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171화 (171/250)

< 별주부 >

해군 3함대 사령부는 영암 삼호읍에 있다.

흔히 목포라고 하지만, 행정 구역으로는 영암.

시혁은 목포와 영암을 가로지르는 영산강을 쳐다보았다. 한강보다는 못해도, 바다로 접어드는 곳이라 꽤 넓었다.

앞에 앉은 박수호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하늘만 아니라 바다도 정복하게 생겼네?”

별주부 또한 천리안과 같다.

탐색 이적 대신 정화 이적을 펼칠 뿐이다. 일정 반경의 에테르를 모두 정화하여 소멸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범위는 조금 짧아서 반경 5킬로미터.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남해는 수심이 얕아서, 해저까지 충분히 닿을 테니까.

헬기가 해군 사령부에 내려앉았다.

쌍둥이는 물론 손문철과 이미라까지 합세한 상태였다.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3함대 사령관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

“반갑습니다. 이천식 소장입니다.”

시혁과 이천식은 안면이 있었다. 별주부 제작 건으로, 몇 차례 방문을 했으니까.

함께 항구를 향해 갔다.

작은 구축함 한 대가 둥둥 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별 다를 게 없다. 그 내부가 진짜였다. 온갖 마법진과 함께 오색 수정이 설치되어 있었다.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법을 써서 시력을 강화하여 보자, 작은 점 하나가 떠 있는 게 보였다.

천리안이다.

목포 앞바다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중이었다. 별주부가 시운전을 시작하면, 그 결과를 확인할 예정이었다.

박수호가 구축함 안으로 들어갔다.

쌍둥이 형인 박주호가 사령부에 있는 근원의 나무에 탑승했다. 박수호의 모험심이 큰 까닭에, 이런 일에는 항상 먼저 하곤 했다.

시혁은 긴장한 얼굴로 구축함을 쳐다보았다.

손문철이 시혁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잘 될 겁니다.”

“꼭 그래야 할 텐데요.”

실험은 모두 성공이었지만,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다 괴수 때문이다.

며칠 전, 천리안이 목포 인근 신안 앞바다에서 괴수 한 마리를 관측했다.

꽤나 크고 강했다.

작은 배 한두 척은 가볍게 으스러뜨릴 정도.

외형은 관찰하지 못해 어떤 괴수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별주부에 탑재한 오색 수정을 노릴 거라는 예상이 제기되었다. 그에 따라, 시혁은 물론 손문철도 별주부에 올라 별주부를 호위하기로 했다.

별주부가 항구를 떠났다.

시혁은 갑판에서 멀어지는 항구를 보다 함교로 돌아왔다.

모니터가 사령부와 연결되어 있었다. 구축함 함장은 물론, 이천식 소장도 관심을 가지고 모니터를 주시했다.

“이것들이 다 에테르입니까?”

“예. 막대가 높을수록 변이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보시다시피 신안의 에테르 농도가 높으니까, 그곳부터 정화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시혁은 대꾸하며 모니터를 보았다.

신안 쪽은 정말 심각했다. 남해만 신경 쓰고 있었는데, 에테르 막대의 높이가 배는 높았다.

이윽고 서해로 접어들었다.

별주부 주위의 막대들이 점차 깎여나갔다.

직경 약 10 킬로미터.

순조로웠다.

지우개로 슥슥 지우는 장면을 보는 듯했다. 잠깐의 운행만으로, 목표 주변이 꽤나 깨끗해졌다.

사단이 일어난 것은 신안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모니터에 붉은 막대가 하나 나타났다.

막대가 별주부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그것을 확인한 즉시, 함장이 비상을 걸었다.

함교에 있던 이능력자들이 갑판으로 우르르 나갔다.

괴수는 꽤 먼 곳에 있었다.

이능력자들이 에테르 파장을 퍼뜨리자, 괴수가 움찔하더니 몸을 돌려 도망쳤다.

그 사이, 시혁은 괴수의 정체를 확인했다.

손문철이 짧은 탄식을 뱉었다.

“어려운 녀석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방금 언뜻 보인 괴수는 짧은 뱀처럼 생겼다.

뱀 치고는 뚱뚱했다. 몸통이 부풀어 있고, 네 개의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기괴하게 변형되었고, 머리에는 뿔이 여럿 났다.

아르거스에서는 마룡, 지구에서는 화염괴룡.

입에서 불을 뿜는 게 특기였다. 사실 아르거스에서는 각종 화염 마법과 저주를 기가 막히게 썼다. 지구에서는 그러지 못하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이미라가 다행이라는 얼굴을 했다.

“이제라도 정체를 알아서 다행이에요. 화염괴룡이라고 못 잡지는 않잖아요? 저희 공격대에 맡겨주시면, 사흘 내로 사냥할 수 있어요.”

“바다 괴수인데요?”

“아사달에 있을 때 많이 잡아봤어요. 충분히 가능해요.”

그렇다면 다행이다.

다만 준비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바다 괴수를 잡는 방법이 낚시여서, 미끼 역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거야 협회에서 준비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끝이 날 줄 알았는데, 함교에서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한 마리가 아닙니다! 다섯 마리입니다, 다섯 마리!”

뭐가 그리 많아?

통찰 마법을 써서 수면 아래를 살폈다.

정말이었다.

화염괴룡 다섯 마리가 서로 어울리며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강렬한 살의가 느껴지는 게, 그냥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

손문철이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이거, 꽤 위협적이네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혁도 손을 풀었다.

에테르 파동을 넓게 퍼뜨렸다.

별주부의 오색 수정이 거기에 반응했다.

정화 이적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는 없다. 대신 임시로 오행 순환체를 써먹을 수는 있었다.

화염괴룡들은 얼마 동안 별주부 주위를 맴돌았다.

한참 간을 보다가 포기하고 사라졌다.

갑판 위에서 기세를 올리는 손문철과, 별주부에서 느껴지는 오행 순환체의 힘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몇 차례 더 반복되었다.

다섯 마리의 화염괴룡만이 아니었다.

쌍두 거북, 거대 오징어, 어둠 상어 등 다양한 바다 괴수들이 별주부를 노렸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많은 바다 괴수가 있었나 싶을 정도.

신안까지의 한 차례 시운전을 마치고 영암으로 돌아왔다.

괴수들이 따라왔으면 군함으로 작살을 내줬을 것이다. 어떤 바다 괴수든 함포나 어뢰 한 방만 맞추면 끝장이니까. 그걸 녀석들도 아는지, 신안을 벗어나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이건 공격대 한두 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협회와 해군의 대대적인 협동 작전이 필요했다.

이천식 소장이 손문철을 보고 말했다.

“최대한 빨리 저놈들을 소탕해야겠습니다.”

“그래야지요. 협회 최고의 이능력자들을 모두 투입하겠습니다. 언제 작전에 나설 겁니까?”

“아직은 모릅니다. 해작사에 먼저 보고를 해야지요. 사태가 시급하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바다의 괴수들을 어떻게 잡는다?

하긴 위치만 알면 어렵지 않았다. 신안 부근은 바다가 깊지 않아서, 어뢰와 폭뢰 등으로 공격이 가능하니까.

관건은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시혁이 뭘 할 것은 없어 보였다. 어느새 작전 구상에 들어간 둘을 놔두고 조용히 물러나왔다.

이미라가 따라붙었다.

“일이 묘하게 됐네요.”

“어쩔 수 없지요. 차라리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입니다. 늦게 알았으면 이미 국민들 피해가 심각했을 겁니다.”

“맞아요. 이사님도 토벌 작전 참가하실 거죠?”

“글쎄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전 전투 요원이 아니니 미끼 제작이나 보조 장비 제작을 맡게 되지 않을까요?”

“하긴 그렇겠네요.”

시혁은 별주부가 수집한 정보를 확인했다.

괴수들이 나타났다는 것만 빼면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다.

효율과 효과 모두 훌륭했다. 이제 남은 것은 별주부를 몇 척 더 제작하여 바다를 정화하는 일뿐이었다.

서울로 돌아왔다.

손문철은 굉장히 바빠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천리안이 쉬지 않고 출격하여 신안을 수색한 결과, 그곳에 숨어 있는 괴수가 100 마리 이상이라는 결론을 냈으니까.

끔찍한 소리였다.

게다가 신안은 섬이 굉장히 많아서 포위해놓고 단번에 끝장내기가 어려웠다. 섬마다 사는 주민들을 소개하는 것도 힘들었다. 과연 어떻게 토벌 작전을 할까 싶었다.

결국 손문철이 시혁을 찾아왔다.

“이사님, 잠시 의논할 게 있는데 괜찮으신지요?”

“예, 괜찮습니다. 앉으세요.”

둘이 마주한 곳은 지리산 비밀 기지.

근두운 탑승 준비가 한창이었다. 성질 급한 이능력자들은 벌써 들어가 눕기까지 했다.

그것을 한 차례 보고, 손문철이 입을 열었다.

“괴수들을 한 곳으로 모을 강력한 미끼가 필요합니다.”

“저번에 보니까 오색 수정을 보고 달려들던데, 그걸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오색 수정은 꽤 있다.

소록도의 사슴이 그러했듯, 변이 직전의 동물을 정화하면 높은 확률로 오색으로 변이된 신체 부위를 얻는다. 그걸 정제해서 오행 순환체를 주입한 게 바로 오색 수정이니까.

손문철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괴수들이 극도로 탐을 내게, 설령 불구덩이가 기다리고 있어도 몸을 던지게 만들 미끼가 필요합니다.”

“뭐 생각하시는 게 있나 보죠?”

“예. 작전을 짜는데 그런 미끼가 있으면 단 한 명의 인명 손실 없이 성공시킨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여쭤보는 겁니다.”

어렵지 않다.

가벼운 매혹 마법을 오색 수정에 집어넣으면 된다. 물을 타고 흘려보내면 괴수들이 환장을 하고 덤벼들 것이다. 평범한 물고기까지 덤벼들면 곤란하니, 괴수만 감지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지.

긍정적인 대답을 하자 손문철의 얼굴이 밝아졌다.

“역시 이사님입니다. 언제까지 될까요?”

“내일 서울에 가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하루면 충분합니다. 단, 절대 잃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바다 괴수가 미끼를 먹기라도 하면 삼두룡 못지않은 괴수로 진화합니다.”

“조심해야겠네요.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바다 괴수도 살아서는 미끼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하지요.”

그렇다면 안심이 된다.

다음날 바로 미끼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매혹 마법만 걸려고 했다. 다만 이 경우에는 손문철이 원하는 것처럼 확실하게 괴수들이 미끼를 문다는 보장이 없었다. 매혹 마법에 걸린다고 뻔히 보이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진 않으니까.

한 가지 마법을 덧붙였다.

최근에 무저갱의 핵을 연구하면서 얻은 마법.

심연.

강력한 광기의 힘이 담겨 있었다.

본인의 목숨조차 도외시하며 탐하게 만들고, 기괴한 희열에 들뜨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대로 쓴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시혁이 재해석한 대로 사용했다. 오직 바다 괴수에게만 통하고, 파괴신을 불러오는 효과는 없었다.

미끼를 만들면서도 입맛이 씁쓸했다.

심연의 힘을 아주 간단히 응용하는 것만으로 이런 위력적인 미끼를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더욱 빠지게 되고, 더 강한 힘을 추구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완성된 미끼를 보내주었다.

며칠 후, 남해에서 대대적인 군사 작전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의 모든 눈이 집중되었다.

외국에서 손님들도 많이 왔다. 환경이 에테르로 오염된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여서, 천리안과 별주부에 관심이 많았다.

작전은 싱거웠다.

미끼를 개봉하자, 신안 인근의 모든 바다 괴수가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었다.

군함이 멀찍이서 함포를 쐈다. 기뢰도 미리 깔아놓았고, 어뢰와 폭뢰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가끔 운 좋게 미끼에 접근한 괴수도 있었다. 그런 괴수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이능력자들이 끝장을 냈다.

정면 대결에서 현대 병기와 바다 괴수가 싸우면 바다 괴수가 질 수밖에 없다. 작전을 시작한지 채 한 나절도 되지 않아, 모든 바다 괴수의 숨통을 끊었다.

“끝났구나……”

시혁은 뉴스를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전라도의 괴수 출현이 증가하고, 남해 혹은 서해의 위험을 감지한 게 벌써 1년 전이다.

그걸 해결하려고 천리안과 별주부를 만들었다. 고생은 했지만, 이렇게 끝이 나니 감개가 무량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낫슈바켈의 차원 이동부터 그랬다.

시혁이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었다. 일반인도 아니고, 핵폭탄 급의 전략 무기가 하나 지구로 이주하는 거니까.

다양한 사람들과 의논하는 게 필요했다.

< 별주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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