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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47화 (147/250)

< 빛의 날개 >

고급 주택가.

아달의 집은 그 외곽에 위치했다.

전투단 대장은 삼품 천사다. 고급 주택가에 입주할 자격은 얻지만, 중심부에 살지는 못했다.

시혁과 강찬은 뒷문으로 안내되었다.

아달의 위치가 위치다 보니 드러내놓고 초빙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시혁이 주로 활동한 곳이 대수림 인근이라 명성이 퍼지지 않은 것도 한 몫을 했고.

저택 안, 외딴 곳에 아달의 숙소가 있었다.

천사 몇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달의 가족들.

덩치가 큰 중년의 천사가 시혁을 주시했다.

“그대가 아달의 날개를 치료하겠다고 한 영웅이오?”

“예, 오색 현자 최시혁이라고 합니다.”

“오색 현자…… 몇 년 전 고룡과 대수림 엘프들의 분쟁을 해결한 인물이로군. 명성은 익히 들었소.”

“과찬이십니다.”

“아달을 어떻게 치료하겠다는 거요? 신관장께서도 손을 놓으셨소만.”

“새로운 날개를 달 겁니다.”

“새로운 날개?”

가족들이 의문어린 표정을 지었다.

시혁은 품에서 작은 보석을 두 개 꺼냈다.

오색의 영롱한 빛을 뿜고 있었다.

힘을 주입하자, 그 빛이 현실에 구현되었다.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채 너울거리자, 마치 하늘의 오로라가 지상에 나타난 것 같았다.

총 열 개.

한 쌍씩 색깔이 달랐다.

녹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을 담고 있었다.

다섯 종류, 열 가닥의 빛이 물결치듯 출렁였다. 마치 부챗살처럼 퍼져 있어서, 날개나 망토 같아 보이기도 했다.

천사들이 그걸 보고 감탄했다.

“아름답네요.”

“이게 뭐죠?”

“날개 같이 생겼는데, 혹시 이걸 아달에게 달아주려는 거요?”

아달의 아버지가 식견이 높긴 했다.

시혁은 머리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마나 방출에 대해 잘 모르긴 합니다만, 거기서 착안해서 만들어 봤습니다.”

간단히 방법을 설명했다.

날개에 마나를 주입하기만 하면 된다. 그 다음 열 가닥의 빛줄기를 통해 방출되면서 하늘을 날게 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다.

오행 순환체에서 비롯된 만큼 여러 가지 능력이 숨어 있었다.

소유자의 몸을 치료하고, 정화의 불을 뿜고, 외부의 공격을 분산시키고, 무기를 더 날카롭게 만들고, 정신을 보호하는 등등.

다만 처음 만들어본 것이라 비행 능력 말고는 좀 약했다. 시혁이 일부로 약하게 만든 이유도 있었고.

처음부터 최상급으로 만들어 주기에는 보상이 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혁은 즉석에서 시현을 해보았다.

두 손으로 보석을 쥐고 날아다니자, 천사들의 눈이 흥분으로 물들었다.

“훌륭하네요.”

“정말 아달이 비행에 성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악한 힘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시술에 들어갔다.

어려운 시술은 아니었다.

아달의 날개 죽지를 째고 뼈와 보석을 융합시켰다. 생활을 할 때 불편하지도 않고, 언제든 마나를 주입하여 빛의 날개를 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날개를 퍼덕여 보더니, 아달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약간 이물감이 있네요.”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겁니다. 한 번 날아보세요.”

아달의 숙소에서 밖으로 나왔다.

저택의 고용인들이 아달을 쳐다보았다.

예의를 차리면서도 묘하게 멸시하는 눈길. 왜 아달이 저택에서 비행 연습을 하지 않고 절벽까지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달이 날개를 활짝 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날개 죽지에 황홀한 오색의 빛이 어렸다. 그 빛이 날개 전체를 타고 뻗어지더니, 그 끝에서 각각 다섯 가닥의 빛줄기가 튀어나왔다.

“아!”

누군가 탄성을 질렀다.

날개 끝에서 연장되어 펼쳐진 빛의 날개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공작 수컷이 꼬리를 활짝 편 듯한 모양새.

아달이 날개를 펄럭였다.

그에 따라 빛의 날개도 출렁였다.

열 가닥 날개 끝에서 빛나는 가루가 점점이 뿌려졌다. 마나가 방출되는 게,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아달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가족들은 물론, 고용인들까지 눈을 부릅떴다.

다음 순간, 아달이 화살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오오!”

“아달!”

자유자재였다.

아달은 빛의 날개를 수족처럼 다뤘다.

한 마리 솔개를 보는 듯했다. 빛을 흩뿌리며 날아다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재주를 넘으며 곡예비행을 했다.

고급 주택가를 빙 돌고 왔는데, 흥분했는지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거 대단하네요! 이렇게 날아본 건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시혁도 사실 좀 놀랐다.

아달의 마나 제어 능력이 생각보다 뛰어난 모양이다. 며칠은 수련을 해야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빛의 날개를 달자마자 물 찬 제비처럼 날아다니는 걸 보면.

짐짓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훌륭하네요. 다만 지금 물건은 제가 처음으로 만든 거여서 좀 부족한 점이 있을 겁니다. 강화하고 싶으시면 나중에 절 찾아오세요. 함께 고민해 보지요.”

“지금상태만으로도 지극히 만족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달이 품에서 황금빛 보석을 꺼냈다.

눈물 모양의 보석.

다름 아닌 천사의 눈물이었다. 날아다니면서 눈물을 흘린 모양이었다.

그걸 건네며, 아달이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한데…… 나중에라도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하하, 기대하겠습니다.”

아달은 더 날아보겠다고 다시 날개를 펼쳤다.

그 사이, 가족들이 시혁에게 다가왔다.

“고맙소. 내 생전 아달이 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그간 진리 진영의 마법사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이상한 금속 장치를 달려고 해서 모두 쫓아냈었소. 귀인의 도움에 감사드리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약간의 도움만 드린 것에 불과합니다. 아달 님의 노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만약 마나를 다루는 것에 능숙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빛의 날개를 시술 받았어도 저렇게 멋지게 날지는 못했을 겁니다.”

“겸손하시기까지 하십니다. 자, 이걸 받아주세요.”

여태 조용히 있던 아달의 어머니가 시혁에게 다가왔다.

뭔가를 건네는데, 다름 아닌 천사의 눈물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머니의 눈매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여태 속만 끓이다가 자식이 나는 걸 보니 저절로 눈물이 난 것이다.

어머니만 아니라 아달의 두 형, 그리고 여동생도 눈물을 건넸다. 심지어 아버지까지 이건 비밀이라며 시혁에게 눈물 한 방울을 쥐어주었다.

참 감정 표현이 서툰 종족이다.

이럴 거면 평소에 격려 좀 해주지. 그랬으면 아달도 더 힘을 냈을 텐데.

어쨌든 졸지에 천사의 눈물 다섯 개가 생겼다. 손문철이 원하는 것은 천사의 눈물 하나였으니, 나머지는 시혁의 몫이었다.

다 갖기는 좀 그래서 강찬에게 하나를 내밀었는데, 강찬이 손 사레를 쳤다.

“제가 뭐 한 게 있다고요. 원장님이 받으신 거니 원장님이 쓰셔야죠. 눈물 다섯 개면 강력한 보물을 만들 수 있겠습니다.”

“하하, 그건 그렇습니다.”

다만 시혁이 지금 가지고 있는 지팡이나 외투 정도의 물건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이 둘은 아르거스에서도 몇 개 찾아보기 힘든, 신화에서 나올 법한 보물이니까. 당장 칠대 위상의 용왕에는 천사의 눈물이 아닌 천사장의 눈물이 들어가지 않았나.

아달이 숨을 헐떡이며 내려앉았다.

“헉, 헉, 이거 좀 힘드네요.”

“마나를 소모해서 나는 물건이니까요. 그리고 곡예비행 할수록 마나가 많이 들 겁니다. 제대로 쓰시려면 훈련을 좀 하셔야 돼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오늘부턴 훈련 시간을 더 늘려야겠어요.”

아달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더니 당부를 했다.

“일단 구품 시험부터 보는 게 좋겠다. 구품이라도 달아야지 천사 취급을 받지 않겠느냐? 안 좋은 꼬리표는 얼른 떼어 버려야지.”

“네. 내일 바로 시험관을 찾아갈게요. 비행 문제가 해결 됐으니까 구품 정도는 충분히 합격할 것 같습니다.”

“오빠라면 칠품까진 쉽지 않을까?”

“칠품? 아달은 날개가 작아서 그렇지 무술이 매우 뛰어나다. 전투단에 입단할 정도까진 충분히 승급할 거라고 본다.”

“전투단이요? 그럼 최소한 육품은 된다는 말씀이세요?”

여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형이 아달의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했다.

“축하한다. 드디어 빛을 보겠구나.”

“어서 오품으로 올라와라. 나와 아잔이 모두 조장을 맡고 있으니, 저도 얼른 조장이 돼야지.”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럼. 비행 문제를 극복했으니 충분하지.”

화기애애했다.

가족들이 아달을 챙기는 모습을 보니, 시혁도 가슴이 푸근해졌다.

시혁과 강찬은 점심 식사에 초청을 받았다.

미식가로 유명한 종족답게, 음식들이 무척 맛이 있었다. 다만 양이 좀 적었다. 하나같이 젓가락질 한 번이면 끝날 정도로만 음식을 내놓는 것이다.

종류가 수십 가지지만 그걸 먹고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천사들은 아무래도 소식하는 습성이 있어서, 그에 맞춰 음식을 내온 탓이었다.

아달의 가족들은 시혁에게 선물 공세를 퍼부었다.

감사의 표시였다.

대부분 자질구레한 것들이었는데, 개중 마음에 든 게 하나 있었다.

백금으로 만든 휘장 하나.

통행증이었다.

이게 있으면 대수림에서 그랬듯 천상 관문을 마음대로 이용이 가능했다.

시혁의 활동 영역이 두 배로 넓어진 셈.

목적도 달성했으니 슬슬 돌아가야겠다.

식사를 마치고 떠나려는데, 아달이 시혁을 쫓아 나왔다.

“영웅님, 잠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뭡니까?”

“마나 방출이 뭔지 궁금하다고 하셨지요?”

어제 잠깐 비쳤던 호기심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아, 괜찮습니다. 종족 비전이라면서요. 그런 걸 알려달라고 할 정도로 염치없진 않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종족은 일생에 한 번, 친우에게 어떤 것이든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율법으로 정해진 사항입니다. 원하신다면 마나 방출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단, 다른 사람에게는 알려주시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조용한 곳에서 마나 방출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몸에 있는 마나 통로를 이용하는 게 핵심이었다. 특히 날개를 이용해서 마나를 뿌리면 그게 추진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천사들이 자유자재로 하늘을 나는 것이다. 반대로 아달은 마나가 충분히 가속되지 못해 계속 추락을 했고.

“이건 날개만 아니라, 다른 신체 부위를 통해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아달이 시범을 보였다.

창밖을 향해 가볍게 손을 떨쳤다.

그러자 백색의 마나가 돌풍처럼 날아갔다. 이내 흩어지기는 했지만, 근거리에서 얻어맞으면 꽤 충격이 클 듯했다.

시혁은 그걸 보고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다.

‘장풍이잖아?’

그럼 지풍이나 검기도 가능하다는 소린데?

전장의 소환자들에게선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그 말을 하자, 아달이 자부심 어린 얼굴을 했다.

“대재앙을 견디면서 우리 종족은 많은 것을 이룩했습니다. 마나 방출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영웅들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우리 종족도 만만치 않습니다.”

시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파멸 왕자를 상대할 때 봤던 엘프들도 그랬다.

정령들을 다루는 솜씨가 굉장했다. 구성원 모두가 정령을 자기 몸처럼 써먹는 것이다. 생명 진영 소환자들이 기껏해야 전언이나 보내고 경고나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고, 대재앙을 겪고 더 강해진 것이다.

다만 시혁이 직접 써먹기에는 어려웠다.

마나 통로, 시혁은 경맥(經脈)이라고 알아들었는데 마나를 이동시킬 때마다 상당한 부담이 가해졌다.

한 번 장풍을 써봤는데 뼛속까지 다 저렸다. 연발로 쓰는 것은 무리지만, 위력이 좋으니 단발성으로 쓰면 되겠다.

아달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영웅님 몸이 너무 허약하네요. 하긴 마나 방출을 제대로 쓰려면 우리 종족도 한동안 수련을 해야 가능하니까……”

“전 이 정도로 만족합니다.”

시혁이 근접 영웅이라면 어떻게든 마나 방출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원 영웅이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대신 다른 활용 방안을 이미 생각해 놓았다.

천사들의 환송을 받으며 손문철의 성역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내기를 했다.

시혁의 아슬아슬한 패배.

강찬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비행 탈것이 최고라니까요.”

시혁도 마주 웃었다.

“그렇지요. 비행 탈것이 최고지요.”

“크르릉?”

짝니가 뭔 소리냐는 듯 시혁을 돌아보았다.

시혁의 입에 걸린 웃음이 짙어졌다.

이제 곧, 최강의 탈것이 탄생한다.

< 빛의 날개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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