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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44화 (144/250)

< 추방 -2- >

빛이 흘러 넘쳤다.

다섯 그루의 나무가 저마다 다른 빛깔로 반짝였다. 동시에, 중앙 부분에서는 황홀한 오색 광채가 하늘 끝까지 번질 듯 출렁였다.

이능력자들이 거기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름답네요.”

“전 무서워요. 이렇게 강한 에테르는 본 적이 없어요.”

시혁은 잠자코 기다렸다.

오행 순환체가 알아서 힘을 불렸다. 두세 시간쯤 기다리자, 포화 상태에 이르러 생산이 둔화되었다.

때가 된 것이다.

“이제 시작해야겠습니다.”

“기다렸습니다.”

들것을 든 이능력자들이 나무 사이로 뛰어갔다.

딱 두 명.

목사와 교회 장로 한 명이었다. 목사는 온몸이 이미 꺼멓게 변했고, 장로는 치료가 되기 직전이었다. 가만히 놔둬도 내일 아침이면 완전히 치료가 될 것이다.

시혁은 이능력자들을 근원의 나무에서 적당히 먼 곳으로 물렸다. 본인도 거리를 벌렸다.

영혼 통로가 생성되는 곳은 근원의 나무 사이, 마법진 위로 국한된다. 그러나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조심을 해야겠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빛이 잦아들었다.

거침없이 회전하던 것을 멈추고 바닥으로 빨려들었다.

세상이 어두워졌다.

오행 순환체의 빛만 아니라, 태양빛까지 흡수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대지의 힘까지 흡수하는지, 근원의 나무가 힘을 잃고 근처의 식물이 말라죽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완료되었다.

힘의 흡수가 끝나고, 이번에는 거꾸로 빛이 튀어나왔다.

무지갯빛이다.

용이 승천하는 듯했다. 회전하며 천천히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길쭉한 빛이 꿈틀거리자 바람이 불고 번개가 쳤다.

빛은 검은 천체와 지면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강력한 인력이 발생했다.

그 인력에 한 존재가 이끌렸다.

빛에 휩싸여 있던 목사와 장로가 몸을 푸들푸들 떨었다.

진득한 어둠이 흘러나왔다.

장로는 금방 몸을 축 늘어뜨렸다. 반면 목사의 몸에서는 그치지 않고 어둠이 빠져나왔다. 그게 길게 늘어져서, 꼭 물살에 휩쓸린 천 같아 보였다.

[우으으응!]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왕이 울부짖고 있었다.

목사에게서 떨어지기가 싫다는 듯, 빛의 기둥 안에서 몸부림을 쳤다.

빛이 약해졌다.

하늘 너머의 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영혼 통로가 끊길 듯해서, 시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잠시뿐이었다.

근원의 나무 다섯 그루가 밀어내는 힘이 훨씬 더 강했다.

마왕의 몸부림도 부질없이, 시커먼 어둠이 목사의 몸을 완전히 떠났다.

이어서 풍선처럼 솟구쳤다.

마왕이 길게 손을 뻗어보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빛의 기둥을 따라, 이내 저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곧 영혼 통로가 사라졌다.

남은 것이라고는 말라죽기 일보 직전인 근원의 나무들과, 마법진을 통제하느라 썼던 오색 수정뿐.

얼른 달려갔다.

환자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손문철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성공입니다!”

시혁은 안도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목사가 원래 외모를 되찾았다. 이능을 통해 살펴봤는데 마왕의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후유증이야 좀 있겠지만 이게 어딘가.

뒤처리를 했다.

공기 중에 남은 에테르를 오색 수정으로 빨아들였다. 오행 순환체도 그러했다. 마지막으로 근원의 나무를 씨앗으로 되돌렸다.

“이사님, 고생하셨습니다.”

“협회장님도 여기까지 내려오시고, 고생하셨지요.”

“제가 뭘 한 게 있습니까? 그냥 팔짱 끼고 구경만 한 게 다인데요. 정말이지 이사님은 신께서 우리나라에 보내신 선물입니다.”

“맞아요. 이사님 안 계셨으면 어쨌을 뻔 했어요?”

이미라도 옆에서 거들었다.

기껏 도우러 와서 한 일은 없지만, 오랜만의 괴수 사냥 성공이라 기분이 좋았나 보다.

헬기를 타고 광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이미라가 한 가지 발표를 했다.

“저랑 현애 언니가 곧 공격대를 하나 만들려고 해요.”

“공격대요?”

“흠, 결국 그렇게 되는 겁니까? 제가 듣기로는 종태 씨와 석경 씨도 공격대 만든다고 하던데요.”

“네. 그렇게 됐어요. 종태 오빠랑 석경 씨는 저희를 영입하려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좀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아사달 공격대는 세계 10위권 공격대 아니었습니까?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격대였는데, 이렇게 됐네요.”

“어쩔 수 없죠. 아사달 공격대를 보존하자는 의견도 많았는데 불가능했어요. 서로 생각하는 게 다 달랐거든요. 그걸 아우를 정도의 그릇을 가진 사람은 많지가 않잖아요.”

“그야 그렇습니다.”

활동은 당연히 서울에서 하겠거니 했는데 뜻밖의 말을 했다. 최근 전라도에서 괴수가 많이 나타나니 광주를 거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환영할 일이다.

시혁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광주광역시로 쏟아지는 아르거스의 힘이 많아지게 된다. 앞으로 괴수들이 더 빈번히 나타날 게 뻔한데, 광주의 전력이 강해지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

손문철도 찬성을 표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혹시 종태 씨랑 석경 씨는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서울에 계속 있겠대요. 아무리 그래도 비무장 지대에서 나타나는 괴수만 하겠냐고 하던데요?”

“흠, 그야 모르지요. 제가 추측하기로는 전라도 괴수가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손문철이 시혁에게 묘한 눈빛을 보냈다.

시혁은 그저 웃어 보였다.

괴수가 두려워서 아르거스에 가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차라리 본인의 능력을 키워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더 낫다.

이미라가 시혁에게 질문했다.

“이사님은 한의원 계속 하실 거예요? 저번에 보니까 너무 북적거리고 정신없던데요. 수익도 그냥 그런 것 같은데……”

“돈 바라고 운영하는 게 아니어서요. 그냥 환자 보는 게 좋고, 제가 한의원을 운영하면 우리나라 전반적인 보건 수준이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단하시네요. 그럼 차라리 종합병원이라도 하나 차리시는 게 어때요?”

“안 그래도 준비 중입니다. 종합병원은 아니고 한방병원으로요.”

“진짜요?”

“그럼 이번에는 서울에서 개원하세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채현애가 눈을 반짝였다.

“아뇨. 광주에서 계속 하려고 합니다. 기존 환자들도 있고, 광주시장이 주겠다고 한 혜택도 괜찮아서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였다.

예전에 한의원을 개원할 때는 특별한 이유 없이 광주에 개원했다. 어차피 환자가 찾아올 테고, 기왕이면 익숙한 광주가 낫지 싶어 그렇게 했으나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게 하길 잘 했다.

서울에 개원했으면 휴전선에서 나타나는 괴수가 감당할 수 없어졌을 테니까.

따라서 시혁은 광주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시골로 가기에는 이능력자들의 전력이 부족해지니 힘들고.

이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굳이 서울로 오실 필요 없죠. 광주에 KTX 역도 있고 공항도 다 있으니까.”

“한방병원 개원하시면 광주시에서 공항이랑 역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깔아주는 거 아니에요? 그 뭐지, 일본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요.”

“글쎄요, 전 잘 모르겠네요.”

헬기는 광주에 시혁을 내려주었다.

그대로 떠나려고 하는데, 손문철이 마침 생각났다는 듯 한 마디를 했다.

“참, 이사님. 저번에 저한테 물어보신 거 조사해 봤는데 이사님이 계획하신 대로 됐답니다.”

금방 말뜻을 알아들었다.

“잘 됐네요. 이걸로 한 방 먹였네요.”

“앞으로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압니다. 주의하지요.”

시혁과 손문철만 아는 이야기.

이미라와 채현애도 궁금해하는 기색이었지만 괜히 캐어묻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알아도 될 일이라면 이렇게 모호한 언사를 나누진 않을 테니까.

헬기가 셋을 싣고 떠났다.

시혁은 그 뒤를 보고 있다가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순백 성주 장링지의 신전 지하에 마법진을 설치한 게 벌써 1주일 전이다. 그 동안, 시혁은 아르거스에서 왕호우위의 신전에도 마법진을 설치했다.

당연히 중국 조직이 모았다는 자료가 몽땅 날아갔을 것이다. 당분간은 안심해도 되지 싶었다.

“하아, 피곤하다.”

마왕을 추방하는데 성공해서일까.

잊고 지냈던 피로가 몰려왔다.

오랜만에 마음 편히 잠을 잤다. 어찌나 달게 잤는지, 눈을 잠깐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벌써 날이 밝아 있었다.

얼마 후, 이미라와 채현애가 광주로 이사를 왔다. 십여 명의 고위 이능력자들이 둘을 따라왔다.

이름은 나래 공격대라고 했다. 날개를 펼쳐 더 높이 비상하자는 뜻이었는데, 기존 광주 공격대들이 일제히 긴장했다. 이제 갓 만들어졌는데도, 그 전력이 광주에서는 최고 수준이었으니까.

집들이를 하며, 강찬이 푸념을 했다.

“이거 대기업의 횡포 아닙니까? 골목 상권 다 죽게 생겼습니다.”

“어머, 요즘 누리 공격대아주 잘 나간다던데 너무 엄살 부리시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대기업은 무슨 대기업이에요. 누리 공격대나 나래 공격대나 규모는 비슷한데요.”

“어휴, 언니. 약한 척 좀 하지 마.”

신아영이 가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혼식 때 봤듯 격의 없는 사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이미라도 그저 웃고만 있었다.

술만 홀짝이던 한세훈이 시혁을 쳐다보았다.

“원장님 이번에 병원 하나 사셨다면서요?”

“병원을 사요?”

김미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됐어요. 송정공원 쪽에 200 병상 규모 요양병원이 싸게 나와서 양수하려고요. 시설이 낡아서 리모델링은 좀 해야겠던데,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언제 개원하실 건데요?”

“내년 3월 1일이 목표에요. 한의원을 작년 7월에 개원했으니까, 겨우 1년 8개월 만에 접는 셈이네요.”

“우와, 축하드려요.”

“송정공원이면 KTX 역이랑 공항 바로 앞이네요? 멀리서 환자들 찾아오기도 좋겠어요.”

시혁이 하고 있는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복지 재단도 하나 만들었다.

우선 자신에게 입금되는 모든 금액의 일정 비율을 재단 법인 계좌에 이체되게 했다. 워낙 많은 돈을 벌다 보니 그 금액만 상당했다.

재단 운영은 부모님에게 맡겼다. 평생 검소하게, 이웃과 더불어 살아온 분들이니 잘 운영할 것이다. 최소한 대형 기부 단체에 투척하는 것보단 낫겠지.

어느덧 밤이 깊었다.

집들이는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제 나오십니까?”

“밤늦게까지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지요?”

“괜찮습니다. 이게 저희 일인데요.”

경호원들이 따라붙었다.

네 명.

모두 A급의 이능력자였다. 어떻게 허가를 받았는지 몰라도, 권총을 보이지 않게 휴대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날이 이어졌다.

한의원 운영, 신기술 연구, 개원 준비, 재단 설립 모두 순조롭게 돌아갔다.

다만 한 가지 일을 신경 써서 했다.

한의원과 집, 차에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이능 보호는 물론 물리 보호, 살의 감지, 폭발물 감지, 추적용 마법 생명체 생성 등 다양한 기능을 갖게 되었다.

폭격기가 날아와 폭격이라도 하지 않는 한, 언급한 장소에 숨은 시혁을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덕분에 시혁도 마음 편하게 자기 일에 골몰했다.

그리고 9월 초.

한 가지 실험에 들어갔다.

아르거스로의 집단 방문.

시혁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누리 공격대의 4명이 함께 했다.

손문철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은 두 가지.

집단 방문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중국처럼 차원 발신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런 걸 만들어야 시혁이 아르거스의 기억을 보존한다는 사실을 감출 수 있으니까.

광주광역시 인근의 산장에서 함께 잠에 빠져들었다.

근원의 나무가 작동하고, 아주 작은 영혼 통로가 생성되었다.

여섯 개의 영혼이 나란히 우주를 질주했다.

< 추방 -2-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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