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190화 (190/250)

< 에테르 민감도 검사 >

120명 전원에게 검사를 했다.

그 반응을 정리하자, 한 가지 법칙이 눈에 들어왔다.

인부는 에테르 파동이 흩어진다.

기본 병종은 에테르 파동이 강해진다.

이때 창병은 에테르 파동이 응집하고, 궁병은 약하게 회전을 한다. 도둑은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복사는 확산되며, 채집꾼은 아주 옅은 빛을 뿌렸다.

계급별로도 차이가 있었다. 앞서 서술한 특징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충분히 잡아내는 게 가능했다.

연구원들이 그걸 확인하고 환호했다.

“다 끝났네요!”

“검사 장치만 만들면 되겠습니다.”

“어떻게 만들죠?”

“간단합니다. 에테르 주입 장치와 검사 장치를 같이 달면 돼요. 음, 그런데 이게 전직한 소환자에게도 통할지는 모르겠네요.”

“일단 만들 수 있는 것부터 만들어 봐요. 안 되면 또 연구해서 만들면 되죠.”

“그래야겠습니다.”

어렵지 않았다.

에테르 주입 장치만 새로 달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관건은 아주 미약한 양의 에테르를 흘려야 된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많은 양을 넣으면 소환자들이 심한 고통을 느꼈다.

새롭게 만든 검사 장치로 소환자들을 검사했다.

김창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기분이 이상하네요.”

“어떤 느낌이 듭니까?”

“몸이 답답합니다. 흙 속에 머리만 내놓고 파묻힌 느낌이에요.”

“곧 좋아질 겁니다.”

시혁은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에테르 파동이 약해지는 게 확연히 보였다.

잠깐뿐이고, 곧 복구되었다.

아주 가느다란 흰색의 원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매일같이 120명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매달렸다. 예정된 1주일이 지나자, 근두운에 탑승했던 120명의 아르거스 정보를 모두 자료화하는데 성공했다.

몇 가지 다른 상황으로 실험을 했다.

우선 시혁이 근두운에 탑승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환을 해보았다. 그러자 한국인 소환자가 소환되는 빈도가 확연히 줄었다.

같이 근두운에 탑승하면 2명 중 1명인데, 그렇지 않으면 10명 중 1명 수준이었다.

기왕이면 시혁이 같이 가는 게 좋다는 뜻이다.

현재 근두운을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게 완성되면 120명이 아닌 600명이 한꺼번에 아르거스로 가게 된다.

지금은 10명 중 1명이라도 모두 소환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게 5배로 늘면 그 정도로는 힘들었다.

공식적인 일정은 이것으로 끝.

120명이 뿔뿔이 흩어졌다.

문을 나서기 전, 김창제가 괜히 시혁 근처를 기웃거렸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됩니까?”

“물어보세요.”

“제가 이능력자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모든 정보를 비밀로 했지만, 알음알음 눈치로 알아낸 모양이다.

시혁은 말을 아꼈다.

김창제는 겨우 숙련 계급이다.

방문 주기는 알 수 없으나 영웅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는 얘기.

더구나 영웅이 된다고 끝이 아니다.

인부 영웅을 누가 쓰겠나.

최소한 중급 병종은 되어야 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겠습니다만, 가능성은 꽤 있는 편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김창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시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시간이 꽤 걸리기는 할 겁니다.”

김창제가 희망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 말씀을 들으니 힘이 납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입니다만, 열심히 살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120명이 나가고, 새롭게 120명이 들어왔다.

이번 일정은 딱 사흘로 잡았다.

지구에서 미리 정보를 파악한 후 들어갔다. 한 명씩 소환을 할 때마다 그걸 대조했다.

성공이었다.

새롭게 만든 측정 장치가 완벽하게 작동했다. 병종이면 병종, 계급이면 계급 모두 똑같이 맞췄다.

시혁의 성역이 아직 1차 확장 수준이라는 게 아쉬웠다.

중급 이상의 병종도 자료를 수집해야 하는데……

문제는 또 있었다.

권세 진영의 병종만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구인은 대개 권세 진영에서 시작한다고 하지만, 전향한 소환자도 많을 테니 아쉬운 대목이었다.

어쨌든 낭보다.

연구원들에게는 정보 송신기를 통해 알리고, 손문철과 이미라에게는 직접 찾아갔다.

이미라가 의견을 냈다.

“저랑 협회장님도 같은 근두운에 탑승하면 어떨까요?”

“저까지요?”

“네. 전 아직 성역이 작아서 전향한 소환자들이 얼마 안 오지만 협회장님 성역은 가끔 권세 진영 출신 소환자가 찾아온다면서요.”

지금까지 둘은 다른 이능력자들과 같은 근두운에 탔다. 그걸 옮겨보자는 것이다.

다음 실험에서는 그렇게 해보았다.

다만 실험 대상자도 조금씩 바꾸었다. 지금까지는 에테르 파동이 한 겹만 있는 대상자를 상대로 했으나, 두 겹이나 세 겹을 가진 대상자 위주로 불러 모았다.

그러자 손문철의 전장에도 일반 소환자가 나타났다.

백색과 은회색 에테르 파동이 관찰되는 이들.

특히 상급 병종과 고급 병종이 많았다. 그에 대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어 좋았다. 비록 시혁이 거기 참석하진 못했지만, 정보 수신기로 정보를 받았다.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자료를 채워나갔다.

아직은 부족하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시혁이 4차 확장만 해도 충분한 정보를 얻을 테니까.

여기까지 거의 한 달이 걸렸다.

이사회에서 새롭게 만든 측정 장치에 대해 보고했다.

이사들이 눈을 반짝이며 보고를 들었다.

“그럼 그 장치를 쓰면 누가 곧 각성할지 알 수 있겠습니다.”

“그것 때문에 만든 거지요.”

“혹시 대량 생산이 가능합니까? 국민들 모두 검사해보면 좋겠습니다.”

“국민들 모두요? 비용이 엄청나게 들 텐데요?”

“대통령님이랑 얘기를 해봐야지요. 값비싼 재료가 드는 건 아니지요?”

“예. 전기만 조금 써도 충분합니다.”

“건강 검진이랑 엮어서 검사하자고 하면 되겠습니다. 협회에서 비용 절반을 댄다고 하면 좋은 반응이 있겠지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일은 순조롭게 풀렸다.

행정부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첫 단계로 군대에 시범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60만에 이르는 국군 장병을 대상으로, 예비 이능력자 가능성을 조사하는 셈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수도방위사령부부터 시작했다.

시혁이 직접 갔다.

정확히 무슨 검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국군에서도 최고위층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국군 장병들의 얼굴이 영 떨떠름했다.

“저, 선생님. 이거 무슨 검사입니까?”

앳된 얼굴의 병장이 슬쩍 시혁에게 물었다.

어떤 식으로든 말을 해주는 게 좋겠지.

국군 전체가 검사를 했다는 소식이 곧 퍼질 테니까. 각종 유연비어가 떠돌게 내버려두느니, 약간은 정보를 제공하는 게 낫겠다.

간단히 설명했다.

“에테르 민감도 검사입니다.”

“민감도 검사 말입니까?”

“예. 천리안이 우리나라 전역을 감시하는 건 아시죠? 그걸 더 심화시켰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람마다 에테르에 반응하는 게 다른데,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보는 검사지요.”

“신기합니다. 그럼 에테르 민감도가 낮은 사람은 에테르 농도가 높은 곳에 들어가도 됩니까?”

“에이, 그럼 안 되지요. 에테르 농도가 아주 옅다면 모를까, 위험한 곳에 들어가면 민감도가 높든 낮든 소용없습니다.”

수도방위사령부 군인들을 검사하는 것은 딱 하루 만에 끝이 났다.

결과는 놀라웠다.

군인들 중 약 1%가 소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만 병종은 대부분 하위에 머물러 있었다. 인부나 기본 병종이 대부분이고, 중급 병종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장교나 부사관, 군의관과 법무관 등 특수한 직책에서만 몇 명 발견되었다.

손문철이 꺼끌꺼끌한 아래턱을 쓰다듬었다.

“생각보다 소환자가 많네요. 우리나라가 지금 5천만 명이니까, 똑같이 1%라고 가정하면 50만 명 아닙니까?”

“우리나라 이능력자가 1만 명이 안 되니까…… 소환자에 비해 이능력자가 꽤 적네요.”

“영웅이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전 국민으로 확대하면 소환자 비율이 좀 줄지 않겠습니까? 오늘 조사는 성별과 연령이 치우쳐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습니다.”

아르거스에서도 젊은 남성의 비율이 높았다. 그것을 감안하면 소환자 대 이능력자 비율은 1%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도 0.5% 수준이지 싶었다.

그렇다면 통상적으로 소환자 50명 중 1명이 영웅이 된다는 소리.

시간이 지나면 늘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랬다.

시혁은 검사 장치를 몇 개 더 만들었다.

이능력자들이 그걸 가지고 전국의 군부대로 이동했다. 하루에 하나씩 조사를 마치자, 새로운 자료가 매일같이 쌓였다.

결론은 비슷했다.

군인들 대상으로 검사를 하면 소환자 비율이 1%가 나왔다. 국군 대상 검사가 끝난 후 일반인 대상으로 무작위 검사를 했더니, 예상했던 대로 0.5%가 나왔다.

비율은 일꾼 병종이 15%, 기본 병종이 35%, 중급 병종이 25%, 상급 병종이 15%, 고급 병종이 10%였다.

마음 같아서는 전 국민을 다 검사하고 싶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군대처럼 줄 세워놓고 모조리 검사할 수는 없지 않겠나. 결국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했다.

지금까지 거둔 성과로도 충분했다.

60만 국군 장병 중 소환자로 밝혀진 게 6천여 명 아닌가. 이들 중 거장 계급이 꽤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이능력자 수백을 확보하는 게 가능하다.

다만 이렇게 하면 등급이 낮으니 가만 놔두는 게 좋겠다. 그래야 전직을 해서 등급이 높아지지 않겠나. 진화보다는 전직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귀띔 정도나 해주고.

대략 일반 소환자 수천 명의 명단을 확보했다.

이중에서 누굴 근두운에 태울지 결정해야 한다.

목표는 고급 병종 대가나 거장 계급 소환자였다. 그들이라야 단기간에 S급 이능력자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여기 명단입니다.”

정확히 6백 명.

시혁은 명단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전원 고급 병종이고, 대가 혹은 거장 계급이었다.

이건 좋다.

그런데 진영이 아주 중구난방이었다. 권세 진영은 물론이고, 15개 진영 전부에 걸쳐 있었다.

한쪽에 앉은 손문철을 보고 말했다.

“차라리 철 진영 위주로 짜는 게 어떻습니까? 근두운에 태워 보낸다고 해서 아르거스에 꼭 방문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수가 너무 부족합니다.”

손문철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고급 병종 소환자들은 직업이 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며칠씩 지리산에 와 있기는 힘들답니다.”

“아, 그렇겠네요.”

“지금 만든 명단은 그냥 임시 명단입니다. 며칠 더 논의를 해서 확정을 지어야지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함께 고민을 했다.

며칠 간 연달아 회의를 했으나 좋은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나중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어차피 600명이 탑승하는 근두운이 완성되려면 얼마 간 시간이 더 필요했으니까.

병원으로 출근했다.

주말이 끼어 있어서 나흘 만에 출근하는 거였다. 예약해 둔 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민수진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원장님, 얼굴 뵙기가 너무 힘드네요. 이러다 밖에서 만나면 못 알아보겠어요.”

“그래요? 전 부장님 보고 싶어서 꿈에 다 나올 지경인데, 이거 섭섭하네요.”

“어머, 애 딸린 아줌마가 어디가 예뻐서요?”

다른 직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쉬지 않고 환자들이 들어왔다.

필요한 치료를 했다. 약을 처방하고, 이능을 발현하고, 오색 치료실에 들르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정신없이 바빴다.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야 좀 한가해졌다.

마지막 환자가 들어왔다.

어디가 아픈지 전신을 옷으로 칭칭 감고 있었다.

피부병이라도 걸린 걸까?

시혁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 환자가 얼굴을 가린 두건을 홱 걷었다.

괴상하게 생긴 얼굴이 드러났다.

살점 하나 없이 뼈만 남은 상태. 뼈는 금속처럼 검게 반들거리고, 두개골은 왕관처럼 변형되어 있었다.

그 얼굴에서, 시혁은 익숙한 이름을 떠올렸다.

“죽음 지혜?”

< 에테르 민감도 검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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