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목요일 -1- >
생각해 보면 G급 이능력자들은 각성할 때마다 꼭 한 가지 사건을 해결해서 유명해졌다.
손문철은 삼두룡.
존스 아츠는 캘리포니아 사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검은 천체가 확장되면서, 튀어나온 에테르가 꼭 그들의 옆으로 떨어지진 않았으니까.
“저거 좀 봐!”
“무슨 일이야?”
“왜 저러지?”
“삼두룡이 또 나오는 거 아냐?”
시민들이 하늘을 보며 불안에 떨었다.
그만큼 2014년에 나타났던 삼두룡은 충격적이었다. 수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혔고 손문철이 목숨을 걸고 유인한 다음 군대의 지원을 받아가며 겨우 잡았으니까.
시혁은 검은 천체를 올려다보았다.
계속 커지고 있었다. 세력이 확장되는 게 아예 눈에 보였다. 시커먼 어둠이 넘실대며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천왕봉이 변형될 때보다 몇 배는 심각했다.
도대체 뭐가 튀어나오려고 저러지?
시혁은 더 이상 서울로 출근하지 않았다. 병원을 지키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대처할 수 있게 준비를 했다.
다양한 예측이 있었다.
“삼두룡 보다 강한 괴수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정신체 괴수가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하면 안 됩니다.”
“천왕봉 때처럼 사물이 변할 수도 있어요.”
다행이라면 지금 대한민국에는 천리안이 있다는 점이다.
24시간 내내 검은 천체를 감시했다. 에테르가 뿜어지는 즉시, 어느 지점으로 떨어지는지 관측하기 위해서였다.
검은 천체는 사흘 내내 확장을 거듭했다. 원래 크기보다 5배는 커져서, 까만 쟁반처럼 변한 다음에야 안정을 찾았다.
불길했다.
사람들의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워졌다. G급 이능력자가 셋이나 있다 해도, 어째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은 탓이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시혁이 G급 이능력자가 되고 딱 일주일 뒤, 검은 천체가 폭발을 일으켰다.
어둠이 쏟아졌다.
비가 내렸다.
검은 비가 한반도 남쪽을 뒤덮었다.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 일부는 물론 남해까지 뿌려졌다.
“이런!”
시혁은 경호성을 질렀다.
빗물이 지상을 뒤덮는 게 보였다.
거기 맞은 부위가 까맣게 변색되었다. 생명체든 무생물이든 가리지 않았다. 갈색 보도블록도, 녹색 나뭇잎도, 자동차의 하얀 지붕도, 길 가던 행인의 피부도 검게 물들었다.
“으아아!”
“사람 살려!”
사람들이 놀라 뿔뿔이 흩어졌다.
다행히 비는 금방 그쳤다. 실질적인 피해도 없는 듯했다. 사람들이 검게 변한 부위를 들여다보는데, 통증을 느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시혁은 급히 병원 밖으로 뛰쳐나갔다.
도로 곳곳에 검은 웅덩이가 생겼다.
무심코 하나를 밟았다.
웅덩이가 젤리처럼 출렁였다. 그러면서 시혁의 발을 찐득하게 붙잡아서, 발을 떼어 놓기가 어려웠다.
잠깐.
보행자가 이럴 정도면 자동차들은 어떻지?
그 생각을 할 때, 갑자기 폭음이 울렸다.
쾅!
자동차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를 들이받았다.
그나마 피해는 적었다. 다들 서행하고 있었고, 검게 변한 범퍼가 충격을 꽤나 흡수했으니까.
“원장님!”
중년 여성 하나가 시혁에게 달려왔다.
중학생 딸을 데리고 있었다.
피부가 나무껍질처럼 변하는 괴수 질병 때문에 시혁에게 치료를 받던 여학생이었다. 이능 치료를 할 것 없이, 약물 치료만 했는데 많이 좋아졌다. 지금은 거의 정상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검은 비를 어떻게 맞았는지 머리가 완전히 까맣게 변했다. 이목구비도 뭉개지고, 물 풍선처럼 달랑거리고 있었다.
시혁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상태를 확인했다.
숨은 쉬고 있다. 심장도 뛰고 있다.
하지만 변형된 머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힘을 주어 누르면 손이 안으로 파고들 지경이었다.
중년 여성이 발을 동동 굴렀다.
“원장님, 어떻게 해요? 우리 지수 왜 이러는 거죠?”
“자, 일단 병원 안으로 옮기죠.”
시혁은 여학생을 안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입구의 직원들이 얼른 달려들었다. 응급실의 빈자리에 여학생을 눕히고, 시혁이 직접 살피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 여학생은 머리가 변형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래턱까지는 온전했다. 그 위, 얼굴과 머리카락이 있는 부위가 변했다.
조심스럽게 머리를 잡아 뜯어 보았다.
뜯어지진 않는다.
손을 살짝 굽혀 떠내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이목구비가 뭉그러졌을망정, 그 형태만큼은 유지하고 있었다.
“원장님! 우리 지수 괜찮은 거죠? 그렇죠?”
중년 여성이 울부짖었다.
본인도 왼쪽 어깨가 검게 변했는데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자기 딸만 챙겼다.
병원 입구와 응급실이 소란스러워졌다.
환자들이 밀려든 까닭이었다. 몇 분 전만 해도 조용하던 응급실이, 순식간에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러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혁은 여학생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아르거스에서 본 적이 없는 증상이다.
어떤 괴수도, 어떤 이적도 이런 증상을 나타내진 못했다. 애초에 닿기만 하면 몸을 변형시키는 게 말이나 되나.
그게 가능한 것은 오직 하나, 공허뿐이다.
순간, 시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렇다.
공허라면 가능하다.
다만 일반적으로 공허에 침식되었을 때의 형상과는 달랐다. 저번에 장현은 악마와 비슷한 형상이 되지 않았나.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더 자세히 확인했다.
과연 공허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희미한 악의가 깔렸다.
그 위로, 물과 땅, 어둠의 힘이 부유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한데 뭉쳐 희생자의 신체를 괴이하게 변형시키는 것이다.
비단 사람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심지어 무생물까지.
“휴!”
시혁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체를 파악한 이상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칠색 저항체와 오행 순환체를 이용하면 되니까.
문제는 검은 비가 대한민국 전체에 뿌려졌다는 점이다.
다행스럽게도, 원본과는 다르게 스스로 증식하는 능력은 없었다. 대신 변이된 생명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질 것이다.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시간 내에 대한민국 전체를 치료할 수 있을까?
일단은 병원에 온 환자들부터 해결해야겠다.
시혁은 오행 순환체를 꺼냈다.
G급 이능력자가 되고 가장 먼저 한 게 오행 순환체를 만드는 거였다. 기존의 오색 수정은 병원에 붙박이로 박아놓고, 본인의 힘으로 새로운 개체를 만들었다.
오색 수정을 통해 쓸 때보다 훨씬 정교한 제어가 가능했다. 당연히 칠색 저항체를 만드는 것도 쉬웠다.
칠색도 필요 없다. 삼색이면 된다.
즉석에서 간단히 만들었다.
오행 순환체와 삼색 저항체를 함께 여학생의 머리에 주입했다. 둘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여학생의 머리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하얗게, 머리카락은 까맣게.
몽달귀신처럼 뭉개졌던 이목구비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여학생이 눈을 깜빡였다.
시혁을 보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중년 여성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엄마! 팔이 왜 그래?”
“응? 엄마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
“김지수 님, 여기가 어딘지 알겠습니까?”
“병원이잖아요. 어, 근데 아까 치료 다 받은 거 아니었어요? 치료 받고 병원 밖으로 나갔었는데……”
정신은 멀쩡했다.
시혁은 바로 중년 여성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증상은 같다. 그 안에 포함된 마나도 같았다. 당연히 동일한 치료 방법을 써먹었다.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중년 여성이 금방 회복되었다. 고맙다고 허리를 숙이지만, 시혁이 느끼기엔 너무 느린 것 같았다.
치료해야 할 사람이 워낙 많았으니까.
별 수 없이 오행 순환체와 삼색 저항체를 최대한으로 증식시켰다.
시혁의 몸에서 백색의 빛이 강렬하게 뻗어 나왔다. 오행 순환체와 삼색 저항체가 거기 반응했다. 순일한 속성의 에테르를 받아들여, 스스로의 몸집을 불렸다.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금방 한계까지 증식했다. 무지갯빛 찬란한 빛 무리가 응급실 안을 가득 채웠다.
“아!”
“예쁘다!”
환자들이 자기 상황도 잊고 감탄을 했다.
빛 무리가 그들의 변이된 부위로 스며들었다.
시혁이 직접 제어할 때만은 못해도, 천천히 회복이 되고 있었다. 수십 명을 한꺼번에 치료하니 효율 면에서 상대가 안 됐다.
허겁지겁 내려온 이능력자와 한의사, 의사들이 이 장면을 보고 입을 벌렸다.
“우와……”
“G급 이능력자는 엄청나구나.”
하지만 시혁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수십 명씩 치료를 하면 뭐하나.
전국 단위로 보면 희생자가 엄청날 텐데. 훼손된 자연을 복구하는 것도 그렇고.
시혁은 간호사들을 불러 지시했다.
“이런 증상 환자들 오면 응급실로 바로 보내세요. 응급실로 부족하면 오색 치료실로 보내고요.”
“예, 원장님.”
오색 치료실에 들렀다.
수정을 조작하여 오행 순환체와 삼색 저항체를 동시에 생성하게 했다. 아울러 힘을 최대한 주입했다. 즉시 오색 치료실 안이 빛으로 물들며, 강렬한 힘이 휘몰아쳤다.
응급실과 오색 치료실이라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다. 광주광역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송정리에 발생했을 환자들은 충분히 돌보겠지.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
마침 손문철에게 전화가 왔다.
[이사님! 소식은 들었습니다. 남쪽 지방에 검은 비가 내리고 있다면서요?]
[예. 지금 환자들을 치료하는 중입니다.]
[치료는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워낙 피해자가 많아서 문제지요.]
[후, 다행입니다. 일단 광주로 가겠습니다. 저도 이제 막 들어서 잘은 모르지만,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충청도 일부까지 검은 비가 내린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피해 규모가 엄청납니다. 지금은 추산하기도 힘들어요.]
시혁은 잠시 말을 잊었다.
이 정도면 시혁 개인이 아무리 나르고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감당이 불가능하니까.
전라도와 경상도?
광역시까지 합치면 그 인구가 족히 1800만 명은 넘어간다. 건물이나 자동차 안에 있어 피한 사람도 있겠지만, 걷고 있던 사람들도 많을 테니 얼마나 많이 당했을지 상상이 안 갔다.
손문철이 탄식을 했다.
[허, 차라리 괴수가 나타나는 게 좋았겠습니다. 이건 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도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어렵긴 하지만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겁니다.]
시혁은 이능 치료실로 내려갔다.
환자가 워낙 많아 응급실과 오색 치료실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능 치료실에도 꽉꽉 들이차 있었다.
이능력자들이 이능을 발현해서 치료를 하는 게 보였다.
땀을 뻘뻘 흘렸다.
각자 백색과 녹색의 광채를 뿜을 때마다 변이된 부분이 천천히 치료되었다. 속도는 느려도, 어쨌든 원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시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단순한 에테르 주입으로도 치료가 가능했다. 시혁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대신 효율은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이능력자 수십 명이 몰려와도 시혁 혼자 하는 것만 못했다.
“잘 되어 갑니까?”
“끄응, 힘듭니다. 에테르를 너무 많이 소모해요.”
시혁은 이능 치료실에 누워 있던 남자 환자에게 다가갔다.
이 환자는 등이 변형되었다. 두 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바닥으로 축 늘어졌다.
에테르를 주입했다.
어떤 마법도 쓰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상태.
백색의 빛이 남자 환자의 등으로 스며들었다. 타닥타닥 섬광이 튀더니, 환자의 몸이 단단해졌다.
상당히 힘이 들었다.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이능 치료만 하면 시혁도 많은 사람을 치료하긴 힘들었다. 기껏해야 십여 명 치료를 하고나면 탈진하게 생겼다.
시혁이 이 정도라면 다른 이능력자들은 두세 명 치료하는 게 고작이었다.
결국 오행 순환체와 삼색 저항체를 최대한 확보해야 된다는 이야긴데……
무작정 만들어서 뿌리기도 어려웠다.
무슨 부작용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상황은 반드시 시혁의 통제 아래에 있어야 했다.
< 검은 목요일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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