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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202화 (202/250)

< 총회 -1- >

시혁은 모니터를 보다 말고 눈살을 찌푸렸다.

요즘 인터넷을 도배하는 한 가지 화제 때문이었다.

[G급 이능력자, 이대로 좋은가?]

[1명이 각성하면 1가지 재앙이 딸려온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대부분이 G급 이능력자와 재앙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냥 말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극단적인 주장도 많았다.

G급 이능력자들이 재앙의 원인인 만큼 각성을 못하게 해야 한다거나, 심지어 다 죽여야 된다는 말도 나왔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주장은 금방 몰매를 맞아 사라졌다. 시민들이 보기에도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합리적으로 말을 했다.

[각성이 자기 마음대로 되나요? 아무도 모른다면서요. 대비할 수나 있긴 해요?]

[국제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번에도 국제 협력 덕분에 검은 구름을 일찍 걷어냈잖아요? 반면에 자기들끼리 해결하겠다고 한 중국은 피해가 심했죠.]

[맞습니다. 지금처럼 나라 별로 따로 놀아서는 안 돼요. G급 이능력자 1명이 각성하면 국가적인 재앙이고, 2명이 각성하면 지구적인 재앙이라는 게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또 이런 사태가 벌어질 때를 대비해서, 이능력자 연맹을 더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가만, 2명이 각성하면 지구적 재앙이 발생한다고 했는데 3명, 4명이 각성하면 어떻게 돼요?]

[아……]

시혁도 그게 걱정이었다.

검은 목요일 때도, 검은 구름 때도 사실 아슬아슬하지 않았나.

쉽게 처리한 것 같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대참극이 벌어졌을 것이다. 거기서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지면 아무리 시혁이라도 잘 처리한다는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시혁은 책상을 정리했다.

슬슬 퇴근할 시간이다. 이제 지리산으로 가서 또 근두운에 몸을 실어야겠지.

손문철이 미소를 띤 채 시혁에게 다가왔다.

“최 이사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뭡니까?”

“저번에 제안했던 이능력자 통합 관리를 세계 연맹에서 정식 안건으로 다루기로 했습니다.”

“잘 됐네요. 그럼 각국 협회장들이 모이는 겁니까?”

“협회장들만 아니라 각국 정상들도 참석할 겁니다. 여론이 심각해요. 이걸 진정시키려면 전 지구가 똘똘 뭉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일이다.

가장 반대했던 중국이 이번에 피해가 가장 크지 않았나. 더구나 일반인들도 G급 이능력자 각성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사실 이건 시간 문제였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지요. 언제 시작한답니까?”

“자세한 것은 연맹 총회가 개최되어야 알 수 있습니다. 늦어도 이 달 안으로 개최한다고 하니까, 그때가 되면 윤곽이 드러날 겁니다.”

“잘 됐으면 좋겠네요.”

“예. 그래서 말입니다만, 에테르 민감도 검사 장치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능력자용도 그렇고요.”

“알겠습니다. 차라리 적당한 이권을 받고 만드는 방법을 공개하는 건 어떨까요? 우리나라에서 독점적으로 만드는 것도 좋지만, 물량이 많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것도 고려를 해보겠습니다.”

“어쩌면 최 이사님도 총회에 참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요?”

시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시혁까지 갈 필요가 있나? 손문철과 대통령만 가면 되지.

손문철은 간단히 이유를 말했다.

“최 이사님이 계획의 최초 발안자니까요. 직접 가서 설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들 필요성은 동감하겠지만, 구체적인 방법에는 견해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바쁜데 난감하네요.”

“어쩔 수 없지요. 제가 대신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휴, 정말이지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나중에 한 번 만들어 보시지요?”

“정말 그래야겠습니다.”

곧 연맹 총회 날짜가 잡혔다.

사전에 얘기한 대로 시혁과 손문철,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중량의 인물들을 보냈다. 정상들은 거의 필수로 참석을 하고, 협회장과 유명 이능력자들이 동행을 한 것이다.

이미라는 대한민국에 남았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였다. 완전히 자리를 비웠다가 삼두룡 같은 괴수라도 나타나면 곤란하니까.

시혁이 가장 먼저 연설을 했다.

통합 관리의 최초 발안자였기 때문이다.

그 필요성에 대해 웅변하자, 모로코 대통령이 가만히 손을 들었다.

“일반인이 각성하는 것과, 이능력자가 G급 이능력자로 각성하는 것을 사전에 알아내는 게 정말 가능합니까? 에테르에 의해 변이하기 때문에, 이능력자가 탄생하는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시혁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설명하려면 아르거스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

눈치를 보아하니 모로코 대통령은 아르거스에 대해서는 모르는 모양.

이래서야 뭐 일이 되겠나.

양해를 구하고 잠깐 물러났다.

연맹 의장에게 아르거스에 대해 알릴 것을 촉구했다. 연맹 의장이 고심하는 얼굴을 하더니, 천천히 단상 위로 올라갔다.

어차피 비밀 총회.

여기서 알린다고 해서 지구 전체에 아르거스에 대한 사실이 퍼지지는 않는다.

다만 알음알음 알려지긴 하겠지.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아시는 분은 아시고 계시겠습니다만, 한 가지 알릴 사실이 있습니다.”

연맹 의장이 천천히 설명을 했다.

정상들과 이능력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동요 없이 듣는 이들도 있고, 처음 듣는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는 인물도 있었다.

모로코 대통령이 눈을 부릅떴다.

“아니, 그런 정보를 소수 나라들만 독점하면 어떻게 합니까? 진작 알려서 대책을 마련했어야지요.”

“알린다고 일이 해결됩니까? 도리어 혼란만 커지지요. 그리고 정보를 독점한 적은 없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아르거스에 대해 알아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그들 스스로 한 거예요. 연맹 측에서 누구에게는 정보를 주고 말고, 그런 적은 없습니다.”

“흠!”

“어쨌든 아르거스에서의 상태를 알면 누가 곧 각성할지, G급 이능력자가 될지 알 수 있습니다. 일반 소환자 중 거장 계급과 영웅 소환자 중 준신 계급이 누군지 알면 되니까요. 특히 준신 영웅에 대해 알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요. 저도 솔직히 어떤 방법을 쓸지 궁

금한데…… 미스터 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다시 단상 위로 올라갔다.

계급 측정 장치에 대해 설명했다.

일반 소환자들은 에테르를 가하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영웅 소환자도 그랬다. 잠이 들어 있을 때 에테르의 파동을 쏘아 보내면 특징적으로 반응을 했다. 그걸 분석하면 아르거스에서의 계급을 알아낼 수 있었다.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앉은 베일 스미스가 머리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미국도 이 방법을 진작 알아냈나 보다.

하긴 시혁도 이능력자 대회 때 존스 아츠에게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걸 들은 다음 연구해서 찾아냈으니까. 미국은 이미 도입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혁은 힘주어 말했다.

“최소한 이능력자 중 준신 계급, 그리고 초월 계급에 달한 이들은 모두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검은 목요일이나 검은 구름 사건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 반신이 되는 날짜가 겹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반신이 안 되게 하면 그만 아닙니까? 어차피 이능력자일 테니, 그 정도 희생은 인류를 위해서라도 감수해야지요.”

불가능하다.

아르거스에서는 3대 세뇌 때문에 반신이 되려고 어떻게든 노력하게 되니까. 기껏해야 일정을 조종하는 게 고작이고, 아예 포기하려면 세뇌를 깨야 했다.

시혁은 그 사실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그러자 다소 방만하게 있던 이능력자들이 슬쩍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세뇌는 누구한테 걸리는 겁니까? 이능력자 전원은 아니겠지요?”

“모든 소환자에게 걸립니다. 처음으로 소환되는 순간 걸리는 것 같습니다. 반신, 영웅, 일반 소환자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세뇌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투쟁, 승급, 복종이지요. 다만 아르거스에서만 발동하는 것 같습니다. 지구에서는 영향이 없어요. 어쨌든 지금 중요한 일은 아니니, 나중에 따로 논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시혁은 적당히 연설을 마치고 내려갔다.

뒤이어 베일 스미스와 리칭창이 연설을 했다.

내용은 똑같았다.

통합 관리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 아울러 국제 협력을 강화하여, 국가적 재앙이 발생하면 공동으로 대처하자고 주장했다.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다만 강대국이 주도할 경우 강대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더욱 고착화될 거라는 점을 우려했다. 지금도 미국과 중국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국제 협력을 악용하면 어떻게 막느냐는 것이다.

대안으로 대한민국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미국 의존도가 극심했으나, 최근에는 오히려 선도하는 모양새였다. 일본이 심하게 반대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연맹 산하에 새로운 위원회를 만들었다.

각성 관리 위원회.

총 9개의 국가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대한민국에서 맡고, 임기는 5년으로 했다. 5년이 지난 다음 연임을 하든 다른 곳에서 맡든 할 것이다.

아울러 결의안을 만들었다.

앞으로 재앙이 발생하면 국적을 막론하고 재앙에 대처하기 위해 지구 전체가 협력한다는 것.

지금까지는 반드시 해당 국가의 요청이 있어야 도울 수 있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꼭 요청이 없다 하더라도, 연맹의 중재 하에 개입이 가능해졌다. 위험할 것 같으면 강제력까지 쓸 수가 있었다.

이것 가지고 말이 많았지만 결국 합의를 도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만큼 최근 일련의 사태가 가한 충격이 컸던 것이다.

총회가 끝나기 직전, 시혁은 발언권을 얻었다.

한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각성 관리 위원회가 있으면 최소한 이번처럼 재앙이 발생하는 건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G급 이능력자가 각성할 때마다 검은 천체가 미세하게 커지는 것은 어떻게 막지요? 검은 천체가 커지면 괴수도 더 많이 발생하고, 새롭게 아르거스

로 가는 소환자도 많아집니다. 결국 나중에 더 큰 재앙이 발생하는 것은 막기가 힘듭니다.”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시혁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아르거스와 지구의 연결을 끊는 것도 고려를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연결을 끊는다니요?”

“간단히 말해서 검은 천체를 없앤다는 뜻입니다.”

그 말을 들은 각국 정상들이 술렁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손문철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이전부터 가끔 화제가 되곤 했으니까. 이들끼리만 결정할 수 없으니 결론을 못 내리기는 했지만.

얼마 전 새롭게 선출된 중국 주석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한시라도 빨리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검은 천체가 나타나고, 우리 인류가 입은 피해가 얼마나 큽니까? 검은 천체야말로 만악의 근원입니다. 어떻게든 없애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찬성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미국 대통령은 신중한 의견을 피력했다.

“한 가지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검은 천체가 생기고 벌써 7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그 동안 입은 피해도 많지만 얻은 이익도 많습니다. 특히, 수많은 기업들이 괴수 부산물을 연구해서 성과를 얻었지요. 지금에 와서는 괴수들이 어느 순간 사라지면 경제에 막대한 악영

향이 있을 거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능 초강대국인 미국다운 말이다.

사실 이것은 미국말고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이능력자들의 밥줄도 끊기는 것 아닌가.

이능력자들은 에테르 면역을 무기삼아 괴수 사냥을 독점적으로 했다. 더 이상 괴수가 출현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능력자들이 반발할 거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했다.

< 총회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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