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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200화 (200/250)

< 지구적 재앙 -2- [8권 끝] >

비행기가 검은 구름 근처를 지나거나, 그 안으로 들어간다?

상상도 못할 참사가 발생할 것이다. 기내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정도야 애교 수준이고, 어쩌면 추락하여 대형 사고가 날지도 몰랐다.

이미라가 막막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저 큰 걸 어떻게 해결하죠?”

“먼저 검은 구름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하다못해 저공비행이라도 시켜야 해요. 5분이면 구름을 통과할 테니까, 어렵진 않겠습니다.”

“없앨 수는 있는 거지요?”

“가능할 겁니다. 저번에 썼던 헬기들을 다시 써먹으면 되겠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때는 한반도, 그 중에서도 남쪽에만 국한된 작전을 펼쳤으니까. 지금은 동아시아만 그런 것도 아니고 태평양과 북미 대륙,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한 바퀴 쭉 돌고 있다. 헬기를 더 확충하든 어쩌든 해야 했다.

그런데 손문철이 고개를 저었다.

“헬기로는 불가능합니다.”

“예? 왜요?”

“너무 높습니다. 구름은 대류권계면에 형성되어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헬기는 거기까지 못 올라갑니다. 중대장님, 제 말이 맞지요?”

갑작스런 질문에 마중 나온 군 지휘관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몇 번 눈을 굴리더니, 그렇다고 했다.

“맞습니다. 헬기는 기종마다 다르지만 대략 5킬로미터 내외의 고도까지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간혹 10킬로미터까지 상승이 가능한 기체는 있습니다만, 속도가 너무 느려지니 작전을 수행하기는 힘듭니다.”

“비행기에 탑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천리안도 비행기에 실어서 운용하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방법 밖에 없겠습니다. 정화 이적이 충분히 작용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정화 이적은 일정 반경 내의 에테르를 한꺼번에 정화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비행기가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날면, 정화 범위가 쭉 이어지지 않고 점점이 끊어지게 된다.

실시간으로 지워나가는 게 아니라, 몇 초에 한 번씩 발동하기 때문이다.

시혁은 다시 마나 생명체를 만들어 냈다.

정확히 두 개.

하나는 방금 전 것과 같았고, 하나는 정화 이적이 담겨 있었다.

둘을 한꺼번에 날렸다.

정화 이적을 담은 마법의 새가 구름을 향해 돌진했다.

시혁은 안전한 곳에서 그 광경을 주시했다.

새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더니 펑 터졌다. 황금빛의 광채가 뿜어지고, 시커먼 구름 안에 동그란 구멍이 뻥 뚫렸다.

효과가 있다.

다만 구름이 빠르게 증식을 했다. 구멍 따위 금방 메워버리는 게,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그 장면을 확인한 손문철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효과가 있네요. 이제 비행기에 장착해서 구름을 없애면 되겠습니다.”

이미라가 다른 의견을 냈다.

“꼭 비행기가 장착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방금 전 이사님이 만든 것처럼 마법의 새를 잔뜩 만들어서 폭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마법의 새를 만들어서 폭격을 한다?

순간, 어떤 영감이 시혁의 머릿속을 스쳤다.

벌떼처럼 날아드는 마법의 새.

그것들을 통해 중첩 저주를 실행한다면?

이 경우에는 저주가 아니라 정화 마법이 되겠지. 아니면 거대한 마나 생명체의 재료로 써도 좋고.

빛의 뱀의 꿈틀대며 구름을 잡아먹는다고 생각해 보라.

진리 진영 광명용 소환 이적을 응용하면 좋겠다. 그 몸에 정화 이적을 듬뿍 채워 넣으면, 이번 사태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아르거스에서 쓰기 힘든 방법이라는 게 아쉬웠다.

변형되기 전의 공허는 정화 이적 정도로는 소멸시키는 게 불가능하니까.

“이 이사님 말씀대로 해야겠습니다. 비행기들이 직접 지우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겠네요.”

“그럼 서울로 돌아갈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방법을 찾았다고 하자 군인들도 적잖이 안심을 했다. 자기들끼리 서로를 격려하며 용기를 내자고 하는 게 보였다.

헬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럭저럭 하는 사이 시간이 꽤 지났다. 벌써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거 오늘 내로 중첩 마법을 만들진 못하겠는데?

그렇다면 아르거스에서 해야겠지. 기본적인 체류 시간만 나흘에, 전장에서는 두 달을 추가로 머무르는 게 가능하니까.

신경이 분산되는 만큼 승률이 낮아지겠지만, 1패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다.

시혁이 마법을 구상하는 사이, 손문철은 사방으로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 세계 이능 협회 연맹, 중국과 미국의 협회……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이 있었다.

태평양을 지나던 비행기가 추락한 것이다. 급히 구조대가 파견되었지만 비상 착륙에 실패하여 동체 전체가 박살이 났다고.

검은 구름을 통과하려다 벌어진 참변이었다.

시혁은 조바심을 느꼈다.

저공비행을 하면 검은 구름을 피해갈 수는 있다. 대신 그만큼 소요시간도 길어지고, 소모하는 연료도 많아지게 된다.

또 검은 구름이 언제까지나 거기 머물러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나. 증식해서 지구 전체를 뒤덮을 수도 있고, 밀도가 높아져 지상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시혁의 우려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

위성사진을 대조해 보니 빠르게 증식하는 게 보였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넣고 돌리자,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1달 내에 검은 구름이 지금의 10배 이상 두께로 커진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렇게 되면 새떼도 영향을 받게 된다.

미친 새들이 민가를 습격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손문철이 지친 얼굴을 하고 시혁을 찾아왔다.

“곧 공식 발표가 나갈 겁니다. 각 항공사에는 지침이 내려갔고요.”

“너무 걱정 마세요. 다 잘 될 겁니다.”

“휴우,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중국과 미국에서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는데, 검은 구름을 증식시키는 물체가 하늘에 떠 있답니다.”

“검은 구름을 증식시켜요?”

“예. 나타나자마자 검은 구름 안에 숨어서 조치를 취하진 못했습니다만, 조만간 타격대를 구성해서 공격한다고 들었습니다.”

“위험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두 물체를 소멸시키지 않는 한 검은 구름이 계속 증식한다고 하니 피할 수 없는 선택이지요.”

상공 10킬로미터에서 어떻게 작전을 펼치겠다는 걸까?

모르겠다.

어차피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 시혁은 본인의 일에 충실하기로 했다.

아르거스에서도 꾸준히 연구를 했다.

어렵진 않았다.

참고로 할 게 많았으니까.

성역에 있을 때와 전장에 있을 때를 가리지 않았다. 전장에서는 승리를 확정해 놓고도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두 달을 꽉 채운 끝에, 연구를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전투를 종료하기 전, 가볍게 마법을 시전해 보았다.

무수히 많은 빛 덩이가 하늘을 수놓았다.

빛 덩이가 자기들끼리 스스로 엉겨 붙었다. 그리하여 크고 작은 빛의 용을 만들었다.

이 빛의 용들은 지구에 나타난 검은 구름을 먹어서 성장한다. 스스로 덩치를 키우다가, 구름을 포식하지 못하게 되면 저절로 소멸하게 된다.

이름은 미리내로 지었다. 빛나는 용들이 꿈틀대며 상공을 헤엄치면, 꼭 은하수를 보는 착각이 들 테니까.

지구로 돌아와 눈을 뜨니 새벽 6시.

바로 제작에 들어갔다.

오색 수정을 활용했다. 오행 순환체의 힘을 활용하자, 금방 미리내 생성 장치가 완성되었다.

여기에 전기 자극을 가하기만 하면 된다. 그럼 미리내가 흘러나와 허공에서 빛의 용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후 전기 자극을 또 가하면 자연스럽게 중단될 테고.

한 가지를 더 만들었다.

정신 보호 장비.

이게 있으면 검은 구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어떻게 되진 않을 것이다. 이상하다 싶으면 빠져나오면 되고.

시혁은 완성된 미리내와 보호 장비를 손문철에게 주었다.

“이걸 천리안에 그냥 끼우시면 됩니다. 기존에 박은 오색 수정 대신에요.”

“그것만으로도 작동합니까?”

“예. 아, 조종석에서 전기 자극을 가할 수 있게 전기 계통을 살짝 손보면 좋겠네요. 오색 수정에 전기 자극이 가해지면 발동하고, 또 가해지면 정지되도록 만들었거든요.”

“이사님 솜씨가 날이 갈수록 좋아지네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지요.”

“그리고 이건 정신 보호 장비입니다. 조종사들은 헬멧 쓰지요? 그 전에 머리에 쓰면 됩니다.”

보호 장비는 벙거지 모자처럼 생겼다.

안쪽에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급히 만드느라 외형은 조악하지만, 성능은 좋았다.

손문철이 직접 움직였다.

헬기를 타고 천리안이 배치된 공군기지로 이동했다. 미리내를 전달하고 천리안을 개조했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대한민국 공군의 기술자들이 모두 달라붙은 까닭이었다. 채 오전이 지나기도 전, 천리안이 미리내를 싣고 발진했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미리내를 작동시킨 채 검은 구름 인근을 지났다. 천리안이 뿜는 궤적에 섞여 빛 무리가 쏟아졌다. 빛 무리는 서로 엉겨 붙더니 빛의 용이 되어 검은 구름으로 날아갔다.

결과를 보고, 시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천리안의 조종사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더니 그게 정말인가 보다. 까딱 잘못했으면 지나치게 접근했다가 이성을 잃었을 테니까. 제 아무리 정신 보호 장비를 줬어도 한계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작전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려놓았으나, 헬기를 동원하고 망원 렌즈를 쓰는 등 다양한 방법을 써서 취재에 열을 올렸다.

뉴스 속보가 줄줄이 쏟아졌다.

검은 구름을 빛의 용이 베어 먹고 있었다. 빠르게 구름이 소멸되지만, 어디서 힘이 공급되는지 소멸되는 만큼 증식되었다. 결국 균형이 맞아 떨어져 검은 구름이 더 늘지도, 줄지도 않는 상태가 되었다.

기자가 심각한 얼굴로 떠들었다.

[지금 저는 강원도 철원에 나와 있습니다. 어제 아침부터 철원과 연천을 비롯하여, 지구 전체에 검은 구름이 생겼는데요. 우리나라는 새로운 이능 무기를 도입하여 구름을 소멸시키고 있습니다.]

모든 채널에서 구름과 미리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혁은 채널을 돌렸다.

외국 방송을 확인했는데, 거기서도 비슷한 화면이 나오는 중이었다. 자기네 상공의 구름 화면을 보여주면서, 대한민국에서 내보내는 화면을 동시에 비췄다.

적당히 TV를 보다가 껐다.

회의실에 함께 앉아 있던 이능력자들이 한숨을 쉬었다.

“이거 완전히 난리네요.”

“어째서 구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겁니까?”

“중국과 미국에 구름을 생성하는 물체가 있다고 합니다. 그걸 먼저 제거해야 되는데,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시혁은 잠자코 기다렸다.

작전을 시작한다고 하더니, 과연 어떻게 됐을까?

상공 10킬로미터 지점까지 이능력자들이 올라가서 뭘 어쩌기는 어렵다. 구름에 접근하면 즉각 이성이 흔들리는 점 때문에 더 그렇고.

아무래도 협조 요청이 들어올 것 같은데……

미리내 때문이라도 그렇다. 중국과 미국에만 있다는 물체는 어떨지 몰라도, 검은 구름에는 확실히 효과적이니까.

일은 시혁이 생각한 대로 흘러갔다.

오후 늦게, 공식적으로 요청이 들어왔다.

어떤 조건이든 수락하겠으니 미리내를 지원해달라는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투르크메니스탄 등등.

검은 구름이 지나가는 국가들이었다.

그럴 줄 알고 미리내 수정을 넉넉하게 만들어 두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고, 비행기를 개조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시간이 촉박했다.

더구나 미국에서 들어온 지원 요청은 좀 특별했다.

단지 미리내만 지원해 달라고 한 게 아니었다. 시혁을 지목해서, 공식적으로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시혁은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직접이요?”

“미국에서는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들끼리는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네요.”

손문철은 시혁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미국을 가든, 가지 않든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다.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지원을 가기로.

미국과 중국에 나타났다는 물체를 끝장내지 않는 한 지금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비행기에 올랐다.

경호 겸 동행 격으로 누리 공격대의 이능력자들이 함께 했다.

시혁을 태운 전용기가 하늘 높이 힘차게 솟구쳤다.

[8권 끝]

< 지구적 재앙 -2- [8권 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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