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203화 (203/250)

< 총회 -2- >

연맹 의장이 중재를 했다.

“자자. 이런 이야기는 어차피 오늘 하루 안에 다 끝내지는 못합니다. 이제 운을 떼었으니 차차 논의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설령 검은 천체를 없앤다고 해도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가 이익일지 따져봐야 하고요.”

시혁도 공감했다.

처음부터 오늘 끝을 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운을 떼는 것으로 만족했다.

총회가 끝이 났다.

각국 정상들이 합동으로 기자 회견을 했다.

그런 다음에야 시민들의 여론이 좀 가라앉았다. 그들이 듣기에도 대책이 썩 나빠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대신 다른 곳에 관심이 쏠렸다.

에테르 민감도 검사.

원래 이름은 아르거스 계급 측정 검사이지만, 그걸 그대로 공표할 수 없어 이름을 살짝 바꿨다. 그러자 시민들이 그걸 두고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었다.

[에테르 민감도 검사? 이게 실효성이 있나요?]

[제가 들은 정보로는 아주 정확하대요. 이능력자만 아니라 일반인의 각성 확률도 알아낸다고 하네요.]

[신기하네요. 저도 한 번 받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병원으로 출근해야 해서 공항으로 가려는데, 대통령과 손문철이 시혁을 붙잡았다.

내용인 즉, 시혁 보고 각성 관리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시혁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요? 전 하는 일이 많아서 너무 바쁩니다. 도저히 시간이 안 나요.”

“최 이사님이 적임자입니다. 각성 관리 위원회가 때로는 G급 이능력자 각성으로 인한 재앙에도 대처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최 이사님 밖에 없어요.”

“제가 하려고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솔직히 제가 위원장을 맡아도 최 이사님께 의존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차라리 최 이사님께서 협회 내의 일을 그만 보시고, 위원장을 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만능 구현 계열 출신인 소피아 테일러가 위원으로 참석한답니다. 중국에서도 G급 이능력자를 위원으로 추천할 것 같고요. 그들을 제어하려면 최 이사님 밖에 없어요. 여기 손 협회장님은 국내 일에 치중하셔야 하고, 이 이사님은 솔직히 미덥지가 않습니

다.”

간곡한 설득에 시혁의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게 문제였다.

위원장 일을 제대로 하려면 제네바에 상주하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급하면 화상 통신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겠지만, 직접 가 있는 것만은 못 하니까.

몸이 두 개였으면 좋으련만……

잠깐만.

몸이 두 개?

시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시혁의 감각을 자극했다.

뭔가 생각이 날랑 말랑 했다.

어떻게 하면 해결이 될 것 같은데……

“아!”

시혁은 무릎을 쳤다.

이번에 검은 구름을 해결하면서 마나 생명체를 원격으로 조종하여 쓰지 않았나.

그걸 응용하면 되지 않을까.

굳이 두 곳에서 동시에 일을 하지 못해도 좋다. 필요할 때만 제네바에 있을 몸을 써도 되겠다. 어차피 얼굴을 직접 마주 보고 해야 할 일은 많지 않을 테니까.

먼저 확인을 받았다.

“그거, 제가 직접 제네바에 상주해야 하는 것은 아니죠?”

“화상 통신으로 일을 하시는 것도 가능하겠습니다만, 주기적으로 제네바에 가셔야 하지 않을까요? 얼굴을 맞대야 할 수 있는 일도 있을 테니까요.”

“아뇨,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 분신을 제네바에 놔두려고 합니다.”

“분신이라니요?”

간단하게 설명했다.

원격 조종 에테르 생명체.

아니, 아예 몸을 만들어 줘도 좋지. 차라리 그게 낫겠다. 아르거스의 골렘을 응용한다면 그럴 듯한 물건이 나올 것이다.

대통령이 무릎을 딱 쳤다.

“그거면 괜찮겠습니다. 손 협회장님께서 한 번 알아봐 주시지요?”

“알겠습니다. 실시간 교신도 가능하고, 이능도 발현이 가능하면 연맹 측에서도 환영할 겁니다. 여러모로 유용하게 쓸 수 있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쓸 수 있습니까?”

“글쎄요. 조작이 좀 힘들어서요. 분신을 만들기도 어렵고…… 일단 제가 쓸 것부터 만들고, 시간이 나는 대로 다른 분들도 시도해 보도록 하지요.”

한 가지 구상을 했다.

시혁은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분신 1은 서울에서 협회 일을 보고, 분신 2는 지리산에서 근두운을 조작하고, 분신 3은 제네바에서 연맹 일을 한다면?

이 부분도 연구를 해봐야겠다.

완성만 된다면, 시혁도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병원에 휴가를 냈다.

휴진이 길어지자 간호사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원장님, 이러다 얼굴 잊어버리겠어요.]

[일이 어떻게 계속 겹치네요. 며칠만 쉬고 돌아가겠습니다.]

[빨리 와 주세요. 환자들도 원장님 언제 오시냐고 성화에요.]

[하하, 알겠습니다.]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협회 건물에 머물며 분신 제작에 들어갔다.

몸부터 만들었다.

어떤 골렘을 쓸까 하다가 철 진영의 기계 골렘을 가져오기로 했다.

생체 골렘은 윤리적 문제 때문에 안 되고, 단순히 마법적인 힘으로 움직이는 골렘은 시혁의 마음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왕 만들 거, 거의 인간에 흡사한 물건을 만드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러면서 얻을 기술을 나중에 써먹을 수도 있고.

각종 합금을 요청했다. 일일이 수작업을 할 것 없이 부품의 설계도를 주자, 협회에서 알아서 부품을 만들어 주었다.

그걸 조립만 했다.

심장으로는 오색 수정을 사용했다.

사실 심장이 없어도 되지만, 굳이 이걸 쓴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분신으로도 약간의 이능을 발휘하게 하려고.

시혁이 판단하기에 대략 B급 이능력자와 비슷한 힘을 발현할 듯했다. 다만 속성이 시혁이 S급일 때와 같으니, 마법을 쓰면 어지간한 S급 이능력자보다 낫겠지.

시간이 꽤 걸렸다. 몸 역할을 할 기계 골렘을 완성하고 나자 벌써 이틀이 지나 있었다.

마나 생명체를 만드는 것은 쉬웠다. 벌써 몇 번째나 만들어 보는 것이니까.

시혁의 화신이 완성되었다.

인공 근육과 인공 피부도 붙였다. 겉으로 봐서는 영락없이 진짜 시혁과 똑같았다. 표정도 풍부하게 지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화신을 분신으로 만드는 것.

그저 원격 조종만 해서야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다. 제네바에서 일을 정상적으로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 하려고 기계 골렘을 만든 게 아니다.

온갖 상념이 시혁의 머릿속을 떠돌았다.

인공지능을 만들어서 혼자 움직이게 만들까? 무협 소설에 나오는 신공처럼 두 생각을 한꺼번에 해서 직접 움직일까? 그도 아니면 스스로의 뇌를 관제 센터처럼 써?

세 가지를 다 시도하기로 했다.

지구에서도 연구하고, 아르거스에서도 연구를 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인공지능.

참고할 거야 많았다. 시혁은 현자 출신 반신이어서, 진리 진영의 현자들이 만든 인공지능을 지식 열람하면 그만이니까.

‘가만 있자.’

인공지능에 대해 연구하다 말고, 섬광처럼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죽음 지혜에게 배웠던 초의식.

그걸 응용하면 어떨까 해서였다.

초의식에 대해 연구하면서, 사람의 정신에 대해 많은 것을 깨우쳤다. 그 지식을 활용한다면, 스스로의 인격을 인공지능에 복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평상시에는 독립된 시혁처럼 움직이다가, 필요할 때는 시혁이 직접 조종하는 거다.

그럴 때 시혁의 본신은?

마법적인 인공지능에 맡겨?

아니다. 그건 너무 위험하다.

두 개의 생각을 동시에 하는 게 좋겠다. 매일 그렇게 하면 뇌에 과부하가 걸리겠지만, 몇 시간 정도 그렇게 하는 건 가능하지 않겠나.

처음에는 어려웠다.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는데, 아르거스를 몇 번이나 오간 끝에 감을 잡았다.

몇몇 마법사들이 구사하던 다중 마법 영창의 영향이 컸다.

소수의 세계에서만 비밀리에 전승되는 기술이었다. 시혁은 상당한 대가를 약속하고 이중 마법 영창을 배웠다. 그걸 응용하자, 시혁이 원하던 형태의 기술이 완성되었다.

다중 사고.

몇 개의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다만 세 개까지가 한계였고, 네 개 이상부터는 특수한 조작이 필요했다. 가령 마법 두뇌의 도움을 받는다던가 하는.

그건 나중 문제.

시범적으로 다중 사고를 실행했다.

골렘의 눈에서 맑은 섬광이 뿜어졌다.

“이거 이상하네.”

시혁은 혼잣말을 했다.

말은 시혁이 혼자 했는데, 들리기는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육성으로 듣는 터라 좀 이질적인 시혁 본인의 목소리.

참 괴상했다.

본인이 앞에 서 있는 것도 이상하고, 말을 하면 똑같은 말을 하는 것도 이상했다.

손을 내밀었다.

가위 바위 보를 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주먹과 가위를 엇갈려 내려고 했으나 똑같이 주먹을 내거나 의도와 반대로 냈다. 시간이 지나자 좀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가위 바위 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는 이능도 발현을 했다.

심장으로 오색 수정을 쓴 터였다. G급 이능력자만큼은 아니어도 A급 이능력자와 비슷한 힘을 발휘했다. 처음 예상보다 한 등급 높았다. 마법 시전까지 시험해 본 다음, 이 정도면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에 들어간지 정확히 닷새 만에 거둔 성과였다.

사실 지구에서 닷새이지, 아르거스까지 하면 거의 200일을 넘어갔다. 시혁이 느끼기에는 오히려 좀 오래 걸린 것 같았다.

이미라가 시혁의 화신, 아니 분신을 보고 감탄을 했다.

“우와, 대단하네요. 진짜 이사님, 아니 위원장님 같아요.”

“비슷하죠? 이거 이능도 쓸 수 있어요.”

“진짜요?”

즉석에서 증거를 보여주었다.

시혁은 백색 광채를 발하고, 분신은 오색 광채를 발했다.

마침 다른 이능력자들도 모여 있었다.

손문철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능을 쓰는 로봇이라니 놀랍네요. 마침 연맹에서 회신이 왔습니다. 회의 결과, 원격 조종이 가능하다면 분신을 보내도 괜찮답니다.”

예측했던 결과다.

시혁은 머리를 굴렸다.

스위스 제네바와 대한민국 서울은 시차가 7시간이 난다. 스위스가 아침 9시, 일과 시간이 시작될 때 서울은 아직 새벽 2시라는 뜻이다.

그럼 제네바에서 분신을 이용해 직접 오후 4시까지 일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 시간이면 시혁은 아르거스에 가 있을 테니까.

실험을 했다.

먼저 분신을 제네바로 보낸 후, 아르거스에서 자신의 본신으로 의식을 옮겼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네바의 사무실 장면이 보였다.

다만 언뜻 봐서는 알아보기 힘들게 일그러져 있었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이지가 않았다. 머리까지 어지러워져서, 얼른 연결을 종료했다.

시혁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금방 깨달았다.

시간 비율 문제.

차원을 이동하는 동안 정보가 왜곡되는 문제.

이 두 가지를 처리해야 아르거스에서도 지구의 일을 할 수 있었다.

이건 천천히 연구를 해봐야겠다.

당장 연구 과제가 쌓여 있지 않나.

아일리케 방문도 그렇고……

제네바에서 정식으로 취임식을 가졌다.

물론 본신(本身)이 아닌 분신(分身)이 참석했다. 사전에 알렸음에도, 시혁의 분신이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취임식이 아니라 분신 이야기가 호사가들의 입을 탈 지경이었다.

취임 후 바로 명단 작성에 들어갔다.

전 세계의 이능력자들을 모조리 조사했다. 그 결과 지구의 준신 계급 영웅들이 총 300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굉장히 많다.

비상이 걸렸다.

시혁은 그들과 일일이 면담을 했다.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연맹에 협조하기로 한 G급 이능력자의 성역에 방문할 것을 당부했다. 그래야 지구로 정보를 보내서 반신의 시련 일정을 조정하든 어쩌든 할 테니까.

자연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나마 분신들을 활성화해서 다행이었다. 총 4개의 분신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꽉 막혀 있던 일이 비로소 술술 풀려나갔다.

어느새 여름이 다 갔다.

9월이 되었다.

그 사이, 시혁은 많은 부분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성역의 3차 확장을 눈앞에 두었고, 아일리케 방문 연구도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총회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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