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176화 (176/250)

< G급 이능력자 >

시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곳이다.

다름 아닌 자신의 오피스텔.

방금 전까지 선택의 탑에서 고통에 떨던 게 거짓말 같았다.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무 생각 없이 힘을 주입하자, 익숙한 오색 광채 대신 순백색의 선명한 빛이 뻗어 나왔다.

권세 진영의 힘이다.

그럼 혹시, 현자로서의 모든 힘을 잃은 걸까?

다행스럽게도 그렇진 않았다.

마나의 속성만 바뀌었다 뿐이지 마법 시전은 모두 가능했다. 오히려 그 힘이 훨씬 커져서, 오행 순환체를 직접 만드는 것도 가능한 것 같았다.

즉석에서 오행 순환체를 만들었다.

간단했다.

즉시 오색의 빛이 시혁의 손 안에서 맴돌았다.

S급 이능력자일 때는 힘이 부족해서 오색 수정을 썼어야 했다. 이제는 힘이 강해져서, 본인 스스로의 힘만으로 오행 순환체를 쓸 수 있었다.

물론 진리 진영을 선택했으면 더 강한 마법을 부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반면 권세 진영을 선택한 이점도 존재했다.

권세 진영의 강점은 보호, 방어, 회복.

아생후살타(我生後殺他)라는 말도 있지 않나. 지금부터는 시혁이 마음먹고 이능을 발현하면, 웬만한 현대 무기로도 어쩌기 힘들었다.

시혁은 몇 번이나 이능을 발현해보다가 침대를 벗어났다.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뭐지?

협회에 G급 이능력자로 등록하는 일이다. 또 이미라가 G급 이능력자가 됐는지 확인해 봐야 되겠고.

이미라는 시혁보다 일주일 늦게 반신의 시련을 시작했다. 파괴 진영을 선택했고, 오우거와 트롤 부족을 단신으로 제압하라는 시련이 떨어졌다.

특히 군왕들을 1대 1로 상대해서 이기라는 조건이 있어 좀 어려웠다. 그래봐야 시혁이 받은 시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아침 일찍 오피스텔을 나섰다.

협회 광주 지부를 찾았는데, 우연히 이미라와 마주쳤다.

한눈에 서로의 상태를 알아보았다.

이미라가 활짝 웃었다.

“이사님! 이사님도 성공하셨네요?”

“예. 미라 씨도 성공했나 봅니다. 아주 좋아 보여요.”

창창한 에테르 파동이 느껴졌다.

아직 제어가 잘 안 되는지 그냥 풀어놓은 상태였다.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이 그걸 느끼고 이미라를 힐끔거렸다.

선명한 적색의 힘.

파괴력만 따지면 압도적이다.

시혁은 이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부 안으로 들어갔다.

시선이 온통 집중되었다.

지부에 있던 이능력자들이 놀란 눈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시혁도 굳이 에테르 파동을 억제하지 않고 있었다. 자연히 강렬한 존재감이 이능력자들을 압박했다.

얼굴만 아는 이능력자가 슬며시 질문을 던졌다.

“최시혁 이사님이랑 이미라 대장님 아니십니까?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 그랬지요. 지부장님은 아직 안 오셨습니까?”

“곧 출근하실 겁니다. 아, 마침 저기 오시네요.”

지부장이 정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혁과 눈이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를 하려다 말고, 별안간 눈을 크게 떴다. 시혁은 물론 그 옆의 이미라를 몇 번이나 쳐다보더니, 손뼉을 짝 쳤다.

“G급 이능력자로 각성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등급 측정은 하셨습니까?”

“아뇨. 이제 하려고요.”

“이쪽으로 오시죠. 정말 경사입니다. 한 분도 아니고 두 분씩이나 G급으로 각성하시다니…… 얼마 전부터 새로운 G급 이능력자가 각성할 거라는 소문은 돌았습니다만, 그게 정말로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부장은 둘을 등급 측정실로 데려갔다.

예전에 한의원에서 썼던 휴대용 등급 측정기가 아닌, 대형 등급 측정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휴대용 등급 측정기도 어지간한 정보를 다 알아내지만, 이것보다는 못했다.

이미라가 먼저 측정을 했다.

선명한 적색의 구가 나타났다. 예전에는 파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속이 비어 있었는데, G급이 되면서 속이 완전히 찬 것이다.

시혁은 백색의 구가 나왔다. 권세 진영을 선택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미라는 여전히 강화 계열, 시혁은 치유 및 보호 계열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것을 확인하고, 지부장이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역시! 당장 공식적으로 발표를 해야겠습니다. 세상에, G급 이능력자가 두 명이나 우리 지부에서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지부장이 협회 본부에 연락을 한다, 기자들을 불러 모은다 부산하게 움직였다.

시혁은 양해를 구하고 빠져나왔다.

어딜 가느냐고 붙잡지만, 시혁에게도 중요한 일이 있었다.

오늘은 2018년 3월 5일, 첫 번째 월요일이다.

작년부터 준비했던 한방병원이 정식으로 개원하는 날이었다. 당연히 시혁이 자리에 있는 게 좋았다. 덤으로 세계에 3명밖에 없는 G급 이능력자가 원장이라고 홍보도 하고.

병원으로 출근했다.

개원 준비가 한창이었다.

에테르 파동을 갈무리한 까닭에 시혁의 상황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원장님 오셨냐고 여기저기서 인사만 했다.

난리가 난 것은 강찬과 신아영이 들이닥친 다음이었다.

“원장님!”

쩌렁쩌렁했다.

1층에서 소리를 질렀는데, 3층에 있는 원장실까지 울렸다.

시혁은 쓰게 웃으며 1층으로 내려갔다.

신아영이 반색을 하고 달려들었다.

“원장님! 축하드려요! 각성하셨다면서요?”

“감사합니다. 운이 좋았지요.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각성?

병원 직원들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감돌았다.

각성은 진작 해서 이능력자가 됐을 텐데?

강찬이 그들을 보더니 씩 웃었다.

“아직 모르는 모양이죠?”

“제 입으로 말하기가 좀 그래서요.”

“원장님은 너무 겸손하셔서 탈입니다.”

곧 사실이 밝혀졌다.

기자들이 떼로 몰려든 까닭이었다.

마침 1층에 나와 있던 시혁을 보더니, 상어 떼처럼 둘러싸고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댔다.

“최 이사님! 2차 각성에 성공하셨다면서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치유 계열 G급 이능력자가 되셨다는 게 정말입니까?”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오늘 함께 각성한 나래 공격대장님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별의 별 질문이 다 쏟아졌다.

시혁은 적당한 질문에만 대답했다.

벌써 9시.

슬슬 개원식을 시작할 때였다. 기자 회견을 끝내기 위해, 가볍게 이능을 발현했다.

백색의 빛이 1층 로비를 가득 채웠다.

치유와 보호의 힘이 담긴 빛이다.

1층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그 빛이 몸을 한 번 훑고 지나가자, 평소 앓던 고질병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시혁이 기자들을 보고 말했다.

“개원식이 끝나고, 오후 6시에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하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순발력 좋게도, 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개원식을 취재하고 싶은데, 그건 괜찮습니까?”

“물론이지요. 많이 취재해 가시기 바랍니다.”

시혁은 흔쾌히 승낙했다.

바라던 바였으니까.

기자들이 주변으로 물러나고, 초청한 손님들이 로비에 갖다 놓은 의자에 앉았다.

개원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예정에 없던 손님들이 모여들어 의자를 마련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시혁의 G급 각성을 듣고 방문한 손님들이었다.

그 중에는 광주시장이니 무슨 구 국회의원이니 하는 사람들도 끼어 있었다. 광주광역시의 주요 기업체 사장들도 찾아왔다. 그들의 속내가 뻔히 보였지만, 축하하러 온 사람들을 내칠 수 없어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청와대에서도 전화가 왔다.

[축하드립니다, 최 이사님. 이번 일은 최 이사님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우리 한민족 전체의 쾌거이자 경사입니다.]

목소리가 무척 밝았다.

[감사합니다.]

[언제 청와대로 놀러 오시지 않겠습니까? 손 회장님이랑 이 대장님까지 모셔서,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불러만 주시면 가겠습니다.]

[좋습니다. 조만간 청와대에서 뵙는 것으로 하지요.]

여기까지 하고 통화를 끊었다.

개원식은 성공리에 마무리 되었다.

기자 회견을 열었다.

수십 명의 기자가 참석했다. 단지 대한민국 기자만 아니라, 외국 기자들도 몰려들었다. 방송국 로고를 보니, 시혁이 익히 잘 아는 유명한 곳들이었다.

박희정이 시혁에게 슬쩍 속삭였다.

“원장님 기자 회견 생중계되고 있어요.”

조금 부담스러웠다.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이러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사실, 시혁은 대단한 사람 맞았다.

지난 2년 간 만든 괴수 질병 치료법이 어느덧 수백 종을 넘어갔다. 절반 이상은 이미 상용화되어 실제로 처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혜택을 본 괴수 질병 환자만 벌써 수천만을 넘었다. 3년 이내로, 시혁의 약으로 목숨을 구할 환자가 1억이 넘을 거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였다.

자연히 기자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다.

시혁은 능숙하게 이야기를 했다.

G급 이능력자로서의 포부, 능력, 전망 등등.

내용만 따지면 간단했다.

지금처럼 병원을 운영하고, 괴수 질병 치료법을 만드는 한편 협회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했으니까.

일본인 하나가 손을 들었다.

“대한민국이 아닌, 외국의 환자들을 위해 힘쓰실 계획은 없습니까?”

“외국이요? 글쎄요. 저는 대한민국에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바쁩니다. 외국까지 나가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애초에 G급 이능력자는 출국 자체가 힘들다.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면서 싸고돌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호우위 문제로 중국이 홍역을 앓은 것 아닌가.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무한정 받아줄 수는 없었다. 1시간만 질문을 받은 다음, 이것으로 기자 회견을 끝내겠다고 했다. 기자들이 아우성을 쳤지만 경호원들이 밀어냈다.

저녁에는 축하연을 벌였다.

장소를 잡는 것도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시혁의 병원 직원을 다 합치면 100명이 훌쩍 넘었으니까.

한의사만 10명에 의사 5명, 이능력자도 6명이나 있었다. 약사와 한약사, 간호사들만 합쳐도 50명에 가까웠다.

그들이 몽땅 다 시혁에게 한 잔씩 권했다.

“원장님, 축하드립니다. 한 잔 하셔야죠!”

“어휴, 많이 마셨습니다.”

“원장님! 여기도 있어요!”

시혁은 아주 학을 뗐다.

G급 이능력자가 되어 다행이었다. 24시간 내내 에테르가 시혁의 몸을 보호하니까. 지금도 백색의 에테르가 알코올 성분을 모조리 분해하고 있었다.

축하연이 끝난 다음에는 지인들끼리만 술자리를 가졌다.

이미라는 물론, 손문철까지 서울에서 내려와 참석했다.

모두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특히 손문철이 그랬다. 2명이 한꺼번에 G급 이능력자로 각성한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라, 4월에 개최될 국제 이능력자 대회를 끌어올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반면 시혁은 얼굴이 좀 어두웠다.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아볼 정도였다.

술자리까지 끝나고, 손문철이 슬쩍 질문했다.

“이사님. 무슨 걱정거리가 있습니까?”

이유는 간단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이미라까지 불렀다.

세 G급 이능력자가 모인 자리에서, 죽음 지혜가 경고했던 사실에 대해 말했다.

반신이 나타나면 차원문이 확장되고, 대규모의 에테르가 투사된다는 것.

이미라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그럼 G급 이능력자가 나타나면 강력한 괴수가 나타난다는 말씀이세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더 그렇지요. 한 명만 각성한 게 아니라, 저와 미라 씨 둘이 한꺼번에 각성했으니까요.”

“이런……”

손문철이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시혁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이라 검은 천체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지구 반대편에 가 있을 테니까.

죽음 지혜의 경고는 당장 다음날부터 현실화되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확인한 검은 천체가, 평소보다 족히 2배 이상 커져 있던 것이다.

< G급 이능력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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