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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19화 (119/250)

< 환생 -1- >

요샌 만날 때마다 신경전이 벌어졌다.

겐타가 시혁을 보고 입을 삐죽였다.

“요즘 강철왕께서 좀 바쁘시다면서?”

“패도 장군만 하겠습니까? 범선들이 북쪽 바다를 하얗게 수놓고 있던데요.”

세 반신은 전장을 사이좋게 갈라먹었다.

아예 천도 이적을 써서 본성을 옮기기까지 했다. 곧 동맹이 끝나는데, 쟁투를 벌이기에는 서로의 본성이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12시에 패도 장군.

4시에 강철왕.

8시에 하늘의 빛.

물밑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나를 쥐어짜 영웅들을 소환하고, 레벨이 낮은 영웅들에게 중립 괴물들을 몰아주었다. 함선도 더 많이 건조하여, 강력한 함대를 확보했다.

오늘이 바로 동맹이 끝나는 시간.

세 영웅은 중앙의 탑에 모였다.

심해의 보주는 셋만 보는 가운데 봉인하기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한 진영이 갖기엔 워낙에 강한 보물이었으니까.

셋은 나란히 보주에 손을 얹었다.

치열한 눈치작전이 오갔다.

누군가 배신하고 보주를 탈취할까 싶어서였다. 한꺼번에 힘을 집중하여, 보주의 힘을 폭주시킨 다음에야 마음을 놓았다.

청색 힘이 들끓었다.

신전이 흔들렸다.

점차 지면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신전이 무너지면서, 소용돌이 벽도 약해져 바다 아래로 침몰하는 것이다.

바다의 물을 다 퍼내거나, 무시무시한 수압을 감수하지 않는 한 심해의 보주를 건져내기 불가능했다.

봉인을 하고, 시혁은 남몰래 씩 웃었다.

굳이 바다에 가라앉히는 것으로 봉인의 방법을 정한 것에는, 한 가지 속셈이 숨겨져 있었으니까.

겐타가 시혁과 바리엘을 보며 말했다.

“이제 다음에 만나면 적이 되겠군. 그 동안 고생했어.”

악수를 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다.

바리엘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시혁은 가당찮다는 얼굴을 했다.

“소매 속에 그거, 치우시죠.”

“응? 아하하, 이게 왜 여기에 들어가 있지?”

겐타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소매 속에 숨어 있던 독사가 슬쩍 모습을 감췄다.

지난 시간 동안 함께 하며 서로의 속을 바닥까지 안 다음이었다. 화통하게 헤어질 작자가 아닌데 악수를 청하니,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바리엘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벼락쐐기. 수를 쓰더라도 속아 넘어갈 수를 써라. 어둠 진영에서 암살자로 복무한 사실을 뻔히 아는데, 가만히 당할 자가 어디 있겠나?”

“끄응, 머리 좋아서 좋겠다.”

“그럼 자정이 지나면 뵙지요. 전 산 채로 수장 당하는 취미는 없으니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시혁은 짝니를 타고 몸을 날렸다.

탑의 아랫부분이 어느새 물에 잠겨 있었다. 소용돌이 벽이 무너지면서 물이 밀려든 까닭이었다.

바리엘과 겐타도 몸을 뺐다.

각자 대기하고 있던 자기 진영의 배에 탑승했다. 그 후, 주력 함대에 합류했다.

멕베르가 시혁을 맞이했다.

“오, 왔소? 갔던 일은 잘 됐고?”

“예. 완전히 봉인해 놨습니다. 전투가 끝나 이 전장이 성역에 편입되기 전까진 누구도 심해의 보주를 쓸 수 없을 겁니다. 피고르 님은 좀 어떻습니까?”

“이제 막 50레벨을 찍었소. 중립 괴물이 거의 죽은 상태라 쉽지는 않았지. 베일과 가이드도 30레벨은 넘었으니, 우리 진영이 가장 앞선 상태라고 할 수 있소.”

멕베르가 자신감을 드러냈다.

피고르는 두 번째로 소환된 장인 영웅이었다. 남 동맹이 쳐들어 왔을 때 사망했으나, 시혁이 적당한 시점에 살려냈다. 사망 당시 40레벨이어서, 다른 반신들의 눈을 피해가 레벨을 올리는 데 전념했다.

하지만 시혁은 썩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섯 영웅 중, 해상전에 강점을 가진 영웅이 없었으니까. 멕베르는 수호자, 베일은 기병대장이어서 해전에서는 별 재미를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한 가지 계획을 짜고 있었다.

시혁의 궁극기, 환생.

이건 아군에게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적군에게도 시전이 가능했다.

지금 남아 있는 환생의 충전량은 3/4.

영웅 셋을 살려낼 수 있었다.

만약 바다 진영의 영웅 셋을 환생시킨 뒤, 그들의 협조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두 반신을 압도할지도 모른다.

당장 강철왕에게 그 얘기를 했다.

강철왕이 고심하며 말했다.

[그들을 살려낸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에게 협조하겠느냐?]

[적당한 대가를 치르면 협조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요. 창해 장로는 이미 탈락했고, 우리를 돕는다고 해서 그들이 창해 장로와 맺은 계약이 취소되지도 않습니다.]

[그야 그렇다만……]

[제가 보기엔 그게 최선입니다. 결정은 강철왕님의 몫입니다만, 한 번 고려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강철왕이 침묵에 잠겼다.

잠자코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철왕이 결단을 내렸다.

[좋다. 그대의 진언을 따르도록 하겠다. 그래, 누구부터 살릴 생각이냐?]

[파도 선봉장부터 살리겠습니다. 아까 보니, 파도 선봉장이 창해 장로의 영웅 중 첫 번째 영웅인 것 같았으니까요.]

시혁은 강철왕이 대가로 지불할 수 있는 보물의 목록에 대해 먼저 들었다.

그 중 파도 선봉장이 욕심낼 만한 게 몇 가지 있었다.

그것들을 기억해두고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황금색의 빛이 우러나왔다.

그 빛을 따라 하늘이 열렸다. 열린 하늘에서 푸른 빛 덩이가 하나 내려왔다. 빛 덩이가 시혁의 눈앞에 멈추더니, 커다란 인간 형태로 형상화되었다.

삼지창을 들고, 비늘 갑옷으로 몸을 가린 상어 인간.

파도 선봉장은 정신을 차리더니 눈을 끔뻑였다.

“난 죽었었는데?”

곧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을 포위한 시혁과 멕베르, 10레벨 드워프들을 한 번씩 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날 살려낸 거냐? 왜?”

시혁이 앞으로 나섰다.

“선봉장님께 제안할 게 있습니다.”

“제안?”

“예. 이번 전투에 한하여, 강철왕님을 위해 일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강철왕님께서 섭섭하지 않게 대우해 주실 겁니다.”

“강철왕을 위해 일하라고?”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습니까? 창해 장로는 패배했고, 지금은 고향 세계로 돌아갔습니다. 강철왕을 위해 일한다 한들 창해 장로가 선봉장님과 계약을 파기하지도 않겠지요. 그냥 이대로 돌아가느니, 전투에 참가하셔서 승급에 필요한 경험도 얻고, 보물도 받아 가시는 게 좋지요.”

“흠!”

파도 선봉장이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피고르가 한쪽에서 걸어왔다.

파도 선봉장이 유령을 보는 듯한 얼굴로 피고르를 쳐다보았다.

“넌 분명히 죽었을 텐데?”

“너도 살아났는데 나라고 못 했을 리 있나. 너 말고도 심해 사냥꾼과 섬의 마녀도 살릴 거라고 들었다. 영웅 여덟이면, 하늘의 빛과 패도 장군을 동시에 상대해도 이길 수 있겠지.”

“허허, 뭔가 보물이라도 썼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나 보군.”

파도 선봉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시혁의 구상대로 되면 승리 한 번을 거저먹게 된다. 용병의 대가로 보물도 준다고 했다. 창해 장로와의 계약에 영향도 없으니 거부할 이유가 없다.

파도 선봉장이 마음을 굳혔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면 되지?”

승낙한 것이다.

강철왕은 파도 선봉장에게 낙인을 하나 찍었다.

예전에 시혁이 야만 군주에게 받았던 것과 비슷했다. 이번 전투에 한해, 파도 선봉장을 강철왕 휘하로 두는 한편 강제력을 발휘하는 낙인이었다.

대가로는 갑옷을 하나 주기로 했다. 지금 입은 비늘 갑옷은 물 속성이라 바다에서는 좋은데, 육상에서는 좀 약했기 때문이었다.

시혁은 파도 선봉장을 옆에 세워놓았다. 그 상태로 심해 사냥꾼과 섬의 마녀를 연달아 환생시켰다.

금빛과 함께, 두 영웅이 소생했다.

“여긴 어디지?”

“드워프다!”

두 영웅이 경계 태세를 취했다.

이번에는 설득하기가 더 쉬웠다. 파도 선봉장이 바로 옆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영웅도 강철왕 진영에 합류했다.

강철왕 진영의 사기가 한껏 높아졌다.

“좋았어! 이번 전투는 쉽게 이기겠는데?”

“50 레벨 영웅이 4명이나 돼. 이 정도면 최종 병기가 쳐들어와도 순식간에 해치우겠어!”

“하늘의 빛이랑 패도 장군 모두 3차 확장 반신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럼 이미 다 끝났네. 고급 병종은 소환하지도 못하잖아.”

성역의 4차 확장을 이뤄야 고급 병종을 소환할 수 있다. 그리고 최종 확장을 마쳐야 최종 병기를 소환하는 게 가능했다. 이번 전장에선 잘 해봐야 상급 병종이니, 전투가 거의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뿌우우.

긴 나팔 소리가 들리며, 용암 용광로가 잠깐 흔들렸다.

동맹이 끝난 것이다.

그 순간, 강철왕이 당혹한 목소리를 냈다.

[두 반신의 함대가 움직이고 있다.]

[우리 쪽으로 오고 있지요?]

[어떻게 알았느냐?]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동맹을 맺고 함께 움직이는 동안 가장 활약한 게 누군가.

바로 시혁이다.

하늘의 빛도, 패도 장군도 시혁을 인상 깊게 보았다. 당연히 가장 먼저 찍어내려고 할 것이다.

시혁은 강철왕에게 건의했다.

[피고르 님과 세 영웅 분들을 일단 감춰야겠습니다. 두 반신의 함대가 가까이 오면, 피고르 님과 파도 선봉장님의 궁극기를 터뜨리는 게 좋겠습니다.]

[그게 좋겠다.]

피고르의 궁극기는 대포 폭격, 파도 선봉장의 궁극기는 해일.

둘 다 적 함대에 치명적인 피해를 강요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심해 사냥꾼에게는 한 가지 임무를 맡겼다.

임무를 받고, 심해 사냥꾼은 시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당신, 참 악독한 자로군.”

시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승리하려면 어쩔 수 없지요. 제 고향 세계에는 병법은 곧 속이는 것이라는 말을 남긴 사람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니…… 좋소. 그렇게 합시다. 내가 레벨이 높지 않아서 시간은 좀 걸릴 거요.”

심해 사냥꾼은 배에 타지도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탈것, 심해 아귀 한 마리만 동행했다.

나머지 영웅들은 증기선에 탑승했다.

위풍당당한 드워프 함대가 북쪽으로 나아갔다.

둘로 나눠야 할 줄 알았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천사 함대와 인간 함대가 중간 지점에서 합류해서 함께 내려왔기 때문이다.

어느새 동맹을 맺었나 보다.

세 개의 함대는 멀찍이 멈춰서 서로를 경계했다.

규모로 따지면 연합 함대가 더 크다. 하지만 무턱대고 들어올 수도 없었다. 드워프 함선은 대포로 무장하고 있고, 따라서 해전 능력은 더 강했으니까.

별안간 천사 하나가 날아올랐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더니,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부질없는 저항을 멈춰라, 드워프들이어!”

누군가 했더니 바리엘.

요식적인 행위다.

시혁이 앞에 나섰다.

드워프 영웅들이 위험하다고 만류했으나, 시혁은 믿는 것도 의도하는 것도 있었다.

입을 열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것,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2대 1이라고 해서 결과가 정해진 건 아닙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한참 말을 할 때였다.

쉭!

바람 새는 소리와 함께 검은 선이 한 줄기 그어졌다.

저 멀리 인간 함대에서 날아온 빛.

그게 시혁의 가슴에 꽂혔다.

시혁이 무릎을 꿇었다. 스르륵 몸이 미끄러지더니, 앞으로 쓰러졌다.

“헉!”

“뭐야?”

드워프들이 놀라 웅성거렸다.

바리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인간 함대 쪽을 쳐다보더니, 노호하며 소리쳤다.

“겐타! 이 무슨 짓이냐?”

“흥, 가장 껄끄러운 놈부터 죽여 놓고 시작해야 되는 거 몰라? 왜,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싶어? 그럴 거면 고향 세계에서나 그렇게 해! 당한 놈이 병신이지!”

확실히 그렇다.

누가 진짜 병신인지는 곧 밝혀지겠지.

< 환생 -1-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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