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낌새 >
한의원에 출근했다.
환자가 다시 늘어난 상태였다. 시혁이 진료하지 않는 날에도 많이 와서, 파견 나온 이능력자들의 입이 삐죽했다.
돈도 많이 안 주면서 이렇게 혹사시켜도 되냐는 태도.
무시했다.
어차피 두 이능력자의 월급은 협회에서 나가니까.
그러나 다른 직원들의 말까지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퇴근 직전, 한가한 틈을 타 민수진이 원장실로 찾아왔다.
“원장님, 요즘 환자가 너무 많아요.”
“그래요?”
“원장님 진료하실 때마다 환자가 꽉 차잖아요. 원장님은 안 힘드세요? 하루에 오십 명은 보는 것 같은데요.”
“저야 오색 치료실이 있으니까요. 오색 치료실을 이용하면 별로 피곤하지 않습니다.”
“원장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난리에요. 죽을 것 같다고요. 부원장님 두 분도 그렇고, 이능과장님 두 분도 그러세요. 환자가 많아도 너무 많아요.”
시혁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손문철이 낫고, 시혁이 학술 이사가 되자 말 그대로 환자가 미어터졌다. 최근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치료를 받기가 힘든데, 그마저도 한 달 이상 밀려 있다고 했다.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주제넘은 의견이지만, 이능과장님을 더 충원하면 어떨까 싶어요. 직접 고용하지 않더라도, 협회에서 몇 명 더 파견을 받으면 안 될까요?”
하긴 지금 이렇게 환자가 몰리는 이유가, 다른 곳보다 훨씬 싼 이능 치료비 때문이니까.
시혁은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이능력자를 충원한다고 이게 해결이 되겠습니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한의원 규모 자체가 늘어나야 해결이 될 문제입니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한의원 좀 확장하면 안 될까요? 입원실도 진료실도 다 부족한데요.”
“그런데 여기서 더 확장하면 한방병원이 돼요. 사실 늘릴 공간도 없고요.”
시혁의 한의원이 들어선 뒤로, 입주한 건물의 유동 인구가 몇 배로 늘어났다. 파리만 날리던 다른 점포들도 북적거려서, 가끔 얼굴을 보는 건물주가 함박웃음을 짓곤 했다.
민수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예 한방병원을 만드시는 건 어때요? 괴수 질병 전문으로요. 한의사랑 의사, 이능력자를 많이 고용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사실 한방병원을 개설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은 많이 있었다. 어떤 병원에서는 아예 병원장으로 시혁을 영입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 밖에 병원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대겠다는 사람, 좋은 병원 매물이 나왔다고 꼬드기는 사람……
광주시장도 시혁에게 지원을 약속했다. 지금처럼 광주광역시에 한방병원을 세운다면, 여러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민수진이 공손하게 말했다.
“제가 너무 주제넘은 말을 했지요? 하지만 저희 간호사들이 보기에는 우리 한의원이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사실 저희 간호사들만의 생각도 아니고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저도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가서 일보세요.”
“네, 원장님.”
이런 말을 해주니 고맙다.
한의원에 대해 애정이 있어야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나. 그렇지 않으면 환자 많다고 짜증이나 내겠지.
민수진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시혁은 옷을 갈아입었다.
안 그래도 의원급으로는 벅차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지금도 이 모양인데, 나중에 시혁이 G급 이능력자가 되면 어떻게 하겠나.
G급 이능력자가 되기 전에는 한방병원을 만들어야겠다.
슬슬 퇴근하려 할 때, 손문철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 협회장님? 무슨 일입니까?]
[큰일 났습니다. 수감된 장현 씨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새벽부터 이능을 난사해서, 겨우 제압했답니다.]
[그래요? 다친 사람은 없고요?]
[예. 이능 봉인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으니까요. 거기서 이능을 발현한 게 용했습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제압해 놓고 살펴보니, 뇌가 괴상하게 변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아니라고 했다.
좌뇌와 우뇌의 구분도 없고, 뇌간이 크게 확장되어 소뇌와 간뇌를 집어삼킨 것 같다고 할까.
[다른 사람들 말로는 인간형 괴수의 뇌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새로운 괴수 질병인지, 아니면 인간형 괴수로 변이되는 전 단계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제가 거기 가지요. 직접 봐야 알겠습니다.]
[예. 헬기는 진작 출발했습니다. 곧 도착할 겁니다.]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협회에서 보내준 헬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장현이 있는 곳은 서울 구치소였다.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아 교도소로 옮겨지진 않았다고 했다.
철창 너머로 장현을 관찰했다.
“크아아악!”
장현은 쉬지 않고 고함을 질러댔다.
전신을 뒤틀지만, 완전히 결박되어 있어 꿈틀거리기도 힘들었다. 다만 그때마다 피부에서 짙은 어둠이 떠오르는 게 심상치 않았다.
변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침식이 아니라 변이.
장현 스스로가 가진 이능이 침식된 뇌에 반응했다. 그것이 장현을 괴수로 변이시키는 것이다.
손문철이 시혁을 쳐다보았다.
“이사님,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이거 힘들겠습니다.”
침식된 뇌 때문이다.
이미 아르거스에서 변형이 완료되었다. 오행 순환체와 칠색 저항체를 때려 박아도 안 된다.
시혁은 장현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뇌가 문젭니다. 어디 손이나 발 같은 게 문제면 그걸 잘라낸 다음 재생시키면 그만인데, 뇌는 그럴 수도 없어요.”
“방법이 없겠습니까? 지금까지 다른 치유 계열 이능력자 분들이 치료를 해봤습니다만 효과가 없어서 원장님을 모신 겁니다.”
“힘듭니다. 이것도 이능 치료를 하면 악화되는 종류잖습니까? 그리고 약으로 치료할 수도 없어요.”
“아…… 그렇습니까?”
사실이다.
설령 치료가 가능하다 해도 치료해줄 생각도 없고.
구치소를 빠져나왔다.
손문철이 한숨을 푹 쉬었다.
“같이 일하던 사람이 한 순간에 저리 되니 씁쓸하네요. 한때는 대한민국의 영웅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는데.”
“욕심 때문이죠. 참, 몇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그래요? 협회 가서 얘기하지요. 여긴 보는 눈이 많습니다.”
아르거스 얘기라는 것을 알아챘나 보다.
협회장실 옆, 비밀 회의실에서 마주 앉았다.
“아르거스에서 알아낸 사실입니다만, 장현이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조직이라니요?”
“중국을 기반으로 한 조직 같습니다. G급 이능력자가 둘이나 소속되어 있다고 하네요.”
“하, 그게 정말입니까? G급 이능력자가 둘이나 있어요? 상황이 심각하네요.”
손문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중국인 이능력자들, 아직 억류하고 있지요? 비밀리에 몸을 탐지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들에게도 흑룡 문신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흑룡 문신이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구와 아르거스를 아우르는 조직이 가능합니까? 아르거스에서 지구로 정보를 보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그 조직에서 아르거스에서 지구로 정보를 보내는 기술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했지요.”
“허, 첩첩산중이네요. 어떻게 한 겁니까?”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두 가지 속성의 마나를 모르스 부호에 대응시켰다는 말에, 손문철이 무릎을 쳤다.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이건 저도 시도해 볼 수 있겠습니다.”
“조직력이 상당한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무리를 지어서 절 쫓아오기까지 했어요.”
“이사님을요? 설마, 이사님이 아르거스의 기억을 보존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겁니까?”
“그것까지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단, 제 방문주기는 알아낸 모양입니다. 그들 중 한 명을 붙잡아서 심문했는데, 조직은 우리나라에 더 이상의 G급 이능력자가 생기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당장 경호원을 붙여야겠습니다. 설마 지구에서 일을 저지르진 않겠지요?”
“현실에서 그랬다가 들통 나면 뒷감당하기 힘드니 그건 아니지 싶습니다. 뭐,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시혁은 순백 성주 장링지의 신전에 수작을 부린 것도 말했다. 자세한 방법까지는 설명하지 않았어도, 앞으로 수신할 자료에 바이러스가 담겨 있다고 귀띔한 것이다.
손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하셨습니다. 그렇게라도 갚아 줘야지요. 위험하지는 않았습니까? 이사님이 일을 치른 것을 알면, 놈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
“걱정 마세요. 모르게 했습니다. 이제 겨우 하나를 처리했으니, 오늘밤에는 나머지 것도 끝을 봐야죠.”
“조심하셔야 합니다. 티끌만큼이라도 위험할 것 같으면 그냥 돌아오세요. 이사님 건강과 비교하면, 그 범죄 조직에 피해를 입히는 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조심하지요.”
다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중국에서 과연 전산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한 것이다.
손문철은 자신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수락을 했다.
“협회도 만능은 아니어서 중국 내부 사정은 알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한번 알아보지요.”
“예. 부탁드립니다.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아야 저도 뭘 할 수 있어서요.”
퇴근하지 않고, 협회 안의 사무실에서 잠을 잤다.
어차피 내일은 협회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굳이 광주에 갔다가 다시 서울에 올 필요 없이, 하루 자는 게 더 낫다.
다음날.
시혁은 지하의 연구실로 내려갔다.
요즘은 다른 것보다도 괴수 탐색에 집중하고 있었다. 손문철이 지구로 귀환한지 벌써 1달이 훌쩍 지나서, 슬슬 심연의 마왕이 나타날 때가 됐지 싶었다.
“그 동안 별일 없었습니까?”
“예, 이사님. 강원도 철원 쪽에 변이 중인 괴수가 발견 되어서 인근 공격대에 연락을 넣었습니다. 우려하시던 괴수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네요. 고생스럽겠지만 발현자들에게 당분간만 더 고생해달라고 하세요. 천리안만 완성되면 고고도에서도 탐지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면 지금처럼 헬기 수십 대가 아니라, 정찰기 몇 대로 우리나라 전체를 감시할 수 있어요.”
“에,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심려치 않으셔도 좋습니다.”
시혁이 만든 광범위 탐지 장치는 반경 10 킬로미터를 탐색한다. 구 형태이다 보니, 솔직히 말해서 낭비되는 영역이 많았다.
괴수가 하늘을 날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구 형태여야 하나. 차라리 원뿔 형태가 나을 것이다.
연구원 중 하나가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시혁이 그걸 수용했다. 그래서 지금은 탐지 이적의 적용 범위를 원뿔 형태로 바꾸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시혁 혼자 다했다.
연구원들도 조금씩 아르거스의 마도 학문에 익숙해지고, 때로는 컴퓨터를 활용해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시혁의 공헌도가 절대적이었다. 퍼센트로 따지면 최소 80% 정도?
혼자 하는 것보다는 나아서 상당히 연구가 진척되었다. 한두 달만 지나면, 헬기가 아닌 정찰기들이 한반도 전역을 훑고 다닐 것이다.
오늘은 허탕인가 보다.
퇴근을 할까 생각 중인데, 탐지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연구원이 탄성을 질렀다.
“이야, 광주에 이능력자가 진짜 많아졌네요.”
“그래요?”
“최근에 갑자기 각성을 많이 했나 봐요. 이것 좀 보세요. 에테르 분포가 거의 을지로 수준이에요.”
그럴 리가 없다.
을지로라면 바로 협회 본부가 위치한 곳 아닌가.
시혁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탐지 모니터를 확인했다.
연구원의 말이 맞았다.
에테르 농도를 나타내는 막대들이 수없이 솟아 있었다. 색깔과 농도, 크기가 저마다 다른데 특이하게도 검은색 막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색깔이 선명한 게, 죽음 속성보다는 어둠 속성인 것 같다.
시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이상한데요. 한 가지 색깔의 이능력자만 이렇게 많이 나타날 수가 있습니까? 색깔을 보니 은신 계열인 것 같은데, 이능력자 중 은신 계열은 적은 편이잖아요.”
지구인은 대개 권세 진영 소환자로 시작한다. 따라서 은신 계열 이능력자의 수는 적은 편이었다. 권세 진영도 암흑가를 갖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만 하니까.
연구원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지만 여긴 광주 지부 근처입니다. 이능력자가 아니면 지부에서 진작 처리를 했을 겁니다. 광주 지부에 연락을 했을 때도 조사 결과 문제가 없다는 회신을 받았고요.”
그래?
그 말을 듣고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오늘 퇴근한 다음 잠깐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모니터의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
헬기를 이용해 광주로 돌아갔다.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살폈다.
과연 이능력자가 많이 늘었다. 하나같이 비슷한 색채의 은신이나 변신, 구현 계열 이능을 가지고 있고, 얼굴에 생기가 없었다.
이상하다.
이능력자가 되면 환골탈태를 하니까 힘이 넘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몰골이 썩 좋지 않았다. 며칠 밤을 샌 수험생을 보는 듯했다.
어딘가에 에테르를 뺏기기라도 하나?
시혁은 본능적으로 그들의 뒤를 밟았다.
< 낌새 > 끝
ⓒ 산호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