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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50화 (150/250)

< 최강의 탈것 -3- [6권 끝] >

뿌우우! 뿌우!

드워프들이 긴 뿔피리를 불었다.

천천히 전진했다.

기본, 중급, 상급 병종이 충실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그들이 진형을 짜고 진군하자, 한 마리 강철 거북이가 다가가는 듯했다.

시혁은 후방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높은 곳에 치료소 구축을 쓴 상태였다. 직접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 이렇게 후방 지원을 하는 게 좋을 테니까.

짝니가 몸을 뒤틀었다.

[나도 싸우고 싶소.]

“안 돼. 넌 날 지켜야지. 어쩌면 상대방 영웅들이 기습할지도 몰라.”

현재 시혁은 겨우 9레벨.

전투를 하면서 레벨을 올리긴 했으나 별로 강하진 않았다.

슬슬 죽음 지혜의 영웅이 나타날 때가 됐는데 보이지 않는 게 수상쩍다. 어쩌면 근처의 산을 돌며 레벨을 올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 기습에 대비하는 게 좋았다.

쿠르르릉.

땅이 흔들렸다.

지진 이적.

요새 전체가 흔들렸다. 마나 사형대나 원혼 제단은 버텼지만, 내구력이 약한 뼈의 벽은 곳곳이 폭삭 무너졌다.

드워프 군대가 무너진 곳을 노리고 쳐들어갔다.

시체 골렘들이 급히 구멍 난 부분을 메웠다. 그 뒤에서는 사령술사들이 흉흉한 눈빛을 빛냈다. 언데드 진영도 어느새 상급 병종을 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혁은 오행 순환체로 드워프 군대의 전투력을 강화시켰다. 그러자 드워프들이 맹공을 퍼부었다. 그 기세가 날카로워서, 조만간 요새를 떨어뜨릴 했다.

기대가 되었다.

죽음 지혜는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

곧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손문철이 시혁에게 경고를 했다.

[적의 영웅 부대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죽음의 기사 영웅이 포함되어 있는데, 레벨이 꽤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수는 적다. 기껏해야 해골 기사와 사령술사 몇 명이 전부였다.

시혁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현재 시혁을 호위하는 것은 중급 병종인 장갑병과 미늘창병 10명씩, 총 20명이었다. 죽음 지혜의 영웅 부대와 비교하면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괜히 병력을 물리지 않는 게 좋겠다.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공격! 밀어붙이세요! 승리가 눈앞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귀속 오행 순환체를 회수했다.

현재 시혁의 레벨은 10으로 올라갔다. 이제 관건은, 상대 영웅이 과연 몇 레벨이냐는 거였다.

시간 관계 상 아무리 많이 올렸어도 20은 넘기 힘들었다. 30이라면 시혁이 필패하겠지만, 20이나 20대 초반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곧 영웅 부대가 출현했다.

부대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규모.

정확히 11명이다.

시혁은 가장 선두에 선 영웅을 노려보았다.

마갑을 두른 해골마 위에 타고 있었다.

전신을 검은 갑옷으로 가리고, 투구 대신 왕관을 썼다. 붉은 망토가 바람에 펄럭이고, 거대한 양날 도끼를 비껴들었다.

익숙한 모습이다.

시혁은 자신도 모르게 그 영웅의 칭호를 불렀다.

“칠흑 처형인?”

죽음의 기사가 시혁을 쳐다보았다.

음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날 아나?”

알다마다.

시혁에게 불사의 역병을 걸었던 장본인 아닌가.

그때는 시체 제조자 휘하에 있었는데, 이젠 죽음 지혜에게 옮겨왔나 보다.

계급도 두 단계가 올라서 초월 계급.

현재 딱 20 레벨이었다.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

시혁은 차갑게 웃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럴 줄 알았으면 불사의 역병처럼 현실에서 되살려내는 치료법을 만들 걸 그랬다.

뭐, 이번에는 패배의 아픔을 안겨주는 것으로 충분하겠지.

시혁은 지팡이를 높이 들어올렸다.

시퍼런 번개가 튀어나갔다.

칠흑 처형인이 도끼를 내밀었다. 도끼에서 거뭇한 기운이 일어나더니 방어막을 형성했다. 번개가 그 방어막 위를 미끄러져 엉뚱한 곳을 후려쳤다.

간단히 막은 것 같은데, 칠흑 처형인의 얼굴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마도사가 아니라 현자 맞나? 무슨 번개 마법이 이리……”

지팡이의 위력이었다.

시혁은 연거푸 공격 마법을 발휘했다.

불덩이, 얼음 화살, 바람 칼날, 돌의 창 같은 게 수십 개는 날아갔다.

전부 칠흑 처형인의 방어막에 막혔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러라고 날린 거니까.

“돌격!”

드워프들이 먼저 돌진했다.

칠흑 처형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도끼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세차게 땅을 찍자, 검은 물결 같은 것이 지면을 타고 쏘아졌다.

검은 물결이 드워프들의 다리를 세차게 때렸다. 다리가 갈가리 찢어지며, 드워프들이 땅을 나뒹굴며 비명을 질렀다.

“아이고, 내 발!”

“으아아, 뭐야?”

“젠장!”

칠흑 처형인이 도끼를 회수했다.

손을 뻗어 해골마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해골마의 눈이 번쩍 빛났다.

“히힝!”

짧은 울음소리와 함께, 해골마가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기사 영웅들이 흔히 갖는 특기, 돌진.

시혁은 이미 대응 마법을 외우고 있었다.

흙의 벽이 일어섰다. 동시에 땅의 마찰 계수가 0에 가깝게 내려갔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해골마와 칠흑 처형인이 동시에 투명해졌다.

미끄러운 바닥을 날 듯이 뛰어넘고, 돌의 벽도 그냥 통과해버렸다. 꼭 유령이 질주하는 것 같았다.

시혁의 눈이 깊어졌다.

돌진으로도 모자라 유령화까지?

칠흑 처형인의 도끼가 시혁을 두 조각냈다.

허상이었다.

쪼개진 시혁의 모습이 아침이슬처럼 녹아 사라졌다. 그리고 꽤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 처형인이 비웃음을 날렸다.

“그 놈 참, 요리조리 도망치는 게 꼭 미꾸라지 같구나.”

시혁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걸 못 잡는 놈은 바보 멍청이고. 그렇지 않아?”

“흥, 아주 입만 살았구나!”

입만 아니라 손도 열심히 움직였다.

속박 마법을 걸었다.

더구나 그 자리에 남겨놓았던 오행 순환체가 칠흑 처형인의 몸에 스며들었다.

“가소로운!”

칠흑 처형인이 고함을 질렀다.

폭발하듯 검은 기운이 터졌다. 그 서슬에 속박 마법이 깨지고, 오행 순환체 또한 튕겨 나왔다.

역시 만만치가 않다.

그렇다면 비장의 패를 꺼내야겠지.

“크앙!”

숨어 있던 짝니가 뛰쳐나왔다.

칠흑 처형인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도끼를 내쳤다. 시커먼 기운이 잔뜩 맺힌 게, 심상치 않아 보였다.

도끼가 그대로 짝니의 몸을 갈라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선명한 빛이 솟구쳤다.

짝니의 앞발.

오색 빛줄기가 창날처럼 뻗어 나와, 칠흑 처형인의 가슴을 직격했다.

“아니?”

칠흑 처형인이 급히 몸을 뺐다.

도끼는 그냥 놓아 버렸다. 해골마 위에서 거의 드러눕더니 몸을 회전시켰다. 그 육중한 갑옷을 입은 채, 해골마의 등을 타고 배 아래로 숨는 것이다.

기가 막히는 기마술이었다.

상대하는 이가 영웅이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지 싶었다.

하지만 지금 칠흑 처형인을 공격하는 것은 짝니라는 게 문제.

짝니가 성을 내며 덮쳤다.

다른 쪽 앞발의 발톱이 크게 벌어졌다. 다섯 줄기 광선이 해골마를 널찍하게 덮쳤다. 해골마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빛의 채찍에 얻어맞았다.

“히히힝!”

해골마가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그 사이 칠흑 처형인이 바닥을 굴렀다. 짝니의 공격을 피하려는 거였는데, 시혁의 눈은 피하지 못했다.

폭격하듯 온갖 방해 마법이 쏟아졌다.

땅이 무너지고, 돌의 벽이 올라오고, 신체 곳곳이 얼어붙고, 신경계의 전기 자극이 차단되고, 마법의 족쇄가 죽은 육신을 결박했다.

칠흑 처형인이 묵색 기운을 뿜어내며 일어섰다. 모든 방해 마법을 취소하는 보물의 힘을 빌린 거였는데, 안타깝게도 완벽하진 않았다. 그러기에는 시혁이 사용하는 마법이 너무나 강했으니까.

결국 짝니가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면에서 달려들어, 칠흑 처형인을 깔아뭉갰다.

칠흑 처형인이 발버둥 쳤다.

“이놈!”

허리에 찬 검을 짝니의 옆구리에 꽂아 넣었으나, 짝니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칠흑 처형인을 찍어 눌렀다.

오색 송곳니가 칠흑 처형인의 목덜미에 꽂혔다.

칠흑 처형인이 눈을 부릅떴다.

막대한 힘이 투사되었다.

그 힘이 칠흑 처형인의 몸 안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아무리 죽음의 기사라 해도, 이 정도 타격을 입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칠흑 처형인이 떨리는 눈으로 짝니와 시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칠흑 처형인의 몸이 흩어졌다.

어둠으로 변해 사라지고, 막 돌진해 오던 언데드 병사들의 기세가 팍 죽었다.

무려 초월 계급 영웅 아닌가.

비록 레벨은 아직 낮은 편이지만, 적들을 몽땅 다 썰어버릴 줄 알았는데 이리 무력하게 죽을 줄이야?

“크엉!”

짝니가 옆구리에 박힌 검을 입으로 물어 뽑더니 신경질적으로 포효를 했다.

시혁은 지팡이를 들어 언데드 부대를 가리켰다.

“죽여버려!”

다음은 완전히 짝니의 독무대였다.

오색의 빛이 하늘을 수놓았다.

언데드 열 마리는 금방 박살이 났다.

짝니가 뒷정리를 하는 사이, 시혁은 넘어졌던 드워프들을 챙겼다. 몇몇은 다리가 그대로 절단된 이도 있어서,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드워프들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부끄럽구먼.”

“젠장, 버텼어야 됐는데……”

“자,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요새를 공략하도록 하지요. 승리가 눈앞에 있습니다.”

시혁은 짝니에 올라탔다.

짝니가 길게 도약을 했다. 허공에 발을 몇 번 휘젓자, 빛의 발톱이 대기 중에 상흔을 남겼다.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죽음 지혜가 화가 났는지 검은 번개를 때렸다. 손문철이 얼른 철의 방패 이적으로 시혁을 보호했다.

철의 방패는 금방 깨졌다. 다행히 지팡이에 저장된 마법이 발동해 검은 번개를 막을 수 있었다. 시혁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법이로군.]

죽음 지혜가 이를 갈 듯 말했다.

새롭게 소환한 죽음 장로 영웅이 항전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모자랐다. 그마저도 시혁이 돌진하자 얼른 꽁무니를 뺐다. 겨우 3레벨에 불과한 터라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새가 불탔다.

모든 방어 시설이 박살나고, 마나 사형대도 허물어졌다.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본성까지 진군했다.

죽음 지혜의 본성에 비상이 걸렸다. 마나란 마나를 몽땅 쥐어짜 군대를 소환하고, 방어 시설을 건설했다.

시혁은 본성 바로 앞에 군대를 대기시켰다.

이미 소기의 성과를 거둔 이상 서두를 필요가 없다. 계속 압박하면서 두 개의 마나 집중점을 안정화하는 게 훨씬 낫겠지.

주의할 점은 영웅들이 마음 놓고 사냥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래서 50 레벨 영웅들이 대거 출현하면 판세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

짝니에게 맡겼다.

톡톡히 자기 임무를 수행했다.

[아까 그놈이오.]

두 명.

죽음 장로와 대살수 영웅이 산에서 괴물들을 잡고 있었다.

둘 다 레벨이 높을 수가 없는 시점.

시혁은 조용히 명령을 내렸다.

[둘 다 죽여.]

[알았소.]

아무리 고급 병종 출신에, 군주 계급이라도 레벨 차이가 나면 당해내기 힘들다.

짝니는 죽음 장로를 단숨에 물어 죽였다. 대살수 영웅만 급히 달아났다. 그 뒤를 추격했지만, 마음먹고 은신하니 잡기가 힘들었다.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그 동안 손문철은 두 개의 마나 집중점을 안정시켰다. 우월한 마나 생산을 바탕으로, 대기하던 다섯 영웅을 모두 소환하는 한편 수천에 이르는 군대를 만들었다.

시혁은 꾸준히 죽음 지혜를 괴롭혔다.

괜히 공격할 것처럼 기세를 올리고, 오행 순환체를 들여보내고, 대포를 가져다 멀리서 공격했다.

죽음 지혜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두 영웅을 새로이 소환하는 한편 고급 병종으로 군대를 채웠다. 계속 접전을 유도하며 레벨을 올렸다. 그러면서 대살수 영웅도 꾸준히 괴물들을 잡고 있었다.

50 레벨 영웅과 고급 병종 조합으로 상황을 돌파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시혁은 손문철에게 끝을 보자고 건의했다.

[이제 끝내는 게 좋겠습니다. 아니면 등극 이적으로 승리해도 좋고요.]

[음……]

잠깐 고민을 하더니, 곧 결정을 내렸다.

[끝장을 보지요.]

드워프 군대가 진군했다.

숫적으로 거의 다섯 배. 영웅의 수도 5대 3이고, 이쪽에는 영웅 한 명 몫을 하는 짝니까지 있다.

죽음 지혜의 본성이 금방 돌파 당했다.

마나가 없어 변변한 이적을 쓰지도 못했다. 산을 헤매던 대살수 영웅도 합류했지만, 강찬에게 포착당해 신아영과 김미애의 협공을 받고 목이 달아났다.

까마득히 약한 반신에게 당했는데도, 죽음 지혜는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세계가 은색으로 물들 때, 사악한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대적자를 찾았구나! 신좌가 내 앞에 있도다! 오색 현자여, 너의 타락이 나를 완성시킬 것이다. 곧, 죽음과 역천이 네 운명이 되리라!]

이건 단순한 저주일까, 아니면 운명의 선언일까.

시혁의 눈이 차가워졌다.

[6권 끝]

< 최강의 탈것 -3- [6권 끝]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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