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명지 -2- >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천사 내부에서는 계급 구분이 없습니까? 전장에서 보는 천상 진영은 하급, 중급, 상급, 일급으로 구분하던데요.”
“없을 리가요. 똑같습니다. 총 아홉 단계로 나눕니다. 일품에서 구품까지 있던데, 승급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고 들었습니다.”
워낙 폐쇄적인 사회라 강찬도 잘 모른다고 했다.
천사들이 분명 호의적으로 반응하지만, 종족이 다르니 결국 자기들 아래로 본다는 것이다.
지독히 선민사상에 물든 종족이라고 할까.
“그럼 그 부분을 파고드는 게 좋겠습니다. 승급할 수 있게 도와준다든지 해서요.”
“아, 좋은 생각입니다.”
시혁의 계획대로 하려면, 먼저 오랫동안 승급하지 못한 천사를 찾아야 한다.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어렵지 않았다.
드워프가 운영하는 술집을 찾아 맥주를 쫙 돌리자, 드워프들이 앞 다투어 떠들어댔다.
“승급 못한 천사? 많지!”
“푸른 머리 이차르라고 알아? 어릴 때만 해도 신동으로 유명했는데, 구품에서 10년 넘게 헤매고 있다지?”
“이차르는 그나마 낫지. 바보 아달은 아예 구품에 오르지도 못했어. 날개가 병신이잖아.”
“그놈이야 기형아니까 그렇지. 날지도 못하는 천사가 무슨 놈의 천사야? 그 아비가 전투단 1대장이라 하늘 도시에 살고 있는 거지, 은퇴하고 나면 하늘 도시 밖으로 나가야 될 걸?”
“그래봤자 잘 먹고 잘 살 텐데 뭘? 젠장, 우리 종족도 얼른 신이 탄생해야 되는데.”
“그럼 성역으로 가던가.”
“성역은 너무 불안정해. 전쟁은 딱 질색이라고.”
가장 유명한 것은 바보 아달이었다.
일단 천사이기만 하면 구품은 받는다. 중대한 결격 사유가 있어야 탈락하는데, 바보 아달의 경우 비행 문제가 걸린 듯했다.
술을 더 시키며 묻자, 드워프들이 신이 나서 나불거렸다.
선천적으로 날개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다른 천사들보다 날개가 작고 연약해서, 바보 아달의 몸을 받쳐주지 못했다.
비행 마법을 쓸 정도로 마법에 능숙하지도 않고, 마법 도구의 도움을 받아서도 안 되고……
덩치가 커서 싸움은 잘 한다고 하나, 단지 그뿐.
사실 이런 천사가 좀 있다고 했다.
다만 다른 천사들은 집에만 있어서 알려지지 않았는데, 바보 아달은 자꾸 밖으로 나와서 유명해졌다나.
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이 은밀한 시선을 던졌다.
“아달에게 가실 겁니까?”
“그게 좋겠습니다. 날개가 약하다라…… 어쩌면 저한테는 잘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천사들한테서 가끔 그런 기형아가 태어나는데, 신성 마법을 퍼부어도 잘 낫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아달의 집은 하늘 도시에서도 고급 주택가에 있었다. 아무리 영웅이라 해도 천사 종족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어떻게 들어가야 되나 했는데, 한 가지 정보를 입수했다.
아달은 매일 낮에 도시 외곽에 위치한 작은 절벽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거기서 하루에도 수십 번 비행 연습을 하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던가.
드워프 하나가 껄껄대며 웃었다.
“아주 재미난 구경거리지. 일 하느라 많이 구경을 못 가는 게 한이야. 그 시간만 되면 구경꾼들로 절벽 주변이 꽉 찬다니까?”
“그래요?”
묘하게 신경을 거슬리는 게 있었지만 무시했다.
마침 아달이 연습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강찬과 함께 술집을 빠져나갔다. 드워프 중 몇 명은 직장으로 복귀하고, 몇 명은 오랜만에 구경이나 가자며 둘의 뒤를 따라왔다.
절벽에 도착했다.
공원 같은 곳이었다. 풀과 나무, 바위가 어우러져 꽤 멋들어졌다. 그 중 작은 규모의 절벽이 있는데, 들은 것처럼 구경꾼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천사는 없이, 모두 신민 계급의 종족들.
꽤 수가 많았다. 적어도 수십 명은 되는 듯했다.
“저기 오는군!”
미리 온 인간 하나가 박수를 쳤다.
절벽과 이어진 길을 남자 천사 하나가 걷고 있었다.
몸집은 당당하니 컸다. 천사 중에서도 큰 편이고, 골격이 두껍고 전신이 근육질이라 사자나 호랑이를 보는 듯했다.
반면 등에 달린 날개가 애처로울 정도로 작았다. 다른 천사들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었다. 체구를 생각하면 저것보다 세 배는 커야 되지 싶었다.
아달이 절벽 위에 섰다.
몇 번 심호흡을 하자, 구경꾼들이 주먹은 흔들며 고함을 질렀다.
“이봐, 뭐해? 얼른 뛰어내려!”
“내가 괜히 시간 내서 여기 온 줄 알아?”
“뛰어! 뛰라고!”
시혁은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리를 지르는 구경꾼들에게서, 얼핏 광기까지 엿보였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아달이 힘껏 뛰어내렸다.
날개를 펼쳤다.
힘껏 펄럭였다. 힘을 주어 벌게진 아달의 얼굴이, 시혁의 눈에 아프게 박혀들었다.
아달의 몸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그 끝이 조금씩 올라갔다. 날개가 수십 번씩 공기를 때리며, 아달의 몸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성공인가?
속단하기에는 일렀다.
잠깐 솟구치나 싶더니 날갯짓이 점차 힘을 잃었다.
몸이 기울어졌다.
공중에서 뒤뚱뒤뚱 하더니 곧 낙하하기 시작했다. 힘을 주어 던진 돌처럼 빠르게 떨어지더니, 이내 거칠게 지면에 쑤셔 박히고 말았다.
먼지가 폴폴 일어났다.
구경꾼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으하하! 걸작이다, 걸작!”
“역시 바보 아달이야!”
“바보! 멍청이!”
“좀 잘 해 봐!”
온갖 조롱이 쏟아졌다.
왜 이러는 걸까.
간단했다.
계급 사회에서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바보 아달을 보며 푸는 것이다.
구품 천사에게는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아달은 천덕꾸러기니까. 가문에서도 거의 내놓다시피 했고,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아달이 구품 천사가 되어 보복할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못 했겠지.
우연히 모욕을 했는데 그에 따른 조치가 없었나 보다. 그러니 이렇게 단체로 몰려와 욕을 하지 않겠나.
한 번 멸망했다가 복구 중인 세상에 살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지성 종족의 본능인 걸까.
이들이 보여주는 행태에, 시혁의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강찬이 깜짝 놀랐다.
“원장님?”
시혁은 성큼성큼 걸어 아달에게 다가갔다.
아달이 몸에 묻은 흙을 털었다. 땅에 직접적으로 부딪쳤던 왼쪽 어깨에 상처가 선명하게 나 있었다.
팔을 몇 번 돌려보더니, 시혁을 쳐다보았다.
“뭡니까?”
냉정한 얼굴이다.
다만 눈동자 깊숙이 어떤 감정이 숨어 있었다.
흐릿한 분노.
이대로 질 수 없다는 오기.
어떻게든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
시혁은 속으로 감탄을 했다.
가족에게도 외면 받고, 이렇게 수없이 희롱 당하면 뜻이 꺾일 법도 하다. 그런데 벌써 몇 년 동안 비행 연습을 한다고 하니 참 대단했다.
시혁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갑습니다. 오색 현자 최시혁이라고 합니다.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흠, 나 같은 미숙아에게 무슨 볼 일이 있기에 그러시는 거죠?”
“손해나는 일은 아닐 겁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뭐, 그러시죠.”
공원을 벗어났다.
구경꾼들이 야유를 했다.
“뭐야! 어디 가?”
“벌써 끝내? 의지가 부족하다!”
“그래서야 언제 하늘을 날겠어?”
아달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되레 듣는 시혁이 더 기분이 나빴다.
기세를 북돋우며 구경꾼들을 노려보자 구경꾼들이 슬쩍 딴청을 피웠다.
아달이 머리를 저었다.
“그만 두십시오. 소용없습니다.”
시혁은 말을 아꼈다.
당신 바보냐고, 저런 소리를 듣고만 있을 거냐고 힐난하고 싶지만 참았다.
가장 힘든 것은 아달 본인일 테니까.
강찬이 합류했다.
인근 풀숲에 나란히 앉았다.
“그래, 할 말이 뭡니까? 시간을 많이 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아달이 날개를 펄럭였다.
건장한 몸에 비해 너무 작은 날개다.
저걸 어떻게 치료하지?
잘라내고 재생시킬 수도 없고, 이제 와서 성장시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보조 장치라도 덧대야 하나?
시혁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권세 진영 치료사와 생명 진영 의학자를 거쳐 진리 진영 현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 만큼 치료 부분에는 일가견이 있지요.”
“그래서요?”
“아달 님의 날개를 치료해드리겠습니다.”
아달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냉랭한 얼굴로 시혁을 보더니,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내 날개를 치료해 주겠다고요? 어림도 없는 소립니다. 우리 가문에서 절 그냥 놔둔 줄 압니까? 온갖 마법을 다 사용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삼품 천사이신 신관장께서도 봐주셨지만, 치료에 실패하셨고요.”
“천사들의 신성 마법 말고, 엘프의 자연 의학이나 진리 진영의 마도 의학에 치료를 맡겨 본 적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별로 미덥지도 않고요.”
“천사 종족으로서 신성 마법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신성 마법으로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면 다른 종족의 지식에도 눈을 돌리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아달이 침음성을 흘렸다.
한참 고민하는 눈치더니, 질문을 하나 했다.
“그런데 날 치료하겠다는 이유가 뭡니까? 듣자니 영웅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없으면 티끌만한 도움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던데요.”
안 그래도 말을 하려던 참이다.
“간단합니다. 저희도 필요한 게 있습니다. 다름 아닌 천사의 눈물을 구해오라는 의뢰를 받았거든요.”
“천사의 눈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습니다. 정말로 하늘을 날게 되면, 그깟 눈물쯤이야 별 것 아니니까.”
그 말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단, 사악한 힘을 써야 한다면 거부하겠습니다. 저는 천상신의 후예이고, 사악한 힘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런 걸 쓸 생각은 저도 없습니다.”
결국 아달은 시혁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지난 세월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악마가 손을 내밀어도 붙잡았을지 몰랐다. 그런 판국에 다른 종족의 지식쯤이야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그래, 어떻게 치료할 겁니까?”
아달이 기대어린 눈으로 시혁을 보았다.
시혁은 한 가지 양해를 구했다.
“먼저 날개를 좀 살펴봐야 합니다.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 알아야 해서요. 괜찮겠습니까?”
“뭐, 그렇게 하십시오.”
아달이 등을 돌렸다.
날개의 상태를 확인했다.
좀 작다뿐이지, 일반적인 천사의 것과 비슷했다. 뒤틀린 곳이나 미숙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야 단순히 치료를 해서는 통하지 않게 생겼다.
완전히 뜯어 고치던가, 보조 장치를 써야 한다.
“날개 자체는 이상이 없네요.”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불가능한 겁니까?”
“날개를 아예 어쩔 수는 없고, 아무래도 크기를 키워야겠습니다.”
“어떻게요?”
“보조 장치를 달아야지요.”
“으음……”
아달이 떨떠름한 기색을 보였다.
보조 장치를 달기는 싫은 모양이다.
알고 보니 장비에 의존하여 날면 승급에서 자동으로 실패하게 된다고 했다. 차라리 마법을 쓰거나, 마나를 방출하여 날면 괜찮다던가.
아달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마나는 열심히 쌓고, 마나 방출과 무술도 수련하고 있습니다만 쉽지 않습니다.”
“마나 방출이라, 그건 뭘 말하는 겁니까?”
“비전이라 가르쳐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충 어떤 방법인지는 알겠다. 이름에서 풍기는 어감이 있으니까.
“그 마나 방출은 날개로 하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고 전신으로 다 합니다만, 날개가 가장 중요하지요.”
“대충 뭔지 알겠습니다. 가닥이 잡히네요.”
마나 방출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한 가지 영감이 시혁의 머리를 스쳤다.
인공 날개와 결합하자 그럴 듯한 기획이 되었다.
지금 시혁이 생각하는 대로 만들기만 한다면, 아달은 당장에 하늘의 제왕이 될 것이다.
시혁은 아달의 전신을 꼼꼼하게 파악했다. 해부학적인 구조는 물론, 마나의 흐름과 그 특질까지 낱낱이 알아냈다.
“이제 됐습니까?”
“예. 내일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준비를 끝내지요.”
“제가 시종을 보내겠습니다. 가문 어른들도 아셔야 하니, 저택에서 하는 게 좋겠지요.”
“좋습니다. 내일은 좀 힘든 날이 될 테니 푹 쉬시기 바랍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아달이 복잡한 눈으로 시혁을 한 번 보았다.
과연 믿어도 될까 의구심이 드는 모양.
시혁은 가만히 한 번 웃어 주었다.
아달은 곧 자리를 떴다. 시혁과 강찬도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시혁은 발명품 하나를 가지고 아달의 저택을 방문했다.
빛의 날개.
밤을 꼴딱 새며 만든, 또 하나의 역작이었다.
< 광명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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