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172화 (172/250)

< 논의 >

아르거스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 손문철과 공유하고 있었다.

시혁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손문철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도 한몫을 했고.

하지만 손문철도 모든 걸 다 감당할 수는 없었다.

대표적인 게 낫슈바켈의 제안이었다.

좋게 말하면 이민이고, 나쁘게 말하면 괴수가 한 마리 추가되는 것 아니겠나.

이건 결국 청와대에서 결정해줘야 했다.

청와대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협회에 있던 시혁과 손문철을 닫았다. 도청 장치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께선 고룡의 이주를 공식적으로 거부하셨습니다.”

시혁은 입을 앙다물었다.

예상했던 결과다.

“그래요? 아쉽네요. 고룡이 우리나라 국민이 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큰데.”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그 고룡은 걸어 다니는 핵폭탄과 같다면서요? 아르거스에서 에테르가 넘어 오는 것만으로 이런 사단이 났는데, 그 정도로 강한 괴물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입맛이 썼다.

힘들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남자의 태도가 사뭇 완강했다.

하긴 대통령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지혜로운 황금용도, 생명을 아끼는 녹색용도 아니고 성격 급한 적색용이었다. 화가 난다고 도시를 날렸다간 그 비난이 온통 대통령에게 쏟아지지 않겠나.

남자는 강력하게 당부를 하고 협회를 떠났다.

“아르거스에서 그 어느 누구도 지구로 넘어와서는 안 됩니다. 차원 이동? 절대 안 됩니다. 대통령님께서 신신당부를 하셨으니,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난처했다.

낫슈바켈과 이미 약속을 했고, 방대한 마법 지식을 주입받은 후였다. 그걸로 자신이 베리타스의 환생이라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했지.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면 소위 말하는 먹고 튀는 셈 아닌가. 차원 이동을 못 시켜주니까.

손문철이 좋은 말로 시혁을 위로했다.

“낫슈바켈을 데려오는 것은 처음부터 힘들었습니다. 어느 누가 통제 못할 존재를 받아들이려고 하겠습니까? 제 짧은 생각으로는, 받을 것만 받고 무시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사님께는 면목이 없습니다만, 지구의 안전이 가

장 중요합니다.”

“그럼 아르거스에서의 일이 힘들어집니다. 고룡이 훼방을 놓으면, 제가 만들 성역도, 협회장님의 성역도 금방 망가질 수가 있어요.”

“그러지 못하게 잘 설득을 해야지요.”

시혁은 손문철을 빤히 쳐다보았다.

손문철의 말은 뻔했다.

차원 이동을 해주는 척 낫슈바켈을 속이라는 말 아닌가.

갑자기 손문철이 낯설어졌다.

항상 대인의 기상을 보여줬던 손문철인데, 지금은 시혁에게 얕은 수를 쓰라고 종용하고 있지 않은가.

손문철이 허허롭게 웃었다.

“제게는 우리나라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다음이 지구고요. 낫슈바켈과 이사님의 관계는 알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외계의 고룡은 어찌 되든 좋습니다. 이사님은 어떻습니까?”

입맛이 씁쓸해졌다.

시혁도 그렇다.

당연히 대한민국이, 지구가 더 소중하다. 최악의 경우라면 낫슈바켈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꼭 최악의 상황이 초래될 거라고 어떻게 장담하나.

낫슈바켈의 존재가 지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당장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손문철도 부정적이고, 청와대에선 절대불가의 방침을 선언했으니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낫슈바켈에게도, 우리에게도 윈윈하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네요.”

“그런 방법이 있겠습니까? 통제되지 않는 힘이라는 게 쟁점인데, 낫슈바켈이 목줄을 찰 리도 없고요.”

“그냥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사님 뜻대로 하세요. 방법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면, 저도 돕겠습니다.”

머리가 아팠다.

심장을 걸고 수호룡 선언을 하게 해?

머리에 폭탄을 심어 언제든 죽일 수 있게 만들어?

둘 다 유효한 해결책이 아니다. 전자는 지구인이 말 한 마디를 믿을 수 있겠냐고 할 테고, 후자는 낫슈바켈이 수락할 리가 없으니까.

몇 마디를 더 주고받던 참이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이미라였다.

손문철이 자리를 권했다.

“미라 씨, 거기 앉으세요.”

“네. 이사님도 와 계시네요?”

시혁은 한 차례 웃어 보였다.

곧 이미라가 G급 이능력자가 될 참이었다. 시혁과 비슷한 시기에 준신이 되었으니, 3월 초에는 반신으로 승격되지 싶었다.

그래서 손문철과 의논 후,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 얻은 모든 정보를 공개하기로.

근두운에 참여시키고 관찰한 결과에 따른 결정이었다. 믿을 만 하다고 본 것이다. 사실 뒷조사도 좀 했고.

딱 하나만 뺐다.

시혁이 베리타스의 환생이라는 사실.

이건 눈앞에 있는 손문철도 몰랐다. 아르거스에서만 알고 있었다. 괜히 퍼져나가지 않게, 둘 다 함구하기로 한 것이다.

손문철이 먼저 말을 꺼냈다.

“미라 씨, 지금부터 듣는 말은 절대 대외비입니다. 어디에 가서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마세요. 제 입은 무거워요.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삼두룡이라도 나타났나요?”

“최 이사님에 관한 겁니다. 이사님?”

손문철은 시혁에게 공을 넘겼다.

시혁은 가장 먼저 자신이 아르거스의 기억을 보존한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미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게 가능해요? 정보 발신 장치로만 정보를 가져온 거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모르스 부호를 써야 하니까 한계가 있지요. 대부분은 제가 기억해서 지구로 옮겼습니다. 외부에서 눈치 채지 못 하게, 연막용으로 써먹은 겁니다.”

“어쩐지…… 이사님이 발현자일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어요. 다른 정보 계열 발현자랑은 다르게, 말씀하시는 게 단편적이지 않고 체계가 있었거든요.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이미라는 시혁의 말을 금방 이해했다.

전부터 이상하다고 여겼었나 보다. 하긴 시혁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지.

금방 받아들여서 다행이다.

현재 상황을 더 자세히 설명하려고 하는데, 이미라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럼 이사님은 제가 아르거스에서 어쩌는 줄 잘 아시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제가 진짜 아르거스에서는 지구와 성격이 많이 다른가요? 저번에 정보 수신된 거 보니까 그러던데.”

시혁은 난처한 얼굴을 했다.

요즘에는 정보 발신을 별 걸 다하고 있었다. 노하우가 쌓이면서, 더 많은 정보를 더 자세하게 보내는 까닭이었다.

그 중에는 소환자들의 성격에 대한 것도 있었다.

지구에서는 얌전한데, 아르거스에서는 호랑이처럼 방방 뛰더라. 지구나 아르거스나 똑같더라. 혹은 이런 미치광이는 처음 봤다는 내용.

가장 크게 희자 되는 게 시혁과 이미라였다.

둘 다 반신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으니까. 특히 이미라는 아르거스만 가면 성격이 변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입을 우물거리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음…… 미라 씨는 아르거스에서 광전사가 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광전사요?”

이미라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오크 혈투사에 오우거 폭군 출신인 것도 억울한데…… 아, 난 바보 같이 왜 그런 걸 선택했지?”

그야 본인에게 가장 잘 맞으니 그랬겠지.

악 성향 진영에 확실히 공격적인 병종이 많다. 선 성향은 대개 방어적이고.

손문철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게 중요하겠습니까? 아르거스에서 성격이 바뀌는 건 흔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미라 씨가 곧 G급 이능력자가 된다는 거지요.”

“조금은 허무하네요. 제가 기억 못하는 일 때문에 등급이 올라간다니…… 처음 각성했을 때만 해도 G급 찍어보겠다고 별짓을 다했거든요.”

“그냥 운이 좋아서 얻는 게 아닙니다. 아르거스에서 미라 씨가 노력을 해서 계급이 올라가고, 반신으로 진화하는 거예요. 그 점을 명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공짜가 아니니까요.”

시혁의 말에 이미라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해요. 솔직히 근두운이 아니었으면 반신은 택도 없었을 텐데요. 다 이사님 덕분이에요.”

지금까지 알아낸 내용들을 모두 공유했다.

이미라는 처음에는 웃으며 들었다. 곧 G급 이능력자가 되고, 이렇게 극비 사실을 전해 들으니 스스로가 대견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웃지는 못했다.

시혁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사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신들은 그렇다 치고, 파괴신은 대체 뭐에요? 심연의 마신? 그게 언젠가 우주 전체를 잡아먹는다고요?”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아무리 빨라도 수천 년이 지난 다음 일이에요. 하지만 되도록 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좋겠지요. 아르거스와 연결을 끊어서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아쉽네요. 아르거스와 연결이 되면서 많은 걸 배웠는데……”

“지구와 비교해서 아르거스가 가진 강점은 마법인데, 그건 제가 머릿속에 다 담아뒀습니다. 더 이상 얻을 게 없어요.”

“아, 그럼 연결을 끊는 게 좋겠네요. 그렇게 하면 파괴신이 지구를 못 찾아오나요?”

“결국은 찾아올 겁니다. 하지만 바로 연결되는 통로가 없으니 시간이 걸리겠죠. 천년 단위가 아니라, 억년 단위는 소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겠네요.”

우연히 낫슈바켈의 이야기도 나왔다.

손문철이나 대통령과는 다르게, 이미라는 찬성을 했다.

“용이 지구로 옮겨온다고요? 안 될 것도 없죠!”

“너무 위험합니다. 청와대에서도 반대했어요.”

손문철이 제지하지만, 이미라는 꿋꿋이 자기주장을 폈다.

“설득해야죠. 그 용은 수천 살이 넘는다면서요. 그럼 아르거스의 지식을 많이 알 거 아녜요. 거의 모든 마법에 통달했다고 봐야죠. 지구와 아르거스의 연결이 끊어지면, 마법과 과학을 빨리 융합하는 나라가 앞서 가지 않겠

어요? 물론 이사님이 계시지만, 용이 같이 있으면 더 좋죠.”

그야 그렇지.

시혁이 다시 생각에 빠질 때, 이미라가 몸을 움찔했다.

“아, 잠깐만요. 아르거스랑 지구 연결이 끊어지면 그때 아르거스에 있던 소환자들은 어떻게 돼요?”

“고민 중입니다. 그들을 아르거스에 두고 올 수는 없으니까요. 그냥 강행했다간 식물인간 수십만 명이 양산될 겁니다.”

이미라가 눈가를 찌푸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좋은 생각이라도 났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방주를 만들면 어때요?”

“방주요? 하하, 어차피 영혼만 옮겨오면 되니까,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소환자들을 모아서 한꺼번에 이동시키자는 거예요. 동시에 아르거스의 차원문을 부수면 되지 않을까요?”

나쁘지 않은 구상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지구 출신 소환자들을 한 곳에 모으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전장에 모일 수 없으니 행성에서 집결해야 한다는 점도 난감했다. 전장에 흩어져 있을 일반 소환자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더 큰 문제는 행성에서 전장 중앙에 있는 차원문까지 영혼들을 보내려면 막대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 이번에는 단순히 이동만 시키는 게 아니라 차원문을 부숴야 하니 그것까지 감안하면 얼마나 필요할지 계산이 안 된다.

어라 잠깐만.

이거 어디서 들어본 소리 같은데……

낫슈바켈이 그랬지.

차원 이동 마법은 최종 확장한 반신의 성역을 망가뜨릴 정도로 막대한 힘이 필요하다고.

이걸 이용하면 어떨까?

행성에서 강력한 힘을 쏘아 올린다. 그 힘을 이용, 행성 내  소환자와 전장 내 일반 소환자의 영혼을 수집한다. 그리고 가속시켜서 차원문을 통과시키며, 지구와 아르거스의 연결을 끊는다.

가능성이 있지 싶었다.

다만 낫슈바켈과 전폭적인 협력이 필요했다. 아울러 낫슈바켈과 낫슈실라는 지구에 이주하게 된다.

이 계획을 설명하자, 손문철이 마뜩찮은 얼굴을 했다.

“다른 방법은 없겠습니까?”

“글쎄요. 지금 제 능력으로는 이것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네요.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방법이 있는 게 어디에요. 정 늦다 싶으면 낫슈바켈이랑 협의하면 끝이잖아요. 이사님,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천천히 구상해 보세요.”

“그래야지요. 어차피 1년 정도 시간은 있습니다.”

그때까지 다른 방법을 만들면 그걸 쓰는 거고, 아니면 막 구상한 방법을 쓰는 거다.

손문철이 둘을 보며 말했다.

“어쨌든 두 분이 빨리 G급 이능력자로 각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국제 이능력자 대회 개최지가 곧 선정될 것 같으니까요.”

“4월 말에 개최된다면서, 선정이 꽤 늦어지네요.”

“중국 때문이죠. 중국이 훼방을 놓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자국에서 선정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시혁과 이미라 모두 힘써보겠다고 했다.

손문철이 또다시 간곡히 부탁하며, 논의를 끝냈다.

청와대에 바뀐 상황을 설명했다.

대통령이 고심하더니, 차차 논의해 보자고 했다. 당장 결정을 내리기는 힘든 모양이었다.

어느덧 2월 중순이 되었다.

추위가 한 풀 꺾이고, 서서히 날이 풀리던 시점.

아르거스에서 편지가 하나 날아왔다.

발신자는 무지개 천마 라크라.

천상도에 와서 반신의 시련을 받으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 논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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