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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52화 (152/250)

< 첸팡리 -2- >

시혁은 침대에 가서 누웠다.

방어 마법진을 활성화한 뒤, 첸팡리의 몸에 깃든 마법 생명체와 동기화했다.

[응?]

첸팡리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나 보다.

제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무지구의 한 거리였다. 쌍쌍이 나온 연인들만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내가 좀 과민해졌나?]

첸팡리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능으로 자신의 몸 안까지 훑은 다음에야 몸을 날렸다.

시혁은 누운 채 차갑게 웃었다.

지금 마법 생명체는 좌우 시상의 사이에 위치한 세 번째 뇌실에 숨어 있었다. S급의 탐지 계열 이능력자가 뇌 안을 샅샅이 조사하지 않는 한 발견하기 힘들었다.

첸팡리가 몸을 날렸다.

가볍게 조깅하듯 뛰었다. 상무지구에는 이능력자가 많으니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다.

곧 어떤 호텔로 들어갔다.

첸팡리의 망막에 맺힌 녹색 로고를, 시혁은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

[안녕하십니까.]

로비의 직원들이 인사를 하는 게 보였다.

첸팡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널찍한 거실이 나타났다.

몇 명의 남자들이 첸팡리를 돌아보았다.

[어때? 잘 됐어?]

중국어지만, 첸팡리의 생각을 읽는 탓에 뜻을 알아내는 게 가능했다.

첸팡리가 머리를 흔들었다.

[힘들겠던데? 그런 목석같은 남자는 처음 봤어. 장현이랑은 다른 인물이야.]

[카드키는 줬을 거 아냐?]

[그랬지.]

[그럼 끝났네.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새벽이 되면 놈이 찾아올 테니까.]

[자라새끼가 아니고서야, 카드키를 받았는데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왕 대인께서는 어디 가셨어?]

[네가 싫어하는 곳에 갔는데, 정말 가르쳐 줘?]

[그럼 됐어.]

왕 대인?

묘하게 그 단어가 귀에 거슬렸다.

첸팡리는 객실 안을 한 번 둘러보더니 몸을 돌렸다.

때마침 삐빅 소리가 났다.

외출했던 왕 대인이 돌아오나 보다.

[오, 팡리가 먼저 왔군!]

술을 어찌나 마셨는지 불콰하게 취한 상태였다.

더구나 양 팔에 젊은 여자 둘을 끼고 있었다. 여자들은 첸팡리나 남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웃으며 왕 대인만 쳐다보았다.

첸팡리가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까지 와서 여자들을 부르셨어요?]

[그럼, 기껏 한국에 왔는데 한국 여자들을 먹고 가야지 그냥 가? 아니면 네가 내 침대로 들어오던가. 난 뜨거운 몸이라 여자 없이는 잠을 못 잔다고.]

앉아 있던 남자들이 낄낄거렸다.

첸팡리가 사납게 노려보자, 슬쩍 딴청을 피웠다. 그러면서 중국어로 욕을 내뱉는데, 첸팡리가 의도적으로 듣지 않아서 뜻을 알 수는 없었다.

왕 대인이 여자들을 끼고 침실로 들어갔다.

곧 교성이 울려 퍼졌다.

첸팡리가 진저리를 쳤다.

[발정 난 개 같으니!]

거의 뛰쳐나오다시피 밖으로 나가 버렸다.

뒤에서 남자들이 왁자지껄 웃는 소리가 들렸다.

첸팡리는 이를 갈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하아아……]

길게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옷을 벗었다.

샤워라도 하려나 보다.

‘이런.’

시혁은 낭패한 감정을 느꼈다.

눈부신 육체가 두 눈에 여과 없이 들어온 까닭이었다.

연결을 끊으려고 하는데, 한 가지 이상한 장면이 보였다.

탐스러운 유방이 드러났는데, 형광등 불빛에 비쳐 뭔가 반사되고 있었다.

오른쪽 가슴 아래 부위였다.

첸팡리가 그것을 보더니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정신을 집중하여 그 정체를 알아냈다.

작은 문신이었다.

흑룡 형태. 차이나타운의 이능력자들이나, 장현이 했던 문신과 똑같았다.

당연한 일.

모두 같은 조직 소속일 테니까.

[힘내자!]

첸팡리가 정신을 차렸다.

팬티까지 다 벗고 욕실로 들어가자 연결을 끊었다.

당당히 보면 봤지, 훔쳐보는 취미는 없었다.

꽤 소득이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왕 대인의 존재를 알았다는 것.

중국 이능력자 신상 자료에서 몇 번이나 봤던 얼굴이다.

왕호우위.

아르거스에서는 반신, 꿈의 주인.

지구에서는 환상 계열 G급 이능력자.

왕호우위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G급 이능력자는 국가의 엄중한 관리를 받는다. 한편 외국 이능력자의 동향에 대해 칼날 같은 감시를 하곤 했다. G급 이능력자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니까.

이거 구리구리한 냄새가 난다.

왜 하필 왕호우위이고, 왜 하필 광주이겠나.

시혁을 세뇌라도 하려는 속셈이겠지.

중국인들의 속내를 간파한 이상,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먼저 손문철과 의논을 했다.

손문철은 해연히 놀랐다.

[왕호우위가 광주에 와 있다고요?]

[예. 몇 명이 더 있는데, 모두 S급 이능력자인 것 같습니다.]

[맙소사. 어디서 보안이 뚫린 건지 모르겠네요. 일단 지금 당장 내려가겠습니다.]

[예. 기다리겠습니다.]

둘의 생각이 일치했다.

일단 다 잡아놓고 보자는 것이다.

원래 A급 이상의 고위 이능력자가 입국하면 법무부와 대한이능협회에서 파악을 한다. 그런데 왕호우위는 물론 첸팡리와 다른 남자들 모두 등록이 안 되어 있었다.

손문철은 극비리에 광주를 방문했다.

급한 대로 S급 이능력자 몇 명만 대동했다. 혹시 밖으로 새어나갈까 무서워, 광주에서도 믿을 만한 이능력자 몇 명만 불렀다.

단, 경찰 특수부대에는 협조 요청을 했다. 이능력자끼리의 싸움에서 총은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니까.

이미라가 중국인들에 대해 듣고 얼굴을 굳혔다.

“왕호우위가 광주에 왔다고요?”

“예. 지금 컨벤션센터 옆 호텔에 있습니다.”

“그 사람 예전에 장현 씨 살아 있을 때 자주 왔었는데……”

“그래요?”

처음 듣는 소리다.

채현애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요. 한 번 오면 밤새면서 룸살롱을 다니곤 했죠.”

“장현 씨는 그런 거 안 좋아해서, 종태 오빠랑 주로 어울렸어요.”

“한 번 너한테 치근덕댔다가 코피 터졌었지?”

“응. 난 그런 거 못 참잖아.”

간단히 작전을 짰다.

객실에 있는 중국인 이능력자는 정확히 여섯 명.

남자 네 명은 경호원인 듯했다. 시혁의 경호원처럼, 강화․격투․탐지․저격 계열로 이루어져 있었다.

호텔을 관찰한 채현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들이 다가 아닌 것 같아요. 이능력자들이 꽤 많이 투숙하고 있어요.”

다 합치면 거의 스무 명은 된다고.

이들이 조직적으로 대항하면 진압하기가 힘들어진다.

시혁은 카드키 하나를 흔들었다.

“제가 안으로 들어가서 주의를 끌 테니, 아래부터 천천히 제압하면서 올라오세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걱정 마세요. 준비는 하고 가니까.”

한의원에 잠깐 들러 오행 순환체를 스스로에게 주입했다. 방어 마법도 떡칠을 해놓았으니 G급 이능력자라고 해도 시혁을 단숨에 어쩔 수는 없었다.

이미라가 엉뚱한 데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그 카드키는 뭐에요?”

“아, 중국인 이능력자가 주고 갔습니다. 자기 방에 와서 얘기 좀 하자던데요?”

“설마, 여자에요?”

시혁은 그저 웃어 넘겼다.

이미라가 툴툴거렸다.

“참 이상한 여자 다 있네요. 이사님이 그런 어설픈 수작에 넘어갈 줄 알았나 보죠?”

“그러게 말입니다. 저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자연스럽게 호텔로 들어갔다.

로비 직원들이 인사를 했다. 목례로 답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카드키를 인식기에 갖다 대고 10층으로 올라갔다.

마법 생명체를 통해 첸팡리의 상태를 살폈다.

자정이 넘었는데 목욕을 하고 있었다.

객실에는 붉은 향초를 피워 놓았다. 달큼한 향내가 객실 가득 찼다. 심지 끝에서 빛나는 불빛이, 통유리창에 반사되어 끈적끈적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호텔 객실에 향초를 피울 수가 있나?

안 될 텐데?

순간, 시혁은 첸팡리가 향초를 피운 까닭을 알아차렸다.

빛과 냄새.

이 두 가지가 어떤 작용을 하는 게 분명했다.

단순히 성욕을 증강시킬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컸다.

‘잔머리 굴리기는.’

시혁은 카드키를 대고 문을 열었다.

은은한 빛으로 물든 객실 내부가 드러났다.

“이사님?”

기다렸다는 듯,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가 들렸다.

객실은 특이한 구조였다. 욕실과 객실이 벽이 아닌 반투명 유리로 구분되어 있었다. 덕분에 욕조에 누워 있는 첸팡리의 나신이 그리는 부드러운 윤곽이 언뜻 비쳤다.

“네, 접니다.”

“잠깐 앉아 계세요. 금방 나갈게요.”

시혁은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아까 왕호우위를 본 곳만큼은 아니어도, 이 방도 스위트룸이라 거실과 침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던 것이다.

향초를 주시했다.

간단한 매혹 이능이 걸려 있었다.

대신 아주 은밀했다. 또한 생각을 단순하게 하고, 감각을 둔감하게 만들었다. 성욕을 솟구치게 하는 건 덤이었다.

감시 카메라 같은 건 없었다.

하긴 탐지 계열 S급 이능력자가 있는데 카메라를 써서 뭐하겠나.

조용히 마법을 하나 썼다.

잠복 환상.

누군가 이능으로 이 방을 훔쳐보면, 시혁과 첸팡리가 열락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만 볼 것이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첸팡리가 밖으로 나왔다.

큰 목욕 수건만 써서 몸을 가렸다. 촉촉한 흰 피부와, 젖은 머리칼이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미소를 띠고 다가오지만, 시혁의 얼굴은 담담하기만 했다.

향초를 하나 쥐고 흔들었다.

“이런 건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꽤 비쌀 것 같은데.”

첸팡리의 눈가가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시혁의 무릎에 엉덩이를 붙이고 옆으로 앉았다. 가느다란 두 팔을 뻗어 시혁의 목을 감쌌다. 입을 맞출 것처럼 두 눈으로 시혁을 응시하더니 뜨거운 입김을 불어냈다.

“그런 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죠. 제 몸에 묻은 향도 그렇고요. 팡리 씨는 해독약을 미리 먹었나 보죠?”

첸팡리의 눈이 커졌다.

스르륵 뒤쪽으로 물러났다.

몸을 낮추고 시혁을 경계하는데, 두 손이 이미 까만 칼날처럼 변해 번들거렸다.

시혁은 싱긋 웃었다.

“누가 잡아먹는답니까? 앉으세요.”

첸팡리가 조심조심 다가왔다.

옆에 놔둔 의자를 끌어오나 싶더니, 손을 뻗으며 덤벼들었다.

“죽어!”

시혁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맹룡과강(猛龍過江)이라는 말도 있는데, 왜 충분히 준비를 했을 거란 생각을 못했을까?

저절로 방어 마법이 첩첩이 일어났다.

첸팡리의 공격이 방어 마법을 연거푸 찢었다. 그러나 창졸지간에 힘을 끌어올린 탓에 파괴력이 좀 모자랐다. 채 절반도 뚫지 못하고 정지하고 말았다.

덕택에 목욕 수건이 내려가며 탐스러운 가슴이 노출되었다.

시혁은 그 중앙, 전중혈을 콕 하고 찍었다.

강력한 마비 마법이 첸팡리의 전신으로 퍼졌다.

첸팡리의 몸이 굳었다.

시혁에게 몸을 쭉 기울인 상태라 참 자세가 민망했다.

조심스럽게 들어 소파에 앉혔다. 수건으로 하복부를 가려주고, 불을 켠 뒤 오른쪽 가슴을 자세히 관찰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첸팡리의 눈이 번들거렸다.

관찰을 끝내고 수건을 끌어올려 상체까지 덮어주었다. 그리고 의자를 끌어와 앉은 후, 얼굴과 목만 마비를 풀어주었다.

“무슨 속셈이죠?”

첸팡리가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덮칠 줄 알았는데 몸을 가려주니 이상했나 보다.

시혁은 벽 너머를 살폈다.

다른 이능력자들이 옆방으로 돌입하기 직전이었다. 문틈으로 수면 가스를 흘려 넣고 있으니, 곧 작전을 시작할 듯했다.

“저기요, 이사님?”

첸팡리가 재차 부르자, 시혁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절 어떻게 하실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제가 춘약을 좀 쓴 건 사실이지만, 그게 이렇게 얻어맞고 뻗어 있어야 할 이유는 못 되는 것 같은데요.”

“그야 그렇죠. 하지만 옆방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지 아니겠습니까?”

“옆방에 누가 있는데요?”

첸팡리는 짐짓 의뭉을 떨었다.

그러나 곧, 그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우당탕탕!

옆방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까닭이었다.

< 첸팡리 -2-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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