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강의 탈것 -1- >
딱 하루가 남아 있었다.
아직 신아영을 비롯한 셋은 돌아오지 않은 상황.
그 정도면 충분하다.
시혁은 손문철의 보물 창고에서 필요한 재료를 꺼내 왔다.
짝니가 불안한 듯 앞발로 시혁의 외투 자락을 건드렸다.
[이상한 짓 마오.]
“가만히 좀 있어 봐. 강하게 만들어 줄게.”
강찬도 주위를 얼쩡거렸다.
뭘 하려는지 궁금했나 보다.
시혁은 우선 천사의 눈물 다섯 개를 꺼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보석이다. 워낙 순수한 보석이라 무슨 힘을 주입하든 그 힘과 같은 속성으로 변하곤 했다.
아달에게 만들어준 빛의 날개를 기억하는가?
그걸 만들 때, 시혁은 예전에 낫슈바켈에게 받았던 마나 보석을 활용했다. 다섯 개의 마나 보석에서 정수를 추출하고, 그것들을 한데 모아 만든 것이다.
천사의 눈물이 있으면 그럴 필요가 없다.
오행 순환체를 주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색 보석이 완성되었다. 아달에게 썼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순수한 힘을 가진 보석이었다.
시혁은 짝니의 몸을 어루만졌다.
기분이 좋은지 골골골 소리를 냈다.
특히 날개 죽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는데, 거기 말고 머리를 쓰다듬어달라고 커다란 머리를 자꾸 들이밀었다.
“어휴, 녀석.”
시혁은 그저 웃고 말았다.
짝니의 몸을 관찰했는데, 천사와 달리 날개 죽지 쪽에는 마나 통로가 거의 없었다. 있긴 한데 매우 좁고 약해서, 빛의 날개를 제대로 조종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그렇다면 다른 곳은 어떨까.
짝니는 머리와 사지의 마나 통로가 잘 발달되어 있었다. 심장과 직통으로 이어지는 게, 이걸 활용하는 게 좋지 싶었다.
날개를 발에다가 달아야 하나?
하늘을 달리는 검치호라……
그럴 듯하다.
이 경우 한 가지 이점이 생긴다.
발에 달린 빛의 날개를 공격에도 써먹을 수 있다는 것.
당연히 짝니의 공격 기술인 그림자 발톱도 강화되겠지. 이거야말로 일석이조였다.
시혁은 짝니의 앞발을 주물렀다.
발바닥이 푹신했다. 뼈와 뼈 사이에 공간이 충분해서, 여기에 넣고 발톱이랑 연결시키면 되겠지.
짝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간지럽소.]
시혁은 짝니의 발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네 개는 발에다 넣는다 치고, 마지막 하나는 어디에 넣을까?
기왕 다섯 개가 있는데, 다 써먹어야 하지 않겠나.
문득, 짝니의 새하얀 송곳니가 눈에 들어왔다.
첫 임관 당시 강철왕이 만들어주었던 진은 송곳니다. 짝니는 무척 만족해했지만, 시혁이 보기에는 미진한 감이 있었다.
이걸 교체하면 어떨까?
평소에는 부러진 상태로 다니다가, 짝니가 원하는 순간 오색 송곳니가 돋아나게 한다면?
짝니의 공격력이 지금보다 몇 배로 강화될 것이다.
이것으로 구상은 완료.
“자, 이쪽으로 와.”
[뭘 하려오?]
“널 더 강하게 만들 거야.”
시혁은 강해질 짝니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고, 빛의 발톱을 휘두르며 오색 송곳니를 뽐내는 장면을.
소환체 연결 덕분에, 그 광경이 짝니의 머릿속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짝니가 입맛을 다셨다.
[정말 그렇게 되오?]
“당연하지. 대신 좀 아프긴 할 거야.”
[괜찮소. 강해지고 싶소.]
“좋아. 그러면 여기 누워.”
짝니를 옆으로 눕게 했다.
마취를 하려고 했는데 짝니가 거부했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다는 것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주의를 주었다.
“움직이면 안 된다. 아프면 차라리 나한테 말해. 마취시켜 줄 테니까.”
[걱정 마오.]
칼을 소환했다.
순수한 쇠 속성의 마나로 이루어진 단검.
그걸 짝니의 앞발바닥에 푹 찔러 넣었다.
짝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잘 견뎠다.
시혁은 거의 뼈에 이르기까지 구멍을 냈다. 그 안에 오색 보석을 하나 박고, 보석을 발바닥뼈와 융합시켰다.
영롱한 빛이 흘러나왔다.
보석이 곧 뼈와 융합해 사라졌다. 빛도 저절로 잦아들었다.
시혁이 치료를 해주자 상처가 금방 치료되었다.
짝니가 누운 채 앞발을 까닥였다.
[이상하오.]
약간 이물감을 느끼나 보다.
시혁은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 다음 짝니에게 한 가지를 지시했다.
“발에 힘 한 번 줘 봐.”
[어떻게 하오?]
“음……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네. 그렇지, 이렇게 해 봐.”
소환체 연결을 활용했다.
아달에게 배웠던 대로 마나 방출을 썼다. 체내의 마나를 마나 통로를 향해 쑥 뻗어 공기 중으로 방사하자, 공기가 팡 터지는 소리가 났다.
짝니는 금방 요령을 깨쳤다.
자기가 본능적으로 깨달아 써먹었던 그림자 발톱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힘껏 앞발을 내쳤다.
빛 가닥이 튀어나오더니 강렬한 힘을 폭사했다. 그 힘이 근처의 벽을 후려쳤다. 힘이 어찌나 셌는지 벽이 움푹 파이고 말았다.
강찬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대단한데요?”
하지만 시혁은 불만족스러웠다.
마나탄이나 날리자고 이런 시술을 한 게 아니니까.
왜 날개가 아니라 빛 덩이가 튀어나온 거지?
시혁은 금방 그 원인을 눈치 챘다.
마나 방출 때문이었다. 시혁이 장풍을 상상하며 마나 방출을 익힌 탓에, 짝니도 똑같은 형태로 오색의 힘을 활용한 것이다.
또 있다.
천사에게 날개는 신체의 일부다. 그걸 다루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검치호는 날개가 없지 않나. 아무리 날개를 달아줘도 써먹을 수 없었다.
약간 수정을 해야겠다.
짝니의 앞발에 손을 얹었다. 본인의 마나를 주입하여, 발바닥뼈와 융합된 오색 보석을 변형시켰다.
지금 빛 가닥은 발바닥뼈 안에 똘똘 말려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다 소유자의 의지가 있으면 튀어나와 형체를 갖춘다.
그걸 일일이 하나씩 풀었다. 발가락뼈에 한 가닥씩 합체시켰다. 마지막으로 발톱 안에 똘똘 말자, 다섯 개의 발톱이 저마다 다른 색깔로 변했다.
“크엉?”
그걸 보고 짝니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아까처럼 마나 방출을 하게 했다.
쌔액!
다섯 가닥의 빛줄기가 튀어 나왔다.
빛줄기가 벽을 긁었다.
벽이 단숨에 잘렸다. 긴 구멍이 다섯 개가 남아, 바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마치 채찍으로 후려갈긴 듯한 장면.
시혁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 정도 위력은 나와야지.
“이야……”
강찬은 옆에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가볍게 휘둘렀는데 이 정도면, 고레벨 영웅 수준이라고 봐야 했으니까.
시혁은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나머지 발바닥에 모두 오색 보석을 융합시켰다.
뒷발은 앞발과 다르게 발가락이 네 개였다. 당연히 좀 달리 융합을 시켰다. 땅의 마나는 발바닥을 강화시키게 하고, 나머지 네 개의 마나만 이어놓은 것이다.
공격력은 좀 약해지더라도, 앞으로 땅을 박찰 때나 뒷발만 짚고 일어설 때 도움이 되지 싶었다.
“휴우!”
[끝났소?]
시혁도 그렇지만 짝니도 꽤 지쳤다.
예민한 발바닥을 다 찢어서 그런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직은 끝낼 수 없다.
마지막 단계로 들어갔다.
우선 짝니가 기꺼워하던 진은 송곳니를 떼어냈다. 그리고 부러진 송곳니 뿌리 부분을 가르고 오색 보석을 집어넣었다.
“크르르.”
굉장히 아팠나 보다.
짝니가 성대를 진동시키며 앓는 소리를 냈다.
시혁은 짝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다 됐어. 조금만 참아. 옳지, 착하다.”
“크르르르.”
부러진 송곳니 전체와 오색 보석을 융합시켰다.
시혁은 섬세하게 오행의 힘을 조작했다.
발에 시술한 것과는 또 다르다.
오행의 힘이 어우러져, 단 하나의 송곳니를 생성한다.
원래 송곳니보다 훨씬 더 크고 길어서, 거의 땅에 닿을 정도.
그 위력도 무시무시했다.
닿는 모든 것을 잘라버린다. 짝니가 마음을 먹으면 닿는 순간 대상의 내부로 침투하여 완전히 갈아버릴 수도 있었다. 심지어 오행의 힘을 한데 모았다가, 용이 그렇듯 숨결 공격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크아아앙!”
짝니가 기운차게 울부짖었다.
스스로도 아는 것이다.
지금의 자신은 어제의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라는 점을.
“이리 와, 비행 훈련부터 하자.”
처음에는 좀 서툴렀다. 발을 허공에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시혁은 한 가지 조언을 했다.
“그냥 눈에 안 보이는 나무를 탄다고 생각해. 아니면 유리 바닥을 달린다고 생각해도 좋고. 힘차게 달려. 그러면 네 발톱이 알아서 할 거야.”
몇 시간에 걸친 시도 끝에, 짝니가 드디어 감을 잡았다.
날렵하게 허공을 달렸다.
도합 열여덟 가닥의 빛이 격렬하게 허공을 수놓았다. 마나 소모가 좀 심해서 그렇지, 속도는 어떤 비행 탈것에도 뒤지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어차피 오행 순환체가 소모하는 마나와 체력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굳이 마나 효율을 올린답시고 속도를 줄이게 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문제이기도 하고.
“우와, 쟤 뭐에요?”
마침 신아영이 돌아왔다.
하늘을 달리는 짝니를 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 광경이다.
발을 한 번 내칠 때마다 빛의 가닥들이 일렁인다. 허공을 긁기도 하고, 날개처럼 퍼지기도 했다. 그러면 빛 방울이 터지며, 짝니의 몸이 쭉쭉 나아갔다.
강찬이 신아영을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
“원장님이 짝니한테 새로운 장비를 주셨어. 저기 날개들 보이지? 이번에 원장님이 새로 만드신 거야.”
“어머, 진짜? 원장님! 저는요? 저는 뭐 없어요?”
시혁은 쓰게 웃었다.
“저거 하나에 천사의 눈물 하나가 들어갔습니다. 비싼 물건이에요. 그리고 날개 만들어 드려도 제대로 써먹으려면 최소한 몇 달은 수련을 하셔야 할 걸요.”
“그래요?”
잠시 동안 짝니가 하늘을 달리는 것을 구경했다.
한참을 뛰놀다가 시혁의 옆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입을 벌려 칭얼대듯 말했다.
[배고프오.]
“어휴, 네 배는 언제 좀 부를지 모르겠다.”
무한의 주머니를 뒤적여 보관해 둔 멧돼지 시체 하나를 던져주었다.
짝니가 그걸 얼른 잡아챘다. 새로 얻은 어금니까지 동원해서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한 마리로는 부족하겠다.
먹고 또 먹으라고 사슴 시체도 옆에 꺼내주었다.
짝니의 눈이 반달 모양을 그렸다.
[주인어른 좋소.]
“그래 임마. 많이 먹고 많이 커라.”
가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닌지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까지 상황을 주시하던 손문철이 말을 걸었다.
[짝니가 많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아깝지 않습니까? 직접 쓰실 무구를 만드는 게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 혼자 강해지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요. 오늘 전장에서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하긴 짝니가 거의 영웅 한 명 몫을 할 테니…… 이번에도 이사님부터 소환하겠습니다.]
한편, 4차 확장에 필요한 재료가 모두 모였다.
4차 확장을 시행하자 신전이 한 차례 은회색의 빛을 뿜었다. 그 빛이 성역으로 퍼지자, 마나 농도가 쭈욱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 외에 별 것은 없다.
고급 병종 소환을 위한 건물들을 지을 수 있게 된 정도. 그나마 상급 병종 소환자들이 고급 병종으로 전직하는 절차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손문철은 무척 좋아했다.
각종 고급 이적을 쓸 수 있고, 더 강력한 방어 시설과 공성 병기, 함선 제작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당분간 연승 가도를 달릴 것 같다나.
4차 확장을 마친 후 전장으로 진입했다.
강화된 짝니의 데뷔전이다.
손문철도 4차 확장을 했으니 쉽게 끝날 거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전장에 소환된 상대 반신이 심상치 않았다.
시혁은 손문철에게 상대 반신의 이름을 듣고 기함을 했다.
“죽음 지혜라고요?”
아는 칭호였다.
바로 불사의 역병을 만들었던 소환자 아닌가.
그 소환자라면 이미 신좌에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것이다. 성역이 최종 확장을 한 게 벌써 꽤 오래 전이니까.
손문철이 한숨을 쉬었다.
[죽음 지혜가 상대라면 자신 없습니다. 등용한 영웅들이 모두 고급 병종 출신에, 군주 계급이어서요.]
4차 확장과 최종 확장의 차이는 딱 하나.
최종 병기를 소환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올라가면서 얻은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다. 손문철은 갓 4차 확장을 해서, 소환할 수 있는 고급 병종도 없고.
< 최강의 탈것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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