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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234화 (234/250)

< 베리타스 >

본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영혼에서 격리되었으니까. 베리타스의 반향, 혹은 흔적이라고 보는 게 옳다.

베리타스도 그 점을 깨달았다.

[내 상태가 왜 이러지? 네 이놈!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베리타스가 무슨 말을 하든, 시혁은 자기소개부터 했다.

[반갑다, 베리타스. 이름은 익히 들었다. 나는 최시혁이다. 네가 짐작한 것처럼, 네 후생이지.]

[네놈…… 나를 영혼석에 가둔 것이냐? 어떻게 한 거지? 영혼에서 자아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데?]

좁은 영혼석에 갇힌 와중에도, 베리타스는 자신을 처리한 방법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냈다.

하긴 그런 사람이었으니 대종사의 자리까지 올랐겠지.

시혁이 알려줄 필요도 없었다.

영혼석이 몇 번 달그락거리더니, 베리타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네놈, 참 간도 크구나. 인조 영혼을 만들어서 내 자아를 합치고, 그걸 송두리째 잡아 뽑았어? 내가 마법사가 아니라 악마 군주였다면, 네놈은 영혼석을 머리에 박고 내 육체가 됐을 거다.]

[그 생각을 못했겠어? 다 주판 튕겨보고 한 일이야. 무방비한 상태로 널 부활시킬 리가 없지.]

[주판? 뭔지 모르겠군. 하여간 대단하구나. 내 후생다워. 반드시 내가 부활할 거라고 자신했는데, 계획이 제대로 어긋났군.]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시혁도 잠시 침묵했다.

머릿속으로 베리타스에게 물어볼 것들을 정리했다. 3년 동안 아르거스를 오가면서 쌓은 의문이 산더미 같았다.

베리타스가 시혁에게 먼저 물었다.

[날 어떻게 할 거냐?]

영혼석에 깃든 이상, 베리타스는 시혁의 손아귀에 있다.

영원히 봉인하는 것도, 아예 파괴해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시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내게 협조한다면 가만히 놔두고, 아니면 파괴할 생각이다.]

[나는 네 전생이다. 어떻게 그런 극악한 짓을 할 수 있지?]

베리타스가 항의했지만, 시혁은 그저 코웃음만 쳤다.

[네가 내 자아를 지우고 부활하려 한 시점에서 나와 적이 된 거야. 적을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어.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라. 넌 내 전생이 아냐. 내 전생이 남겨놓은 메아리일 뿐이지. 부활에 실패한 시점부터, 넌 일개 인공지능에 불과해.]

[끄응.]

베리타스가 앓는 소리를 냈다.

결국 시혁의 협박을 수용하고 말았다.

[좋다. 네게 협조하겠다. 뭐든 시켜라.]

시혁은 속으로 씨익 웃었다.

하지만 방심하진 않았다.

영혼석에 봉인되었다고는 하나 베리타스는 베리타스다. 그 영혼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긴 해도, 언제 어떻게 상황을 뒤집을지 몰랐다.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부터 질문했다.

[천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천 년 전? 그게 무슨 말이냐?]

아, 베리타스는 모르겠구나.

시혁은 그간의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열다섯 대종사가 활동했던 것은 벌써 천 년 전이라는 것.

신들과의 전쟁으로 대재앙이 벌어졌고, 그 결과 공허가 발생하여 아르거스 행성이 산산조각 났다. 수백 년 전부터 이계에서 소환자들을 받아들였고, 지금까지 아홉 신이 탄생하여 아르거스 행성이 6할 정도 복구되었다.

[많은 일이 있었군……]

베리타스가 신음하듯 말했다.

시혁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다른 것보다, 공허가 우연히 생성되었다는 건 믿기지가 않아. 그 중심에는 진득한 악의가 있어. 내가 알아본 바로는 녹스가 다뤘다던 심연의 힘과 비슷했지.]

[공허, 공허라…… 뭘 말하는 건지 알겠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우연히 생성된 게 아니다. 녹스의 음모였지.]

[음모라고?]

베리타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천 년 전, 열다섯 대종사의 힘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신들조차 두려워할 정도.

특히 베리타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있었다. 휘하의 세력은 보잘 것이 없어도, 곧 마법의 신 까뮈를 넘어설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신들은 자신들이 구축한 질서가 엉클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또, 대종사 중에는 강력한 베리타스나 인덕 높은 카로스를 시기하는 자가 있었다.

어둠 대종사 녹스.

높아지는 신들의 압박 속에서, 녹스는 열다섯 대종사의 회동을 주장했다.

종족도, 신분도, 출신도 각양각색이었던 그들.

그 회동에서 문제가 생겼다.

신들이 기습했다.

대종사들은 힘을 합쳐 대항했으나 힘이 모자랐다. 더구나 결정적인 순간 녹스가 심연의 마왕을 풀어 대종사들을 공격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이판사판이었다. 모두 죽을 각오를 했지. 본신의 육체까지 희생시켜가며 마법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게 녹스가 노린 거였다.]

녹스는 심연의 끝자락을 소환했다. 본인 또한 육체를 희생시킨 상태였다.

폭주하는 힘들이 심연에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생성된 게 공허.

대재앙이 아르거스를 덮쳤다.

기습했던 24대 상위신, 즉 현재의 24 고신도 거기에 휩쓸렸다. 신계로 달아나긴 했으나 이미 오염된 다음이었다. 멸망하는 아르거스를 자기들의 몸으로 유지시킨 것은,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뜻이다.

대종사들은 겨우 영혼만 빼돌렸다. 아르거스가 끝장났다는 것을 직감하고 차원문을 열어 이계로 영혼을 탈출시켰다.

녹스도 마찬가지.

다만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공허에 신들과 대종사들이 휩쓸리고, 아르거스 행성이 박살났을 때 사악한 웃음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베리타스가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나는 분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진리가 내 눈앞에 있었거든. 남들은 마법의 신이 될 거라고 했지만, 사실 그 정도로 끝날 게 아니었다. 진리,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었지. 단 몇 년, 혹은 어떤 계기만 있었으면 됐다. 이 작은 행성을 벗어나, 우주 전체, 어쩌면 모든

차원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는 것도 가능했어! 그래서 영혼을 탈출시키기 직전 한 가지 조치를 취했다. 후생의 내가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도록, 자아 전승 마법을 나 스스로에게 걸었지.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그게 내 최선이었다.]

한 가지 중요한 게 빠졌다.

시혁은 그 점을 지적했다.

[그럼 공허 변환은?]

[응?]

[싱트파헬. 그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시혁은 영혼석을 움켜쥐었다.

짐짓 억세게 힘을 주자, 베리타스가 다급하게 비명을 질렀다.

[그만! 그만! 말하겠다! 말할 테니 이러지 마라!]

[싱트파헬에겐 무슨 짓을 한 거지?]

[난 용왕 싱트레아와의 약속을 지킨 것뿐이다. 아르거스는 멸망의 파도에 휩싸여 있었어. 그 파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마법과, 싱트레아가 부탁한 지식을 기억 전달 마법으로 싱트파헬에게 줬다. 그게 뭐 잘못 됐느냐?]

그게 다가 아니니까 그렇지.

시혁은 계속해서 압박했다.

[그럼 현신들, 아르거스의 100 하위신들이 공허 변환 무기를 만들어낸 건 어떻게 설명할 거냐?]

[그게 무슨 소리냐?

[자, 이걸 봐라. 이게 공허 변환 무기가 아니면 뭐냐?]

시혁은 유령 여왕의 창을 들이밀었다.

라무가 쓰던 대적자의 무기.

정교하게 숨겨져 있지만, 공허 변환 마법이 그 안에 새겨져 있었다.

베리타스는 그것을 감지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아니, 잠깐만. 이건 내가 만든 마법이 아닌데?]

[뭐라고?]

[너도 내 지식을 전승 받았으니 알 것 아니냐. 잘 봐라. 이건 내가 만든 마법이 아냐. 변형 되어 있다.]

정말로 그러했다.

베리타스에게 뽑아낸 공허 변환 마법은 유령 여왕의 창에 숨어 있는 공허 변환 마법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심지어 싱트파헬에게 걸린 마법도 그러했다.

꼭 누군가가 손을 대어 뒤튼 것처럼.

베리타스가 이를 갈았다.

[녹스, 이 씹어 먹을 자식……]

그러면서 털어놓기를, 베리타스가 싱트파헬의 알과 둥지에 마법을 새긴 직후 녹스가 자신을 쫓아왔다고 했다.

이미 치명상을 입은 상태라 대적할 수 없었다고.

그나마 반격을 가해 녹스의 심장을 터뜨린 게 고작이었다. 아르거스가 멸망하는 판국이고, 신들도 눈이 벌게져 녹스를 쫓아오고 있으니 많은 일을 할 수는 없었겠지.

베리타스가 말을 끝맺었다.

[그 다음은 모른다. 난 내 영혼을 차원 이동시켰으니까. 방어 마법 탓에 녹스가 싱트파헬을 어쩔 순 없었겠지만, 표면의 마법진을 변형할 수는 있었겠지.]

[좋아. 한 가지 물어보자. 싱트파헬은 무슨 용이지?]

[무슨 용이긴? 황금용 아니냐. 그 어미인 싱트레아가 황금용이었고, 따로 배우자가 없었으니까.]

[아니, 암흑용이다. 색깔은 검고, 황금용의 빛 숨결이 아니라 어둠 숨결을 뿜지. 거기 당하면 생물이고 무생물이고 한 덩이가 되어 엉겨붙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리 알 속에 있을 때라고 해도, 용의 속성을 바꾸는 게 쉬울 줄 아느냐?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은 대종사 중에서도…… 이런, 제길.]

결국 한 명으로 귀결된다.

녹스.

공허 자체가 대상을 침식하여 변이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판국이니, 공허 변환 마법을 변형시켜 알 속의 용을 건드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했을까?

분명히 뭔가 의도가 있을 텐데……

뭔가 떠오를 듯 말 듯 가물가물했다. 생각이 깊어져, 시혁은 자신도 모르게 콧잔등을 찌푸렸다.

전장에서 라무를 놓친 게 아쉬웠다.

그나마 창을 빼앗은 게 다행.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강해졌을 것이다. 현신들에게 바로 창을 돌려주지 않은 것도 한몫을 했고.

어떻게든 녹스를 해결해야겠다.

아직은 힘이 약하지 않나. 대재앙 이전에 흩뿌려 놓은 유산이 꽤 많은 것 같은데, 그걸 다 수습하면 시혁도 얕볼 수가 없게 된다.

시혁이 생각에 잠긴 사이, 베리타스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녹스는 그렇다 치고, 베리타스는 어떻게 하지?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긴 하다. 적당한 기계 몸을 주기만 해도 훌륭한 마법사로 다시 태어날 테니까.

하지만 너무 위험했다.

베리타스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후환을 없애는 게 낫겠다.

시혁이 막 그런 마음을 먹었을 때였다.

베리타스가 시혁에게 질문을 했다.

[잡아 죽이다니? 녹스를 말하는 거냐?]

[당연하지. 녹스의 후생 또한 아르거스에 와 있다. 얼마 전에 날 공격하기까지 했지. 뭐, 지금은 거의 녹스가 된 것 같다만.]

[으드득, 녹스!]

베리타스가 이를 갈았다.

강렬한 분노와 짙은 원한이 느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베리타스가 이런 꼴이 된 것은, 전적으로 녹스가 꾸민 음모 때문이었으니까.

시혁에게 간절히 부탁을 했다.

[네가 날 믿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라도 그럴 테니까. 하지만 이대로 날 소멸시키지는 마라. 어차피 불완전한 영혼이라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사라지기 전, 녹스에게 복수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복수하고 싶나?]

[당연하지! 녹스는 내 미래를 박탈했다. 녹스의 영혼을 붙잡아다 갈기갈기 찢어 소멸시키지 않는 한, 이 분을 풀 수가 없다!]

베리타스가 극도로 분노하여 소리쳤다.

다른 것은 몰라도 녹스에 대한 적개심만은 진짜.

어떻게 할까?

진심으로 녹스를 공격한다면 강력한 우군이 될 텐데.

베리타스가 차분하게 시혁을 설득했다.

[녹스를 얕보지 마라. 열다섯 대종사 중에서 가장 떨어지는 능력을 가지고도 나나 카로스와 함께 수위를 차지했던 게 녹스다. 그 악독함과 집요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장 문제는 시혁은 드러나 있는 반면 녹스는 어둠 속에 숨어 있다는 것.

언제 무슨 수를 들고 와 공격해 올지 몰랐다.

베리타스는 그때를 대비한 최후의 수가 될 수 있겠지.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법 지팡이를 하나 만들었다.

거기에 베리타스의 영혼석을 박았다. 마법 지팡이 자체는 그저 상급의 보물에 불과했지만, 그 덕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날 보물이 되었다.

베리타스가 불평을 했다.

[아무리 내가 비루한 처지라고 해도 겨우 이 정도 지팡이에 박다니, 너무 하는 것 아니냐? 최소한 칠대 위상의 용왕 정도 되어야지.]

그런 게 있어야 말이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고민하다가, 낫슈바켈과 싱트파헬을 불렀다.

녹스를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 베리타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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