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167화 (167/250)

< 대종사 >

진리 대종사, 베리타스의 환생이었다.

영혼 파장이 완벽히 일치했다.

우주의 어떤 생명체도 영혼 파장이 같을 수 없으니, 시혁의 추측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그것을 확인하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로 대종사의 환생이었다니……

하긴 지금까지 시혁은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아르거스에 오기 전에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지만, 아르거스에 오자마자 인생이 반전된 것이다.

시혁이 베리타스의 환생이라면 납득할 수 있다. 뭔가 연구를 시작하면 바로 성과를 얻었던 것도, 마법적 통찰이 필요한 상황에서 즉시 영감을 얻었던 것도 모두 다.

“가만. 이상한데?”

다만 한 가지 의구심이 드는 게 있다.

마법도의 존재다.

시혁은 자신이 대종사의 환생이라고 추측했을 때부터 한 가지 의심을 했다.

신위 경쟁 자체가 아르거스 신들의 함정이 아닐까, 하고.

신이 되면 세계에 영향력을 잃고, 그만큼 공허의 힘이 약화된다는 게 그 의심을 부채질했다.

어쩌면 신위 경쟁의 목적은 대종사의 환생체를 불러, 신으로 만드는 척 박제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러니 신이 되면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공허의 힘 중 해당되는 힘이 제거되는 거겠지.

그런데 이럴 거면 마법의 신좌가 남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시혁이 바로 베리타스의 환생이니까.

모르겠다.

신위 경쟁은 대종사의 환생들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지.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대적자라는 개념이 어쩌면 대종사들을 겨눈 것일지도 모르지 않나.

시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정보가 더 필요했다.

그래도 자신이 베리타스의 환생인 것을 안 건 참 다행이었다. 미처 몰랐더라면 무슨 일을 당했을지 누가 알겠나.

한 가지 더 알아볼 게 있었다.

방문 주기.

대부분의 소환자는 귀환했다가 방문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반면 소수의 소환자는 자신의 의지로 훨씬 짧은 방문 주기를 갖는 게 가능했다.

왜 그럴까?

시혁은 영혼 파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확인을 위해, 영혼 파장 측정 장치를 싸들고 손문철의 성역을 방문했다.

첫 검사자는 신아영.

육중한 관처럼 생긴 영혼 파장 측정 장치를 보자, 영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이거 위험한 건 아니죠?”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언제 신아영 님한테 안 좋은 일 한 적 있습니까?”

“그건 그래요. 그런데 이걸로 뭘 하시려는 거예요?”

“영웅들의 방문 주기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방문 주기요? 이제 근두운이 있으니까 별로 안 중요하잖아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신아영의 영혼 파장을 검사했다.

열다섯 대종사 누구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

다만 약간의 특색이 있었다.

야만 대종사 바바의 영혼 파장과 비슷했던 것이다. 그래도 조금 비슷한 정도이지, 뚜렷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다른 이능력자들도 검사를 진행했다.

이능력자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순순히 검사를 받았다.

재미있는 사실이 관찰되었다.

등급이 높은 이능력자, 즉 고위 병종 출신의 영웅일수록 대종사들과 영혼 파장이 비슷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방문 주기와 연관성이 있었다.

영혼 파장이 비슷한 소환자가 아르거스를 자주 방문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닮았다고 해도 사흘이 한계였지만.

현재 성역에 있는 대한민국의 이능력자 중 방문 주기가 가장 짧은 것은 손문철과 이미라였다.

둘 다 나흘 간격.

손문철은 철의 대종사 페이룬과 닮았고, 이미라는 파괴 대종사 볼케이누와 비슷했다.

하지만 꼭 자신과 영혼 파장이 닮은 대종사의 진영만 찾아가지는 않았다. 가령 채현애는 생명 대종사 위그와 영혼 파장이 비슷한데 정작 본인은 천상 진영 일급 감시 천사 출신이니까.

이 내용은 손문철에게만 알렸다.

손문철이 허허 웃었다.

“열다섯 대종사라, 저도 그들에 대해 듣긴 했습니다만 그들과 영혼이 닮아서 방문 주기가 짧을 줄은 몰랐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지요.”

“가만, 그러면 이사님은 어째서 방문 주기가 하루입니까? 사흘이 한계라면서요? 아르거스 일을 지구에서 기억하는 것도 그렇고…… 혹시?”

손문철이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어떤 결론을 냈을까?

궁금하다는 듯이 보자, 손문철이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님이 대종사의 환생이나 뭐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했던 게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만.”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하다.

시혁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는 진리 대종사 베리타스의 환생입니다. 영혼 파장이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허허……”

손문철이 입을 벌렸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태도.

시혁은 여상(如常)스러운 눈으로 손문철을 마주 보았다.

그 시선 때문인지, 손문철도 곧 냉정을 되찾았다.

“혹시 옛날 기억 같은 게 있습니까? 아르거스에서 살 때나, 마법 지식 같은 것 말입니다.”

“있을 리가요.”

시혁은 쓰게 웃었다.

손문철이 아깝다며 입맛을 다셨다.

“하긴 전생은 전생, 현생은 현생일 뿐이지요. 기억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 됐습니다.”

시혁은 말없이 손문철을 응시했다.

예상외의 반응이다.

최소한 시혁 때문에 지구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한 마디는 할 줄 알았더니?

그 점에 대해 묻자, 손문철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사님 존재 때문에 지구에 괴수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뭘 그러십니까? 나쁜 건 신들이지요. 보아하니 대종사가 환생한 행성에만 차원문을 뚫은 것도 아니고요. 제가 아는 아르거스와 연결된 행성이 최소 백 개는 넘

습니다. 괜히 이상한 생각 하지 마세요. 그래도 이 사실은 우리 둘의 비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괜히 알렸다가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손문철이 그런 얘기를 하자, 시혁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낫슈바켈이 말했듯, 아무리 환생을 했다고 해도 베리타스와 시혁은 엄연히 다른 인물이다.

그래도 약간은 찝찝했는데, 손문철의 말에 그런 마음까지 완전히 씻겨져 나갔다.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미라 씨도 준신 계급이 되었다면서요?”

“예. 미라 씨 궁극기 보셨습니까? 아주 무시무시합니다.”

“안 그래도 보고 오는 길입니다. 엄청났지요.”

준신 계급이 되면 궁극기가 강화된다.

이미라의 궁극기, 피의 춤은 원래 전방위 공격 기술이었다. 그러던 게 검에 실어 날릴 수 있게 되었다. 위력도 강해져서, 지구의 미사일 뺨 칠 정도 파괴력을 뽐냈다.

손문철이 시혁에게 질문을 했다.

“이사님도 이번에 준신이 되셨다고 했죠? 환생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충전양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최종병기는 2마리, 영웅은 8명 환생시키게 된 거지요. 미리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미리 사용하다니요?”

“영웅이나 최종병기에게 미리 걸어놓는 겁니다. 그럼 죽는 즉시 환생이 발동해서 되살립니다.”

“허! 목숨이 두 개가 있는 셈이네요?”

“그렇지요. 대신 무한하게 유지되진 않습니다.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전략적으로 써야 하지요.”

“충전은 아르거스를 다시 방문해야 채워진다고 했지요? 정말 그렇겠습니다.”

이미라는 근두운의 덕을 톡톡히 봤다.

예전에 시혁과 만났을 때에는 군주 계급이었다. 근두운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전에는 초월 계급이 되어 있었다. 매일 전장에서 활약한 까닭에, 시혁보다 조금 느리게 준신이 된 것이다.

손문철이 기분 좋게 웃었다.

“곧 우리나라 G급 이능력자가 세 명으로 늘겠습니다.”

“그렇지요.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겁니다. 길어야 두 달? 2월 말이나 3월 초에는 결정이 난다고 봅니다.”

“기대 됩니다. 미국의 G급 이능력자가 여섯이고, 이능 강국이라는 영국이나 독일, 일본도 G급은 세 명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당당한 이능 강국이 되는 셈입니다.”

어디 이미라 뿐이랴.

몇 명의 유력한 후보자가 더 있었다. 미국에서 새로운 G급 이능력자가 출현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1년 내로 G급 이능력자의 수에서 미국을 앞지르게 된다. 당장 강찬만 해도 초월 계급이 된지 오래여서, 곧 준신이 될 거

라고 하니까.

시혁은 슬슬 자리를 떴다.

“전 마법도로 돌아가겠습니다. 귀환 시기가 다가오고 있어서요.”

“아니, 전장에 참여하시지 않고요?”

“진리 진영에서 참여할 생각입니다. 연구할 게 좀 있어서요. 협회장님과 같이 전장에 가면 연구만 하고 있을 수가 없잖습니까? 반신 후보들에게 기회가 가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철 진영은 마법 연구로는 마나를 얻을 수 없으니…… 내일 지구에서 뵙겠습니다.”

마법도로 돌아왔다.

도시 중앙에는 토론의 전당이 있다. 반신의 사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임관하려는 영웅들도 많이 드나들곤 했다.

시혁이 들어서자 온통 시선이 집중되었다.

고급 병종 출신에 준신 계급이다. 갖고 있는 장비도 흔히 보기 힘든, 거의 신화에서나 나올 것들이었다.

자연히 최고의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지식 장로.

일반 소환자 시절 소환되어 각혼분을 만들었던 반신이었다.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찾아오면 아예 등용하겠다는 제의도 했었지.

길이 엇갈리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다. 지식 장로는 마법도에만 사자를 보내는 까닭이었다. 시혁은 대수림에 떨어져 그곳에서 활동했으니까.

[네게 기대가 크다. 최근 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네가 반전의 기치를 높이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걱정 마세요. 제 능력은 잘 아시잖습니까?”

[그러니 이런 조건으로 등용했지. 후우, 등극 이적만 아니었어도 이리 힘들진 않았을 것을.]

속으로 좀 찔렸다.

최근 진리 진영의 승률이 내려갔다는데, 거기 일조한 셈이니까.

지식 장로는 시혁이 등극 이적을 만든 것까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푸념을 늘어놓는데, 그걸 받아주느라 혼이 났다.

전장에 진입한 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공허 연구는 잠시 미뤄두었다. 낫슈바켈에게 전수 받은 마법 지식을 익히는 것에 주력했다. 가끔 실전된 고대 마법을 세계 지식에 등재시켜, 마나를 생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슷한 나날이 반복되었다.

아르거스에 방문하면 마법도에서 공허 연구를 했다. 귀환 시기가 되면 반신과 계약을 맺어 전장으로 갔다.

옛날 생각이 났다.

현자가 되기 위해 매일같이 공부하던 기억이.

“어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전생에서도 이런 식으로 공부를 했을 텐데, 전생이나 현생이나 어쩜 이리 한결 같나 싶어서였다.

머리를 식히려고 잠깐 밖에 나왔다.

마법도에는 특이한 문물이 많다. 음식도 그렇고, 건물과 가구도 그러했다. 시혁은 그것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공중 술집에 들어갔다.

시원한 드워프 맥주를 들이켰다.

장사가 잘 되는 곳이었다. 무려 99개 세계의 유명한 술을 팔았다. 지금도 다양한 종족의 마법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오색 현자님, 연구는 잘 됩니까?”

안면이 있는 마도사 영웅이 질문했다.

시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비슷하지요. 심원 마도사님은 어떠십니까?”

“저도 벽에 부딪쳤습니다. 이것만 해결하면 어떤 전장이든 씹어 먹을 수 있는데 골치가 아픕니다.”

연구자들의 상황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아는 이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그러다 심원 마도사가 불콰해진 얼굴로 떠들었다.

“참, 그 이야기 들었습니까?”

“무슨 이야기요?”

“암흑지의 태자가 광증에 걸렸답니다. 아주 난리가 났죠. 광증은 치료 방법이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더구나 태자가 죽으면 황후는 저절로 황비로 떨어지거든요. 절대 권력을 행사하다가 서열 2위로 밀리게 생겼으니, 황

후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죠.”

암흑지는 다크 엘프의 제국이 들어서 있다.

그 지배자는 황후.

왜 황제가 아니냐고?

암흑지의 신이 바로 암흑 황제였다. 지금은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현실 아르거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대신 암흑 황제와 관계하여 첫째 아들을 낳은 황후가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그 권력 기반은 오직 태자와 암흑 황제에게 나온다.

태자가 죽거나 불구가 된다면 제 2 황자에게 태자 자리가 넘어간다. 그럼 자연히 제 1 황비가 황후가 되는 것이다.

시혁과는 관련없는 이야기.

암흑지는 매우 폐쇄적인 곳이었다. 악 성향 영웅들만 출입이 가능했다. 시혁이 찾아가면 당장 병사들이 몰려들어 내쫓으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있구나, 하고 넘어갔다.

이후에도 암흑지의 소식은 계속 들렸다.

수많은 영웅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암흑지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저갱의 핵 때문이었다.

마법 능력을 크게 증가시키고, 차원문을 열어 마수 수십 마리를 소환할 수 있는 보물이었다. 다크 엘프 종족 제일의 보물로, 시혁이 가진 장비와 비견할 만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혁은 마법 연마에 힘을 썼다.

성과가 있었다.

지구 시간으로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낫슈바켈의 지식을 대부분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하긴 전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몽땅 썼으니까. 승천 이적을 통해서도 도움을 받았고.

반면 공허 연구는 지지부진했다.

낫슈바켈과 대면했을 때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질 못했다. 이제 낫슈바켈이 썼던 무한의 고리 마법진은 구현이 가능하나, 거기서 끝이었다.

그 문제로 골머리를 싸맸다.

모든 세계 지식을 열람하고, 낫슈바켈의 마법 지식을 고찰한 결과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공허, 그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어떻게?

네일룬의 신녀를 찾아가?

아니면 미친 척 공허의 바다에 뛰어들어 봐?

둘 다 해결책이 아니다.

시혁은 낫슈바켈이 했던 말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공허의 힘이 심연의 힘과 비슷하다고 했겠다.

또한 어둠 대종사 녹스는 이계신의 일부를 소환하여 멋대로 부렸다. 그 힘이 녹스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당연히 어둠 진영 또한 마찬가지였고.

아르거스에서 심연의 힘이 가장 집약되어 있는 물건이 뭐냐.

바로 무저갱의 핵이다.

그렇다면 시혁이 어딜 가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신역, 암흑지다.

< 대종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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