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 세계의 한의사-121화 (121/250)

< 지진 -1- >

며칠 시간이 지났다.

덜컹, 덜커덕.

시혁은 오늘도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지진이다.

본능적으로 침대를 벗어났다. 몸을 낮추고 주위를 살폈다.

가벼운 여진이 한 차례 다가왔다. 창문이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것으로 그쳤는지, 더 이상은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휴.”

시혁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게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매일같이 약한 지진이 시혁의 보금자리를 때리고 있었다.

새벽 6시.

불을 켜고 침대에 앉았다.

TV를 켜자, 지역 방송에서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전라남도 무안군 인근에서 강도 4.2의 지진 발생.]

사흘 전에는 장성, 그제는 담양, 어제는 나주, 오늘은 무안……

대한민국도 더 이상 안전지대는 아닌가 보다.

부쩍 지진 발생 빈도가 늘었다. 괴수 출현 전과 비교하면 거의 서너 배는 되었다.

땅 자체가 불안정해져서 그런가 보다.

특히 최근 며칠 사이에는 전라도 지역에 지진이 자주 발생했다. 거의 하루에 1번꼴이었다.

대부분은 강도가 약해서 땅이 좀 흔들리는 정도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위협적이다.

실질적인 피해는 없어도 국민들이 크게 불안을 느꼈다.

그래서 대한이능협회에서 조사에 나섰다고 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괴수 출현을 의심하는 것은 상식이었으니까.

시혁은 8시 정도에 출근을 했다.

병동 회진부터 했다.

환자들의 상태는 괜찮았다. 모두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오늘 하루만 퇴원해도 될 환자가 다섯은 넘었다.

시혁은 흡족하게 웃었다.

“좋습니다. 다 좋으시네요. 김미형 님이랑 이준배 님만 외래 치료 하시면 되니까, 그 분들은 오전에 저 잠깐 보고 가라고 하세요.”

“네, 원장님.”

회진이 끝나고 잠깐 쉬었다.

간호사 스테이션 의자에 느긋하게 누워 있는데, 갑자기 묘한 느낌이 엄습해 왔다.

아르거스에서와 같은 감각.

흡사 겐타가 자신을 노려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일어나는데,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간호사들과 환자들이 기겁을 했다.

“에그머니나!”

“뭐야?”

쨍그랑!

옆에 놔둔 컵이 바닥에 떨어졌다.

유리창이 덜컹거렸다.

서 있던 사람들이 휘청거렸다. 벽과 집기를 붙잡고 버텼다.

전등이 깜빡였다. 커튼이 제멋대로 풀려 햇빛을 가렸다. 그 바람에 한의원 안이 잠깐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시혁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췄다.

지진, 그것도 새벽보다 훨씬 강한 지진이었다.

끼이이익, 꽝!

창문 너머로 불길한 소리가 터졌다.

“꺄아아악!”

“으아아!”

이어, 비명소리가 터졌다.

그걸 듣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고통과 공포에 가득 차 뾰족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뭔가 미끄러지는 소리, 부딪치는 소리, 비명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지진이 길어질수록 소리도 커지고 거칠어졌다.

이윽고 지진이 그쳤다.

실제 지진이 지속된 건 겨우 십여 초였지만 억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시혁은 겨우 책상을 붙들고 일어났다.

민수진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요?”

“모르겠습니다. 꽤 강한 지진 같은데……”

시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민수진의 옆, 창문 너머를 봤기 때문이었다.

급히 다가갔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자, 목불인견의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시꺼먼 연기가 솟구쳤다.

잘 달리던 자동차들이 경로를 이탈해 사고를 냈다. 다른 자동차를 때린 것은 기본이고, 전봇대를 들이받은 것도 보였다. 엔진에 손상이 갔는지, 보닛에서 연기가 뭉클뭉클 솟았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시혁의 한의원이 위치한 곳 바로 앞.

대형사고가 났다.

승용차 한 대가 제어를 잃고, 신호등에 서 있던 보행자들을 덮친 것이다.

민수진도 이상한 점을 느꼈나 보다.

엉거주춤 일어나 밖을 내다보더니, 헛바람을 들이키며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어머, 이걸 어째!”

뭘 어쩌긴 어째?

시혁은 빠르게 지시했다.

“당직 1명만 남고 간호사들 다 내려오세요. 오늘 외래는 휴진하겠습니다.”

대답을 듣지도 않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6층에서 1층을 곧바로 주파했다. 새하얀 가운 자락을 휘날리며, 사고가 발생한 신호등으로 달렸다.

피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처참했다.

돌진하면서 몇 명을 그대로 깔아뭉갠 모양이었다. 보도블록에 피가 튀어 있었다. 운전자는 기절했는지 터진 에어백에 몸을 묻고 있고, 보행자 몇 명이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미혜야! 미혜야!”

“사람이 깔렸어요! 도와주세요!”

가장 위험한 것은 하반신이 아예 차에 깔린 여고생.

얼굴이 벌써부터 백지장처럼 하얗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쇼크사하게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중상자가 몇 명 있었다. 다리가 괴상하게 꺾여 있나 하면, 배를 감싸고 나뒹굴었다. 팔꿈치를 쥔 채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도 보였다.

그러나 여고생보다는 상태가 낫다.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시혁은 여고생에게 달려들었다.

“이봐요, 괜찮아요?”

“으으으……”

여고생은 대답은 못하고 신음만 흘렸다.

친구로 보이는 여고생들이 발을 동동 걸렸다.

“의사 쌤이세요? 쌤, 어떻게 해야 돼요?”

“미혜 좀 살려주세요!”

시혁은 차의 아랫부분을 들여다보았다.

뭘 어떻게 들이받았는지 앞쪽 바퀴가 여고생의 다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다리가 이미 으스러진 것 같은데, 이래서야 여고생을 끌어낼 수도 없다.

한의원 직원들이 도착했다.

박희정이 여고생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걸, 이걸, 어떻게……”

시혁은 고개를 들었다.

“차 좀 들어주세요!”

“네?”

언뜻 보기에도 크고 무거운 차다.

그런데 이걸 들자고?

시혁은 한 손을 들었다.

힘을 발하며 오색 광채를 보여주자, 누군가 숨죽여 소리쳤다.

“이능력자다!”

시혁은 그 빛을 자동차를 향해 뿌렸다.

빛이 춤추며 자동차에 깃들었다. 무게 감소 마법이 작용하며, 자동차의 무게를 거의 경차 수준까지 줄였다.

시혁은 힘을 주어 말했다.

“이 차, 이제 그렇게 무겁지 않습니다. 재작년에 창원에서는 시민들이 차를 들어 올려서 다친 사람 구한 적도 있었잖습니까? 늦지만 않게 꺼내면 살릴 수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민수진이 가장 먼저 나섰다.

차 아래에 손을 넣고 용을 쓰기 시작하자, 시민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달라붙었다.

모두 하나가 되어 소리쳤다.

“하나, 둘, 영차!”

“하나, 둘, 영차!”

자동차가 들썩였다.

이능력자는 없지만, 시민들이 작은 기적을 만들었다.

차가 들렸다.

그 틈을 타 여고생을 밖으로 꺼냈다.

탄성이 터졌다.

“됐다!”

“이제 됐어!”

하지만 곧 수그러졌다.

꺼내놓고 보니, 여고생의 상태가 너무나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체가 완전히 으스러졌다.

다리가 엉망진창이었다. 원래 형태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분쇄기에 넣고 갈아버린 듯 뒤틀려 있었다. 피가 쉬지 않고 새어나와서, 냇물처럼 흐르고 흘렀다.

시혁은 여고생의 목에 손을 갖다 댔다.

맥박은 뛰고 있다.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리했다.

무턱대고 이능을 퍼붓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뼈가 부러진 채 이어지기 때문에, 영원히 불구의 몸으로 살아야 할 테니까.

먼저 뼈부터 맞추는 게 급선무.

시혁은 여고생의 다리 쪽으로 내려갔다.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두 손을 높이 들었다.

새하얀 빛이 칼날처럼 번뜩였다.

그걸 그대로 찔렀다.

피가 터졌다.

“꺄악!”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직 치료에만 전념했다.

먼저 오른 다리.

주요 손상 부위는 무릎과 종아리였다. 발목 이하와 무릎 이상은 온전했다.

다리 위쪽에 먼저 혈액 순환을 차단하는 마법을 걸었다. 왼쪽 다리에도 그렇게 했다. 손상된 정도는 양쪽이 비슷했으니까.

무릎 관절과 종아리뼈, 정강뼈가 완전히 수십 조각이 났다. 뭘 해보려고 하면, 이것부터 접합을 해야 할 것이다.

통찰 마법으로 들여다보며 차례차례 이었다. 어렵고 힘든 작업이지만, 한 생명이 자신의 손끝에 달려 있다 생각하니 잠시도 쉴 수 없었다.

오른 다리의 뼈를 다 맞추고, 왼쪽 다리로 넘어갔다.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땀방울이 맺혔다.

민수진이 조심스럽게 땀을 닦아주었다. 하도 집중을 한 탓에, 그런 줄 어쩐 줄도 몰랐다.

시민들이 시혁의 시술을 지켜보았다.

누구도 말 한 마디 못했다.

구급차가 왔어도 그랬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시혁의 손에서 반짝이는 빛을 보고만 있었다.

뼈를 다 맞추었다.

“후우!”

시혁은 짧게 심호흡을 했다.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한 고비를 넘긴 셈.

이제는 녹색으로 빛나는 손으로 여고생의 다리를 한 차례 쓸었다.

뼈가 빠르게 증식했다.

조만간 뼈가 붙을 것이다. 당분간 안정을 해야겠지만,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

그래도 갈 길이 남아 있었다.

여고생의 뱃속.

어디서 출혈이 일어났는지, 복강 안에 피가 가득했던 것이다.

“저…… 선생님.”

구급 요원이 시혁을 불렀다.

난처한 얼굴로 여고생을 내려다보더니, 비어 있는 구급차를 가리켰다.

“응급실로 데려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빨리 치료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시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안 됩니다. 내출혈이 있어요.”

“내출혈이요? 그럼 빨리……”

“아뇨. 제가 내출혈까진 막겠습니다. 그게 환자에게 더 좋을 겁니다.”

하얗게 빛나는 손으로 배를 갈랐다.

피가 뿜어졌다.

가운에 피가 잔뜩 묻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의 에테르를 이용해 핏물을 뽑아내기만 했다. 그것을 보고, 구급 요원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금방 원인을 알아냈다.

간 파열, 비장 파열, 위장 파열, 십이지장 파열.

차 앞부분에 배를 얻어맞은 모양이다. 딱 갈비뼈 아래 있는 장기들이 크게 손상되어 있었다.

빠르게 손을 썼다.

피는 모두 빼내고, 오염된 곳은 정화했다. 손상된 부위에 녹색 에테르를 불어넣고 치료하고, 마지막으로 완벽하게 봉합했다.

척추와 갈비뼈에도 금이 가 있었다. 거기는 치료하기가 쉬웠다. 치료사의 이능을 주입하는 것으로 치료를 끝냈다.

이것으로 끝.

이제 병원에 가서 안정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 굳이 다른 치료도 필요 없고, 한 며칠 누워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완치될 것이다.

시혁은 가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깜짝 놀라 가운 소매를 보니 완전히 빨갛게 변해 있었다. 워낙 치료에만 집중하느라 피가 묻는 것도 잘 몰랐던 것이다.

민수진이 손수건으로 시혁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원장님, 고생하셨어요.”

“천만에요. 구급차는 갔습니까?”

“네. 다른 환자 데리고 갔어요. 이제 괜찮은 거예요?”

“예. 별일 없을 겁니다. 입원해서 며칠 쉬기만 하면 됩니다.”

“으으음……”

여고생이 신음을 흘렸다.

숨도 못 쉬고 주위를 서성이던 친구들이 달려들었다.

“미혜야, 정신이 들어?”

“미혜야! 나 좀 봐!”

여고생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 머리 아파…… 여기 어디야?”

“너 차에 치었어! 기억 안 나?”

“엉엉, 죽는 줄 알았단 말야!”

이제 됐다.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시혁도 마음이 놓였다.

때마침 구급차가 돌아왔다. 들것에 여고생을 싣자, 여고생은 영문 몰라 하면서도 순순히 구급차에 탔다.

교통사고 충격으로 단기 기억 상실을 겪은 것 같은데, 그 자신도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니까.

여고생의 친구들이 울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쌤! 감사합니다! 쌤 덕분에 미혜가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여고생 무리는 구급차 뒤쪽에 동승했다. 비좁고 학교 시간도 급할 텐데, 병원까지 같이 갈 생각인 듯했다.

시혁은 허리를 폈다.

가장 급한 사람은 챙겼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이 그랬다.

불이 붙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소방차들이 오려고 해도 불이 난 곳이 워낙 많았다.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꽤 지난 후일 것이다.

“안에 사람은 없습니까?”

“네! 다 대피했어요!”

“좋습니다. 뒤로 물러나세요.”

마법을 쓰기 앞서, 시혁은 통찰 마법을 사용했다.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뜻밖에도 작은 그림자가 하나 보였다.

꼬마아이다.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건물 5층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주저앉은 채 울고 있는 게, 이미 공포에 질린 것 같았다.

< 지진 -1-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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