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153화 (153/250)

< 흑룡회 >

호텔 안에 있던 모든 이능력자들을 검거했다.

신분이 확실한 사람은 보내주었다. 개중에는 관련 없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시혁은 첸팡리를 이미라에게 인계했다.

이능을 봉인해 놓은 상태였다. 알몸인 것을 보고, 이미라가 얼른 모포를 가져와 칭칭 감았다.

기절한 왕호우위를 본 첸팡리의 얼굴이 암담해졌다.

“당신들 실수하는 거예요.”

“실수는 당신들이 한 것 같은데요. 이능력자를 이렇게 무방비하게 놔두는 게 어디 있습니까?”

“흥, 당신들은 아무 것도 몰라요.”

경찰들이 중국인들을 압송했다.

시혁은 한 발짝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통찰 마법으로 꿰뚫어 보니, 왕호우위는 물론이고 다른 이능력자 모두 신체 한 곳에 흑룡 문신이 있었다.

그냥 문신도 아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어떤 마법적인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 사실을 얘기하자, 손문철의 얼굴이 신중해졌다.

“흑룡 문신이라, 그럼 그게 저들의 행동을 강제하는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이능의 힘은 느껴지는데, 암호화되어 있어서 알아보기가 힘들었어요. 나중에 연구를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래요?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세뇌 쪽일 것 같은데요. 장현 씨도 문신이 있었다면서요.”

“모르는 일이지요. 그나저나 조직도 지금 상황을 곧 알게 되겠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호텔 직원이나 투숙객 중에 조직 끄나풀이 없을 거라고 장담을 못 하니까요.”

일단 안보망에 걸리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게 의미심장했다. 최소한 광주 공항이나 무안 공항에 조직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뜻이니까.

중국인 이능력자들은 광주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당연히 이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봉인해 놓았다.

다음날 아침, 시혁은 구치소로 가서 이능력자들을 만났다.

왕호우위가 빙글빙글 웃었다.

“이거 한 방 먹었는데?”

중국어다.

통역 마법을 써서 대화를 했다.

“여유만만하십니다. 그럴 상황은 아닐 텐데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거든. 뭐, 될 대로 되라지.”

태연자약한 태도에 시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 이런 인물이던가?

아르거스에서 꿈의 주인은 매우 냉혹한 인물이었다. 소환자건 원주민이건 티끌만한 이득을 위해 희생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술과 여자에만 빠져 있으니,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갔다.

왕호우위 입장에서는 지금 자신의 능력을 거저 얻은 거니까. 손문철처럼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도 있겠지만, 타락하기 더 쉬울 터였다.

“하아암, 나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되는 거지? 슬슬 집에 가고 싶은데.”

뭔가 정보를 얻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뇌의 기억을 다 읽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포기하고 다른 사람과 면회를 했다.

첸팡리.

밋밋한 옷을 입고 면회실에 들어섰다.

시혁을 보더니, 털썩 하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여긴 침대도 없는데 뭐 하러 오셨어요?”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흥, 제가 그냥 입 다물면 끝이라는 거 아시죠? 며칠 버티면 중국으로 송환 되요. 당을 배신하느니, 그냥 버티는 게 낫죠.”

첸팡리가 짐짓 뾰족한 어조로 말했다.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반쯤은 진심이면서, 반쯤은 그렇지 않았다.

하긴 자신을 창녀처럼 돌린 조직에 감정이 좋지는 않겠지.

반기를 들기는 어려웠다. 그랬다간 당할 보복이 만만치 않을 테니까.

그런데 당을 배신하다니 이게 무슨 소리지?

아직 이름도 모르는 조직이, 중국 공산당과 연관이 있는 걸까?

시혁은 모른 척 한 가지를 짚었다.

“참, 팡리 씨는 예쁜 문신을 갖고 계시던데요.”

“그게 왜요? 문신하면 안 돼요?”

“눈에 익어서요. 장현 씨도 그런 문신이 있었습니다만.”

첸팡리가 입을 다물었다.

시혁은 의식적으로 왕호우위가 있을 방향을 힐끔거렸다.

“왕호우위 씨도 마찬가지고요. 다른 이능력자들도 그렇고…… 요즘 중국에서는 문신을 새기는 게 유행인가 보죠?”

첸팡리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기밀이라는 태도.

시혁은 상체를 첸팡리에게 기울였다. 두터운 유리 너머로, 첸팡리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뭐 좋습니다. 문신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도대체 저한테 뭘 하려고 한 겁니까?”

“뭘 하다니요?”

“처음에는 절 세뇌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왕호우위는 환상 계열 이능력자 아닙니까? 정신 계열도 아니고, 영혼 계열도 아닌데 세뇌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 정도는 대답해 줄 수 있지요?”

첸팡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 것도 대답할 수 없어요.”

하기야 별 것 아닌 진술 하나가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

시혁은 입맛을 다셨다.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할 듯했다.

다른 건 몰라도 첸팡리의 소속에 대해서는 알아내야 하는데……

“흑룡 문신은 언제 시술 받은 겁니까?”

“흑룡은 얼마나 있죠?”

“21세기에 흑룡이라니, 좀 유치하지 않아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흑룡이라는 단어를 뱉을 때마다 첸팡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고통은 없는 것 같다. 다만 그때마다 사고가 경직되며 자유의지가 제한되는 듯했다.

시혁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따위 문신을 새기고, 역겨운 짓을 강요하는 집단에게 충성할 이유가 있습니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요.”

첸팡리가 발끈했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회는 인류의 번영과 발전을 위한 집단이야! 그걸 위해서, 10만 회원들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고!”

회(會)?

그 이름에서, 시혁은 한 가지 사실을 간파했다.

의뭉스러운 얼굴을 하고 말했다.

“이제 보니 팡리 씨는 흑룡회 소속이셨나 봅니다.”

첸팡리의 얼굴이 하얘졌다.

입술을 씰룩이는 게, 방정맞은 자기 입술을 확 찢어버리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흑룡회가 중국의 공식 기관도 아니고요. 맞죠?”

첸팡리는 머리를 홱 돌렸다.

입을 꽉 다물었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위와 아래의 입술이 새파랗게 변했다.

시혁은 첸팡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듣거나 말거나, 자신이 아는 사항을 말했다.

“제가 알기로 중국에서 사조직을 만드는 건 불법이라고 하던데 아닙니까? 징계도 내려질 수 있다고 하던데요.”

정확히 말하면 불법은 아니다.

다만 공산당 기율에 어긋난다. 부정부패와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거였는데, 2015년에 이런 항목이 신설된 것이다.

첸팡리의 얼굴이 암울해졌다.

사조직에 가담했다고 징역을 살거나 사형 당하지는 않는다. 다만 경고를 받거나 관찰 처분을 받고, 혹은 직무나 당적이 박탈될 뿐이다.

최소한 출세 길은 막히는 셈.

G급 이능력자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게 쉽겠나.

첸팡리가 동요하는 것을 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차라리 선수를 치시죠?”

“선수라뇨?”

“중국 당국에 먼저 제보하는 겁니다. 일단 팡리 씨는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호호.”

첸팡리는 그저 웃어 버렸다.

굉장히 어이없다는 눈으로 시혁을 보았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시네요.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예측했던 반응이었다.

그 후로는 어떤 정보도 얻어낼 수 없었다. 첸팡리가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문 까닭이었다.

이걸로도 충분하지.

흑룡회라는 이름을 알아낸 것으로 만족했다.

다만 규모가 상당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첸팡리가 그랬지 않나.

10만 회원이 있다고.

그들이 모두 이능력자는 아닐 것이다. 이능력자만으로 조직이 유지되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수천 명은 될 터.

위협적인 조직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다른 이능력자들의 의견도 동일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흑룡회부터 박살내 놓자고 합의를 했다.

손문철이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이 사실을 중국 측에 넌지시 알려야겠습니다. 마침 제가 G급 이능력자 중 리칭창과 안면이 있으니 그 사람에게 귀띔을 해줘야겠네요.”

“그게 효과가 있을까요?”

“중국은 사람이 많은 나라라 내부 권력 투쟁이 치열합니다. 정면 대결을 할 수는 없으니, 그들에게 맡기는 게 좋겠지요.”

이 부분은 손문철이 맡기로 했다.

하룻밤의 소동이 끝났다.

손문철은 서울로 복귀했다. 중국인 이능력자들도 함께 호송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썩 좋지 않게 전개되었다.

외교 전쟁이 벌어졌다.

서울에 있는 중국 대사가 길길이 날뛰었다. 기자 회견을 하며, 중국인 이능력자들을 당장 석방하라고 선언했다.

대한민국 외교부도 당장 대응했다. 신고도 없이 영토에 G급 이능력자를 들여보낸 사실을 규탄하며, 이건 대한민국의 주권을 침범한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한 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광주 공항은 물론, 이능력자가 묵었던 호텔과 협회 광주 지부에도 흑룡회의 손길이 닿아 있었던 것이다.

방송에서 연일 특종을 때렸다.

[구멍 뚫린 안보! 이대로 괜찮은가?]

[테러리스트들이 침략하다!]

[흑룡회의 실체에 대해 파헤쳐본다!]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흑룡회에 대해 바로 까발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은밀하게 처리할 줄 알았는데.

때마침 건강 검진을 받으러 온 이미라가 한 마디를 했다.

“우리 쪽에서 나간 정보가 아니에요.”

“그럼요?”

“중국에서 대대적으로 흑룡회에 대해 보도하고 있대요. 국내 언론들은 거기서 정보를 얻어서 떠들어대는 거예요.”

정말 그랬다.

중국 방송들이 작정하고 흑룡회를 때렸다. 통역 마법을 쓰고 중국 방송을 몇 개 봤는데, 그 어조가 마치 테러 집단 대하듯 하고 있었다.

심지어 총리가 나와서 흑룡회를 비난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반면 주석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게, 속사정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어쨌든 총리 측이 우위에 있었다.

사조직을 결성한 것 자체가 당 기율 위반이다. 이웃나라에 잠입시킨 것은 심각한 외교적 결례였다. 이런 사정이 맞물렸으니, 총리 입장에서는 호기를 만난 셈이다.

시혁은 마음을 조금 놓았다.

최소한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생겼다. 이 혼란이 진정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테니까.

다른 곳에 정신을 집중했다.

흑룡 문신.

첸팡리와 면회하면서 봤던 그걸 재현한 것이다.

고도로 암호화되어 있어 쉽지 않았다. 그림만 똑같이 그린다고 끝이 아니어서 더 그랬다.

중요한 것은 문신을 구성하는 에테르 양식이다. 그걸 재현하지 못하면 본래 기능을 내지 못한다. 어쩌면 엉뚱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시혁은 완성된 문신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겼다.

문신의 기능은 간단했다.

어떤 개념을 주입한다. 그리하여 사고의 방향을 뒤튼다.

무엇을?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흑룡회에는 왕호우위가 있었으니까.

까짓 거 문신을 시술하면서 환상을 좀 보여주면 될 것 아닌가.

지금부터 이것이 진리라고.

그렇게 왜곡된 개념을 심은 후 그 개념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세뇌를 하는 것보다 직접적으로 사람을 조종하기는 힘들어도, 대상의 더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시혁의 눈이 반짝였다.

어디서 많이 본 방식이다.

특히 문신의 에테르가 대뇌 피질 부위에 작용을 한다는 점이 그러했다.

바로 아르거스 신들의 세뇌가 이런 형태 아니었나.

투쟁, 승급, 복종의 세 단어.

조금은 달랐다.

신들의 세뇌가 깊이 심어진 씨앗과 같다면, 흑룡 문신은 지표면을 달구는 햇볕과 비슷했다. 내부에 존재하는 것과, 외부에서 내부로 투사되는 것의 차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흑룡 문신을 변형시킬 경우, 신들의 세뇌에 영향을 주는 게 가능하지 않겠나.

시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작년 2월부터 지금까지, 20개월이 넘게 시혁을 옭아매고 있던 신들의 세뇌.

드디어 그것을 풀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 흑룡회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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