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방병원 >
월요일에 출근을 재개했다.
간호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혁을 쳐다보았다.
“어머, 원장님!”
“몸은 괜찮으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전 괜찮으니까 걱정 마세요.”
“뉴스에서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데요!”
“진짜 다행이에요. 범인들은 다 잡힌 거죠?”
“그럼요. 다 감옥에 들어가 있어요. 곧 중국으로 추방될 거예요.”
시혁이 출근했다는 소식은 금방 퍼졌다.
5층과 6층에서도 직원들이 올라왔다. 7층 원장실로 들어와 한참을 떠들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병동 회진을 했다.
그 사이 환자들이 꽤 많이 퇴원을 했다. 절반 이상이 모르는 얼굴이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한의사들과 이능력자들이 꽤 노력을 한 듯했다.
언제 특별 상여금을 주든, 회식을 하든 해야겠다.
회진을 하고 돌아왔는데 박희정이 원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 박 원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다른 게 아니라 한의사 면접 때문에요. 원래는 저번 주에 하려고 하셨잖아요? 언제 하실지 여쭤보려고요.”
“3월 1일에 한방병원을 개원하니까 시간이 좀 있긴 한데…… 그래도 올해 안으로는 해야겠지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 언급했듯, 시혁은 한방병원 개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소는 송정리이고, 기존의 요양병원을 인수한 탓에 상대적으로 준비기간이 짧게 소요되었다.
다만 사람을 뽑느라 골머리를 썩었다.
한의원과 한방병원은 천지차이니까.
간호사와 원무과 직원만 있어도 한의원은 돌아간다. 반면 한방병원은 청소, 조리, 세탁, 기계, 한약사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필요했다.
한방병원 개원에 대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긴 하다. 하지만 원장으로서 시혁이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았다. 자연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박희정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양한방 협진 병원으로 가실 거라고 하셨죠?”
“아무래도 그래야죠. 엑스레이나 MRI 같은 영상 기기를 활용해야 되니까.”
“의사 분들은 섭외를 하셨어요? 친구들 얘기 들어보니까 의사들은 협진 병원에서 근무하는 걸 싫어한다고 하던데요.”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운은 띄워놨는데, 조만간 한 번 만나봐야겠네요.”
“네. 그럼 오늘은 힘들고 내일이나 모레 어떠세요?”
“수요일이 좋겠습니다. 저녁에 한의원에서 뵙는 것으로 하지요.”
박희정이 나가자 시혁은 전화를 들었다.
다행히 오늘 저녁에 시간이 된다고 했다. 정연대학교가 있는 곳 주변에서 만나기로 했다.
월요일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환자가 지독하게 많았다. 열흘 간 진료를 쉬었더니 더 그런 것 같았다. 점심도 간단히 짜장면을 시켜서 먹었다.
마침내 저녁, 조금 간소해진 경호를 받으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먼저 와 있던 김진태가 그걸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역시 원장님답네요. 어디 대통령님이라도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놀리지 마세요. 저도 좀 과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저번 주 일도 있고 해서 그냥 달고 다닙니다.”
“흑룡회는 다 잡았다면서요? 아직 경호가 필요합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과장님이 협회장님한테 말씀 좀 해주세요.”
“어이쿠! 저 같은 쩌리가 감히 협회장님한테요? 농담하지 마십시오.”
사이좋게 안으로 들어갔다.
별채를 예약해 놓아서 딱 둘만 대면할 수 있었다.
음식이 적당히 들어오자, 시혁은 먼저 소주를 김진태의 잔에 넘치도록 따랐다.
“요즘도 응급실은 바쁩니까?”
“예전보다는 좀 나아졌습니다. 지금은 괴수 질병 환자들이 온다고 제가 꼭 나가봐야 되는 건 아니어서요. 원장님이 만드신 약 덕분이지요.”
하긴 옛날에는 이능 치료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무조건 이능력자가 당직을 서야 했다. 그래서 시혁이 응급 상황으로 환자와 전원을 왔을 때 김진태를 보게 된 거고.
지금은 시혁이 만든 약을 처방하면 그만이다.
모든 괴수 질병은 아니어도, 가장 많이 걸리는 괴수 질병에 대한 치료법은 모두 상용화되었으니까.
김진태가 눈을 반짝이며 시혁을 보았다.
“검은 천체가 등장한 이후, 괴수 질병 환자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게 올해 최초로 감소할 것 같다고 합니다. 전부 원장님 덕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 같았어도 똑같은 일을 했을 겁니다.”
“똑같은 일은 했을지 몰라도 결과는 많이 달랐겠지요. 제약 회사들한테 약값 상한을 두시고, 로열티 중 일부는 사회에 환원하시고…… 벌써 수십억을 넘게 기부하셨다면서요?”
“별 거 아닙니다. 액수로는 커도, 사실 별 것 아니에요.”
“그래도 보통 사람은 그렇게 하기 힘들지요. 저 같아도 움켜쥐고 있지, 탁 털어내진 못할 거예요.”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시혁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 걸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적당한 시점에, 넌지시 질문을 했다.
“저번에 제가 부탁드렸던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름 아닌 시혁의 한방병원으로 와 달라는 것.
기존에 안면도 있고, 나름대로 실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믿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서 근두운의 명단에도 올랐는데, 환자를 보는 것에 집중하겠다고 본인이 고사를 했었지.
김진태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결심을 한 듯 침을 한 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원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시혁은 솔직하게 기뻐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과장님이 저를 영입하시려고 했는데, 거꾸로 제가 과장님을 영입하게 되네요.”
부안 좀비 사태 해결 직후 얘기였다.
김진태가 그때 생각을 하는지 웃음을 흘렸다.
“그때부터 원장님이 크게 되실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이능력자로 각성하실 거라곤 생각을 못 했습니다만…… 이러다 대한민국의 두 번째 G급 이능력자가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야 두고 봐야지요.”
사실 가능성이 높았다.
시혁은 현재 군주 계급이고, 준신 계급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까.
신들의 세뇌를 깨뜨린 영향이 컸다.
대한민국 이능력자 하나의 세뇌를 해제하는 게 천사 수십 명을 치료하는 것보다 더 큰 판정을 받았다. 그러면서 불멸의 힘을 다루는 것도 조금씩 익숙해졌고.
어쩌면 초월 계급이 될 때 걸린 시간보다, 준신 계급이 될 때 걸릴 시간이 더 짧을 수도 있겠다.
한결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먹었다.
김진태가 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말했다.
“제 친구 중에 원장님 병원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전부 실력도 있고 성격도 괜찮은 녀석들이니 도움이 될 겁니다.”
“이제 원장님 병원인데, 원장님 뜻대로 하셔야죠.”
“네? 아하하, 그도 그렇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드림팀을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밤이 늦은 다음에야 헤어졌다.
이걸로 가장 큰 산은 넘었다. 나머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처리하면 될 것이다.
시혁의 마음이 푸근해졌다.
화요일에는 한의사 면접을 시행했다.
박희정에게 맡겨놔서였을까. 시혁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대면했다.
“아니, 교수님이 여기엔 웬 일이십니까?”
박성화 과장이었다.
시혁이 신아영을 직업 치료하겠다고 했을 때, 시혁을 가장 강하게 변호했던 인물.
박성화 과장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예전에는 반말을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태도.
시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른 면접자들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겨우 진정했다.
일단은 면접을 진행했다.
한의사들이 일어나 나가기 직전, 박성화 과장에게만 은밀하게 마법 전언을 날렸다.
[교수님. 시간 괜찮으시면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잠깐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면접은 금방 끝날 테니 교수님과 이야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박성화 과장이 눈을 굴렸다.
곧 시혁의 뜻을 간파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다른 면접자들 틈에 섞여 한의원을 빠져나갔다.
꽤 많은 한의사와 이야기를 했다.
그러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옷을 챙겨 입고 내려갔을 때는 이미 1시간 가까이 시간이 지나 있었다.
박성화 과장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많이 기다리셨지요? 죄송합니다. 면접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아닙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처럼 편하게 말씀하세요. 사적으로는 교수와 학생 사이잖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예전과는 입장이 다릅니다.”
시혁은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무슨 말을 꺼낼까 하다가, 문득 박성화 과장의 아내에 생각이 미쳤다.
“사모님은 좀 어떠십니까?”
“비슷하지요. 지금도 문인대학교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이능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니, 왜 저한테 데려오시지 않고요? 예전에 인연도 있는데, 저한테 치료를 받아보시지 그러셨습니까?”
“병원에서 그렇게 나가게 만들었는데 와이프를 데리고 오기가 좀 그랬습니다.”
“제가 교수님 때문에 나간 것도 아닌데요? 진작 찾아 뵐 걸 그랬습니다.”
조만간에 박성화 과장이 아내를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으나 충분히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지금 시혁이 치료할 수 없는 병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까.
오랜만에 창천대학교 병원의 소식을 들었다.
박성화 과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경영난이 심각합니다. 내년부터는 아예 인턴을 안 뽑겠답니다.”
“인턴을 안 뽑아요? 그럼 레지던트는요?”
“마찬가지지요. 지금 있는 전공의들이 수련 마치면 더 이상 충원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교수들도 연봉을 줄이자고 하는 판국이에요.”
박성화 과장이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사실 올해부터 이미 인턴을 딱 3명만 뽑았다고 했다. 최소 5명은 되어야 병원이 돌아가는데, 그 때문에 말이 많았다고.
한 가지가 신경 쓰였다.
“홍 원장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작년에 퇴직하셨지요. 재단에서 강하게 압박했다는 말이 있던데 잘은 모르겠습니다.”
이사장 앞에서 한 차례 지른 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앓던 이가 빠진 듯 후련한 감정이 들었다.
그나저나 수련의를 더 이상 뽑지 않는다고?
수련 병원을 취소하려나 보다. 궁극적으로는 병원 규모를 줄이는 게 목표겠지.
문득, 곧 개원할 병원을 수련 병원으로 신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는 안 되겠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단 수련 병원으로 지정되면 여러 장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괴수 질병에 익숙한 한의사들을 육성할 수 있다는 게 컸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한 쪽으로 미뤄두었다. 지금은 한방병원 개원에 온 정신을 쏟아야 할 때니까.
오랜만에 병원 사람들의 소식을 들어서 좋긴 했다. 다른 얘깃거리는 잠시 접어두고, 옛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박성화 과장이라면 시혁도 환영이다.
오늘 면접 본 한의사 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있고, 경력도 좋았으니까. 괴수 질병에 대한 지식이 많다는 점도 긍정적인 면이었고.
시혁은 희망적인 말을 들려주었다.
“자세한 건 채점을 해봐야 알겠습니다만, 교수님을 우리 병원으로 모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결과가 나오면 제가 직접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참, 사모님은 최대한 빨리 오셨으면 좋겠고요. 교수님 진료가 월, 수, 금이었죠? 제가 목요일까지 진료하니까 목요일이 좋겠습니다.”
“예. 강의도 없으니 그렇게 하지요.”
웃으며 헤어졌다.
평화로운 나날이 지나갔다.
흑룡회가 없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바쁜 건 여전했지만, 최소한의 여유는 가졌다.
“어쩌면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회의시간에, 손문철이 그런 말을 했다.
좋은 소식?
별 것 아니었다.
1년에 1번 열리는 국제 이능력자 대회가 대한민국에서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시혁이 회의적인 기색을 내비쳤다.
“이번이 중국 차례 아니었습니까? 일본과 영국, 프랑스도 경쟁 중이라고 들었고요.”
“중국은 흑룡회 사건 때문에 힘들 겁니다. 일본이나 유렵 국가가 유력한데, 우리나라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3월 초순에만 G급 이능력자가 두 명 정도 각성하면 뒤집을 수 있어요.”
말을 마치고, 시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할 말이 없어 헛기침만 연거푸 했다.
3월 초순?
그때까지 시혁 본인은 G급 이능력자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두 명까지는 장담할 수가 없으니까.
국제 이능력자 대회 말고도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남해와 서해.
해양 생태계의 변이가 심각했다.
해안가도 에테르 농도가 높았는데, 바다 아래는 더했다. 언제 괴수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인 잠수정을 넣어 봤더니, 몇몇은 아예 괴상하게 변이되어 있었다.
자연히 근두운과 천리안 다음 연구 목표가 잡혔다.
잠수정을 투입하여 바다의 에테르를 정화하는 게 목표였다.
이름 하여 별주부 프로젝트.
연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르거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몇 달에 걸친 노력 끝에, 마침내 준신 계급에 도달했다.
< 한방병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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