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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92화 (192/250)

< 방문자 -2- >

지금 이 자리에서 아르거스에 대해 알려줄 수는 없었다. 최소한 손문철이나 다른 사람들과 의논을 해봐야겠지.

“그런 거 아니니 걱정 마세요. 지호 씨는 멀쩡합니다. 델로크가 특별히 악의를 가진 것 같진 않으니, 그냥 행운이라고 생각하세요. 델로크와 어떤 계약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조심만 하면 해가 되지는 않을 겁

니다.”

“휴, 다행입니다.”

한지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시혁은 한지호가 자신의 집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배려했다. 컴퓨터 사용 권한도 주었다.

어차피 시혁의 컴퓨터는 협회의 보안망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한지호가 쓰든, 죽음 지혜가 쓰든 별 일 없을 것이다. 인터넷이나 하고, 논문 좀 읽는 게 고작이겠지.

경호원들이 한지호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다음날, 시혁은 손문철에게 죽음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손문철이 깜짝 놀랐다.

“죽음 지혜가 지구에 왔다고요?”

“온 건 아니고, 잠깐 통신을 했다고 생각하시는 게 맞겠습니다. 일반 소환자를 매개로 30분 정도 머무는 게 고작이에요.”

“위험하진 않을까요?”

“차원 전이 마법에 한계가 있어서 더 이상은 힘듭니다. 제가 발견한 무한의 힘을 써도 마찬가지고요. 낫슈바켈의 차원 이동 마법은 되어야 다른 세계에 제대로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그럼 다행이고요. 어쨌든 내일 밤에 또 온다는 거지요?”

“예. 30분 대화한 다음 2시간이 지나야 또 연결이 되니까 총 3번 대화할 수 있겠습니다.”

“저도 가봐야겠네요. 이 이사님도 같이 가는 게 좋겠지요?”

“저도 찬성입니다.”

금요일 저녁에 시혁의 집에 다들 모였다.

한지호가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족발에 소주를 먹여주자 금방 분위기가 풀어졌다. G급 이능력자들 앞이라는 사실도 잊고 여러 농담을 주고 받았다.

금방 시간이 되었다.

한지호의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금방 죽음 지혜로 변했다.

죽음 지혜는 손문철과 이미라를 한 차례 쳐다보았다.

“반신들인가?”

“맞아. 산사태 군주와 파괴 성주라고 불려.”

“산사태 군주는 알겠다만, 파괴 성주는 처음 듣는다. 약한 반신인가 보지?”

“흥, 약해서 미안하네요.”

이미라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죽음 지혜는 멀뚱멀뚱 이미라를 쳐다보았다.

컴퓨터가 있는 서재 쪽을 쳐다보더니, 시혁에게 확인을 했다.

“내가 말한 것은 준비되었나?”

“그래. 준비 됐어. 컴퓨터 켜고 들어가면 돼. 협회에 등록해놨으니까, 어지간한 논문은 다 볼 수 있을 거야. 혹시 안 되는 잡지 있으면 지호 씨 통해서 알려줘.”

“좋다. 그런데 이렇게 우르르 몰려온 이유가 뭐지?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나?”

“흠, 흠.”

손문철이 헛기침을 했다.

“먼저 확언을 받고 싶은 게 있습니다. 죽음 지혜, 당신은 우리 지구나 인류, 그리고 당신을 전이시킨 한지호 씨에게 어떤 위해도 끼치지 않는 게 확실합니까?”

“질문이 너무 광범위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라.”

“당신의 존재가 우리들에게 위협적이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죽음 지혜가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의 마나를 퍼뜨린다. 위협적이지 않느냐고? 당연히 위협적이지. 한지호만 해도 내가 아르거스를 통해 오는 게 아니었으면 진작 피골이 상접하여 빈사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대한민국의 협회장으로서 당신의 체류를 허락할 수가……”

시혁은 가만히 손을 들어 손문철을 제지했다.

둘 다 헛다리만 짚고 있다.

죽음 지혜를 보며 말했다.

“죽음 지혜. 거두절미하고 묻겠다. 우리 종족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고 했지? 한지호에게도 마찬가지고?”

“당연하다. 내 고향 세계도 아니고, 이 먼 곳에 무슨 볼 일이 있겠느냐? 그저 너희 종족이 쌓은 지식에만 관심이 있다.”

“맹세할 수 있어? 네 두개골에 대고, 우리 별과 종족, 네 전이 대상인 한지호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물론, 네가 먼저 공격을 당했을 때는 예외야.”

“그깟 맹세 따위…… 뭐 좋다. 그렇게 해서 안심이 된다면 그리 하도록 하마. 대신 나도 조건이 있다.”

“뭐지?”

“내가 지구에서 활동하는 동안 전폭적인 협력을 요구한다. 아일리케에서도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정말 중요한 지식은 기밀로 묶어놓는 경우가 많더군. 그것들을 열람할 권한을 줬으면 한다.”

어쩐다?

시혁은 손문철에게 시선을 던졌다.

손문철이 갈등하다가 말했다.

“모든 걸 다 공개할 수는 없다.”

“그 정도는 감내하도록 하지.”

“그리고 우리에게 얻은 지식을 이용해서 우리에게 해를 끼쳐서도 안 된다.”

“이미 그러기로 하지 않았느냐? 난 너희 세계에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지식뿐이다. 설령 내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그건 내 세계에 국한될 것이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반대할 수는 없었다.

죽음 지혜만 이득을 보는 것도 아니다. 죽음 지혜 또한 머무르면서 아일리케의 마법 지식을 나누기로 했다. 비록 특정 계통 마법에 편중되어 있긴 하나, 그 지식 또한 수준이 아주 높을 터였다.

정식으로 맹세를 했다.

자신의 두개골을 건 서약.

그걸 보고서야 손문철과 이미라가 안심한 기색을 보였다.

아무리 죽음 지혜가 인류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이렇게 못 박아 놓는 것과 아닌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까.

대화를 마무리 짓고, 죽음 지혜가 시혁을 돌아보았다.

“아일리케는 언제 올 거냐?”

“내 성역이 곧 2차 확장에 들어간다. 그게 끝나면 한번 방문하도록 하지.”

“좋다. 기다리고 있으마. 흠, 인간 요리사들을 수배해 놓아야겠군.”

밤을 새어가며 죽음 지혜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르거스와 지구의 연결을 끊을 생각이라고 하자, 죽음 지혜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 아르거스는 전 차원계의 보석이다. 그만큼 마나가 풍부한 행성은 찾아보기가 힘들어. 영웅도 되고 반신도 될 수 있는 곳인데 왜 연결을 끊겠다는 거냐?”

“괴수들 때문이야. 마나 때문이기도 하고. 지구는 원래 마나가 매우 적은 곳이거든. 아르거스와 연결되면서 생태계가 뒤틀리고 있어.”

“대신 얻는 것도 있지 않느냐. 아르거스와의 연결을 끊는 것은 여기 말로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한국어가 훌륭한데? 다른 것보다 이계신 때문에 그래. 지구가 공격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까.”

“녹스가 소환했다는 신 말이냐? 흠, 그건 일리가 있군. 하지만 아르거스를 통해 넘어온다고 해도 분신 한 토막이 전부일 텐데, 그게 위협이 될까?”

“아르거스가 이 사단이 난 게 녹스가 소환한 심연의 마왕 때문이었잖아. 다른 세계라고 예외가 될 순 없어.”

“흠, 난 의견이 다른데?”

“어떻게?”

“녹스가 이계신을 소환하고, 신들이 대종사를 공격하게 만든 후, 지금 같은 상황이 되도록 유도한 자가 있다고 본다.”

“설마. 대종사 중 하나가 진범이라는 얘기야?”

“대종사일 수도, 신들 중 하나일 수도 있지. 너는 이름도 모르는 파괴신을 크게 생각하나 본데, 차원 이동이란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아르거스의 신들이 차원문을 뚫은 것도 기적적인 일이야. 오죽하면 아일리케의 신

들이 일개 소환자로 신위 경쟁에 뛰어들었겠느냐?”

“뭐라고?”

시혁은 스스로의 귀를 의심했다.

죽음 지혜가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몰랐느냐? 하긴 아는 자는 거의 없는 사실이니까. 세계마다 다르지만, 많은 신들이 아르거스를 오가고 있다. 물론 본신을 보낸 신은 없고, 하잘 것 없는 분신을 활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럴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어.”

“그럴 테지. 내가 이곳에 와서 가장 놀란 게 두 가지니까.”

첫 번째는 에테르, 즉 마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는 신들의 존재감이 없다는 거였다. 다른 세계는 그나마 신들이 개입해서 검은 천체에서 뿜어지는 에테르를 조절하는데 지구는 그런 게 없었다.

시혁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럼 다른 세계 중에는 차원문을 아예 닫은 곳도 있겠네?”

“뭐 하러? 마나는 곧 자원이다. 가공만 제대로 하면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뭐, 이계의 침입으로 간주하고 막아낸 곳도 있긴 있겠지. 하지만 내게 결정권이 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시혁은 입을 다물었다.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다.

죽음 지혜가 시혁을 보며 말했다.

“너희 세계의 일이니 너희가 알아서 해라. 난 더 할 말이 없다. 다만 잘 따져보는 게 좋을 거다. 아, 끊을 때 끊더라도 지식은 좀 남겨놓고 가고.”

“어휴, 마음대로 해.”

시혁은 머리를 흔들었다.

논의가 이어졌다.

손문철은 죽음 지혜를 더 감시하길 원했다. 감시자를 붙일까 하다가, 시혁이 간단히 해결했다.

“지호 씨, 다음 학기에 복학한다고 했지요?”

“예. 좀 어중간하게 전역해서요. 알바를 할까, 공부를 좀 할까 생각 중이에요.”

“마침 잘 됐네요. 복학할 때까지 제 비서로 일할 생각 없습니까? 시급은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우와, 진짜요?”

한지호가 수도권 모 대학 비서행정과에 재학 중이라는 점을 노린 한 수였다.

안 그래도 비서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참이다.

일주일에 나흘은 광주, 이틀은 지리산, 하루는 서울, 이런 식으로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더구나 각종 학회 초대장은 어찌나 많이 날아오는지 몰랐다. 캘리포니아와 베이징도 가봐야 하니, 누군가 일정을 조율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중에는 전문적인 비서를 뽑아야겠지. 지금은 알바생으로도 충분했다.

“전 딱 1년 학교 다녔는데 괜찮을까요?”

“별일 없을 겁니다. 그냥 제 일정 관리만 해주시면 돼요. 제가 외부 활동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요.”

“맡겨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지호가 힘차게 외쳤다.

손문철이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한지호는 시혁의 옆집에 들어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기한은 8월 말까지로 잡았지만, 상황에 따라 연장하면 그만이었다.

그때까지는 둘이 붙어 다녀야 한다. 자연히 경호원들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한지호가 엉덩이를 들썩였다.

“언제부터 출근할까요? 내일 바로 오면 될까요?”

“지호 씨 편한 대로 하세요. 근무시간은 오전 8시에서 오후 8시까지고, 절 그냥 따라다니면 됩니다. 제가 병원에서 진료하거나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을 때는 근처에서 볼 일 보세요. 휴일이 문젠데, 제가 쉬는 날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일요일에 안 쉬세요?”

“전 안 쉽니다. 계속 일하고 있어요.”

“저런……”

한지호가 동정어린 눈으로 시혁을 쳐다보았다.

“일주일에 하루, 지호 씨가 원하는 날 쉬기로 하지요. 혹시 모르니까 델로크가 오는 날은 피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저도 그게 좋아요.”

어느새 새벽이 되었다.

죽음 지혜는 이틀 후에나 지구를 방문할 것이다.

손문철과 이미라는 근두운에 탑승하기 위해 진작 시혁의 집을 떠났다. 시혁이 마지막까지 일을 처리하느라 잠도 못 자고 있었다.

벌써 새벽 5시.

한지호는 옆집으로 가고, 시혁은 자기 침대에 누웠다.

아르거스로 향했다.

영웅들의 귀환 시간이 간당간당했다. 별 수 없이 바로 전장에 들어갔다. 한 차례 열띤 전투 끝에, 당당하게 승리한 후 지구로 돌아왔다.

이런 나날이 반복되었다.

우려와 다르게 죽음 지혜는 얌전했다.

지구에 올 때마다 황금 같은 시간을 논문을 보는 것에 썼다. 그것으로도 아쉬웠던지 한지호에게 보고 싶은 논문을 미리 받아놓으라고 시켰다. 한지호는 투덜거리면서도 죽음 지혜의 편의를 봐주었다.

한지호는 생각보다 일을 잘 했다.

시혁의 일정을 쉽게 관리해 주었다. 캘리포니아와 베이징 방문 일정도 정해주었다. 휴가삼아 여름에 두 곳을 연달아 다녀오기로 했다.

그렇게 6월이 되었다.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었다.

아르거스에서 시혁의 성역을 2차 확장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시혁의 얼굴은 썩 좋지 않았다.

2차 확장의 조건이 생각보다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 방문자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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