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계 확립 -1- >
먼저 다양한 건물이 필요하다.
채석장, 성당, 마법의 탑, 훈련소, 마굿간 등등.
마을 회관을 아성으로 강화하는 것은 기본.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정치 체계를 확립해야 했다.
과두정을 세우든, 군주정을 도입하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그누스가 있지 않느냐고?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지금 마그누스는 촌장이긴 하지만 그 권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중요한 일은 시혁이 다 처리했다. 사소한 분쟁도 처리하지 못해 시혁이 아르거스에 오길 기다릴 때도 많았다.
2차 확장의 조건은 간단하다.
마그누스가 재판권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뜻. 마그누스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라도.
지금까지는 지지부진했다.
마그누스가 촌장이 되고 벌써 3년이 지났지만, 마그누스는 자신의 무력을 갈고 닦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시혁은 자신의 성역을 둘러보았다.
많이 커졌다.
인구가 거의 5천으로 늘어났다. 병사도 3백으로 늘렸다. 날이 밝으면 주민들이 일을 하러 나가고, 어두워지면 돌아와 잠을 잤다.
마그누스가 시혁의 강림을 느끼고 절을 했다.
“백색 현왕님, 오셨습니까?”
[그래. 별일은 없었지?]
“예. 성역은 항상 평화롭습니다. 다만 최근에 괴물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웅들이 퇴치하고 있지 않느냐?]
“다른 성역보다 영웅들이 많이 방문합니다만, 있을 때는 많고 없을 때는 없어서 문제입니다.”
그건 그렇겠다.
시혁의 성역에는 한국인 영웅들이 대부분이니까. 같은 시간에 방문했다가 같은 시간에 빠져나가니,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그 점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매일 전투를 벌이는 것도 문제였다. 성역이 계속 확장되는 점은 좋지만, 남은 중립 괴물들이 성역에 자리를 잡으니까.
사자를 파견하여 의뢰를 넣기도 힘들었다. 시혁의 성역은 한국인 영웅들로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웅이 다가 아닌데?
[천사들이 있지 않느냐. 그들이 가만히 두고만 보진 않을 텐데?]
그렇다.
하늘마루의 천사들이 있다.
시혁이 아달을 하늘마루의 성주로 임명했으니, 당연히 성역을 수호해야 한다는 의무가 따라온다.
마그누스가 잠깐 침묵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천사들은 마을만 보호하지, 성역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도 괴물들이 많은데, 퇴치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흠, 그들이 좀 무심하긴 하지.]
종족의 차이라고 할까.
인간들은 숲에 들어가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하고, 마을 밖에 밭을 만들 때가 많았다. 천사들은 그들까진 보호하지 않았다. 신전이 있는 마을만 자기들의 보호 아래에 있다고 주장하는 듯했다.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마그누스. 좋은 생각 있느냐? 네가 촌장이니, 네 의견을 듣고 싶다.]
마그누스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군대를 늘리고, 성벽을 강화해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다.
시혁이 답답함을 느낄 때,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를 했다.
“소수의 병사들을 육성시켜 특수 부대를 창설하면 어떻겠습니까?”
[특수 부대라고?]
“예. 저희는 영웅님들처럼 급격히 강해지진 못합니다. 그래도 지난 3년 동안 훈련과 괴물 사냥을 병행해서 상당히 강해졌다고 자부합니다. 현왕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마법 무구를 몇 점 내어주신다면, 어지간한 중립 괴물은
저희가 퇴치할 수 있습니다.”
마그누스의 말을 듣는 순간, 시혁의 머릿속에서 어떤 계획이 그려졌다.
이거라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겠다.
흔쾌히 허락했다.
[좋다. 네가 적임자를 뽑아봐라. 그들을 보고 결정하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백색 현왕님!”
마그누스는 추리고 추린 10명의 병사들을 데려왔다.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하고 두 눈에 정광이 어려 있었다. 어떻게 수련을 했는지, 다들 옅은 마나의 향기가 풍겼다.
마법 무구로 장비시키면 상급 병종 7, 8레벨 정도의 위력은 충분히 내겠다.
시혁은 보물 창고를 개방했다.
각자 원하는 무기와 방어구를 들려주었다.
화염 칼날, 빙하 창, 벼락 도끼, 돌의 갑옷, 날개 방패, 굳셈의 투구 등등.
좋은 마법 무구는 아니었다. 가장 기본적인 물건들이었다. 그래도 병사들은 좋다고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백색 현왕님!”
“기대에 부응하여, 기필코 괴물들을 몰아내겠습니다!”
마법 무구를 차려입자, 더 이상 일개 병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기사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좀 모자랐다.
궁리 끝에, 전투단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전투단장은 당연히 마그누스.
마침 마굿간이 완성되었다. 훈련된 군마는 아니지만, 저마다 말 위에 오르자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모습이 되었다.
전투단이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주민들이 선망에 찬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저 사람들 좀 봐!”
“병사들이잖아? 저런 무구는 어디서 구했대?”
“백색 현왕께서 내리셨겠지. 멋지다!”
“우리 톰은 언제 저런 걸 받을까?”
“마나는 다룰 수 있어야 된다고 하잖아. 저기 봐, 크리스도 끼어 있어.”
“쟨 완전히 인생 역전했네.”
영웅들도 전투단을 관심 있게 살폈다.
신아영이 주먹이 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대련을 해보자고 나섰다.
시혁도 궁금하긴 했다.
1대 10의 대전이 벌어졌다.
신아영은 한참이나 전투단과 치고받았다.
이미 준신 계급에 이르렀으니 상대가 안 됐다. 50 레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전투단 10명은 늘씬하게 얻어맞고 연병장에 쭉 뻗었다.
신아영이 이마에 난 땀을 훔쳤다.
“휴, 제법인데요? 오랜만에 땀 좀 뺐어요.”
[어떻습니까?]
“50레벨 영웅한테는 안 돼요. 그래도 어지간한 중립 괴물은 잡겠어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시범 삼아 중립 괴물 한 마리를 잡게 했다.
야생 오우거.
조금 버거웠지만, 10명이 함께 하면 사냥이 가능했다.
신아영이 따라가려는 것을 말렸다.
이 정도는 전투단이 해결할 수 있어야 했다. 애도 아니고, 언제까지 영웅들과 시혁이 보살필 수는 없지 않나.
전투단이 용기백배하여 마을을 떠났다.
시혁은 전투단을 시험하기 위해 그들만 보낸 거였다. 그런데 그걸 자신들을 믿어서 그런 거라고 좋을 대로 생각했나 보다.
“괜찮을까요?”
신아영이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시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모릅니다. 다칠 수도, 죽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게 저들의 인생이에요. 많이 복구되었다곤 해도, 아르거스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성입니다. 지구의 소말리아 보다 더 심각한 곳 아닙니까? 잘 하길 기대해야지요.]
야생 오우거가 있는 곳은 마을에서 꽤 멀다. 전투단이 말을 타고 가긴 했어도, 다녀오려면 며칠 걸릴 것이다.
그 사이 다른 조건을 만족시켜야겠다.
가장 시급한 것은 채석장을 짓는 문제였다.
채석장은 근처에 돌산이 있어야 한다. 지금 시혁의 신전은 드넓은 벌판 한가운데 세워져서 인근에 채석장을 건설할 만한 곳이 없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두 번째 마을을 세워야 했다.
안 그래도 마을 하나로 버티기에는 부족하던 참이었다. 신전 주위 마을은 농업이 발전했으니, 광공업 등 다른 산업을 특화시킬 마을이 필요했다.
마을의 시작은 마을 회관부터.
꽤 먼 곳에 돌산들이 늘어서 있었다. 시혁이 이적을 발현하여 살펴보니, 돌만 아니라 각종 광물이 풍부했다.
거리는 약 50 킬로미터.
마을 대 마을로 보면 멀지만, 제 2 도시라고 생각하면 적당한 거리였다.
다만 그쪽이 개척이 안 되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괴물들도 꽤 돌아다니고, 떠돌이 늑대도 흔히 보였으니까.
원정대를 구성했다.
의뢰를 내자, 놀고 있던 영웅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강찬 씨, 부탁합니다.]
“걱정 마세요. 그런데 오늘 안에 다 끝나진 않겠네요?”
[그렇겠지요. 길도 닦아야 하고, 채석장을 건설한 다음 돌을 운반해 와야 상급 건물을 만들 수 있거든요. 지구 시간으로 1주 정도는 걸릴 거라고 봅니다.]
“상당히 오래 걸리네요.”
[매일 아르거스에 오고 있으니까요. 다른 반신들 같았으면 지시해한 다음 다시 오면 아르거스에서는 한 달이 지났을 텐데, 우린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원정을 위해, 시혁은 하늘마루를 지원했다.
건축 자재는 모두 하늘마루에 실었다. 주민들도 많은 수가 탔다. 굳이 걸어갈 필요 없이, 하늘마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마루는 10킬로미터마다 정지하기로 했다. 총 4곳에 감시탑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돌산 기슭에 마을을 건설하면 하늘마루의 일이 끝난다.
천상지와 대수림, 대밀림에 사자를 파견했다.
인구를 늘리기 위함이었다. 단기간에 인구를 불리는 것에는 이주 만한 게 없으니까.
여기까지 일을 처리하자 시혁이 할 일이 없어졌다.
최소한 채석장이라도 완성돼야 뭐가 될 텐데, 그저 성역 이곳저곳을 살피는 게 전부였다.
전투단과 원정대, 사자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다들 잘 하고 있었다.
전투단은 오우거 사냥에 성공했다. 단원 세 명이 팔이 부러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이적을 써서 치료해줄까?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마그누스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카일, 반, 줄리아드. 다들 괜찮나?”
“으으, 죽지는 않을 것 같아.”
“무식한 오우거 새끼, 아우, 옆구리 땅겨.”
“마그누스,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전투단이 뒷정리를 했다.
마그누스가 오우거 시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걸 어떻게 하지?”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증거로 제출해야지.”
“백색 현왕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지 않을까?”
“그야 모르는 일이잖아. 백색 현왕께서는 할 일이 많으셔. 괜히 누를 끼쳐 드릴 수는 없지.”
“맞아.”
전투단은 오우거의 시체를 적당히 쪼갰다.
각자 말에 싣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부상자들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응급처치는 했으나, 제대로 된 치료는 마을에 도착한 다음에나 받을 것이다.
오는 길은 꽤 힘겨웠다.
피 냄새를 맡은 늑대들이 달려들었다. 트롤이나 코볼트 같은 괴물이 덤빌 때도 있었다. 전투단은 서로 의지하고, 힘을 합치며 겨우 마을로 돌아왔다.
외곽 감시탑을 지키던 궁병들이 전투단의 귀환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어어, 저기 봐!”
“전투단이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백색 현왕님께 알려!”
요란하게 종소리가 울렸다.
병사들이 당황한 얼굴로 뛰어다녔다. 치료사 역할을 하는 채집꾼을 부른다, 복사들에게 성수를 얻어온다, 아주 야단도 아니었다.
시혁은 그들에게 한 마디를 했다.
[부산 떨 것 없다. 전투단은 감시탑에 머무르게 해라. 뇌운 학자를 보내주마.]
“예, 백색 현왕님!”
병사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김미애는 시혁의 지시를 받아 채집꾼과 복사를 거느리고 외곽 감시탑으로 갔다. 거기서 토막 난 오우거 시체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꽤 덩치가 크네요? 고생 했겠어요.”
“아닙니다. 싸울 만 했습니다.”
“에휴, 그런데 부상자가 셋이나 나왔어요? 죽은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김미애는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치료 마법에는 조예가 없지만 이 정도는 쉬웠다. 채집꾼과 복사의 도움을 받자,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세 명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병사들이 전투단의 무기와 방어구를 깨끗이 닦았다. 번쩍번쩍 광을 내고, 타고 다니던 말들까지 씻기자 마그누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체계 확립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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