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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95화 (195/250)

< 체계 확립 -3- >

사자가 하늘마루를 타고 떠났다. 거의 동시에, 영웅들이 돌산 마을에 도착했다.

강찬이 돌산 마을을 둘러보더니 시혁에게 말했다.

[여기에 채석장과 광산을 짓겠다고 하셨지요? 그럼 아예 대장간과 제작소, 가공소도 짓는 게 좋겠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돌산 마을을 광공업 중심 도시로 키울 테니까, 관련 있는 건물은 모두 지어주세요.]

[좋습니다. 저한테 맡기세요. 아, 여긴 병영이나 훈련소 같은 건 필요 없습니까?]

[만들어야지요. 하지만 좀 있다가 지으려고 합니다. 협회장님한테 지원 요청을 했거든요.]

[웬 지원 요청이요?]

[드워프들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드워프들이 광공업에는 최고 아닙니까? 여기서 나중에는 드워프 병종도 육성할 생각입니다.]

[아,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강찬도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하늘마루가 성역에 도착하자, 손문철이 금방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좋습니다. 안 그래도 하늘마루 건설에 참가한 드워프들이 보채던 참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내드리지요.]

[지금은 뭐 시킬 게 없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차차 시키세요. 드워프들도 처음에는 단순 작업만 할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몇 년 뒤죠. 4차 확장을 한 다음 이사님이 뭘 만들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냥 무난하게 끝날 수도 있어요.]

[그럴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시련 때도 고생하셨잖습니까? 어떤 형식으로든, 그때보다 더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봅니다.]

[어쩔 수 없지요. 그럼 협회장님도 조심하셔야겠네요. 조만간 최종 확장 하신다면서요? 최종 확장하고 얼마 지나면 대적자가 배치됩니다.]

[휴, 저도 걱정입니다. 제가 대적자를 꺾기는 힘들 것 같고, 최대한 정보를 모아 봐야지요.]

시혁이 지원하기도 힘들고, 손문철이 도움을 청할 만큼 아르거스의 인맥이 넓은 것도 아니고.

손문철이 대적자에게 패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 같았다. 대적자는 대부분 현신의 힘을 빌리곤 하니까. 현재의 손문철로서는 현신이 일으키는 재앙을 막을 힘이 없다.

곧 하늘마루가 돌아왔다. 적어도 1백이 넘는 드워프 장인과 장로들을 실은 상태였다.

드워프들이 돌산 마을에 내렸다.

“여, 오랜만이야!”

가장 선임인 브라이트가 강찬 등 주요 영웅들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시혁이 반신의 시련을 받았을 때 이미 안면이 있었던 것이다.

강찬과 김미애는 반갑게 드워프들을 맞이했다.

“잘 오셨습니다.”

“환영해요. 많은 도움이 되겠어요.”

“오색 현자, 아니 백색 현왕께서는 안녕하신가? 잘 지내시지?”

[암, 나는 잘 지낸다. 브라이트, 그대도 얼굴이 좋아 보이는구나.]

“듣고 계셨습니까? 헤헤, 저야 죽지 못해 살고 있지요. 예전이 좋았습니다. 하늘마루를 만든 건 제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요즘엔 밤마다 그 생각이 나서, 산사태 군주님을 졸라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잘 왔다. 비록 지금은 내가 비루한 상태이지만, 훗날 하늘마루와 같은 것을 만들게 되면 브라이트, 그대를 반드시 참여시키도록 하마.]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시혁은 즉석에서 브라이트를 돌산 마을의 촌장으로 임명했다.

반발은 없었다.

브라이트가 추후 모든 광산과 제작소를 총괄하리라는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드워프의 손재주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으니, 다들 잘 됐다고 박수를 쳤다.

곧 돌산 마을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생산한 것은 석재였다. 주변 돌산에 널린 돌을 네모반듯하게 깎자, 말이 끄는 수레가 그것을 신전 마을로 운반해 왔다.

권세 진영 대부분의 건물은 석재가 있어야 건설이 가능하다. 시혁의 성역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것이다.

수십 대의 수레가 줄을 지어 신전 마을로 왔다.

영웅들에게 의뢰하여 새로운 건물을 짓게 했다. 마법의 탑이나 훈련소, 성당 같은 중급 건물들이었다.

마을 회관을 아성으로 강화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며칠 지나면 충분한 자원이 모일 듯했다.

시혁은 가만히 2차 확장 조건들을 따져보았다.

자질구레한 것은 완수되었다.

남은 것은 딱 하나.

정치 체계를 세우는 일이다.

시혁은 마그누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짧은 시간, 마그누스는 자신의 영향력을 꽤나 확보했다.

오우거 사냥으로 주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두 마을을 잇는 도로를 건설하면서 많은 병사들을 포섭한 것이다. 계속 촌장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도 한몫을 했고.

쐐기를 박는 뭔가가 필요했다.

이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상징적인 어떤 장면이.

금방 방법을 생각해 냈다.

[마그누스.]

“예, 백색 현왕님.”

이름을 부르자 마그누스가 냉큼 대답했다.

[그 동안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백색 현왕님의 신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네 선조가 오우거 사냥꾼 그란이라고 했지?]

“예.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란 경이 널 자랑스러워하겠구나. 네 충성을 갸륵히 여겨, 네게 상을 내리겠다.]

성대한 행사를 열었다.

작위 수여식.

신전 마을 사람들만 참가하지 않았다. 돌산 마을은 물론, 오크 마을에서도 오크들이 와서 참석했다.

[마그누스와 군터, 브라이트는 앞으로 나서라.]

수많은 시선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혁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셋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마그누스와 군터는 당당한 표정을 지은 반면, 브라이트는 다소 머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앞선 둘은 마을 안정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지만, 브라이트 자신은 아직 한 게 별로 없었으니까.

시혁은 손을 내밀었다.

그에 따라 하늘이 백색으로 물들었다.

하늘 중앙에서 하얀 인영이 내려왔다. 언젠가 죽음 지혜가 보여주었던 환영 마법이었다.

주민들이 그걸 보고 웅성거렸다.

“백색 현왕이시다!”

“뭘 하시려는 거지?”

시혁의 환영은 몇 자루의 무기를 쥐고 있었다.

검, 도끼, 망치.

섬광의 검, 살육의 도끼, 장인의 망치.

영웅일 때 수집한 무기들.

하나같이 상급 보물이었다. 상당히 경력이 쌓인 영웅들이나 들고 다니곤 했다.

주민들이 경탄하는 얼굴로 보물들을 쳐다보았다.

시혁의 환영이 내려갔다.

주민들이 급히 자리에 엎드렸다. 주인공인 셋도 그랬다.

[일어나라.]

부드럽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그누스와 군터는 몸만 움찔거렸다. 감히 고개를 들 생각도 못했다. 브라이트만 눈치를 보다가 슬쩍 일어났다. 이후 시혁이 몇 번 더 재촉을 하자 그때야 슬금슬금 몸을 일으켰다.

시혁이 가볍게 손짓을 했다.

들고 있던 세 개의 보물이 둥둥 떠서 셋을 향해 날아갔다.

셋은 송구스럽다는 듯 무기를 잡았다.

마그누스는 검, 군터는 도끼, 브라이트는 망치.

눈부신 빛이 뿜어졌다.

흰색, 붉은색, 회색의 빛이 소용돌이치며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으악!”

주민들이 엉겁결에 비명을 질렀다.

반면 셋은 홀린 듯이 그 빛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기에서 뿜어진 빛이 그들의 핏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의 피에 각인되어, 본인이나 그 후손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시혁은 웅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그누스, 너는 이제부터 나의 기사다. 섬광의 검을 그 증표로 내리니, 성역을 보호하고 질서를 지키도록 해라.]

“예, 백색 현왕님.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마그누스가 머리를 조아렸다.

군터와 브라이트에게도 한 마디씩을 했다.

각각 대전사와 장로로 임명했다. 군터는 확연히 감격한 얼굴이었고, 브라이트도 기꺼운 표정을 지었다. 드워프들에게 장로란 직책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축복을 내려주었다.

흰 빛이 폭격하듯 언약식에 참가한 주민들에게 내리꽂혔다.

자질구레한 질병이 모조리 치유되고, 그들의 더럽던 얼굴이 순식간에 깨끗해졌다. 노인은 회춘하여 피부가 뽀얗게 변하고, 코흘리개 아이는 똑똑해져 영악한 눈빛을 빛냈다.

주민들이 무릎을 꿇으며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시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 정도 했으면 당분간은 셋을 중심으로 일이 돌아갈 것이다. 시혁은 이따금 방향만 정해주면 되겠지.

일종의 삼두정이라고 할까.

아니, 아달까지 하면 사두정이다. 천사들은 하늘마루에 머물면서 바깥일에는 개입하지 않고 있으나, 엄연히 시혁의 성역을 구성하는 주요 종족 중 하나이니까.

수여식을 구경한 강찬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건 좀 심각하게 보여주기 식이네요.”

[그렇지요? 뭐, 21세기 지구에서도 보여주기가 횡행하는데, 아르거스에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잖습니까?]

“하긴 그렇겠습니다. 오히려 지구보다 더 잘 먹히겠습니다.”

[문명이 다 파괴되었다가 겨우 쌓아올리는 세계입니다. 지구에서도 선진국 수준의 시민의식을 기대할 수는 없지요. 차라리 아르거스 식 용비어천가를 짓는 게 낫습니다.]

“그러다가 이사님 영향력이 낮아지진 않겠지요?”

[하하, 그건 불가능합니다. 제가 신이 되어서 성역이 신역으로 승격된다면 모를까, 그 전까지는 저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마무리를 지었다.

셋이 각자 받은 보물을 치며들자 태양빛이 반사되어 찬연한 섬광을 내뿜었다. 주민들이 그걸 보고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개중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질투심과 시기심 때문이다.

성역이 무난하게 커지면, 지금 작위를 수여 받은 이들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뻔하니까.

그러나 불만을 드러내진 못했다.

뭐니 뭐니 해도 시혁에게 직접 점지 받은 인물들이 아닌가. 성역에서 반신의 뜻을 거스르기란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시혁은 넷을 불러 모았다.

하늘마루에서 회동이 열렸다. 시혁의 주요 영웅들까지 참석을 했다.

브라이트나 아달은 태연했지만, 마그누스와 군터는 다소 위축된 기색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둘은 아직 부족함이 많으니까.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나중에는 종족의 왕으로 성장하지 않겠나.

[앞으로 성역의 대소사를 그대들에게 맡기겠다.]

시혁의 말뜻은 간단했다.

지금은 건물 하나를 지어도 시혁이 지시를 해야 짓는다. 집 한 채도 정말 필요해야 짓고, 그 다음에는 꼭 시혁에게 보고를 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세 마을에 일종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셈이다.

사실 그게 시혁에게도 필요했다.

현재 시혁의 성역은 인구 1만이 넘어섰다. 지구에서도 작은 읍 규모는 된다고 봐야 했다. 당연히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텐데, 그걸 다 해결하기는 힘들었다.

군터가 가슴을 두드렸다.

“맡겨 주십시오! 오크들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마그누스도 굳건한 눈빛을 보냈다.

지금까지 촌장 역할을 계속 했으니 잘 할 것이다. 시혁도 매일 와서 상태를 확인할 거고.

다만 중요한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시혁은 넷을 보며 말했다.

[가끔 종족끼리 분쟁이 발생할 것이다. 그때는 아달 성주가 중재하도록 해라. 만약 아달 성주의 중재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내게 가져와라.]

“예, 백색 현왕님.”

넷이 머리를 조아렸다.

이때쯤, 마법의 탑과 성당 등 주요 건물이 완공되었다.

모든 조건 완료.

정치 체계도 확립했고, 인구 조건과 군대 조건, 건물 조건도 만족시켰다. 자연히 2차 확장이 시작되었다.

1차 확장 때와 같았다.

시혁의 신전에서 흰색 광채가 솟구쳤다.

영웅들이 그것을 확인했다.

“성공이네요.”

“아슬아슬 했습니다.”

시혁은 시간을 확인했다.

귀환 30분 전.

까딱 잘못했으면 2차 확장을 내일로 미룰 뻔 했다.

전투를 시작했다.

< 체계 확립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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