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123화 (123/250)

< 외뿔 지저뱀 -1- >

끔찍했던 하루가 지나갔다.

전국에서 쏟아진 온정으로 재난을 극복했다.

시혁도 한의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대부분 퇴원시켰다. 많은 수가 자택으로 돌아갔고, 다른 이들은 일반 병원으로 보냈다. 이제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거나 기본적인 치료를 받기만 해도 될 정도로 호전되었으니까.

치료비는 정부와 대한이능협회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재난 상황이었으니, 개인에게 청구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언론에서도 이 일련의 지진 사태가 괴수에 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는 점이다.

하루 빨리 원인을 파악하고, 끝을 맺어야 했다.

이튿날 또 지진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영암이었다. 다만 아주 미약했다. 꼭 힘을 꽤 많이 써서 오늘은 좀 쉬겠다는 것 같았다.

협회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대책 회의가 광주 지부에서 열렸다.

손문철을 비롯한 대한이능협회 주요 간부들이 참석하고, 시혁도 그들과 함께 했다.

쌍둥이도 한쪽에 앉아 있었다.

박주호가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희 대책반은 지난 1주일 동안 무안과 함평 인근을 샅샅이 훑었습니다. 그 중에는 어제 지진이 일어났던 지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만, 괴수의 존재를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깐깐해 보이는 남자 하나가 질문을 했다.

“지금까지 지진 보고서를 보면 항상 지하 2킬로미터 근방에서 발생 했습니다. 혹시 그 안까지 투시가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사실 그렇다.

광범위 에테르 탐지 장치의 기본이 된 반신의 탐색 이적 자체가, 지표면 이상을 확인하는 것이니까.

아니, 애초에 지하 2 킬로미터 지점을 탐지할 방법이 뭐가 있겠나.

간부들은 심각한 얼굴로 박주호를 쳐다보았다.

박주호 대신 박수호가 대답했다.

“예. 그렇게 지하까진 탐지가 불가능했습니다. 실험해 보니까, 10미터만 들어가도 탐지가 안 되더라고요.”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어떻게요? 지하 2 킬로미터 지점입니다. 거기까지 투시하는 건 G급 이능력자가 와도 불가능해요.”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들을 지켜보며, 시혁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지진을 일으키는 괴수?

금시초문이다.

아르거스에서도 그런 괴수는 없었다.

아니, 있긴 있다. 각 진영의 최종 병기나 중립 괴물 중에서도 최상급 이상으로 평가 받는 괴물이라면 가능했다.

그러나 지하 2 킬로미터 이하에서 암약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애초에 거기까지 갈 수도 없을 뿐더러, 이만한 피해를 입히려면 지표면까지 나와야 한다.

손문철이 시혁을 돌아보았다.

“원장님, 혹시 좋은 생각 없습니까?”

기대 어린 눈빛이 쏟아졌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손문철만큼은 시혁의 비밀을 아는 상태였다. 자연히 이번에도 기똥찬 해결책을 내놓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혁은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지하 2 킬로미터 지점을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괴수라니, 상상이 안 가네요.”

“음……”

손문철이 묘한 소리를 냈다.

누군가 탄식을 했다.

“예지 계열 이능력자라도 있으면 시민들을 대피시키기라도 할 텐데, 그런 이능력자도 없고……”

그도 그럴 것이, 아르거스에 예언가 같은 병종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결국 대책 회의는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끝났다.

손문철이 시혁에게 면담을 청했다.

밀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더니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원장님, 정말로 좋은 방법이 없습니까?”

시혁은 입맛을 다셨다.

“예. 아르거스에도 없는 종류의 괴수에요. 아르거스의 에테르가 이상한 식으로 변이를 일으킨 것 같습니다.”

“허어, 그럼 어떻게 하지요?”

“자그마한 단서라도 얻어야 합니다. 원형이 되는 괴수가 뭔지 알면 어떤 식으로든 해법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 휴, 어쩔 수 없지요. 땅이라도 파봐야겠습니다.”

“땅을 파신다니요?”

“어차피 투시는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럼 몸으로 때워야죠. 전 땅 파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 2 킬로미터 정도는 충분히 팔 수 있어요.”

시혁은 질린 눈으로 손문철을 쳐다보았다.

땅을 파겠다고 해서 석유 시추 장비를 동원하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석유 파듯이 파면 안 됩니까?”

“그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2 킬로미터 아래잖아요. 아무리 빨리 해도 보름은 넘어갈 겁니다. 차라리 제가 하는 게 낫지요. 안 쉬고 하루만 파면, 2 킬로미터 아래까진 들어갈 수 있습니다.”

“후우, 대단하시네요.”

“원장님만 하겠습니까? 서둘러야겠습니다. 괴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해결을 봐야 합니다.”

시혁도 자청해서 동행했다.

출발하기 직전, 잠깐 한의원에 들렀다.

오색 수정을 챙겼다.

오행 순환체가 봉인된 물건. 이걸 활용한다면 손문철이 더 빠르게 땅을 팔 테니까.

몇 명의 이능력자가 동행하고 있었다.

이미라와 채현애도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장현도 함께 했다.

“모두 오랜만입니다.”

“잘 계셨죠? 얼굴 보기 힘드네요.”

“오랜만이에요.”

이미라와 채현애는 살포시 웃어 보이지만, 장현은 그저 고개만 까딱 했다.

손문철이 옆에서 한 마디를 했다.

“최악의 경우 지하에서 정체불명의 괴수와 마주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보통 녀석은 아닐 것 같으니까요.”

“걱정 마세요.”

“그러려고 가는 거잖아요.”

다른 이능력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들지만, 장현은 이번에도 말이 없었다. 그저 두 손에 낀 장갑만 매만졌다.

장갑?

장현은 단검을 쓰는 격투 계열 이능력자라서 저런 걸 쓰지 않을 텐데…… 얇지도 않고, 상당히 두꺼운 물건이라 더 그렇다.

헬기가 곧 월야면에 도착했다.

을씨년스럽다.

주민들은 모두 함평군청에서 마련한 대피소로 피한 뒤였다. 진앙 지점이라 가장 피해가 컸던 터라, 언제 복귀할 수 있을지 몰랐다.

대신 군대가 장악했다.

주둔지를 만들어 놓고, 이능력자들이 도착하기만 기다렸다. 출발하기 전에 사전 조율을 다 해놓은 것이다.

손문철이 진앙의 수직 지점에 가서 섰다.

“시작하겠습니다.”

시혁이 손을 내밀어 제지했다.

“협회장님, 잠시만. 제가 도와드릴 게 있습니다.”

“그래요?”

오색 수정을 내밀었다.

오행 순환체가 수정에서 손문철의 몸으로 이동했다.

몇 가지 제한은 걸었다.

손문철의 몸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며칠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사멸하게 한 것이다.

오색 섬광이 반짝이자, 손문철이 신기하다는 얼굴을 했다.

“이게 원장님이 만드신 오행 순환쳅니까? 신기하네요. 온몸에 힘이 넘칩니다.”

소환물 연결도, 다중 속성 강화도 없지만 노하우는 남아 있다. 강화 마법을 몇 가지 걸어주었으니, 손문철의 전력이 최소한 2할은 강해졌다고 봐야 했다.

시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대비를 해야지요. 제가 멀리서도 협회장님 상황을 대충은 알 수 있으니,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지원하겠습니다.”

“이거 든든하네요. 그럼 정말 시작하겠습니다.”

손문철이 정신을 집중했다.

전신에서 은색의 날카로운 빛이 피어올랐다.

그 빛이 지면을 향해 집중되었다.

땅이 저절로 갈렸다.

드릴로 뚫는 것처럼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이 빠르게 지하로 파고들었다. 반경 1미터 남짓해서, 몇 명이 동시에 들어가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이미라가 그걸 보고 감탄했다.

“역시 협회장님은 대단하시네요. 전 저런 건 흉내도 못 낼 거예요.”

반신이 되면서 뭔가 특별한 힘을 얻는 모양이다.

철 진영의 반신인 것 같으니 땅을 잘 파겠지. 어쩌면 그쪽 관련 병종을 겪어본 것일 수도 있고.

이능력자들은 인근 막사에서 대기했다.

중장비도 동원했다. 손문철이 뚫은 구멍 인근에 안전장치도 달고, 내려갈 때 쓸 쇳줄도 설치했다. 소형 무전기를 통해 교신하는 한편, 손문철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꼬박 24시간 후, 손문철이 드디어 진원지에 도착했다.

[다들 내려와 보세요!]

[뭐가 있습니까?]

[예. 괴수 껍질 같은 게 남아 있습니다! 최시혁 원장님이 한 번 보셔야겠습니다!]

괴수 껍질?

시혁과 이미라, 채현애, 장현만 급히 내려갔다.

수직 땅굴이 무너질 염려는 없었다. 무슨 수를 쓴 건지, 벽이 견고하게 압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혁은 이능력자들에게 저속 낙하 마법을 걸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2 킬로미터 땅굴을 통과하여 손문철에게 합류했다.

상당히 큰 지하 공동이 나왔다.

거의 초등학교 하나는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자연적인 공동은 아니고, 인공적인 냄새가 강하게 났다.

손문철이 은색 빛을 뿜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깁니다!”

땅굴은 공동 한쪽으로 나 있었다. 반면 손문철은 반대편에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뭔가 발에 밟혔다.

부들부들한 감촉이 느껴졌다. 비단 같기도 하고, 솜이불 같기도 한 물체였다.

가져 온 손전등을 내려 바닥을 확인했다.

투명한 천 같은 게 바닥에 놓여 있었다.

컸다.

단지 시혁과 이능력자들이 있는 곳만 아니라 공동 전체에 깔렸다.

들어보니 꽤 가벼웠다. 종이를 몇 장 든 것 같은데, 특이하게도 두께는 상당히 두툼했다. 그러면서도 무척 질겨서, 방어 능력이 상당할 듯했다.

시혁은 얼굴을 찌푸린 채 껍질을 들여다보았다.

이미라가 껍질을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이건 괴수가 탈피를 해서 생긴 거겠죠?”

“그런 것 같습니다. 껍질을 보니, 뱀 종류인가 봅니다.”

껍질에는 비늘 자국이 남아 있었다. 길이는 길고, 폭은 상대적으로 좁았다. 자연히 뱀 형상일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손문철이 껍질 한쪽을 들어보였다.

“여기 좀 보세요.”

머리 부분이다.

시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뱀 머리다. 특이한 것은, 머리 중앙에 커다란 뿔이 하나 달려 있다는 점이다.

통찰 마법으로 껍질 전체를 살펴보았다.

머리에 비해 몸통이 더 두터웠다. 다만 보통의 뱀처럼 꼬리가 뾰족하지 않고, 마치 노처럼 납작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형상에서, 시혁은 한 가지 괴물을 떠올렸다.

외뿔 바다뱀.

바다 진영의 상급 바다 괴물이다.

물의 힘을 다루는 데 특히 탁월했다. 물과 동화되어 잠수하여 움직이는가 하면, 외뿔에서 힘을 방출하여 파도를 일으켜 공격하곤 했다.

딱 판박이다.

물의 힘을 땅의 힘으로만 바꾸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이 정체불명의 괴수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지진을 일으키는 것도 설명이 된다.

실제로 이 공동에는 다른 곳으로 통하는 굴이 없었다. 지상으로 향하는, 손문철이 뚫은 수직 땅굴만 존재했다.

그나저나 외뿔 바다뱀이라……

골치 아픈 괴물이다. 무엇보다도 강하고, 추적하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체를 알아낸 이상 잡을 방법은 있다.

시혁은 손문철에게 말을 걸었다.

“올라가지요. 볼 건 다 본 것 같습니다.”

손문철이 아쉬운 듯 껍질을 주물렀다.

“이거 갖고 올라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옷으로 만들어도 좋은 놈이 나오겠는 걸요.”

“탈피하면서 영양가는 다 빠진 놈입니다만,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그런데 무거워서 들고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힘들까요?”

“힘들죠. 크레인을 동원해도 무거워서 들어올리기 어렵습니다. 밀도는 무척 낮지만, 부피가 워낙 커요.”

구멍이 크다면 모를까, 반경 1미터짜리로는 불가능했다.

손문철은 머리를 비롯하여 일부만 잘랐다. 그런 다음 짊어지자, 이미라도 달려들어 일부분을 떼어 냈다. 시혁을 비롯한 이능력자들도 조금씩 챙겼다.

올라갈 때는 비행 마법을 사용했다. 내려올 때보다는 시간이 좀 걸렸다. 적당히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지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협회의 이능력자들이 모여들었다.

머리와 뿔을 확인하더니, 다들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시무시하네요. 괴수 머리통이 사람 키보다 더 큰 것 같아요.”

“엄청나네요.”

< 외뿔 지저뱀 -1-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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