 태산이 정색하며 눈빛을 바꾸면 겁을 집어먹고 바로 얼어붙었다. 배짱이 좀 있는 놈들도 태산의 조직 규모와 배경을 실감하게 해주면 절로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그런데 그놈은 꼬박꼬박 존대를 하면서도 눈빛으로는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재호는 검사 월급으로 분에 넘치는 옷과 차를 가지고 있으니 스폰을 받는지도 모른다고 말했었지만, 태산이 보기에 강 검사는 그런 용한 재주가 있는 놈이 아니었다.

이 새끼는 그냥 눈치 없고 답도 없는 고지식쟁이 바른생활맨인지도 모른다. 집은 좀 사는 모양이고. 이런 놈은 겁을 줘도 소용없고 구워삶을 방도도 없다.

귀찮게 됐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태산이 기억하는 강 검사는 자살을 시도할 타입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당장에라도 자신을 처넣을 듯 기세등등했었는데 지금 시점에서 갑자기 자살이라니. 아무래도 수상한 냄새가 난다.

“누군가 죽이려 했을 가능성은 없답니까?”

“타살 쪽은 전혀 생각지 않는 것 같던데요. 유서도 발견되었다고 하고.”

유서쯤이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만약 태산의 의혹대로 타살이라고 한다면 누군가 대단히 치밀하게 강 검사를 제거하려 한 것일 테다.

‘너에게도 너를 죽이고 싶어 하는 적이 있었던 건가?’

태산이 골똘히 생각에 잠기자 의사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아무래도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괜찮습니다. 단지 아직 생각나는 것이 전혀 없어서 혼란스러운 것뿐입니다. 자살할 이유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지난 일에 대해서는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일단은 몸을 회복하는 데 전념하세요. 아직 무리하시면 안 돼요. 한동안은 최대한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절대 움직이지 마시고 병실에 누워 계세요.”

의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태산은 가만히 누워 있을 생각이 없었다. 당장 알아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태산은 의사가 나가길 기다렸다가 바로 일어나 목각 인형처럼 삐걱거리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바깥의 동정을 살폈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바로 깨어난지라 태산의 병실에는 휠체어가 없었다. 하지만 종합병원 병실 앞에는 환자들이 쓰다가 내놓은 병원 비품 휠체어들이 흔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중 하나를 골라 타고 움직이면 된다.

되도록 의료진의 눈을 피해 움직이겠지만 혹여나 들키는 경우에는 의사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둘러댈 생각이다.

태산은 타이밍을 노려 병실에서 재빨리 빠져나왔다. 지나가는 환자들 틈에 끼어 조금 걷다가 병실 앞에 세워진 휠체어에 잽싸게 올라앉았다. 휠체어로 이동하니 훨씬 움직이기가 편했다.

태산은 재빨리 휠체어를 움직여 간호사들이 스테이션에서 환담을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태산의 목표는 중환자실이었다.

분명 자신은 극심한 부상을 입고 생사를 헤매고 있었다. 그 정도 부상이라면 필시 중환자실에 있었을 것이다.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이동해 온 판이니 꼭 같은 병원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뭔가 접점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층별 표시에 중환자실은 5층으로 나와 있었다. 태산은 5층에 내려 스테이션으로 다가갔다.

“저 말씀 좀 물읍시다.”

태산이 다가가자 중년의 간호사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태산은 당황해 되물었다.

“절 아십니까?”

“그럼요. 중환자실 계셨잖아요. 이름이 독특해서 기억이 나는데. 강바른 환자분이시죠? 외상은 회복이 되는데 의식을 못 찾으시더니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다행이에요.”

“예, 감사합니다.”

태산은 얼떨떨한 채로 답했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간호사가 미소를 띠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혹시 여기 환자 중에 임태산이라고 있습니까?”

간호사가 눈을 크게 뜬다.

“그걸 어떻게…….”

역시 그랬던 건가?

“원래부터 알던 사람이라서요. 지인한테 같은 중환자실에 입원했었다는 말을 듣고 소식이 궁금해서…….”

태산은 대충 둘러댔다.

그러나 간호사는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한참 망설인다.

“아~ 아는 사이세요? 아이참… 어떡해야 하나… 아직 몸도 안 좋으신데…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간호사가 너무 뜸을 들여 태산은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 더 기다리지 못하고 채근하려 할 때 간호사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호흡기 의지해서 정말 힘들게 버티셨어요. 그래도 간간이 의식 반응이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는 완전히 의식불명이 되었고 어제 오전에 결국 숨을 거두셨어요.”

망설이며 꺼내놓은 간호사의 설명에 태산은 잠깐 넋을 놓았다. 지금 뭐라고?

“화상이 그렇게 심했으니까 무척 고통스러우셨을 거예요. 회복할 가망 없이 그대로 계속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다행인지도 몰라요.”

지인이라고 하니 간호사는 위로하려는 듯했지만, 태산의 귀에는 ‘숨을 거두었다’는 말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몸은?! 몸은 어떻게 됐습니까?!!!!”

태산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물었다. 태산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자 간호사는 흠칫 놀라 답했다.

“모, 몸이요? 아아~ 시신은… 장례식장에 한번 가보시면…….”

간호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태산은 급히 휠체어를 돌렸다. 그리고 별관에 있는 장례식장 건물로 달렸다.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전광판의 이름을 훑었다.

[501 임태산]

501호 분향실 옆에 태산의 이름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믿을 수 없어.”

태산은 중얼거리며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 5층으로 내달렸다.

빈소 안은 썰렁했다. 5층은 특실이라 태산의 빈소만이 한 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 사람이 없었다.

태산에게는 이제 혈육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남지 않았지만, 조직을 가족과 같이 여겼다. 아우 중에는 태산을 롤 모델로 생각하고 존경하며 따르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도 장례식장이 이렇게까지 한산하다는 것은 분명 수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태산은 그런 사실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대로 분향실로 휠체어를 몰아 들어가니 국화에 파묻힌 자신의 영정 사진이 태산을 맞이했다.

태산은 휠체어를 뿌리치듯 던져 버리고 분향실로 발을 내디뎠다. 휠체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달려오던 기세에 쓰러진 후에도 바퀴가 빙글빙글 돌았다.

그제야 영정 앞에 홀로 널브러져 있던 검은 양복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범진이었다. 재호와 함께 태산이 거느리고 있었던 두 마리 범 중 하나다.

“뭐야?!”

범진은 대낮부터 술에 잔뜩 취해 눈이 붉었다.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태산은 아랑곳없이 절뚝거리며 영정 앞으로 다가갔다. 영정 속의 자신은 대책 없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따로 촬영한 기억은 없지만, 회사 단합 대회에서 아우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잘라낸 것 같다.

그제야 자신의 몸이 죽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태산은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지만, 태산은 자신의 몸과 얼굴을 좋아했다.

태산의 얼굴은 설득력 그 자체였다. 누구나 그의 시선을 마주하면 눈을 피했다. 그 얼굴을 마주 보고도 태산의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바위처럼 단단한 몸은 태산이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겪고도 살아서 조직에 군림할 수 있게 한 자산이었다. 그 몸과 함께라면 어떠한 싸움도 두렵지 않았다.

“너 뭐야, 이 새끼야?”

맥없이 앉아 있는 태산의 멱살을 범진이 움켜잡았다. 태산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물었다.

“재호, 재호는?!”

당황하여 답하지 못하는 범진을 태산은 큰 소리로 채근했다.

“재호는 어떻게 됐냐고?!”

그 박력에 범진은 자신도 모르게 답했다.

“벌써 장례 끝낸 지 오랜데…….”

“…재호마저…….”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자랑스러웠던 몸과 가장 아끼던 아우를 모두 잃었다. 자신의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안타까움과 절망감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태산은 주저앉은 채 오열했다.

“어흐어어엉~”

태산의 멱살을 잡고 있던 범진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을 크게 떴다. 태산은 아랑곳 않고 꺼이꺼이 오열했다.

진심으로 슬퍼하는 그 모습을 보니 범진도 억눌러 왔던 설움이 치솟아 오르는 듯했다. 점점 눈이 젖어 드나 싶더니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범진도 덩달아 오열했다.

“어허엉~~ 형니임~~~”

태산과 범진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엉엉 울었다. 검사와 조폭이 장례식장에서 함께 끌어안고 곡을 하다니 너무나도 기이한 광경이었다. 누구라도 수상스럽게 여길 만하다. 그러나 지켜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아, 씨발. 쪽팔려서. 이런 꼴을 보이다니.”

아무리 상황이 특수하다 해도 수하에게 우는 모습을 보인 것이 못내 창피해 태산은 투덜거렸다. 강 검사의 모습인 것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

“피차 마찬가지요.”

빈소 옆 식당에 육개장을 한 사발씩 앞에 놓고 마주 앉은 범진이 태산의 잔에 소주를 따르려다 말고 물었다.

“아직 치료 중인 거 같은데 술은 괜찮으신가?”

“배째라고 해. 죽지야 않겠지. 이런 날 안 마실 수가 있나.”

태산은 범진이 따라준 술을 그대로 식도에 쏟아부었다. 범진은 다음 잔을 따라주며 은근히 물었다.

“우리 형님이랑은 각별한 사이였소?”

생전에는 아웅다웅하던 강 검사가 성치도 않은 몸으로 태산의 장례식장에 달려와 오열했다. 범진은 둘 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어떤 교감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것 같았다.

태산은 답하기 곤란해 얼버무렸다.

“각별은 무슨. 그냥 싸우다 보니 정든 거지.”

범진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쳤다. 태산과 강 검사에게 어떤 특별한 연결점이 있을 거라 기대했다가 맥이 빠졌으리라.

“건달이긴 하지만 그렇게 죽긴 아까운 인간이잖냐. 싸나이답고 호탕하고.”

변명하듯 덧붙이면서도 머쓱하다 싶은데 범진은 진지한 얼굴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술잔을 기울이며 서글프게 중얼거리는 것이다.

“그래, 이해해. 우리 형님이 좀 멋졌어야 말이지. 마지막까지 정말 사나이답게 가셨다. 온몸이 숯덩이처럼 탔는데 그 고통 속에서도 쉽게 포기를 안 하시더라.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셨지. 안쓰러울 정도로. 너나 나 같으면 그 상태로 10분도 못 버티고 죽여달라고 사정했을 거다. 마지막에는 숨도 제대로 못 쉬었는데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서 한 달 이상을 버티셨어.”

태산은 범진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자가호흡을 하지 못했던 그 시점에서 자신의 혼은 이미 강 검사의 몸으로 옮겨 온 것인지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범진의 코끝에서 눈물 한 방울이 맺혔다가 술잔 속으로 똑 떨어진다. 태산도 코끝이 찡해졌다. 재호가 그렇게 가버렸으니 자신의 곁을 지켜준 이는 범진 하나뿐이었을 테다. 지금 썰렁한 빈소에 홀로 남아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었다.

고맙고 안쓰러웠지만, 딱히 위로할 말이 없었다. 눈물이라도 그치게 해주고 싶어 태산은 괜스레 시비를 건다.

“근데 너 아까부터 왜 은근히 반말지거리냐?”

아니나 다를까 범진은 얼른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고 태산을 쏘아보았다.

“왜, 씨발? 반말하면 안 되냐? 반말은 니가 먼저 했잖아? 꼴에 검사라고 영감님 대접이라도 받고 싶은 거야?”

태산은 헛웃음을 뱉었다. 생전 같으면 내 그림자도 안 밟으려 했을 놈인데.

“그래, 어차피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말 까라.”

태산의 말에도 범진은 흥 하고 콧방귀만 뀔 뿐이다. 그리고는 또 소주를 털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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