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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43화 (143/250)

< 추방 -1- >

원래 마왕의 전략은 간단했다.

우선 세를 불린다.

적당히 힘을 나눠줘서 이능력자로 만들어 주면, 신자들이 구름처럼 모인다.

그들이 뿜는 정신 에너지가 새로운 힘이 된다. 그걸로 새로운 이능력자를 만들고, 새 이능력자가 태어날수록 영업한 이능력자들의 힘이 강해진다.

그렇게 힘을 모아 세계 전체를 뒤덮으면 그만이다. 마나가 풍성한 아르거스가 아니어서 아쉽긴 해도, 까짓 박살난 행성보다야 온전한 행성 하나가 더 가치가 있었다.

이걸 차단한 것은 큰 성과.

마왕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자신이 정화되는 족족, 정화되며 농축되는 힘을 남아 있는 분신들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 힘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 마왕이 부활한다.

아무리 완전하지 않아도 거의 G급 이능력자에 준하는 수준의 괴수일 터. 목사가 희생되는 것은 덤이었다.

김진태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치료를 중단해야 합니까?”

“치료는 하되, 강도만 좀 줄이세요. 시간은 좀 늦출 수 있을 겁니다.”

마왕의 부활은 확정되었다.

부활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네 명의 S급 이능력자가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때, 모든 과정이 완료될 것이다.

그렇다고 치료를 중단하자니 다시 힘이 커져서 결과적으로 더 강한 괴수가 나타날 테고……

진퇴양난이었다.

광주에 남아 이능력자들을 감시하던 이미라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방법이 없어요. 결정을 내려야 해요. 정말로 인간형 괴수로 변하면, 그때는 협회장님이 내려오셔도 피해가 커요.”

인간형 괴수는 다른 괴수들과 다르게 매우 똑똑하니까.

시혁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좀 생각해 봅시다. 생명이 달린 문제니, 신중하게 행동해야지요.”

“이사님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가끔은 과감해지는 게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주세요.”

이미라는 순순히 물러났다.

아직은 시간이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놀라운 일을 연거푸 해낸 시혁이니, 약간의 기대도 가졌고.

김진태가 피곤한 듯 두 눈을 비볐다.

“서울에서도 인간형 괴수가 나타났다던데 정말 큰일입니다. 어떻게든 잘 해결해야 하는데요.”

“잘 될 겁니다.”

장현은 끝내 공허에 완전히 침식되고 말았다.

당연히 서울 구치소에서 인간형 괴수가 되어 날뛰었다. 사전에 그걸 감지한 손문철이 개입해서, 피해 없이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그 시체를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중이라던가.

답답한 시간을 보낸 후, 병원 밖으로 나왔다.

이미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오후, 환자를 충장 부대로 옮길 거예요.”

“변이에 대비하는 겁니까?”

“네. 민간인 피해가 없어야 하니까요. 협회장님도 필요하면 내려오시겠다고 했어요.”

박주호와 박수호가 한때 복무하던 부대다.

사단 본부가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있었다. 총으로 무장한 이능력자들이 꽤 배치되어 있으니 유사시 도움이 될 것이다.

시혁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직 목사의 영혼은 온전하다. 일단 마왕을 빼낸 뒤, 정양하면 충분히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걸 그냥 포기해 버리면 안타깝지 않나.

다방면으로 고민을 하다가, 늙은 곰이 남긴 책의 내용에 생각이 미쳤다.

심연의 마왕이 뭐냐.

어둠 대종사 녹스가 이계신의 일부를 소환한 것 아닌가. 어둠 진영의 최종 병기인 심연 마수도 심연의 마왕을 참고하여 만들어낸 거고.

신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추방해야 한다.

아르거스의 신들이 그랬듯이, 다른 세계로 날리는 방법만이 유효했다.

시혁은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방법을 찾은 것이다.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이미라가 묘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시종일관 표정이 굳어 있다가, 갑자기 환하게 웃으니 무슨 일인가 싶었나 보다.

시혁은 신중한 태도로 말했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요? 어떻게요?”

“고민을 해봐야지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단 김진태 과장님이랑 의논하셔서 시간을 최대한 벌어주세요.”

“알겠어요. 그래도 무한정 늦추지는 못해요. 현애 언니가 말하기로는, 우리가 무슨 수를 써도 사흘 안으로 변이가 완료될 거라고 했어요.”

“사흘…… 촉박하네요. 알겠습니다.”

시혁은 천천히 한의원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계속 생각을 했다.

현자일 때 익힌 마법 중 추방 마법도 있다.

다만 지금 상황에는 맞지 않았다.

추방 마법은 어디까지나 현재 행성과 겹쳐진 이차원으로 대상을 귀환시키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신적 존재에게는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지구의 이차원에 마왕을 보냈다가는 두고두고 우환거리가 될 것이다.

마왕을 아르거스로 되돌리는 게 가장 좋은데……

옆을 지나가던 시민들이 괜히 투덜거렸다.

“어휴, 저거 좀 봐.”

“또 뭔 지랄이래.”

뭔가 해서 보니 검은 천체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광경.

순간, 어떤 영감이 시혁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쳤다.

검은 천체는 차원문의 역할을 한다. 검은 천체와 아르거스 전장군 사이 천체가 이어져서, 이 둘을 통해 쌍방향으로 오가는 것이다.

그렇다. 쌍방향이다.

그럼 검은 천체를 아르거스의 신들이 아닌, 지구인들이 이용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당장 시혁이 만들었던 등극 이적도 이 둘을 이용하는 거였지 않나.

등극 이적을 지구에서 사용하는 거다.

오직 하나, 심연의 마왕을 아르거스로 돌려보내기 위해.

그곳에도 시혁과 인연을 맺은 이들이 있고, 마음 가는 이들이 있지만 알게 뭐냐.

지구가 우선이지.

한의원에 도착한 뒤, 바로 원장실에 틀어박혔다.

진료는 쉬기로 했다. 지금은 마왕의 추방에 대해 연구하는 게 더 급했으니까.

“어디 보자.”

컴퓨터에 대고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등극 이적은 전장군 중심 천체와 전장을 잇는 영혼 통로를 잇는 게 핵심이다. 그러면 전장 내의 모든 영혼이 그 통로를 통과해서 자기 고향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와중에 신들이 분류해 놓은 쓰레기들이 영혼에 묻어 고향 세계로 진입하는 거고.

지구에서 등극 이적을 재현하면 될까?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

아르거스와 끈이 닿아 있는 소환자들의 영혼, 그리고 심연의 마왕 및 다양한 종류의 에테르가 거기에 빨려 들어간다. 머나먼 우주를 넘어, 아르거스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럼 이거, 이번 일만 아니라 나중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겠는데?

대규모의 에테르를 소모해야 하나, 방문주기에 관계없이 아르거스에 소환자들을 방문시킬 수 있게 됐으니까.

시혁이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목사는 분명히 소환자가 아니다. 소환자는 에테르 측정을 하면 아주 미약한 에테르 파동이 나타나는데, 목사는 그런 게 없었다.

다만 등극 이적으로 마왕을 추방한 후 목사를 오래 치료하기는 해야겠다. 그래야 나중에 마왕이 목사의 몸을 다시 차지하지 못할 테니.

“후우.”

시혁은 짧게 심호흡을 했다.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아직 난관은 남아 있었다.

아르거스의 전장에서도 등극 이적을 쓰려면 마나 집중점을 두세 개 가지고 보름 이상 마나를 축적해야 했다. 엄청나게 막대한 양의 에테르를 필요로 한다는 소리다.

이제 남은 시간은 딱 사흘.

그 시간 동안 필요한 에테르를 모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근원의 나무를 수십 그루를 심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수십 그루를 심어놓았다면 모르겠지만.

등극 이적을 변형시켜야겠다.

손문철을 귀환시킬 때와는 상황이 또 다르지 않나.

그때는 천왕봉 수정이 귀환을 막고 있었지만 이번엔 그런 것도 없다. 아르거스의 신들이 검은 천체를 역으로 타고 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나 보다.

아니, 아니다.

한 가지 방어막이 있었다.

아르거스의 전장들.

그게 방어막 역할을 했다. 아르거스의 전장들이 어째서 아르거스 행성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뭐가 좀 오더라도, 다시 보내버리면 그만이니까.

시혁은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다. 이 작은 전진이, 언젠가는 아르거스 신들의 심장을 찌를 창날이 될지도 모른다.

시혁은 등극 이적을 재해석했다.

소모하는 에테르의 양을 최소화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검은 천체와 지표면을 잇는 영혼 통로만 만들면 된다. 굳이 압도적인 힘으로 쏘아 올릴 필요가 없었다.

아슬아슬했다.

근원의 나무를 이용한다면 소환자 한 명이 통과할 정도의 영혼 통로는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마왕의 경우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총 다섯 그루가 필요했다.

그걸 원형으로 키워낸 후, 각각 오행의 힘을 하나씩 배치시키는 거다.

오행 순환체를 만들 듯 가속하여 힘을 폭주시켜야 했다. 그렇게 하면 마왕이 통과할 영혼 통로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하루.

에테르가 퍼지지 않게 조치를 취하려면 빠듯했다.

즉각 전화를 돌렸다.

근원의 나무 재료는 협회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천왕봉 때 그랬듯, 시혁이 씨앗을 만들어서 가지고 가면 된다.

부지도 확보했다.

광주광역시 인근의 한 야산을 통째로 썼다. 충장 부대가 먼저 가서 출입을 통제하고, 산등성이에 에테르를 차단하는 방책을 세웠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딱 48시간.

시혁은 씨앗 다섯 개를 가지고 임시 기지에 방문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을 텐데, 방책이 완벽하게 쳐져 있었다.

“다들 고생하셨겠습니다.”

“하하, 고생은요. 나라 지키는 국군으로서 당연한 일이지요.”

김중걸이 짐짓 넉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번 쌍둥이 사건도 있고 해서 꽤나 호의적이었다.

그래도 마음에 걸렸다.

쉬고 있어야 할 장병들을 끌어다가 일 시킨 것 아닌가. 일도 고되었을 테고, 어쩌면 밤늦게까지 삽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일이 끝나고 간식이라도 보내줘야겠다.

“오, 이사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문철도 와 있었다.

비상시를 대비하는 한편, 마왕의 추방을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이 방법을 응용하면 소환자들을 강제로 아르거스에 방문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렸으니까.

“잘 계셨습니까? 장현 씨 소식은 들었습니다.”

“아까운 친구지요.”

손문철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이미 죽은 사람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퉁방울 같은 눈이 시혁이 든 가방을 향했다.

“저번에 봤던 것들 맞지요?”

“예. 그때랑은 좀 다르게 쓸 생각입니다. 나무 한 그루로는 필요한 양을 채울 수가 없어서요.”

“잘 되어야 할 텐데요. 개인적으로 기대가 큽니다.”

“해봐야지요. 제 계산보다 괴수와 사람들의 유착이 크면, 실패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나설 테니까, 신경 쓰시지 말고 최선을 다해주세요.”

시혁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생명 하나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었다.

씨앗을 심었다.

정확히 오각형 모양.

그 중심에는 미리 마법진을 하나 새겼다. 등극 이적을 변형시켜서, 검은 천체와 이곳에 영혼 통로를 만드는 마법진이었다.

이능력자들이 나섰다.

무차별적으로 에테르를 퍼부었다. 그래야 근원의 나무가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시혁은 물론 손문철과 이미라, 채현애 등 이능력자란 이능력자는 다 달라붙었다.

금방 싹이 텄다. 뿌리가 뻗어나가고 줄기가 자라났다. 1시간도 안 되어 한계까지 성장했다.

시혁은 오색 수정을 꺼냈다.

오행 순환체를 속성별로 다른 나무에 주입했다. 그 다음, 근원의 나무 다섯 그루를 하나로 묶었다.

흐름을 일으켰다.

다섯 그루의 나무가 만드는 거대한 순환.

처음에는 약했다. 잘 이어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일단 흐름을 타자, 도도한 격류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 추방 -1-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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