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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98화 (198/250)

< 소환자 전직 -3- >

돌이 성벽을 때렸다.

좁고 뾰족한 성벽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돌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뱀파이어 하나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걸 본 인간 소환자들의 기세가 한껏 올랐다.

뮤틀론이 성문을 가리켰다.

“성문을 부숴라! 그 즉시 돌입하겠다!”

남쪽 제작소에서 만든 투석기이고, 사제의 축성까지 더해진 공격이었다. 성문에만 공격을 집중시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마법의 탑 공략은 순조로웠으나, 중앙 궁전에서의 전투는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인간 군대는 완전히 포위당했다.

치료소와 세 영웅에 의존하여 막아내기는 했다. 하지만 뱀파이어들이 지금 끝장을 보겠다는 태도로 덤벼들어서, 거의 풍전등화의 상황에 빠졌다.

강찬이 다급한 어조로 소리쳤다.

[이사님! 못 버팁니다!]

쾅!

거의 동시에 마법의 탑 성문이 뚫렸다.

결정을 해야 했다.

영웅들을 구할 것이냐, 마법의 탑을 공략할 것이냐?

아끼고 아낀 마나를 사용하여 또 하나의 이적을 발현했다.

효능 증폭.

치료소를 향해서였다.

순간적으로 치료소가 뿜어내는 빛이 강해졌다.

거의 열 배 이상 증폭되었다.

단 한 순간이었다.

빛의 파도가 눈부시게 뿌려졌다. 인간 군대는 물론 뱀파이어 군대까지 그 빛이 확산되자, 뱀파이어들이 전신에 화상을 입고 몸부림을 쳤다.

“크아아악!”

“이건 뭐냐?”

“뜨거워! 뜨거워!”

흡사 고급 이적, 태양광을 쓴 것 같은 광경이다.

시혁은 입맛만 다셨다.

들인 마나에 비해 효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들은 그냥 화상만 입었다. 종족 특성 상 가만 놔두면 곧 회복될 것이다. 인간 군대는 모든 부상을 회복했지만, 그거야 효능 증폭 이적 없이도 가능한 일이었고.

“후퇴! 후퇴!”

뱀파이어들이 정신없이 후퇴했다.

일단 쉬면서 전열을 가다듬으려는 것이다. 그 다음 더 강력하게 시혁의 군대를 몰아붙이겠지.

장미 부인도 손해만 보지는 않았다.

뮤틀론 부대의 머리 위에 이적을 발동시켰다.

피의 비가 뿌려졌다.

저주가 내려졌다.

소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사제들이 정화하기는 했으나,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은 막기 힘들었다.

결국 백병전에서 밀리고 말았다. 뮤틀론의 레벨이 높았으면 선두에서 다 죽였겠으나, 지금은 일반 소환자 셋도 상대하기 힘들었으니까.

중앙은 밀리고, 서쪽은 뚫지 못하고.

시혁은 두 개의 부대를 모두 물렸다. 약간 뒤쪽에 진을 친 후, 부대를 합친 다음 휴식시켰다.

장미 부인이 무난하게 중앙 궁전을 장악했다.

시혁은 냉철하게 현재 상황을 판단했다.

확실히 불리해진 것은 맞다.

하지만 시혁에겐 강력한 이적들이 있었다. 그걸 잘 쓰면 충분히 상황을 뒤집는 게 가능했다.

군대를 늘리며 시간을 보냈다.

정찰을 해보니 장미 부인도 군대 확충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쉬지 않고 중급 병종을 뽑아냈다. 이적이나 영웅은 시혁에게 밀리니, 일반 소환자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신아영이 아쉽다며 말했다.

[중립 괴물이 많으면 그거 잡고 다닐 텐데 답답하네요. 어떻게 하죠?]

장미 부인은 당분간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연한 일.

보유한 마나 집중점의 수에서 차이가 난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승리가 굳어진다. 굳이 무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시혁은 한 가지 전략을 짜냈다.

전투가 시작되고 꽤 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가장 먼저 소환했던 신아영의 레벨이 꽤 높았다. 현재 20으로, 중급 병종 정도는 가볍게 학살할 수 있었다.

거기서 한 가지 착안을 했다.

[신아영 님.]

[네?]

[제가 짝니를 붙여드리면 어느 정도 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까? 최소한 영웅 한둘은 잡겠지요?]

[에이, 영웅 한둘이 뭐에요. 그건 짝니 혼자서도 가능하잖아요. 영웅 부대 하나는 충분히 잡을 것 같아요. 어떤 영웅이 이끄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뱀파이어 요새는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신아영 님이 짝니를 타면 뱀파이어 요새를 공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짝니가 어지간한 이적은 튕겨냅니다. 요새를 함락시키진 못해도, 전력을 약화시키는 건 가능합니다.]

예전에 시혁이 이미라와 함께 인세 군주를 상대로 써먹었던 전술의 재탕이다.

신아영이 눈을 멀뚱거렸다.

[그럼 짝니만 보내도 되지 않아요?]

[안 됩니다. 추방 이적 쓰면 짝니가 역소환 돼요. 추방 이적을 방어해 줄 영웅이 필요합니다.]

[아…… 그렇겠네요.]

세 영웅은 뱀파이어 군대를 견제하고, 신아영만 짝니와 함께 뱀파이어 요새를 공격하기로 했다.

목표는 병영 요새.

피의 우물을 박살내어 마나 획득을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신아영이 비룡을 타고 날아올랐다.

장미 부인의 눈을 피하고 어쩔 생각도 없었다. 대놓고 중앙 궁전의 상공을 날아갔다.

당연히 뱀파이어들이 신아영의 뒤를 쫓았다.

“거기 서라!”

“이년, 겁도 없이 어딜 들어와?”

“사지를 찢어주마!”

무려 영웅 셋이 신아영을 추격했다.

뱀파이어 대결자, 뱀파이어 마녀, 다크 엘프 암살자.

신아영은 뒤를 힐끗 보고는 더 빠르게 비행했다. 일직선으로 병영 요새를 향해 날았다.

작은 전장이라 병영 요새에 도착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신아영이 병영 요새로 내리꽂혔다.

곧 비룡이 사라졌다. 무장한 상태의 신아영만 남자, 쫓아온 영웅들이 그 주변을 에워쌌다.

요새의 방어 시설들이 신아영을 조준하고, 뱀파이어 병력도 족히 1백은 넘게 있는 상황.

대결자가 이죽거렸다.

“상황이 불리해져서 미쳤나 보지? 감히 장미 부인의 영역에 단신으로 들어오다니, 네년의 간을 확인해봐야겠다.”

신아영이 세 영웅의 얼굴을 쓱 살폈다.

차가운 미소가 매혹적인 입술 끝에 매달렸다.

“글쎄, 과연 그게 될까? 백색 현왕님!”

화답하듯 한 가지 이적을 발현했다.

짝니가 으르렁대며 뛰쳐나왔다.

신아영이 그 위에 올라탔다. 짝니가 크게 울부짖은 후, 정면의 뱀파이어 마녀를 향해 돌진했다.

“이런!”

뱀파이어 마녀가 혼비백산하여 피했다.

어떤 영웅도 짝니를 상대할 수가 없다. 결국 장미 부인이 나서야 했다.

추방 이적이 떨어졌다.

신아영이 눈을 번뜩였다.

핏빛 마나를 검을 날려 가로막았다. 검이 일순 핏빛으로 물들었으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스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핏빛 번개로 공격했다.

그건 짝니가 막았다. 몸을 뒤틀며 오색의 발톱을 올려친 것이다. 핏빛 번개가 거기에 중화되어 엉뚱한 곳을 때렸다.

환상의 복식조라고 할까.

덕분에 커다란 소란이 벌어졌다.

방어 시설들이 독액을 뿌리고, 화살을 날려도 소용없었다. 짝니가 귀신처럼 그걸 다 피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공격만 신아영이 검을 휘둘러 쳐냈다.

지금이 기회다.

시혁은 군대를 움직였다.

아직 요새화가 완벽하지 않은 중앙 궁전을 공격하게 했다. 그 동안 구축한 모든 병력을 총동원한 공격이었다.

처음부터 이적을 사용했다.

오색 돌풍을 썼다.

소환자 전체가 강화되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중급 병종이라 해도 쉽게 당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장미 부인이 혀를 찼다.

[흥, 얕은 술수를!]

시혁에게 맞서서 이적을 발현했다.

하늘에 핏빛 장미가 피었다.

장미 가시가 수도 없이 낙하했다. 맞았다간 즉사하는 특수 이적이라, 시혁도 경시하지 못하고 방어 이적을 펼쳐 막았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장미 부인이 중앙 전장을 주시한다면, 상대적으로 병영 요새에는 신경을 쓰지 못할 테니까.

시혁의 생각이 들어맞았다.

이적이 떨어지지 않는 틈을 타서, 짝니가 피의 우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막아!”

뱀파이어들이 막아섰지만 이미 늦은 뒤.

짝니의 오색 송곳니가 피의 우물에 직격했다.

막대한 힘이 투사되었다.

피의 우물이 순식간에 박살났다. 거의 영웅의 궁극기와 비견될 정도의 강력한 공격이었다.

“크아앙!”

짝니가 기세 좋게 울부짖었다.

신아영이 짝니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역시 짝니야, 대단해.”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신아영은 그냥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기왕 짝니를 소환했으니, 최대한 결과를 뽑아내야지.

마녀에게 덤볐다.

결투자와 암살자가 기겁하여 막아섰다.

짝니와 어우러져 투닥이는 사이, 마녀가 멀리 도망쳤다. 방어 시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주문을 외웠다.

“크앙!”

짝니가 비장의 수를 썼다.

그림자 이동.

신아영을 태운 채 마녀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마녀가 기겁하며 유령화 특기를 사용했다.

빛의 발톱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는 짝니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신아영이 검을 던졌다.

유령화 특기가 종료되는 시점을 정확히 계산한 공격이었다. 영체가 육체로 변하는 순간, 신아영이 던진 검이 마녀의 심장을 관통했다.

“커헉!”

마녀가 부르르 떨다가 이내 절명했다.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술렁였다.

특히 짝니와 싸우던 대결자와 암살자가 그랬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짝니와 신아영을 쳐다보았다.

이만하면 됐다.

신아영은 짝니의 등에 올라탄 채 유유히 빠져나왔다.

중앙 전장도 선전하고 있었다.

거의 대등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시혁은 아예 치료소를 후방에 설치해서 부상병을 바로 복귀시하게 만들었다.

신아영과 짝니는 마법의 탑으로 보냈다.

쉬지 않고 두들겼다.

시혁의 시선이 중앙 전장과 신아영, 짝니를 쉬지 않고 오갔다.

가장 위협적인 것은 역시 이적이다.

웬만한 것은 짝니가 튕겨낸다지만 정말 강력한 이적은 그게 불가능했다. 시혁이 계속 지켜보다가 위험해 보이면 방어 이적을 써줘야 했다.

인간 군대가 뱀파이어 군대를 점차 밀어내기 시작했다.

마녀가 죽은 게 컸다. 짝니가 걸핏하면 피의 우물을 때려 부순 것도 한몫을 했다. 마나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영웅 전투와 이적 전투에서 뒤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몇날 며칠을 꼬박 보낸 전투 끝에, 결국 뱀파이어 군대가 패주하고 말았다.

인간들이 당당하게 궁전으로 입성했다.

피의 우물을 부수고 마나 저장고를 건설했다. 그러자 막대한 마나가 생성되어 시혁에게 흘러들었다.

거의 승리가 확정된 셈이다.

방심하지는 않았다.

언제든 역전될 수 있으니까. 박쥐나 늑대로 변해 시혁의 본성을 기습하는 방법은 지금도 유효했다.

굳히기에 들어갔다.

세 요새 사이에 돌로 포장된 도로를 건설했다. 영웅들을 배치하고 방어 시설을 겹겹이 만들었다. 한세훈도 소환한 뒤, 본성에 치료소를 건설하여 약을 만들게 했다.

기쁜 일도 있었다.

창병 거장과 궁병 거장이 전직을 신청한 것이다. 당장 수락했고, 몇 번의 전투를 거쳐 중장보병과 저격수를 소환하게 되었다.

새로운 건물 건설도 가능해졌다.

마굿간.

자연히 시혁의 군대에 기병이 추가되었다. 그 동안은 사실 굉장히 허약했는데, 비로소 구색을 갖춘 것이다.

이쯤 되자 장미 부인이 도박을 걸어왔다.

1천 군세로 밀어붙이는 한편, 5백의 일반 소환자를 박쥐로 변신시켜 시혁의 본성을 급습했다.

충분히 대비를 한 상태였다.

위험하긴 했지만 가뿐히 극복을 했다. 이번에도 짝니를 불러 활용하자, 장미 부인이 이를 갈며 외쳤다.

[검치호, 검치호, 검치호! 백색 현왕, 네놈은 그 검치호 말고는 자랑할 게 없느냐?]

아니 그럼 천사의 눈물을 다섯 방울이나 써서 강화시켰는데 열심히 써먹어야지 뭐 어쩌란 말인가.

시혁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군대를 진군시켰다.

마법의 탑을 공략하고, 이어서 병영까지 점령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장미 부인의 본성뿐.

숨을 돌린 후 공격했다.

투석기 수십 대가 동원되었다.

하얗게 빛나는 돌이 유성우처럼 낙하했다. 흑회색의 음침한 성벽이 돌에 얻어맞고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인간 군대가 해일처럼 장미 부인의 본성으로 밀려들었다.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 소환자 전직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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