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이능력자 대회 -1- >
첫 대전 후, 시혁은 연승가도를 달렸다.
그러느라 시간이 잘도 갔다.
어느덧 2018년 4월.
괴수들이 나타나고 벌써 7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의 서울은 무척 분주했다.
특히 을지로.
대한 이능 협회가 있는 곳 주변이 그랬다.
차가 꽉꽉 들이찼다. 경찰들이 교통을 통제했고, 시민들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기웃거렸다. 기자들이 어찌나 몰려왔는지 방송국 차들이 길 곳곳에 보였다.
을지로에서 열리는 한 대형 국제 행사 때문이었다.
국제 이능력자 대회.
얼마 전 손문철이 얘기했던 행사다.
지금까지는 미국와 중국이 독점하고 있었다. 원래 중국에서 열릴 차례였으나 최근 사태로 탈락하고 말았다. 독일과 일본이 이걸 따내려고 경쟁했으나, G급 이능력자 둘의 각성을 내세워 개최하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이능력자 대회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커다란 효과는 없다. 그저 한 나라에 모여서 이능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친분을 다지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G급 이능력자들이 모이니까.
걸어 다니는 전략병기라는 이들이다. 손짓 한 번으로 말기 암 환자를 치료하고, 수 킬로미터의 땅굴을 간단히 파내곤 했다. 관심이 쏠리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시혁은 이른 아침부터 인천공항으로 나갔다.
굳이 직접 나갈 필요는 없었으나, 오늘 도착한다는 두 사람의 이름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언제 도착한답니까?”
“대한민국 영공에 접어들었답니다.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시혁이 경호 팀장에게 묻자, 경호 팀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들어 동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직 보일 리가 없지만, 그곳에 작은 비행기가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얼마 후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전갈이 왔다.
저 하늘 위에서 커다란 비행기가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활주로를 타고 미끄러졌다. 곧 공항에 정지하여, 기다란 연결 통로가 이어졌다.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거길 통해 쏟아져 나왔다.
여러 인종이 섞여 있었다.
가장 선두에 날렵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보였다. 성조기를 형상화한 상의를 입고, 손가락마다 화려한 보석 반지를 끼고 있었다.
시혁도 아는 인물이다.
베일 스미스.
미국의 구현 계열 G급 이능력자이자, 협회장이었다.
손문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스미스!”
“오, 미스터 손!”
베일이 반색을 했다.
손문철이 얼른 다가가 껴안으려고 했다. 그러자 베일이 질겁하여 물러났다.
“미스터 손! 또 내 갈비뼈를 부러뜨리려고 그래? 난 당신네 강화 계열처럼 강하지가 않다고!”
“하하하.”
손문철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뒤에 있던 이능력자들이 손문철에게 반갑다는 듯 인사를 했다. 몇몇은 홱 고개를 돌렸지만, 대개는 웃고 있는 게 친분이 있는 것 같았다.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 베일이 시혁을 보고 눈을 빛냈다.
“혹시 미스터 최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베일 스미스 씨이시지요?”
시혁은 서투른 영어로 대답했다.
영어는 그리 잘 하지 못한다. 그래도 이 정도의 간단한 회화는 가능했다. 더 자세히 하려면 통역을 쓰거나 마법의 힘을 빌려야 할 것이다.
베일이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름은 많이 들었습니다. 참, 그거 아세요?”
“뭘 말입니까?”
“얼마 전 한 유명 잡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0명을 뽑았는데 그 중 1위 하셨습니다.”
“예? 제가 뭘 했다고요?”
“흐흐, G급 이능력자들이 흔히 거치는 절차죠. 저도 그렇고, 여기 미스터 손도 울산 사태 직후에는 전 세계 처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까?”
“으음,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골치가 아픕니다.”
손문철이 눈살을 찌푸렸다.
G급 이능력자가 된 것은 좋은데, 아내에게 하루 종일 들볶였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삼두룡 사태 수습을 핑계 삼아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베일이 재미있다는 얼굴을 했다.
“나는 미스터 손이 왜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어. 세상에 미녀는 많고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데 왜 결혼을 해? 그냥 혼자 살지.”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뭐, 미스터 손 인생이니 마음대로 해.”
다른 이능력자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미국의 G급 이능력자는 여섯 명.
존스 아츠와는 네 번째로 마주했다. 시혁의 이름을 듣더니, 존스 아츠가 희미한 미소를 보냈다.
“반갑습니다. 조만간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요? 그때를 고대하겠습니다.”
“예.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혁이 한방병원의 일개 인턴일 때에 이미 G급 이능력자로 이름이 높던 인물이다.
많은 것이 궁금했다.
방문주기는 얼마나 될까, 아르거스에서 성역 확장은 얼마나 했을까, 뭔가 더 밝혀낸 사실은 있을까……
곧 알 수 있겠지.
손문철이 미국 이능력자들을 데리고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지구에서 제일가는 이능 강대국이니, 그에 대한 예우를 하는 것이다.
시혁은 동행하지 않았다.
곧 중국의 판유유가 도착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는 중국의 참가 규모가 이례적으로 작았다. 다섯 G급 이능력자 중 판유유와 리칭창만 참가한다. 흑룡회 사건의 후유증이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중국 국적기 한 대가 활주로에 내려앉는 게 보였다.
곧 방금 전과 동일한 연결 통로를 통해, 중국인 이능력자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앞에 선 두 명의 남녀가 시혁의 눈에 콕 들어와 박혔다.
둘 다 20대 후반.
과시하듯 강렬한 에테르 파동을 뿜고 있었다. 그 파동이 뜻하는 바가 너무나 명확했다.
가볍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판유유 씨와 리칭창 씨지요? 대한민국의 G급 이능력자 최시혁입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중국어였다.
판유유와 리칭창이 시혁을 묘한 눈으로 보았다.
반가운 감정과 경계하는 눈빛이 뒤섞여 있었다. 예상 밖의 반응에, 시혁은 속으로 의아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흑룡회 때문이었다.
판유유와 리칭창에게 흑룡회는 자국의 커다란 암 덩어리였다. 그걸 중국인이 알아내서 해결했다면 영웅 취급을 했겠으나, 외국인이 알아내어 제거했으니 복잡한 감정이 드는 모양이었다.
시혁은 굳이 그걸 내색하지 않았다.
미리 동반한 중국어 통역을 통해 말했다.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시지요? 절 따라오십시오. 숙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시혁이 직접 데려갈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을 시켜도 충분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온전히 판유유 때문이었다.
대회가 시작하기 전 잠깐이라도 얘기를 해보고 싶었으니까. 존스 아츠는 손문철이 먼저 미국인들을 데려오겠다고 해서 끼어들기가 좀 애매했고.
판유유와 리칭창이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셋만 리무진에 따로 탔다.
최고급 리무진이었지만 둘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은 중국에서 왕족과 같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혁이 한 가지 마법을 쓰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두 분 다 대한민국은 처음이시지요?”
통역 마법이었다.
다소 냉담한 기색이던 판유유가 시혁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하신 거죠? 분명히 한국어인데…… 뜻이 머릿속에서 이해가 되네요.”
시혁은 씩 웃었다.
예전에 첸팡리와 독대하면서 썼는데 그 정보가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백호 문신을 몰래 찍었으니, 정신이 없었을 테지.
시혁은 목소리를 낮췄다.
“아르거스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그럼요. 이건 자랑 같지만, 우리 중국이야말로 아르거스 연구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칭창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긴 일개 조직이었던 흑룡회가 축적한 아르거스의 지식만도 엄청난 수준이었다. 중국은 그걸 모두 흡수했을 테니, 자신감을 보이는 게 이해가 갔다.
시혁은 미묘하게 웃어 보였다.
“저도 중국이 아르거스의 연구에서 많은 부분 앞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얼마 전에 뼈저리게 느꼈지요. 그래도 아직, 통역 이능은 재현하지 못했나 봅니다.”
리칭창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판유유가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씀은, 아르거스의 지식을 연구해서 만든 이능 기술이라는 뜻인가요?”
“그렇지요. 비록 미국이나 중국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나라의 아르거스 연구도 꽤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그 점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실상 시혁은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 아닌가.
다른 나라는 기껏해야 정보 계열 발현자나 모르스 부호를 이용하는 게 다였다. 시혁처럼 온전히 기억을 보존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판유유가 살포시 눈웃음을 지었다.
“기대 되네요. 저희도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걸 가져왔어요. 이사님도 보시면 깜짝 놀랄 거예요.”
“기대하겠습니다.”
서울 시청 인근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을 위해 협회에서 미리 예약해 둔 참이었다. 협회 간부들이 나와 판유유와 리칭창을 맞이했다.
대회는 내일부터.
내일을 기약하고 물러나왔다. 협회로 돌아가자, 손문철은 없고 이미라만 협회장실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아, 이사님. 갔던 일은 잘 되셨어요?”
“예. 잘 됐지요. 내일 발표 준비는 잘 됩니까?”
“어렵네요. 평생 이런 건 해본 적이 없어서……”
“힘들면 말씀하세요.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언제까지나 이사님에게만 의지할 순 없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제 힘으로 해볼게요.”
“하긴 이제 토벌 이사시니…… 그게 좋겠습니다.”
장현이 죽고, 토벌 이사는 오랫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의견이 컸으나 손문철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후보들이 다들 고만고만해서, 딱 맡기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미라가 G급 이능력자로 각성하여 그 고민이 끝났다.
얼마 전 공식적으로 토벌 이사에 취임했다. 간만 보던 몇몇이 땅을 쳤다는 소문이 들렸으나, 결정이 된 후였다.
뭘 발표하려는 걸까?
궁금했지만 참았다. 시혁 본인의 발표에 집중하는 게 더 급했다.
대회는 약 3일 간 치러진다.
일종의 학술 대회.
다만 일반적인 학술 대회와는 좀 달랐다. 이능력자들이 직접 이능을 시현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화려한 볼거리가 되곤 했다.
시작은 이미라가 하기로 했다.
시혁은 두 번째 날.
벌써부터 언론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대회가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것도 화제 거리인데, 새로운 G급 이능력자들이 뭘 발표할까 싶어서였다.
하루는 금방 지나갔다.
국제 이능력자 대회가 개막했다.
예상보다 많은 이능력자들이 참여했다. 덕분에 급히 새로운 장소를 구했다. 1천 명 정도로 예측했으나, 그 세 배는 족히 도착한 까닭이었다.
그곳에서, 손문철이 제일 먼저 단상 위로 올라갔다.
개회를 선언함과 동시에, 이미라가 발표를 시작했다.
“전 솔직히 강화 계열 이능력자라 이런 쪽에는 재주가 없습니다. 새로운 이능 기술을 개발해서 양산하는 건, 구현 계열 이능력자 분들 장기지요. 그래도 제 나름대로 한 가지를 만들어 봤습니다. 자, 여길 주목해 주세요.”
자원봉사자가 작은 팻말을 들고 나타났다.
그걸 번쩍 쳐들자, 이미라가 팻말을 노려보았다.
번쩍!
빛이 터졌다.
이미라의 눈에서 적색 광선이 뿜어졌다. 그 광선이 팻말에 꽂히자, 작은 폭발이 일어나 팻말이 산산조각 났다.
사방에서 이능력자들이 벌떡 일어났다.
“헉, 뭐야?”
“맙소사, 저 여자 무슨 슈퍼맨이라도 돼?”
“눈에서 뭘 쏜 거야?”
시혁도 진심으로 놀랐다.
저게 뭔지는 금방 알아챘다.
바로 마나 방출이다.
이미라가 관심을 보이기에 자세히 알려준 적이 있다. 그래도 그걸 체화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눈으로 발사하다니, 도저히 상상도 못했다.
단상 위의 이미라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두 손을 좌우로 뻗고 가볍게 다리를 벌리자,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빨간 빛이 분출되었다.
이미라의 몸이 가볍게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걸 본 이능력자들이 소요를 일으켰다.
하늘을 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이능이었다. 대부분의 이능력자들이 하늘을 날지 못했다. G급 이능력자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강화 계열이면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비행을 하는 거지?
단순히 떠 있는 게 다가 아니었다.
이미라가 시범을 보였다.
눈 깜짝할 사이 높은 천장까지 날아올랐다. 그 다음 손과 발을 움직이며 대회의장 안을 한 바퀴 쭉 돌았다. 속도도 상당히 빨라서, 거의 물 찬 제비를 보는 듯했다.
< 국제 이능력자 대회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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