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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97화 (197/250)

< 소환자 전직 -2- >

전력은 비슷했다.

수는 인간 군대가 많지만 질은 뱀파이어 군대가 월등했다. 다만 시혁에게는 강력한 특수 이적이 있으니, 장미 부인도 선뜻 선제공격을 하지 못했다.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이때, 한 가지 이변이 일어났다.

한 소환자가 시혁을 찾아와서 말했다.

“백색 현왕이시어, 사제로 전직하고 싶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시혁은 소환자를 주시했다.

짧은 예복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둥근 지팡이와 물병을 들었다.

복사.

성당 계열의 기본 병종이었다.

같은 계열이니 금방 전직이 완료되겠다.

당장 수락했다.

[좋다. 성당으로 가라. 빨리 전직을 완료하고, 그 결과를 내게 보고하도록 해라.]

“예, 감사합니다.”

점령한 성당이 있으니 새로 짓지 않아도 괜찮았다. 장미 부인에게 빼앗긴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으나, 시혁은 간단히 내어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창병 몇을 호위로 붙여주었다. 복사가 감사 인사를 한 후, 성당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마침내 중앙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선공은 뱀파이어 마녀 영웅이 가했다.

몸을 숨기고 주문을 외우더니, 강력한 저주 마법을 완성시킨 것이다.

안개가 피어올랐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안개가 궁전 주위에 내려앉았다. 뱀파이어는 이 정도 안개는 투시해서 볼 수 있으나, 인간은 그게 불가능했다.

김미애가 대처했다.

자기장의 벽을 군대 주변에 쳤다. 어떤 존재든 접근하면 경보가 울릴 것이다.

시혁은 그 부근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안개가 짙긴 했다. 반신의 시야로도 투과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뱀파이어들의 움직임이 흐릿하게 보였다.

한 무리의 습격자들이 배후로 돌아오고 있었다.

손목 부착형 소형 쇠뇌와 독약병으로 무장한 병종.

그들이 공격을 시작하기 직전, 소환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습격자들이다! 방어하라!]

대장간에서 병종 강화를 해서 다들 방패 정도는 들고 있었다. 창병들이 엉겁결에 방패를 들어올렸다.

화살이 날아왔다.

짧은 화살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린 탓에 대부분이 방패에 막혔다. 몇몇이 팔과 다리에 화살을 맞았으나 치명상을 입은 자는 없었다.

“거기냐?”

강찬의 눈이 번쩍 빛났다.

푸른 안광이 안개를 투시했다. 들고 있던 거대한 쇠뇌를 겨누더니 연거푸 쏘아붙였다.

화살이 벼락처럼 날아갔다.

폭발이 몇 차례나 일어났다. 습격자들이 놀라 뿔뿔이 흩어지는 게 보였다. 김미애도 화살이 날아간 방향으로 번개 마법을 쏘아서, 습격자 몇이 재가 되어 쓰러졌다.

초전은 인간 측의 우세.

그러나 이제 시작했을 뿐이었다.

폭음이 터지는 것을 신호 삼은 듯, 뱀파이어가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정전기 벽이 작동하여 눈부신 섬광을 뿌렸다.

강찬이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방어하라!”

지금은 원진을 짠 상태.

창병들이 고슴도치처럼 창을 곧추세웠다. 안쪽에서는 궁병들이 화살을 날렸다.

한바탕 접전이 벌어졌다.

시혁은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세 영웅의 지휘 아래 잘 싸우고 있었다. 김미애가 각종 강화 마법으로 병사들을 지원하고, 강찬은 원진 중앙에서 위험한 병사들을 구했다. 신아영은 뱀파이어 대결자 영웅과 1

대 1을 벌이는 한편, 적진 깊이 파고들어 예봉을 둔화시켰다.

멀리서 언데드 사령술사 영웅과 뱀파이어 마녀 영웅이 나타났다. 원거리 지원을 시작했으나, 강찬과 김미애가 시기적절하게 맞받아쳤다. 결국 서서히 밀리고 말았다.

대결자 영웅이 분통을 터뜨렸다.

“너희들! 대체 계급이 어떻게 되는 거냐? 어떻게 이리 강할 수 있지?”

레벨은 비슷한데 확연히 밀리니 화가 났나 보다.

신아영은 씩 웃었다.

정답은 간단했다.

지금 소환한 세 명 모두 준신 계급이다.

근두운 덕분이었다. 매일 아르거스에 오는 까닭에, 계급 상승 속도가 확연히 빨라진 것이다.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장미 부인이 이적을 썼다.

빨간 날파리들이 소환되어 인간 군대를 뒤덮었다.

흡혈충.

가만 놔두면 소환자의 뇌를 파먹고 괴물로 만드는 사악한 이적이다.

시혁은 치료소 이적으로 대응했다.

원진 중앙의 땅이 꿈틀거렸다. 흙의 벽이 솟구치더니 작은 건물을 만들었다. 지붕이 없는 작은 건물이었는데, 중앙에 오색의 수정이 박혀 있었다.

건물에서 맑은 힘이 흘러나왔다. 그 힘이 주위의 병사들을 천천히 치료했다. 그 힘에 노출되자, 흡혈충이 발광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윽, 백색 현왕!]

장미 부인이 이를 갈았다.

치료소의 치유 효율은 엄청났다. 오색 순환체를 사방으로 흩뿌리는 것과 같았다. 그만큼 마나 소모도 크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들이 물러갔다.

치료소를 끼고 있는 인간 군대와는 맞서 싸우기 힘들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신 궁전 곳곳에 숨었다. 접근하면 튀어나와 게릴라 작전을 펼 의도였다.

시혁도 함부로 공격하기는 힘든 상황.

또다시 대치 구도가 이어졌다.

강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사님. 어떻게 하지요? 치료소 이적이 마나는 많이 소모하니 시간이 지나면 불리할 것 같습니다.]

[방금 전 거장 복사 소환자가 동쪽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전직을 완료할 때까지 기다려보는 게 좋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사제가 나오면 해볼 만하겠습니다.]

시혁은 복사의 상황을 확인했다.

전직 시험은 간단했다.

100명의 부상자를 치료하는 것.

시혁이 의학자나 현자가 될 때와는 비교도 안 됐다.

하긴 기본 병종에서 중급 병종으로 가는 거다. 계열도 성당 계열로 같고, 진영을 바꾼 것도 아니지 않나.

시혁은 복사에게 명령했다.

[중앙 궁전으로 가라. 그곳에 네가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예, 백색 현왕님.”

성당에서 궁전은 가깝다.

복사가 병사 몇과 함께 인간 군대에 합류했다.

장미 부인은 보고만 있었다. 전직 임무를 받은 소환자라는 생각은 못하고, 그저 통상적인 병력 충원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시혁은 복사를 치료소에 배치했다.

복사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강력한 마나가 느껴집니다.”

[그럴 테지. 그곳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도록 해라.]

“예, 백색 현왕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한편 인간 군대를 전진시켰다.

거북이처럼 나아갔다.

김미애가 마법의 새를 날려 숨은 뱀파이어를 찾았다. 강찬도 감시 천사의 권능을 써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결국 은신한 뱀파이어들을 쉽게 잡으며 전진했다.

어쩔 수 없었다.

뱀파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뭉쳐 대항하자, 또 격전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무승부.

치료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게 컸다.

적당히 피해가 생기자 바로 후퇴했다. 치료소 주변에 머물러 상처를 치료하자, 뱀파이어들이 이를 갈며 쳐다보았다.

“교활한 놈들!”

“목을 찢어버려야 해!”

“놈들의 피로 목욕을 해야겠다!”

전투가 몇 차례나 반복되었다.

이익도 손해도 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는 동안 복사는 시험을 완료했다. 시험을 완료하려면 성당으로 가야 해서, 창병 몇을 붙여 성당으로 보냈다.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복사가 후방으로 이동하는 것은 장미 부인의 눈에도 띄었을 테니까.

장미 부인이 대충 넘어가주면 좋겠으나, 설마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 듯했다.

과연 그러했다.

성당에 중간쯤이나 갔을 무렵, 수십 마리의 박쥐들이 날아들었다.

[쯧!]

시혁은 혀를 차며 이적을 발현했다.

오색의 문을 통해 짝니가 나타났다. 그러자 박쥐들이 빠르게 본진으로 복귀했다. 이미 뜨거운 맛을 본 탓에,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친 것이다.

덧없이 마나를 소모한 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복사가 당하기라도 하면 시혁의 전략 자체가 어그러질 판이었으니까.

복사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감사합니다. 절 이렇게 신경 써주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서 들어가서 전직이나 완료해라.]

복사가 성당에 들어갔다.

성당 전체가 번쩍 빛을 뿜었다.

백색의 빛이 휘몰아쳤다. 회오리처럼 사방으로 불더니, 곧 집중되며 복사에게 쏟아졌다.

복사가 눈을 감았다.

복장이 바뀌었다.

짧은 옷이 치렁치렁하게 길어지고, 머리에 흰 모자도 썼다. 펑퍼짐한 소매 사이로 언뜻 보이는 손이 둥근 성구를 들고 있었다.

전직 완료.

기다렸다는 듯, 시혁도 새롭게 소환을 시작했다.

사제 병종 소환자들.

마나를 몽땅 때려 박자 금방 열 명 이상의 사제단을 구성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의 천적이니, 향후 전투에서 유용하게 쓸 터였다.

내친 김에 뮤틀론까지 소환했다.

지금까지 소환한 다른 병종까지 합치자, 상당한 규모의 병력이 완성되었다.

잠깐 고민을 했다.

이걸 중앙 궁전으로 보내? 아니면 본성에서 가까운 마법의 탑을 찔러 봐?

그래, 그게 좋겠다.

동쪽과 서쪽에 위치한 성당과 마법의 탑은 중앙 궁전에서 가깝다. 금방 지원이 오겠지만, 병력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겠지.

뮤틀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서쪽을 공격하겠습니다.”

[요새화가 끝났을 겁니다. 투석기를 지원해 드릴 테니 그걸 끌고 가세요.]

그냥 투석기도 아니다.

남쪽 제작소에 의해 강화된 특제 투석기다.

뮤틀론이 군대를 이끌고 천천히 서쪽 마법의 탑을 향해 접근했다. 거리가 가까우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장미 부인도 병력을 증원했다.

새로운 부대는 중앙으로 움직였다. 두 명의 영웅이 새로 포함된 것이, 중앙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의도 같았다.

다섯 명의 영웅이라……

시혁은 마나의 양을 확인했다.

사제들을 소환하고 투석기를 만드느라 마나를 많이 소모한 참이었다. 이적을 한두 개 쓰는 게 고작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병력 충원을 잠시 멈췄다. 중앙과 서쪽을 주시하며, 곧 벌어질 전투에 대비했다.

뱀파이어 군대가 먼저 중앙 궁전에 도달했다.

약 5백.

현재 시혁의 병력은 불과 3백 수준이다.

더구나 병종의 차이가 많이 났다. 뱀파이어 측은 절반 이상이 중급 병종인 반면, 시혁의 군대는 몽땅 기본 병종이니까.

이적도 쓰기 힘드니 매우 불리했다.

시혁은 강찬에게 속삭였다.

[뮤틀론이 곧 서쪽 마법의 탑을 공격할 겁니다. 일단 버티시되, 시간을 끄는 걸 목표로 하세요.]

[사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전직에 성공했고, 12명의 사제를 소환했습니다. 지금은 뮤틀론 부대에 가 있어요. 투석기도 몇 대 끌고 갔으니까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강찬은 시혁에게 한 가지 이적을 요구했다.

치료소.

버티기에는 최고의 이적이었다.

뱀파이어 군대가 천천히 진군해 왔다.

이상하게도, 3백 명 밖에 안 보였다.

강찬이 푸른 안광을 뿜으며 사방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굳은 얼굴로 소환자들에게 말했다.

“모두 주의하도록. 뱀파이어들이 박쥐로 변해 숨어 있다. 언제 뒤로 돌아올지 모른다.”

소환자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방진을 만들고 기다렸다.

뱀파이어 군대가 적당한 거리에 멈춰 섰다. 저마다 위협하듯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장미 부인은 작정을 하고 덤볐다.

시작부터 이적을 때려 넣었다.

온갖 저주를 걸고, 안개를 부르고, 피의 영역을 만들었다. 시혁도 치료소를 만들어 광역 치유를 하긴 했으나, 아무래도 곧 밀릴 성 싶었다.

이때 뮤틀론의 부대가 서쪽 마법의 탑에 도착했다.

마법의 탑을 지키던 뱀파이어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방어 시설을 작동시키고, 성벽 뒤에 몸을 숨겼다.

뮤틀론이 호령을 했다.

“투석기를 전개하라!”

인부들이 달라붙었다.

근처에서 커다란 돌을 구해 와 투석기의 머리 부분에 얹었다. 사제들이 그 위에 성수를 뿌리며 축성을 했다.

투석기가 돌을 날렸다.

십여 개의 묵직한 돌이 날아갔다. 저마다 흰 빛을 머금고 있어, 뱀파이어들에겐 사뭇 위협적이었다.

< 소환자 전직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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