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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226화 (226/250)

< 거신 -2- [9권 끝] >

드워프들의 지휘 하에 인간, 오크, 수인족들이 구슬땀을 흘렸다.

[시간이 꽤 걸리겠다.]

“아무렴요. 하늘마루를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똑같은 크기도 아니고, 처음과 비교하면 다섯 배 이상 커지는 건데요.”

브라이트가 느긋하게 말을 받았다.

마그누스가 건설되는 규모를 보고 입을 벌렸다.

“이 정도면 성역 주민들 전원이 들어가도 충분하겠습니다.”

그렇기는 하다.

대신 적정 인원을 아득히 넘어간다. 아무리 하늘마루가 자급자족 능력이 있어도 모든 자원이 부족해질 것이다.

이윽고 하늘마루를 완전히 해체했다.

심장이 백일하에 찬연히 드러났다.

무한의 힘을 간직한 심장.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싱트파헬이 그걸 느꼈는지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맛있겠다……”

한쪽에는 거대한 받침대가 건설되었다.

세계수를 하늘마루에 이식하기 전, 잠깐 동안 받쳐 놓을 기구였다.

엘프들도 구슬땀을 흘렸다.

세계수를 어르고 달래가며 변형시켰다. 지금은 그저 거대한 나무의 형상인데, 그걸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리고 줄기와 나뭇가지는 모두 떨어내고, 약간의 뿌리만 남겼다.

뿌리는 좌우로 길쭉한 구형이 되었다. 받침대에 정확히 올라갈 크기였다.

델피니르가 시혁에게 와서 보고했다.

“세계수 변형이 완성되었습니다. 저희가 또 해야 할 일이 있는지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한결 정중해진 태도였다.

대밀림의 일이 있고 나서 특히 그랬다.

엘프들 대부분이 대밀림으로 이주할 거라던가. 대수림의 기반 시설이 아깝기는 하지만, 그깟 시설들보다 중요한 게 세계수였다.

시혁은 설계도를 펼쳤다.

[꽤 많다. 하늘마루의 내부를 세계수로 채울 생각이니까. 설계도에서 갈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세계수의 줄기와 뿌리이고, 녹색으로 칠한 부분이 가지와 잎사귀 부분이다.]

“대역사가 되겠습니다. 지원을 더 요청해야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시간도 오래 걸릴 거다.]

이윽고 이식 준비가 끝났다.

새로운 하늘마루 건설의 첫 발을 뗀 셈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시혁은 정신을 집중했다.

손을 뻗어 세계수가 고정된 받침대를 움켜쥐었다.

그걸 든 채 하늘마루의 심장을 집었다. 아래쪽에서부터 천천히 접근시키자, 세계수와 하늘마루의 심장이 서로에게 반응했다.

강렬한 폭풍이 몰아쳤다. 투명한 섬광이 거푸 터지며, 주위의 모든 것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

거부 반응.

하긴 둘의 속성은 확연히 다르다.

무한과 불멸 아닌가.

그러나 시혁에게서 유래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시혁은 둘에게 부드럽게 의념을 보냈다.

사이좋게 지내라.

너희는 형제다.

함께 갈 수 있다.

속삭임에 힘입어, 둘의 거부 반응이 약해졌다.

탐색하듯 서로를 살폈다.

세계수에서 투명하고 맑은 힘이 뻗어져 나왔다. 조심스럽게 하늘마루의 심장을 더듬었다. 심장에서는 어떤 존재감도 발하지 않는 힘이 발현되었다. 그 힘이 거품처럼 세계수 안으로 스며들었다.

둘이 서서히 서로 얽혔다.

혹시 합일 되려는 건가?

기대를 했지만 거기까진 불가능한 모양이다. 그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안 뒤 공존하는 게 한계였다.

대신 공고하게 서로를 껴안았다.

세계수의 뿌리가 하늘마루의 심장을 칭칭 얽어맸다. 무한의 힘이 세계수로 공급되면서 점차 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한지 속도가 느렸으나 조금씩 빨라졌다. 나중에는 세계수를 처음 성역에 심었을 때처럼 쭉쭉 자라나는 게, 하늘까지 뻗어나갈 듯했다.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엘프들이 달라붙었다. 세계수의 뿌리와 줄기의 성장을 조율했다. 하늘마루의 내부와 자급자족 공간은 세계수가 담당해야 하니, 엘프들이 할 일이 많았다.

“축하드립니다, 백색 현왕님!”

원주민과 영웅들이 축하 인사를 했다.

[아직 멀었다. 가장 큰 산이 남아 있어.]

그냥 공허 요새로 쓸 거면 시혁이 손을 더 쓸 게 없다.

화신으로 만들려니 문제.

주위에 있던 이들은 대부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낫슈바켈과 싱트파헬만 알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공허 변환 방어막은 완성했어. 설치만 하면 돼. 참, 재미있는 기능도 하나 넣었으니까 나중에 한 번 봐.”

재미있는 기능?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화신 제작에 골몰했다.

원래 화신은 세 가지 부분으로 이뤄진다.

몸이 될 거대한 청동상.

실제로 움직이게 할 마법 심장.

청동상을 화신으로 탈바꿈하게 할 신성한 제물.

몸과 심장은 준비되어 있다. 필요한 마법도 다 새겨두었다. 이제 제물만 구하면 되는 것이다.

낫슈바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화신은 인간 형태여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늘마루를 인간형으로 만들 줄 알았다만, 설계도를 보니 영 다른 것 같다.”

시간이 꽤 지난 다음 하는 소리였다.

새롭게 만든 하늘마루는 사람의 눈동자를 닮아 있었다.

내부는 구 형태.

외부는 그게 좌우로 길게 찢어진 타원구 형태.

안은 세계수이니 갈색이고, 바깥은 금속으로 이루어져 은빛이었다. 결합이 약하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세계수의 가지와 뿌리가 철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한의 힘이 요새를 기동하고, 불멸의 힘이 요새를 지켰다. 그러면서 상승효과가 일어나, 기존의 주포와 방어막의 위력이 몇 배로 강해졌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꽂으면 현신에게도 피해를 입히던 주포다. 이제는 정면으로 꽂아도 치명상을 입히게 생겼다.

방어 시설도 늘고, 수용 인원도 늘어났다.

심장의 힘을 이용하여 이적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내부에 기계 골렘 생산 시설을 갖췄다. 시혁이 분신으로 쓰는 것과 동일한 기계 골렘이었다. 아직 연구 단계지만, 곧 병사로 쓰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특히 방어막.

싱트파헬이 깜찍한 짓을 해놓았다.

단순히 공허에서만이 아니라, 어떤 힘이든 변환시켜서 하늘마루의 힘으로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원한다면 그 힘을 반사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아울러 충전 능력도 갖추었다.

예전처럼 심장의 힘을 여기 분산하고, 저기 분산하고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전투가 24시간 이상 지속되면 얘기가 달라지겠으나, 단기전에서는 어느 상황에서도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시혁은 낫슈바켈의 의문에 대답했다.

[변신시키면 됩니다.]

“뭐? 변신?”

[하늘마루는 격벽 구조로 만들었잖습니까? 이걸 변신 시켜서 인간 형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가 다리가 되고, 이쪽은 두 팔이 됩니다. 세계수가 있는 곳은 몸통이 될 테니 크게 변화가 없고요. 다만 사령실이 있는 부분은

위로 솟아올라 머리로 변형될 겁니다.]

“허어, 변신이라니…… 내가 거의 만 년 가까이 살았다만 이런 건 처음 본다.”

지구에서는 흔히 쓰이는 개념이지만, 아르거스에서는 그런 게 없었나 보다.

아닌 게 아니라 일정 격벽마다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유사시 피신하기 위해서였다. 세계수 부분이야 최소한의 변형만 거치지만, 팔과 다리 부분은 전투 시 격렬하게 움직일 테니까.

이제 제물만 바치면 끝이 난다.

신성한 광휘가 내려앉으며 하늘마루 전체를 감싸게 된다. 그리하여 빛의 거인을 완성하는 것이다.

마땅한 게 없었다.

일반적인 화신이라면 천사장의 눈물 같은 거를 바치면 된다. 세계수 묘목도 좋고. 하지만 하늘마루를 화신으로 만들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골머리를 싸매자, 실라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무서운 소리를 했다.

“저기 천사들을 제물로 바치면 안 돼요? 수가 많으니까 몇 명쯤은 괜찮을 것 같은데.”

역시 어려도 적색용은 적색용.

시혁은 단호히 거부했다.

[산 제물을 바칠 생각은 없어. 내 보물 창고를 다 비우는 한이 있어도 누군가를 희생시키진 않을 거야.]

“에이, 아깝게……”

뭘 제물로 바칠까 고민을 했다.

금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권세 대종사 카로스의 7대 보물.

그것들이라면 어떨까?

순수의 보주나 질서의 막대는 이미 소모했다. 하지만 다른 물건들은 남아 있었다. 아니면 다른 대종사의 유물을 이용해서 새로운 무구를 만들어도 좋다.

싱트파헬에게 협조를 구했다.

공허의 바다에서 카로스의 유물들을 최대한 모아달라고 한 것이다.

“카로스의 유물? 알았어. 그 정도야 쉽지. 금방 모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래, 부탁한다. 고마워.]

“친구 사이에 고맙기는 무슨.”

카로스의 유물운 총 7점이다.

권세의 지팡이, 패자(霸者)의 인장, 제왕의 예복, 위엄의 보광, 군림의 표식, 순수의 관, 질서의 홀.

이것들을 재현했다.

매우 지난한 작업이었다.

지금은 모두 파괴되어 파편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족한 부분은 다른 대종사의 유물을 이용했다. 그 결과, 권세 진영의 힘이 담긴 7점의 보물을 재현하는 것에 성공했다.

낫슈바켈과 싱트파헬도 거들었다. 아일리케의 지식도 몇 가지 써먹었다. 그 결과 카로스가 생전에 썼던 보물 못지 않은,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나은 보물이 완성되었다.

몽땅 제물로 바쳤다.

용들이 아깝다고 난리였다.

하나하나가 예전에 시혁이 쓰던 칠대 위상의 용왕이나 세계수의 가호, 그 아랫 급 정도는 되었으니까.

무시했다.

천사들을 불러 모아 마나를 퍼붓게 했다. 그러는 한편, 시혁 본인이 직접 그 마나를 가공하여 권세 진영의 마나로 바꾸었다.

주민들이 찬송가를 불렀다.

성역의 사제단이 나와 힘을 북돋웠다.

사흘밤낮을 꼬박 제물을 바치는데 썼다.

그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7점의 보물이 하얗게 달아오르다가 빛으로 변했다.

바로 지금이다.

시혁은 하늘마루를 변형시켰다.

세계수 몸통은 조금만 변했다. 구형에서 위 아래로 길어져 육각형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

양 옆으로 긴 금속 부위가 천천히 갈라졌다. 팔과 다리가 되고, 각각 두 개의 관절이 생겼다. 정교한 손은 없지만, 왼쪽에는 방패가 달리고 오른쪽에는 묵직한 철퇴가 달렸다. 이게 하늘마루 화신의 주무기가 될 것이다.

상황실은 외부로 도드라졌다. 두툼한 투구가 상황실을 감쌌다.

거대한 거인.

키가 거의 1 킬로미터에 달했다. 저번에 봤던 길누아보다 훨씬 더 컸다. 전신이 두툼해서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우와!”

“엄청나다!”

“으아앙, 엄마, 무서워!”

주민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낫슈바켈과 싱트파헬은 완성된 거인을 보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척 보기에도 자신들도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혁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빛으로 변한 보물들이 거인에게 날아갔다.

권세의 지팡이는 오른쪽 철퇴에 꽂혔다. 질서의 홀은 반대로 왼쪽 방패에 깃들었다. 제왕의 예복이 세계수 몸통을 치렁치렁하게 가리고, 순수의 관이 투구를 둥글게 장식했다.

패자의 인장은 가슴 정중앙에 파고들었다. 위엄의 보광이 등 뒤에서 너울거리는 게 마치 빛의 망토를 보는 듯했다. 군림의 표식이 이마에 박히더니, 찬연한 빛을 뿜었다.

일곱 보물이 반응했다.

흰 빛이 번졌다.

하늘마루 전체가 하얗게 달아올랐다.

소모하는 힘이 엄청났다.

심장이 생산하는 힘으로도, 세계수에서 뿜어지는 힘으로도 유지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충전된 힘을 가져다 썼다.

유지되는 것은 고작 3분.

그것으로 충분했다.

빛의 거인이 된 동안, 하늘마루는 그 어떤 피해에서도 면역이 되기 때문이다.

또 있다.

모든 공격력이 상승한다.

권세의 힘에 의해 물리 공격, 마법 공격, 심지어 주포까지 증폭된다. 말 그대로 3분 동안의 무적 시간을 허락 받는 셈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장에서는 하늘마루 소환이 불가능하다는 것.

화신을 소환하면 규격화된 화신이 튀어나온다. 지목 소환으로는 가능하겠으나 소모하는 마나가 너무나 많다. 등극 이적보다 더 많을 지경이니,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그래서야 그냥 등극 이적을 쓰는 게 낫다.

어쨌든 화신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시혁의 신전이 한 차례 밝은 빛을 뿜었다.

성역이 확장되었다.

시혁은 비로소 자신감을 가졌다.

어떤 적이 나타나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그게 공허의 바다 아래 숨어 있는 파괴신이라 할지라도.

하늘마루가 처음 출격할 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생겼다.

며칠 후 나간 전장에서, 시혁은 낮은 속삭임을 들었다.

[네 대적자가 이 전장에 있다. 그 자를 찾아 가짜 영혼을 지우고, 진짜 영혼을 복구하라. 그것으로 네가 신위 경쟁에서 승리하고, 최후의 승자가 된다.]

이번에 상대하는 반신은 환상 진영의 설원 공작.

시혁도 설원 공작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유명해서 그런 거냐고?

천만에.

최근에 등용한 어떤 영웅 때문이다.

라무.

어둠 대종사 녹스의 후신인 그가, 하필이면 대적자가 있다는 이번 전장에서 반대편으로 나타난 것이다.

[9권 끝]

< 거신 -2- [9권 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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