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이능력자 대회 -2- >
이미라가 단상으로 돌아오자 질문이 쏟아졌다.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모든 이능력자가 다 쓸 수 있나요?”
“G급이어야 사용이 가능한 건 아니지요?”
이미라는 하나하나 질문에 답변했다.
등급은 상관없다. 계열은 영향을 받는다. 강화, 격투, 은신, 변신 등 육체를 직접 쓰는 계열이라야 한다.
전체 이능력자 중 약 4할이 해당된다는 뜻.
이미라는 이능력자들의 압도적인 관심을 받았다. 협회의 대회의실 중 하나에서 더 자세한 사실을 밝히겠다고 하자 이능력자들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다음으로는 미국에서 나섰다.
베일 스미스가 올라왔다.
이능력자들을 한 차례 쭉 둘러보더니, 사뭇 익살스런 어조로 말했다.
“이거, 앞선 분이 너무 충격적인 것을 발표하셔서 좀 위축이 됩니다. 그래도 준비해 온 것을 풀어놓아야겠지요? 제가 준비한 것은 에테르 폭주입니다. 짧은 순간, 자신의 이능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방법이지요. 이건 계열과
등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간단히 익힐 수 있습니다.”
각국의 G급 이능력자들이 차례대로 올라왔다.
중국의 차례가 되었다.
다른 나라는 1명씩 개인 발표를 했다. 반면 중국은 함께 발표를 할 생각인 듯했다. 판유유와 리칭창이 나란히 올라오더니, 단상 위에 작은 상자를 놓았다.
리칭창이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선보일 물건은 무한 동력 장치입니다.”
무한 동력 장치?
시혁은 귀를 쫑긋 세웠다.
판유유가 손짓을 하자, 상자 뚜껑이 열리며 맑은 색의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리칭창이 거기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구슬이었다.
투명한 구슬 안에 폭풍이 담겨 있었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압축된 채 회전하며, 막대한 양의 에테르를 생산했다.
판유유가 그걸 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에너지 혁명을 일으킬 물건입니다. 저희는 힘의 보주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아무 외부 자극 없이도 에테르를 꾸준히 생산합니다. 무엇보다도, 간단한 설비만 있으면 전기로 변환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간단히 시범을 보였다.
작은 가방 형태의 변환기에 장착시킨 후, 즉석에서 슈퍼컴퓨터를 기동시켰다. 보기에는 별 것 아닌데, 이거 100개면 원자로 1개가 생산하는 전기와 맞먹는 힘을 낸다고 했다.
엄청난 효율이다.
말 그대로 청정에너지 아닌가.
더구나 다양한 형태의 기관에 사용할 수 있었다. 크기가 작으니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장착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 경우, 기존 전기 자동차가 갖는 모든 단점을 극복하게 된다.
이능력자들이 수군거렸다.
“뭐야, 저런 건 어떻게 만든 거지?”
“완전 대박이네. 흑룡회 때문에 중국 전력이 반 토막 난 줄 알았더니 그런 것도 아닌가 봐.”
시혁도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다.
다름 아닌 오행 순환체.
그걸 힘의 보주처럼 발전기 대체 용품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힘의 보주 보다 더 나은 효과를 보일 거라고 자신했다. 아르거스의 모든 무한 마나 생성 장치 중에서도 수위에 위치해 있으니까.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만드는 게 쉽지가 않다는 것.
재료 수급이 문제였다. 변이 직전 동물들을 오행 순환체로 정화해야 얻기 때문이다. 협회가 지금까지 꽤 많은 오색 수정을 확보했지만, 에너지 혁명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시혁은 그 점을 질문했다.
“재료 수급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저도 비슷한 걸 만들긴 했습니다만,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양산할 수는 없었거든요.”
리칭창의 눈에 살짝 득의한 기색이 어렸다.
“당연하지요. 언제든 양산이 가능합니다. 지금은 실험 단계입니다만, 곧 중국 내 기업들이 힘의 보주를 응용한 제품들을 생산하기 시작할 겁니다. 물론 처음부터 무한정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최소 10년 내에 세계 에
너지 시장을 이 힘의 보주가 석권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온갖 질문이 쏟아졌다.
힘의 규모와 능력, 충전 방법, 과다 소모 시 어떻게 되는지 등등.
무한 동력 장치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과부하가 걸려도 잠깐 기다리면 되살아난다. 충전할 필요 따윈 없다. 정격으로만 운영하면 무한히 힘을 생산하고, 고장 나거나 소모되지도 않는다.
도대체 뭘로 만든 걸까?
당연한 말이지만, 재료나 제작 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함구했다. 이 대회에서는 대부분의 지식을 공유하는 게 상례지만, 반드시 그래야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
시혁은 살짝 위협을 느꼈다.
중국이 선보인 힘의 보주는 막대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현재 미국의 위치를 밀어내고 지구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설지도 몰랐다.
무한 동력이라······
앞으로 좀 연구를 해봐야겠다.
오행 순환체와 근원의 나무를 잘 변형시키면 그럴 듯한 것이 나오겠지.
판유유와 리칭창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저희의 발표는 여기까지입니다. 내일부터는 우리 대중화인민공화국의 다른 이능력자들이 발표를 할 예정입니다. 힘의 보주를 이용한 구체적인 적용 사례가 다뤄질 테니,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중국의 발표가 워낙 충격적이었던 탓일까.
이어지는 독일과 일본의 발표는 그리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다른 국적의 G급 이능력자들의 발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은 이미 특종 냄새를 맡았다.
이미라에게 모여들었던 것도 잠시. 중국 이능력자들과의 인터뷰를 따내려고 법석을 떨었다. 하다못해 가장 말단인 B급 이능력자에게도 달라붙고 있었다.
첫날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이능력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주변의 크고 작은 회의실에서 다양한 주제로 발표 및 토론, 시범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능력자들은 그 중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손문철이 머리를 흔들었다.
“중국이 저런 비장의 무기를 꺼낼 줄은 몰랐습니다.”
“겸사겸사 그런 거겠죠. 흑룡회 사건으로 실추된 위신도 회복하고, 힘의 보주를 홍보하기도 하고요.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힘의 보주 상용화를 목전에 둔 것 같습니다.”
“하긴 그래야 의미가 있지요. 아쉽습니다. 이 이사님께서 분위기 좋게 시작을 하셨는데, 그걸 중국이 다 가져간 셈이 됐네요.”
“그래 봐야 오늘까지가 한계입니다. 내일 제가 분위기를 훅 땅겨오도록 하지요.”
“이사님만 믿겠습니다.”
손문철이 믿음직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협회로 돌아와 본인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TV를 켜자 국제 이능력자 대회 이야기로 아주 난리였다. 이미라도 주목을 받았지만, 역시나 중국에서 발표한 힘의 보주에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인터넷도 그랬다. 힘의 보주에 대한 글이 넘쳐나고 있었다. 중국이 그런 걸 개발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뭘 했느냐는 글도 있어서, 시혁은 가만히 혀를 차고 말았다.
두 번째 날이 되었다.
전날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발표한 만큼, 시혁은 상당히 후순위를 받았다.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보니, 다른 이능력자들이 칼을 갈며 준비했다는 게 느껴졌다.
발표하는 것마다 충격적인 것들이 많았다.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촬영을 했다. 시혁이야 아르거스에서 봤던 것들이라 무덤덤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드디어 시혁의 차례가 되었다.
점심시간 직전.
아무 것도 챙기지 않고 단상 위로 올라서자, 조금 소란스럽던 발표장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수많은 시선이 시혁을 주시했다.
대부분 기대감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발현자일 때부터 유명했고 최근에는 G급 이능력자로 각성하면서 이름을 날렸으니까.
시혁은 단상 위에 서서 찬찬히 이능력자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품속에서 작은 물병을 꺼냈다.
기껏해야 손가락 하나 크기.
지켜보던 이들의 눈에 일제히 의아한 빛이 감돌았다.
시혁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제가 발표할 것은 만병통치약입니다.”
만병통치?
이능력자들의 얼굴에 시큰둥한 기색이 어렸다.
치유 계열 이능력자들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으니까. 소수의 괴수 질병을 제외하면 무턱대고 이능만 발현해도 됐다.
시혁은 씩 웃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발표장 안을 둘러보다가, 방송국 기자 중 머리가 환하게 벗겨진 남성을 지목했다.
“거기 기자 분, 잠깐 앞으로 나오시겠습니까?”
“저 말입니까?”
“예. 잠깐이면 됩니다.”
기자가 머뭇거리다가 앞으로 나왔다.
나이는 기껏해야 삼십대 후반.
젊은데 안 됐다.
시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한 가지 시현을 할 겁니다. 기자 분께서 원하시지 않으면 중지하고 다른 분을 모시겠습니다. 다른 건 아니고, 기자 분의 머리카락을 나게 할 건데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기자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가능합니까? 이능력자들도 탈모는 치료하기 힘들다고 하던데요.”
정확히는 남성형 탈모, 흔히 말하는 대머리가 그렇다.
유전적 소인과 남성 호르몬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능 치료를 해봤자, 시간이 지나면 도루묵이 된다. 대부분의 여성 탈모나 원형 탈모가 치료가 가능한 것에 비하면 안타까운 일이었다.
시혁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지요. 그러니까 감히 만병통치라는 말을 쓰지 않았겠습니까?”
“음······ 그럼 한 번 시현을 받아보겠습니다.”
간단하게 보여주었다.
분무기에 병에 든 물을 넣었다. 그걸 기자의 머리에 뿌리자 오색의 빛이 어렸다. 그 빛이 기자의 머리를 몇 번 휘어 감자, 검은색 모발이 사뿐사뿐 자라났다.
“어어어!”
“저게 말이 돼?”
지켜보던 이능력자들이 감탄성을 토했다.
병 하나를 다 쓰자, 기자의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돋아 있었다. 가발을 쓰기라도 한 듯, 풍성한 머리를 자랑했다.
기자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자기 머리를 더듬었다.
대머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시혁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보였다.
“이사님, 감사합니다! 이대로 대머리가 돼서 노총각으로 늙어 죽을 줄 알았는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다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또 머리가 빠질 수는 있습니다. 호르몬의 영향까지는 어쩔 수가 없거든요. 그때쯤에는 이게 출시가 되었을 테니까, 사다가 다시 뿌리시면 됩니다. 계속 쓴다고 의존성이 생기거
나, 효과가 떨어지지는 않아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혁은 더 시현을 진행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뚝이는 중년 남성, 감기에 걸렸는지 쿨룩거리는 젊은 여기자 등등.
기적과 같은 효험을 뽐냈다.
주름진 얼굴에 바르자 얼굴이 탱탱해졌다. 겨우 1분 만에 10년은 젊어진 것이다. 중년 남성은 훨씬 더 가벼워진 걸음으로 걸어 다니고, 여기자는 단박에 기침이 그쳤다.
오행 순환체를 응용한 회복약이었다.
만드는 것도 쉬웠다.
시혁이 오색 수정을 이용하여 만든 오행 순환체 생성 장치에 특수한 용액을 넣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수면 상태의 오행 순환체를 포함한 회복약이 튀어나온다.
밀봉된 상태.
공기와 접촉하면 오행 순환체가 활동을 개시한다. 짧은 시간 그 힘을 집중적으로 뿜어낸 후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이 또한 의료 분야의 혁명이다.
시혁이 마음만 먹으면 세계의 판도를 아예 바꿔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했다간 후폭풍이 엄청 날 테니 신중하게 접근해야겠지만.
발표를 끝내고 질문을 받았다.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언제 상용화되느냐는 것.
치유 계열 이능력자들의 눈빛이 강렬했다. 이게 상용화되면, 아무래도 스스로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시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직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보완해야 할 점도 있고요. 특히, 몇몇 괴수 질병은 이걸 쓰면 심각하게 악화되니 그 부분을 고친 다음에야 상용화할 예정입니다.”
재료가 되는 특수 용액을 만드는 문제도 그렇다. 지금으로서는 굉장히 진귀한 재료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용액 자체가 실은 마나 생명체였다.
이 마나 생명체는 대상이 평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상태를 구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머리는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나게 한다. 키가 작아서 불만이면 그걸 키워주었다. 피부가 거칠어서 불만이면 백옥처럼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죽음 지혜에게서 얻었던 지식이 이걸 가능하게 했다.
초의식, 혹은 신성.
아주 초보적으로 해석한 거였고,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자신의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구현하는데 성공해서 이런 걸 만든 거였다.
물론 부작용이 발생할 수는 있다. 본인이 평소 생각하던 것과 무의식이 바라던 것에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존재하니까.
당연히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오행 순환체가 안정성이 뛰어나니, 이걸 응용하면 되겠지.
이능력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미라의 마나 방출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중국에서 선보인 무한 동력 장치와, 시혁이 발표한 만병통치약은 인류의 역사 자체를 바꿔놓을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반향은 엄청났다.
중국에서 발표한 무한 동력 장치 때와 비슷했다.
어쩌면 더 클지도 몰랐다.
언론에 생명의 물 이야기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어떤 언론은 드디어 불로초를 찾았다고 대서특필했다. 평생 젊은 몸으로, 수백 년씩 살 거라고 논평을 냈다.
힘의 보주와 생명의 물.
제 6회 국제 이능력자 대회를 지배한 단어였다.
삼일에 걸친 대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시혁도 많은 것을 얻었다.
G급 이능력자의 발표보다 A급이나 B급의 발표에서 배우는 게 더 많았다. 비록 기술적으로 미숙할지 몰라도, 반짝이는 참신함은 대단했다.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미 주요 일정은 마치고, 여기저기서 난상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혁도 그랬다.
존스 아츠와 판유유, 시혁까지 셋이서 작은 회의실을 잡고 틀어박힌 것이다.
< 국제 이능력자 대회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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