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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32화 (132/250)

< 깨어나다 -2- >

내부적으로는 손문철 계, 장현 계, 윤성주 계라고 불렀다.

장현 계는 재계와, 윤성주 계는 정계와 손을 잡고 있었다. 중국이나 미국과도 연결 고리가 있다고 했다. 사실 그래서 그 많은 공격대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시혁은 한숨을 쉬었다.

“정치는 어디에나 다 있네요.”

손문철도 썩 좋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적 인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둘만 모여도 정치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고요. 저도 각성하기 전만 해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만, 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대한이능협회는 을지로에 있었다.

고층 건물 한 개를 구입하여 통째로 썼다. 안 그래도 복잡하던 곳인데, 협회를 방문하는 이들의 발걸음으로 더욱 복잡해졌다.

투투투투.

헬기들이 몇 대 따라붙었다.

뭔가 싶어 보니 방송국 헬기들이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손문철의 영상을 찍었다.

손문철이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도심을 날아, 협회의 옥상 위에 내려앉았다.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미라와 채현애의 모습도 보이고, 장현이 선두에 섰다. 그 옆에는 동글동글 인상이 좋은데, 눈이 좀 작은 남자가 자리했다.

헬기에서 내리자, 장현과 그 남자가 다가왔다.

“협회장님! 쾌유를 축하드립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오, 귀한 분이 같이 오셨네요. 대한이능협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말만 그랬다.

두 눈은 웃지 않았다. 오히려 탐색하듯 시혁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시혁은 모른 척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최시혁이라고 합니다.”

남자, 윤성주는 마지못해 악수를 받았다.

장현과도 인사를 했다.

그저 차갑기만 한 태도.

시혁은 문득 장현의 두 손을 살폈다.

맨손이다.

저번에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그게 마음에 걸렸다. 잘 기억해 둔 채 이능력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손문철은 자연스럽게 협회장실로 향했다. 시혁과 장현, 윤성주 등 주요 이능력자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음?”

들어가려다 말고, 손문철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왜 저러지?

손문철이 닫힌 문을 보더니 말했다.

“여기 도어락은 언제 설치한 겁니까? 전 분명히 협회장실 문은 어떤 잠금 장치도 하지 말고, 항상 열어놓으라고 했습니다만.”

이능력자들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뭐라 말하기도 전, 손문철이 잠긴 도어락에 손을 가져갔다. 은색 빛이 반짝이자 도어락 전체가 박살이 났다.

심기가 많이 불편한 모양이다.

어쩌면 의식적으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협회장실에 들어가자 손문철의 표정이 좀 풀렸다.

자신이 쓰던 그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반쯤 내려온 햇빛 차단막도 그렇고, 방석 하나 없이 딱딱한 의자도 그렇고, 책상 위에 있는 것도……

아니네?

책상 구석에 작은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것을 열자 시가 담배 몇 개가 열을 지어 나타났다. 한 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걸 보고 시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손문철이 시가를 피우던가?

시가는커녕 담배 피우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는데?

손문철이 장현을 돌아보았다.

장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미묘하게 웃음이 손문철의 얼굴에 떠올랐다.

“제 방을 뺏을 정도면, 제가 일어나기 힘들 거라는 점을 알았다는 뜻이죠?”

의미심장한 말에, 장현의 얼굴이 굳었다.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비상대책위원회장으로서, 몇 번 회의를 한 게 답니다. 두세 명이서 비밀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어서요.”

“바로 옆에 비밀 회의실을 놔두고 여기서 굳이 이야기를 했다고요? 하하, 참 궁색한 변명이십니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시혁은 속으로 좀 의아하게 생각했다.

강찬이나 이미라에게 들은 바로는, 장현은 꽤나 용의주도하고 냉정한 인물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협회장실에서 시가를 피우고, 그냥 놔두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이상한 일이었다.

손문철은 이사회를 소집했다.

안 그래도 모두 협회에 와 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시혁은 참석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가 나올 지는 뻔했다. 혀로 하는 전쟁이 벌어질 텐데, 굳이 거기 참석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진 않았다.

대신 아는 얼굴들을 찾아다녔다.

이미라가 어색한 표정으로 시혁을 맞이했다.

“원장님, 잘 계셨어요? 좀 격조했어요.”

“예, 둘 다 바빴으니까요. 잘 계셨지요?”

“네, 전 잘 있었어요. 협회장님이 좋아지셔서 다행이에요.”

“잘 하면 더 빨리 나을 수도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아…… 그건 죄송하게 생각해요. 저랑 얘기했던 이능력자 분이 갑자기 파견을 나가서요.”

“미라 씨 탓하는 거 아닙니다. 미라 씨 잘못도 아닌데요. 그냥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 영혼 계열 이능력자들이 부족하긴 부족하구나, 싶어서요.”

그 말을 듣고서야 이미라의 표정이 풀렸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다 수정 때문이죠. 거기 담긴 영혼 속성 에테르가 엄청나잖아요. 대한민국의 영혼 계열 이능력자는 거기 다 투입되어 있어요. 미국이나 중국, 일본에서도 탐을 내서 비밀 기지에 숨겨져 있대요.”

“그 이능력자 분도 그쪽으로 갔나 봅니다.”

“네. 상황이 복잡해요. 저희 공격대장님이 전담하고 계신데, 그것 때문에 골치가 아프시데요. 스파이가 연구소 안쪽까지 들어온 적도 있어요.”

“그 스파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영혼 계열 이능력자들이 해결했죠. 엉뚱한 기억을 심어서 쫓아 보냈어요.”

이미라도 별로 아는 것은 없다고 했다. 떠도는 소문 몇 가지만 들었다던가.

더구나 아사달 공격대에 속해 있다 보니 장현에 대해 불리한 말은 아끼려는 의도가 보였다. 심정적으로는 손문철에게 가깝지만, 결국은 장현 계 사람인 것이다.

두 번째로 찾아간 채현애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좋은 말만 늘어놓았다. 장현과 손문철의 줄다리기에 끼고 싶지 않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혁도 별로 기대하진 않았다.

자신에게는 사람들을 살살 구슬려 정보를 얻어내는 능력 따윈 없었으니까. 어차피 영혼 추방에 관한 일은 손문철이 알아서 하겠지.

뜻밖에도 강찬이 대어를 물어왔다.

시혁을 조용한 방으로 부르더니 속삭였다.

“연구소에 천왕봉 수정이 없답니다.”

“예? 미라 씨나 현애 씨는 연구소에 천왕봉 수정이 계속 있다고 하던데요?”

“언젠지는 몰라도 하여간 없어졌답니다. 쌍둥이들 기억하시죠? 그 녀석들한테 들었습니다. 영혼 계열 이능력자들이 들어오고 천왕봉 수정이 좀 이질적으로 변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정교하게 제작된 가짜였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서 가만히 있었대요?”

“이능력자들이 묵살했답니다. 발현자 주제에 뭘 아느냐고 그랬다네요. 비밀 연구소 안이어서 연락도 못 하다가, 협회장님 환영하겠다고 겨우 빠져나왔답니다. 지금은 면회실에서 대기하고 있어요.”

시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쌍둥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다름 아닌 천왕봉의 에테르에 자극 받아 능력이 발현된 이들이니까. 어떤 고위 이능력자보다도 더 믿을 만 했다.

마음이 바빠졌다.

“쌍둥이부터 만나야겠습니다.”

곧 둘과 대면할 수 있었다.

시혁을 보더니 쌍둥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격식을 차리고 어쩔 것도 없이, 다가와서 시혁을 꽉 껴안았다.

“원장님! 오랜만입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시혁은 빙그레 웃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많이 바쁘셨다면서요?”

“어휴, 말도 마세요. 끔직했어요.”

“군대보다 더 빡센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니까요?”

말은 그렇게 해도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일하는 게 꽤나 만족스러웠나 보다.

하긴 쌍둥이는 자기들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를 원했다. 원하던 일을 하고 있으니 몸이 좀 바쁜 것은 아무래도 좋을 터였다.

인사를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천왕봉 수정이 이상하다면서요?”

“예. 천왕봉에서 느꼈던 그 에테르가 아닙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에테르를 담고 있는 수정이에요.”

“제가 느끼기에는 흔히 말하는 마이너 카피 같아요. 담고 있는 힘도 적고, 에테르도 더 혼탁해요.”

“다른 이능력자들은 별 말 없던가요? 만약 누군가 천왕봉 수정을 빼돌린 거면, 그들이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텐데요.”

“이능력자들은 복제품이 진짜라고 알고 있더라고요. 천왕봉 수정을 처음 본 이능력자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원래 있던 이능력자들은 다른 곳으로 다 옮겨갔어요.”

들으면 들을수록 의심스러웠다.

천왕봉 수정이 바꿔치기 된 시점도 공교로웠다.

약 2주 전.

손문철이 쓰러진 바로 그때였으니까.

그렇다면 천왕봉 수정은 어디에 있을까?

시혁은 쌍둥이에게 질문했다.

“두 분이 느끼시기에, 천왕봉 수정은 어디에 있는 것 같습니까?”

그 말에, 쌍둥이는 시혁의 눈치를 살폈다.

짐작가는 것은 있나 본데, 선뜻 말하기가 힘든 모양이다.

시혁은 넉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두 분은 느낄 수 있을 텐데요? 두 분의 능력이 천왕봉의 에테르에서 발원한 만큼, 그걸 고스란히 옮겨간 천왕봉 수정 위치는 느낄 수 있어야 정상입니다.”

“아, 그래요? 저희가 이상한 게 아니었네요.”

쌍둥이가 안심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인천에 있어요.”

“인천이요?”

“네. 오기 전에 확인해 봤어요. 인천에 있는 게 확실합니다. 인천항 근처 차이나타운 쪽 같아요.”

이상한 일이다.

천왕봉 수정이 움직였다면 이능력자들도 감지했을 텐데. 거기 담긴 에테르가 실로 막대한 수준이니까.

아니, 아니다.

꼭 그렇다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마법진 등을 이용하여 존재감을 숨길 수가 있다. 에테르까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제한하면 그만이니까.

지구에 그런 지식이 있냐고?

시혁이 최근에 많이 보여주지 않았나. 당장 천왕봉에서 쓴 봉인진을 응용하기만 해도 충분했다.

그나저나 차이나타운에는 왜 있는 걸까?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영혼 추방을 실행한 장본인이 거기 숨어 있는 거 아닐까.

차이나타운은 인천항 바로 옆이다. 여차하면 중국으로 도망칠 수도 있었다.

천왕봉 수정을 소지한 영혼 계열 이능력자?

거의 G급에 달하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어떻게 반응할까?

좋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비단 중국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겠지.

강찬이 주먹을 쥐었다.

“중국에서 수를 쓴 걸까요?”

“그야 모르지요.”

“협회장님이 G급 이능력자 되기 전에는 미국이랑 중국 횡포가 엄청 심했는데 요즘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놈들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지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강찬이 분개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혁은 모르는 뒷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아예 몸을 들썩이는 게,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닙니다. 중국으로 도망치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에요. 얼른 쫓아가서 잡아야 합니다.”

“일단 협회장님과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우리끼리 가서 들쑤신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후, 알겠습니다.”

곧 이사회가 끝났다.

회의실을 나오는 이들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결론이 과연 어떻게 났을까.

손문철이 시혁을 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 원장님. 아니 이제 이사님이죠. 여태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아는 사람들 만나고 있었습니다. 이사회가 끝난 모양이죠?”

“예, 아주 잘 됐습니다. 원장님은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협회의 학술 이사십니다.”

시혁은 다른 이능력자들의 얼굴을 살폈다.

대부분 좋지 않았다.

축하한다는 눈빛을 보내는 것은 기껏해야 두세 명. 나머지는 다 썩어 있었다.

장현이 짧게 인사를 했다.

“축하합니다.”

그 말만 남기고 쌩 지나쳤다.

윤성주도 그랬다. 그나마 웃기는 했지만, 두 눈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손문철이 멀어지는 이능력자들을 보고 혀를 찼다.

“하여간 욕심쟁이들 같으니…… 그런데 주호 씨랑 수호 씨는 여기 어쩐 일입니까? 일이 바쁠 텐데요.”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천왕봉에 대해서요.”

손문철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왕봉 수정이 자신에게 어떤 작용을 했는지 익히 아는 까닭이었다.

조용한 곳에서 설명을 들은 후, 바로 결단을 내렸다.

이능력자 수십 명이 은밀히 협회 건물을 나섰다.

그 중에는 시혁도 포함되어 있었다.

< 깨어나다 -2-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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