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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201화 (201/250)

< 미리내 >

원래 인천 공항에서 라스베가스까지 직항으로 가면 10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이번에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검은 구름을 멀찍이 피해 가야했기 때문이다.

도착하고 보니 오후 3시.

저녁 8시에 출발했는데, 시차 탓에 시간을 번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라스베가스 공항에 내렸다.

이능력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하듯, 존스 아츠와 베일 스미스 등 G급 이능력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강찬이 시혁에게 속삭였다.

“미국이 급하긴 급했나 봅니다. 미국 협회장까지 나와 있네요.”

“그럴 만도 하지요. 아까 구름 보셨죠?”

“예. 엄청 두꺼워져 있었지요.”

“어쩌면 지상까지 내려올 지도 모릅니다. 그 전에 끝을 봐야지요.”

“하긴 그렇습니다.”

미국의 이능력자들이 다가왔다.

존스가 시혁을 가볍게 껴안았다.

“환영합니다, 미스터 최! 좋은 때에 모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 상황이 이 모양이라 죄송스럽습니다.”

“죄송스럽기는요.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그 물체에 대해 들을 수 있을까요?”

“먼 길 오셨는데 쉬시지도 못하고……”

“쉬는 건 나중에 하지요. 일부터 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황실로 모시겠습니다.”

인근 미군 기지에 상황실이 꾸려져 있었다.

계급장에 별을 하나 단 군인이 시혁을 안내했다.

상황실에는 영상 하나가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뭔가 했더니, 검은 구 같은 물체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지는 영상이었다.

금방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저게 검은 구름을 만든 물체입니까?”

“예. 처음에는 저것만 덜렁 나타나더니, 어느 순간부터 검은 구름이 생성되었습니다. 중국 쪽 물체와 반응하는지, 거대한 띠를 만들었지요.”

“이것들이 핵심이겠습니다. 저 영상 말고, 다른 것 알아낸 사실은 없습니까?”

“몇 가지 있습니다.”

베일이 직접 설명을 했다.

물체는 순수한 에테르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원리는 알 수 없으나, 상술했듯 검은 구름을 끝없이 생성한다고.

여러 방법을 써봤으나 효과가 없었다.

에테르 미사일, 폭탄, 공간 이동 등등.

무게는 없다시피 하다. 크기는 꽤 커서, 직경 15미터에 달했다. 구 형태이지만, 형태가 고정되진 않고 끝없이 출렁이고 있다고 했다.

강점이나 약점은 모른다.

그저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제거가 불가능하다는 것만 알려졌다.

시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알아내신 게 거의 없네요?”

미국 측 이능력자들이 끄응,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자기들도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미국 하면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자 이능 강대국 아닌가. 이름 있는 이능력자들은 모두 모였어도 알아낸 게 없으니, 부끄러울 만도 했다.

어쩔 수 없지.

까마득히 높은 상공에 있는 터라 시혁도 당장 어쩌기가 힘들었다. 먼저 미리내를 발동시켜 검은 구름을 좀 덜어내기로 했다.

미리내의 장착 방법을 설명했다.

오색 수정은 충분히 가져온 뒤였다. 미국 측에서 오색 수정과 비슷한, 무한의 구슬을 내놓기도 했다. 힘의 보주와도 비슷한 게, 저번 국제 이능력자 대회에서 영향을 좀 받은 모양이었다.

장착은 후딱 끝났다.

좀 조악했다.

오색 수정을 전투기 꽁무니에 달고, 전기 충격기를 설치한 후 조종석으로 전선을 보낸 것이 전부니까.

시혁은 미국 이능력자들을 둘러보았다.

“검은 구름에 접근하면 정신이 침습을 받습니다. 혹시 보호 장비 같은 게 없습니까?”

“아, 저희 조종사 헬멧에 그런 기능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검은 구름 안으로 들어가지만 않으면 됩니다.”

아예 손 놓고 있지는 않았나 보다.

노파심이 들어 헬멧을 직접 확인해 보았다. 시혁이 만들었던 것보다 약간 성능이 떨어지는 수준이라, 이 정도면 괜찮지 싶었다.

곧 전투기들이 출격했다.

정확히 12대.

3개 편대가 날아오르더니, 뿔뿔이 흩어져 구름이 가장 두터운 쪽으로 날아갔다.

시혁은 초조한 얼굴로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빛의 용들이 생성되었다.

용들은 구름을 물어뜯었다. 그걸로 자기 몸을 불리고, 더 많은 구름을 찾아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전투기가 쉬지 않고 구름 주변을 돌았다. 덕분에 빛의 용이 숫자가 무척 불었다. 그에 따라 구름이 그 세를 잃고,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이거 끝이 안 나겠는데요.”

강찬이 시혁에게 속삭였다.

시혁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은 정체불명의 물체를 해결해야 한다. 그 전에는 빛의 용을 아무리 만들어내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그때, 기지 한쪽에서 무인기들이 착륙하는 게 보였다.

자연히 시선이 갔다.

“무인기는 검은 구름 안에 들어가는 게 가능합니까?”

“예. 생명체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전자 장비에는 영향이 없어서요. 하지만 무인기로 얻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체의 에테르 속성과 구성이 중요한데, 그걸 촬영할 수 있는 장비는 없지 않습니까? 귀국에서 구입한 천리안은 유인기에만 장착이 가능하고……”

시혁의 물음에 베일이 직접 대답했다.

가만 있자.

그럼 무인기에 새로운 촬영 장비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저번에 시혁이 썼던 마나 생명체는 일종의 정령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검은 구름에 영향을 받았는데, 단순히 에테르 촬영 장비라면 영향을 피해갈 수도 있지 싶었다.

당장 제작에 들어갔다.

필요 없는 카메라를 하나 떼어냈다. 대신 통찰 계열의 마법진을 달았다. 시각화 시키는 마법진도 첨가했으니, 곧 형형색색의 정보가 기지로 날아들 것이다.

미국의 이능력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하긴 이토록 정교한 마법진을 보는 건 처음일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아르거스에서 지식을 가져오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무인기가 비상했다.

거침없이 검은 구름 안으로 들어가자, 상황실에 시커먼 화면이 반복적으로 출력되었다.

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고장 났나?”

“아뇨. 정상입니다.”

시혁은 화면을 눈여겨보았다.

아주 선명한 검은색이다. 마치 흑진주를 보는 듯했다.

한편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구름 전체가 긴 나사못처럼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아르거스의 힘 중에서도 심연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무인기가 속도를 최대한으로 낮췄다. 그러면서 물체가 있다고 알려진 지점을 향해 나아갔다.

문득, 화면에 한 가지가 잡혔다.

“어어?”

“저게 뭐야?”

그걸 본 이능력자들이 놀라 입을 벌렸다.

시혁의 눈이 깊어졌다.

사람 형상이었다.

직경 10미터의 구가 아니라, 키 10미터는 넘어 보이는 그림자가 화면 속에서 너울거렸다.

“사람인가?”

“키가 저렇게 큰 사람이 어디 있어요. 괴수겠지.”

“저런 괴수는 출현한 적이 없는데……”

시혁은 그림자의 가슴에 주목했다.

유난히 까만 부위가 있다.

가로로 긴 타원 형태.

익숙했다.

한 차례 아르거스에서 조우한 적이 있었다.

‘암흑 황제……’

암흑지의 숨겨진 최하층에 있던, 그래서 공허를 빨아들이던 박제된 신.

본인은 아니다.

암흑 황제의 존재감은, 저 따위 구름으로 가릴 수준이 아니니까.

아르거스에 있을 테니 전장을 통해 지구로 올 리도 없고.

심연의 마왕과 비슷한 어떤 존재겠지. 다만 형체만 있을 뿐 자아나 영혼은 없어서, 힘은 클망정 심연의 마왕보다는 덜 위험해 보였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심연의 마왕을 아르거스로 되돌려 보냈듯, 저 형체도 아르거스로 보내버리면 된다.

다만 하늘 위에 있다는 게 어려웠다.

그때는 근원의 나무를 설치하고 오행 순환체까지 써서 돌려보내지 않았나. 하늘 위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곧 방법을 찾았다.

지금 하늘 위를 노니며 검은 구름을 살라먹는 빛의 용들.

그것들도 따지고 보면 에테르의 집약체 아닌가. 그것들을 이용하면 충분히 필요한 에테르를 공급할 수 있었다.

바로 실행했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1백 대가 넘는 전투기가 검은 구름을 폭격했다.

미리내가 깨지고, 무수히 많은 빛의 용이 튀어나왔다.

검은 구름이 꿈틀거렸다.

갈가리 찢어지고, 소멸되고, 내부가 드러났다.

빛의 용 군대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검은 구름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인간 형체를 깨물었다.

대부분은 검은 구름에 막혔지만 일부가 인간 형체를 공격하는데 성공했다. 자기들끼리 뭉치더니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빛이 사방을 물들였다.

동시에 거대한 빛의 다리가 생겼다.

인간 형체와 검은 천체를 연결하는 통로.

검은 구 같은 게 그 다리를 따라 검은 천체로 이동했다. 검은 천체가 한 차례 힘껏 박동하더니 검은 구를 받아들였다. 동시에, 검은 구름이 그 힘을 잃고 점차 세력권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성공이었다.

심연의 마왕을 한 차례 겪어본 게 컸다. 그게 아니었으면 머리를 싸매고 있다가 대응이 늦어졌을 것이다.

존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습니다! 해냈어요!”

베일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입니다. 예산은 많이 썼지만 늦지 않게 해결했어요. 새삼 미스터 최와 대한민국의 이능력자들에게 감사 말씀을 올립니다.”

돈은 확실히 많이 들었다.

미리내 100개를 아예 깨뜨렸으니까.

이 정도는 되어야 필요한 에테르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냥 미리내를 작동시켜서는, 아무리 많은 비행기를 동원해도 구름의 내부까지 침투하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시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검은 구름은 천천히 사라질 겁니다. 그래도 사태를 빨리 종결시키려면 미리내를 활용하는 게 좋겠지요.”

“예. 감사합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저희가 신세를 졌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 또한 발 벗고 나서서 돕겠습니다.”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이미 며칠 밤을 꼬박 샌 참이었다.

미국인들은 시혁과 그 일행을 극진히 대접했다.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고급 호텔의 최고급 객실을 내주었다. 각국 대통령이나 유명 인사들이 올 때나 묵는, 평소에는 구경도 하기 힘든 곳이었다.

오래 쉬지는 못했다.

중국에서도 지원 요청이 들어온 까닭이었다.

최근 흑룡회 사건도 있고 해서 중국은 자기들끼리 해결을 하려고 했다.

그게 참극을 불렀다.

검은 구름이 위험한 수준까지 내려왔다. 베이징은 이미 마비되었고, 검은 구름의 영향으로 추락한 비행기가 벌써 세 대가 넘어섰다.

결국 시혁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베이징으로 이동했다.

미국에서처럼 했다.

다만 미리내 100개 가지고는 모자랐다. 검은 구름이 나타나고 시간이 꽤 지나간 까닭이었다. 일단 빛의 용을 동원해 검은 구름을 깎아낸 후, 300개를 일시에 투여해 인간 형체를 돌려보냈다.

이것으로 끝.

검은 구름이 빠르게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때쯤 지구 전역에 미리내 지원도 끝이 났다. 이제는 어느 나라를 가든 흔하게 전투기들이 빛의 용을 생성해 검은 구름을 공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확히 2주.

검은 구름 사태가 끝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예전에 시혁이 제안했던 세계 이능력자 관리 체계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점.

미국과 중국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특히 중국이 발 벗고 나섰다.

아직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G급 이능력자의 각성이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도 평소 같았으면 최소한 몇 달은 걸렸을 일이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급물살을 탔다.

한 기자의 폭로 때문이었다.

삼두룡, 캘리포니아 사태, 가까이는 검은 목요일과 검은 구름의 출현……

그것들이 G급 이능력자의 각성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

반향이 무시무시했다.

< 미리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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