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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42화 (142/250)

< 사이비 종교 -2- >

폭탄, 마법진, 전등, 거울, 태양, 신성 문자……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할 때, 채현애가 시혁에게 말을 붙였다.

“어쨌든 한데 뭉쳐 있는 것보다는 좀 흩어지는 게 낫다는 말씀이죠?”

“예. 완전히 뿔뿔이 흩어지면 잡기 힘드니까, 한 대여섯 개 무리로 나뉘면 더 좋고요.”

“그럼 간단하네요. 관공서를 이용하세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그 사람들은 멀쩡하게 움직인다면서요. 그럼 시청, 경찰서, 구청, 협회, 예비군, 이런 식으로 나눠서 소환하세요. 이능력자 혜택 관련해서 급하다고 교통비 주겠다고 하면 대부분 올 걸요? 그때 끝을 보면 되죠.”

“이야, 그거 좋네요!”

시혁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대목이었다.

하긴 관공서에서 오라고 하면 투덜거리면서도 대개 방문하기 마련이다. 몇몇은 빠져 나가겠지만, 많은 수를 붙잡는 게 가능했다.

다만 비밀리에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게 어려웠다.

무턱대고 했다가는 정보가 흘러나갈 염려가 있으니까. 시혁의 한의원에도 박희정이 있는데, 시청이나 협회에 교회측 이능력자가 없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채현애가 자청했다.

“관공서 건은 제가 맡을게요.”

“괜찮겠습니까?”

“아사달에서도 이런 일은 제가 했는데요 뭐. 맡겨만 주세요.”

“예. 그럼 관공서는 현애 씨가 처리해주세요. 저는 그 자리에 설치할 물건들을 만들겠습니다.”

재료는 이미라를 비롯한 이능력자들이 모아오기로 했다. 바쁜 시혁을 위해, 물건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뭘 만들까?

보안과 시간이 가장 문제였다. 마법진을 설치하는 것과 같은 대규모 공사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미라가 말했던 정화 섬광탄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작은 수정구에 정화의 빛을 담을 생각이었다. 그 안에서 증식시키다가, 때가 되면 폭주시켜 내보내는 것이다. 그게 한두 개가 아니고 수십 수백 개씩 터지면, 쪼개진 심연의 마왕은 견딜 수가 없겠지.

다른 것도 더 만들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능력자가 늘고, 마왕의 힘이 커지고 있으니까.

결행인은 사흘 후로 잡았다.

시혁은 섬광 폭탄에 더해 두건도 수십 벌 만들었다. 신성 문자 마법진이 새겨져, 어둠의 힘에 대한 저항이 엄청난 물건이었다. 대충 만든 탓에 수명이 길진 않지만, 일회성으로 쓰기엔 좋았다.

사흘 내내 시혁은 한의원에 쳐 박혀 있었다. 이능력자 중 구현 계열과 만능 구현 계열도 시혁을 도왔다.

뭘 만들어도 오색 치료실에서 만드는 게 효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이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 했지만,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얼버무렸다.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었다.

마왕의 파편은 교회 출신 이능력자에게만 숨어 있었다. 신자들까진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침내 준비가 끝났다.

출근한 박희정이 시혁을 찾아왔다.

“원장님, 저 조퇴 좀 할게요.”

“조퇴요?”

“네.”

설명을 해줬으면 했는데 냉담한 얼굴로 시혁을 보고만 있었다.

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지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하세요. 참, 내일까지만 근무하신 댔죠?”

“네.”

“그래요. 그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송별회라도 열어드리면 좋겠는데 싫다고 하시니…… 내일 뵙죠.”

말을 하면서, 시혁은 주머니 속의 수정판을 만지작거렸다.

처음에는 수정구에 빛을 봉인하려고 했는데, 수정판에 봉인하는 게 더 낫다는 걸 발견했다. 휴대하기도 쉽고 단위면적 당 효율도 더 뛰어났다.

오전은 후딱 지나갔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협회로 향했다.

신아영과 강찬이 따라붙었다. 이번 작전에 믿을 만한 이들을 동원했는데, 누리 공격대도 그 중 하나였던 것이다.

강찬이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2시 시작이라고 하셨지요?”

“맞습니다.”

시혁은 적잖이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어렵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아르거스에서 봤던 마왕의 모습이 너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대강당에 들어갔다.

이미 이능력자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절반 이상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초청 받은 이들이다. 교회 이능력자는 서른 명 정도 되고, 시혁과 동참한 이능력자는 스무 명 가량으로 수가 좀 적었다.

2시가 넘자 행사가 시작되었다.

광주 지부장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도중에 시혁과 눈이 마주쳤는데, 둘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눴다. 오늘 이 행사는 어디까지나 눈속임에 불과하니까.

지부장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 귀빈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은, 최근 광주광역시에서 나타난 강력한 괴수에 대해 보고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이능력자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뾰족한 안경을 쓴 여자가 손을 들었다.

“괴수라고요?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요.”

“그럴 겁니다. 극비니까요. 협회에서 얼마 전에 완성한 에테르 측정 헬기가 아니었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 그래서 A급 이상 이능력자들만 초청했나 보네요.”

여자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납득했다.

그 말대로였다.

광주광역시 내의 A급 이능력자는 거의 초청을 받았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뭘 해도 협회에서 하는 게 가장 용이하니, 여기서 가장 큰 조각을 도려내려는 것이다.

얼굴이 까만 남자가 몸을 들썩였다.

“도대체 무슨 괴수기에 이러는 겁니까? 뭐 삼두룡이라도 나타났습니까?”

“그것보다 더 심각합니다.”

지부장은 잔뜩 굳은 얼굴로 떠들었다.

몇 가지 정보를 공개했다.

괴수는 지금 광주광역시 안에 존재한다는 것. 지금은 힘을 기르고 있으며 성장이 완료될 경우 삼두룡과는 상대도 안 되게 강해진다는 것.

따라서 여기 있는 이들이 모두 힘을 모아 조기에 퇴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능력자들이 옳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지부 소속 이능력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지는 않고, 대강당을 빙 둘러싼 채 버티고 섰다.

이능력자들은 금방 그 기색을 눈치 챘다.

처음에는 열성적으로 듣다가, 금방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지금 무슨 일 있습니까?”

“뭔가 이상한데……”

“뭐하자는 수작이요?”

자기들을 어떻게 하려고 그런다고 오해했나 보다.

시혁은 지부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발동만 시키면 된다.

지부장은 짐짓 목소리를 낮췄다.

“그 괴수의 일부가,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무슨 헛소립니까?”

“장난치지 마세요.”

“진짭니다. 지금부터 증명하겠습니다. 섬광탄을 터뜨릴 테니까, 눈을 보호하시기 바랍니다. 괴수가 빛에 반응하는 걸 보면 제 말이 사실임을 아시게 될 겁니다.”

지부장이 손짓을 했다.

대강당을 둘러싼 이능력자들이 일제히 수정판을 꺼냈다.

시혁도 수정판을 들었다. 강찬과 신아영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뒤에 앉아 있던 박희정과 교회 이능력자에게 들이댔는데,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는지 눈만 끔벅대고 있었다.

한낮에 작전을 실행한 게 효과를 봤나 보다.

수정판에서 일제히 빛이 쏟아졌다.

태양과도 같은 강렬한 빛이 대강당 안을 가득 채웠다.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따사로운 감촉이 시혁의 전신을 어루만졌다.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에 웃음까지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소름끼치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꺄아악!”

“끄아아악!”

바로 교회 이능력자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이능력자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전신에서 시커먼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은신 계열 이능력자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그걸 보는 순간 속이 메스꺼워졌다.

빛은 효과적으로 어둠을 지웠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어둠은 순식간에 힘을 잃었지만, 그 뿌리는 이능력자들의 정신에 여전히 남았던 것이다.

“으아아!”

몇 명은 전신에서 흑색 광채를 뿜으며 저항했다.

목사를 비롯한 S급 이능력자들.

이들이야말로 마왕의 핵심 숙주였다. 당연히 시혁도 빛 방출만으로 끝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일일이 제압했다.

이능력자들이 떼로 달려들었다. 강화 계열 이능력자들이 붙잡으면 정화 계열 이능력자들이 이능을 썼다. 보호 계열과 치유 계열도 유효했다. 어쨌든 빛 속성이면 몽땅 동원했다.

덕택에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이능력자들이 도와준 덕이었다.

A급 이상의 이능력자만 백 명에 가까웠다. 거의 기습을 당하다시피 했으니 심연의 마왕이고 뭐고 교회 이능력자들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유명한 이능력자 하나가 머리를 흔들었다.

“이거야 원, 보고회라고 해서 설렁설렁 왔다가 큰 코 다칠 뻔 했네. 이런 거라면 진작 말을 해줬어야지.”

지부장이 쩔쩔매며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워낙 기밀 작전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일은 잘 끝났다.

이미라와 채현애, 다른 이능력자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모든 이능력자를 생포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계획대로 움직였다.

광주 곳곳의 병원에 격리 수용했다. 특히 폐쇄 병동이 있는 병원을 유용하게 썼다.

국가적인 재난이었다. 전국에서 지원이 왔다. 특히 빛 속성 에테르를 다루는 이능력자들의 도움이 절실해서, 손문철까지 뛰어다니며 이능력자를 섭외했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었다. C급 이능력자들은 벌써 회복되어 퇴원했다. 시혁도 확인해 보았는데, 정신이고 영혼이고 어둠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회복된 사람들은 그 동안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박희정에게 문병을 갔는데, 지금이 7월 1일로 알고 있었다.

“벌써 7월 9일이라고요? 말도 안 돼!”

“박 원장님, 한의원 퇴직하겠다고 한 건 기억나세요?”

“퇴직이라뇨? 전 최소한 내년까진 붙어 있을 생각인데, 쫓아내시게요?”

“그럴 리가요. 정말 기억 못하시나 보네요.”

가끔은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개는 환자의 지인들.

이능력자로 각성했다가 그 힘이 사라졌으니 억울할 만도 했다. 가끔은 물질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대한이능협회는 모든 불만을 일축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인간형 괴수로 변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걸 무료로 치료해주었는데, 어디서 적반하장이냐며 강하게 나갔다.

이윽고 A급까지의 이능력자들의 치료가 끝났다.

남은 것은 목사를 비롯한 핵심 이능력자 다섯 명 뿐.

지금은 정연대학교 병원 폐쇄 병동에 입원해 있었다. 김진태가 정화 계열 이능력자들과 함께 그들을 치료하고 있는데, 한 번 봐달라며 시혁을 청했다.

“오염이 더 강해진 것 같다고요?”

“예. S급 정화 계열과 보호 계열 이능력자들이 붙어 있는데도 오염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는데, 이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아요.”

무슨 일일까.

시혁은 폐쇄 병동으로 들어가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능력자들이 잔뜩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는 A급 이능으로는 정화가 불가능하고, S급 이능을 써야 진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효율이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었다.

“제 이능이 오염을 농축시키는 것 같습니다.”

정화 계열 이능력자 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통찰 마법으로 살펴보자, 제압 당시와 비교하여 어둠의 힘이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특히 목사가 그랬다.

다른 사람들은 그나마 외견상으로는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목사는 전신의 피부에 까만 어둠이 떠다녔다. 머리카락은 아예 무형의 어떤 것이 되어 저 혼자 꿈틀거렸다.

시혁은 목사와 다른 환자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목사의 이질적인 모습에, 시혁은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제기랄.”

저절로 욕설이 나왔다.

김진태가 조심스럽게 시혁을 돌아보았다.

“이사님, 왜 그러십니까?”

시혁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대답했다.

“이거, 피라미듭니다.”

“네?”

“피라미드라고요. 교활하게도, 사람들을 다단계로 활용해서 부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맙소사……”

이제야 말뜻을 알아차렸나 보다.

김진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 사이비 종교 -2-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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