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187화 (187/250)

< 일반 소환자 -1- >

시혁은 셋을 눈여겨보았다.

김창제, 이태수, 박훈.

가만히 명령을 내렸다.

[농장을 지어라.]

이번 전장은 좀 특이했다.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었다.

서쪽에 있는 시혁의 본성과, 동쪽에 있는 죽음 진영 주검 지킴이의 본성이 강으로 이어졌다. 강의 폭이 한강보다 넓어서, 충분히 해군을 운용하는 게 가능했다.

굳이 따지자면 시혁은 강북, 주검 지킴이는 강남.

이번에도 장기전이 예상되었다. 이 넓은 강을 건너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인부들이 투덜거리면서 움직였다.

“또 농장이야?”

“이번에도 오래 걸리겠어.”

“지겹다, 지겨워.”

금방 변화가 생겼다.

시혁이 지정한 곳으로 걷던 한국인 셋이,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 것이다.

“어, 그쪽 아까 지리산에서 보지 않았어요?”

“아! 맞습니다. 아저씨도 협회 실험에 참가하셨지요?”

“그랬지요. 노가다 하는 것보다 더 쳐 준다고 했으니까.”

인부 셋이 수다를 떨었다.

덕분에 작업 속도가 느려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자료를 축적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마나가 모이는 대로 인부를 더 소환했다.

두 명에 한 명 꼴로 한국인이 소환되고 있었다. 그나마 한국인 인부가 열 명 가량 되자, 더 이상 소환되지 않았다.

‘김창제, 이태수, 박훈, 최종인, 성지나……’

시혁은 한국인 인부들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농장 셋과 각종 생산 건물이 완성된 시점이었다. 슬슬 병영과 사격장, 항구 건설에 들어갔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전장은 시혁에게 불리했다.

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주검 지킴이의 본성이 고지대여서, 공격할 때도 애로사항이 있을 것 같았다.

항구를 건설해도 만들 수 있는 것은 작은 보트가 전부.

이거 고민을 해봐야겠다.

“뭐야, 또 여기야?”

처음으로 소환한 창병이 소리를 질렀다.

한국인이다.

시혁은 굳이 명령을 내리지 않고 그냥 놔두었다.

창병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스스로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우선 병영과 사격장을 둘러보더니 항구를 확인했다. 그 다음 농장 쪽으로 걸어갔는데, 인부들을 보고 눈을 끔벅였다.

“어라?”

멈칫하다가 슬며시 그쪽으로 다가갔다.

서로 통성명을 나누었다. 시혁이 가만히 놔두자, 아예 도구까지 손에서 놔버리고 이야기를 했다.

추가로 몇을 더 소환했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두 명에 한 명꼴로 근두운에 태운 사람이 소환되었다. 다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차곡차곡 세력을 불려 나갔다.

이번 전장은 특별한 거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립 괴물도 얼마 없었다. 결국 병력의 규모가 앞선 반신이 승리할 거라는 얘기다.

첫 영웅을 소환했다.

김미애.

대개는 신아영부터 소환했지만 장기전을 염두에 둔 상태라 김미애를 선택한 것이다.

“어떻게 됐어요?”

소환되자마자, 김미애가 질문을 했다.

[가정한 게 맞았습니다. 근두운에 함께 탑승을 하면 같은 전장으로 소환이 되네요. 지금까지 소환한 사람 중에 인부 12명, 창병 5명, 궁병 3명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잘 됐네요. 아, 그럼 아직 100명이 남아 있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그 중에 중급 병종도 섞여 있을 테니 제가 예측하기로는 50명 정도 더 소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은 알 수 없다.

최대한으로 군대 규모를 늘려봐야겠지.

김미애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미리 소환자 계급과 병종을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네요.”

[소환자들 신상부터 제대로 확인을 해야지요. 그 다음에 분석해 보면 방법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야 이사님이 잘 알아서 하실 테니…… 전 뭘 해야 하죠?”

[이 전장에는 특별한 게 없어요. 군대 규모를 최대한 늘리는 게 중요합니다. 농장이랑 벌목소, 대장간 돌아다니면서 생산 효율을 강화시켜주세요.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알았어요.”

시혁은 꾸준히 인부와 병력을 소환했다.

군대 규모를 늘리는 게 관건이었다. 권세 진영은 인구가 늘어야 생산하는 마나의 양이 늘어나니까.

그렇다고 본성 발전에만 집중해서는 될 일도 안 된다.

죽음 진영은 묘지 등 다양한 건물로 마나를 생산하는 게 가능했다. 군대 규모를 키우기에는 권세 진영보다 더 낫다는 뜻이다.

시혁은 2백 명 규모의 군대를 장만했다.

방어 병력도 충분히 준비한 후, 강찬을 소환하여 임무를 맡겼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검 지킴이라고 하셨죠? 다녀오겠습니다. 참, 상대가 죽음 진영 반신이면 봉헌소를 만들어서 복사를 육성하는 게 좋겠습니다. 성수만 만들어 뿌려도 도움이 돼요.”

[봉헌소는 만들고 있습니다. 생산 시설부터 만드느라 늦어졌지요.]

강찬의 부대가 강을 따라 쭉 동진했다.

보트 십여 척을 대동한 상태였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까닭에 타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이동 속도가 느린데 더 느려질 것 같았으니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강찬이 시혁을 급히 찾았다.

무슨 일인가 해서 보니, 주검 지킴이가 거대한 요새를 건설하고 있었다.

자신의 본성이 있는 곳에서 맞은편, 강북에.

본성과 요새는 뼈 다리로 연결했다.

생산 시설은 본성에 집중되어 있으나, 요새의 방어 능력도 상당했다. 공성 병기도 몇 설치해서, 보트에 타고 올라가다간 모조리 물고기 밥이 되게 생겼다.

시혁은 입맛을 다셨다.

소환자들 상태를 확인하느라 시간을 쓴 게 컸다. 주검 지킴이가 군대보다는 요새 건설에 더 힘을 쓰기도 했고.

난공불락의 요새가 완성되기 직전이었다.

강찬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재 병력으로는 요새를 공략하기가 힘듭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쩔 수 없죠. 주검 지킴이의 신경만 건드리세요. 주변에 중립 괴물이 있으니까 그것도 잡으시고요.]

주검 지킴이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요새에 묘지와 단두대 등 마나 생산 시설을 지었다. 그렇게 방어를 굳힌 후, 우월한 마나 생산을 바탕으로 몰아치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난감했다.

지금 시혁이 만들 수 있는 공성병기는 공성추가 전부다. 주검 지킴이를 견제해야 하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다.

인해 전술과 이적 말고는 답이 없다.

시혁은 뼈 다리에 주목했다.

제법 튼튼하게 만들었지만 이적 한방이면 끝장낼 수 있다. 다만 저기까지 이적을 쓰려면 시혁의 병력이 진출해야 하니 시혁도 상당한 손해를 보겠지.

상황을 전해들은 김미애가 의문을 표시했다.

[주검 지킴이는 왜 두 개의 요새를 만든 걸까요? 본성에 병력을 집중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아무리 마나 생산 시설을 많이 지어도 완전히 포위당하면 답이 안 나오지요. 방어만 하다가 끝이 납니다. 그 상황을 막으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요새와 본성을 동시에 공략하기엔 제 힘이 모자라고, 한 군데만 공격하면 다

른 곳을 통해 반격할 수 있으니까요.]

이걸 뚫으려면 다리를 끊어 본성의 지원을 차단하고, 전력을 휘몰아쳐 요새를 떨어뜨리는 게 좋다. 그 다음에는 천천히 주검 지킴이의 본성을 말려 죽이는 것이다.

잠깐만.

꼭 이적을 써서 뼈 다리를 부술 필요는 없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될 일 아닌가.

[미애 씨, 혹시 폭탄 만들 수 있습니까?]

[폭탄이요? 만들 수 있죠. 그런데 어떻게 장착하려고요? 접근도 못 하잖아요.]

[통나무에 장착시켜서 띄울 생각입니다.]

[통나무요?]

[예. 주검 지킴이의 본성에서 동쪽으로 더 가면 강의 상류가 나옵니다. 거기 띄워서 뼈 다리를 폭파하려고 합니다.]

[그런 방법이 있네요!]

일종의 기뢰 공격이라고 할까.

지구에서도 이미 쓰인 적이 있는 전술이었다.

다만 주검 지킴이가 그냥 당하고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통나무의 정체를 눈치 챈다면, 이적을 퍼붓든 병종을 동원하든 해서 치우려고 들 테니까.

시선을 분산시켜야겠다.

신아영을 추가로 소환했다. 지금까지 모은 모든 병력을 동진시켰다. 강북의 요새를 포위하자, 주검 지킴이가 그에 반응하여 병력을 재배치했다.

강북에 6할, 본성에 4할.

여차하면 뼈 다리를 통해 증원할 터였다. 단순히 정면 공격을 해서는 승산이 없었다.

시혁은 요새를 포위만 해놓고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쪽 하늘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백색 현왕. 요즘 승승장구하고 있다지? 이제 보니 다 허명이로구나. 그 실체를 까발려주마!]

강남 본성의 문이 열렸다.

해골 기사 영웅이 언뜻 보였다. 그 뒤를 좀비와 유령들이 줄지어 따라갔다. 본성의 항구에서, 뼈로 만든 보트도 몇 척 둥실둥실 모습을 드러냈다.

별로 위협적이진 않다. 어디까지나 시혁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병력이었으니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동쪽으로 가서 김미애를 방해하면 안 되니, 금방 소환한 도둑 몇을 따라가게 붙였다. 동시에 강찬의 궁병들이 강북 요새에 화살을 쏘게 했다.

뚜렷한 반응이 없자 주검 지킴이가 병력을 회군시켰다. 밖에 내돌리느니, 차라리 방어를 굳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는 동안 김미애가 동쪽 끝에 도달했다.

작은 산이 있다.

중립 괴물은 별로 없었다. 그 때문에 주검 지킴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있는 거라고는 펑펑 물이 솟구치는 커다란 샘 하나가 전부였다.

김미애가 시혁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바로 시작할까요?]

[일단 통나무 폭탄만 만들어주세요. 아직 요새를 공격하기에 충분한 병력이 모이지 않았어요.]

[네. 준비되면 알려주세요.]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히 폭발 마법만 심으면 끝나는 게 아니니까.

특정 지점에 도착해야 폭발하게 각인 마법도 걸어야 하고, 주검 지킴이가 알아보지 못하게 교란 마법도 박아야 하지 않겠나.

어차피 결전이 벌어지려면 멀었다.

시혁은 최대한 군대를 키우며 때를 기다렸다.

전투가 시작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주검 지킴이가 강남에서 슬금슬금 확장을 했다. 본성과 요새 두 곳만으로는 마나 생산 시설을 건설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시혁과 주검 지킴이의 병력 규모가 비슷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주검 지킴이가 시혁을 압도할 것이다.

더 이상 공격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뜻.

마침 뮤틀론까지 소환한 상태였다. 시혁은 김미애에게 신호를 보냈다.

[미애 씨, 지금입니다.]

[네. 바로 투하할게요.]

김미애가 데려간 인부들이 샘에 밀어 넣었다.

토막토막 잘라놓은 상태다. 겉을 파랗게 색칠을 해서, 언뜻 보기에는 푸른 강물과 구별하기 어려웠다.

이대로 통하면 좋겠으나 확신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시혁은 한 가지 수를 썼다.

통나무 폭탄은 감지하더라도, 이 수까지는 꿰뚫어보지 못하겠지. 만약의 경우에도 뼈 다리는 확실히 박살낼 수 있었다.

“공격, 공격하라!”

요새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신아영이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 따라, 거의 1천에 이르는 병력이 천천히 진군했다.

선두에는 공성추 수십 개가 배치되었다. 주검 지킴이의 요새가 견고하다한들 뼈로 만들었으니, 성문이 아닌 성벽이라도 충분히 돌파가 가능했다.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나 보다.

뼈 다리를 통해 증원군이 몰려 왔다. 주검 지킴이의 병력 중 2할이나 되는 숫자였다.

시혁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슬슬 통나무 폭탄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지금 뼈 다리가 무너진다면, 그것으로 시혁의 승리가 굳어진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증원군 선두가 막 요새에 도착할 무렵, 저 멀리 동쪽에서 뭔가 떠내려 오는 게 보였다.

통나무 폭탄이다.

< 일반 소환자 -1-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