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임관 -3- >
바리엘과 겐타도 마찬가지였다.
“으어어어……”
겐타가 비틀대며 괴상한 소리를 흘렸다. 바리엘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너무 많은 정보가 주입되니 어찌할 바를 몰랐나 보다.
시혁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보주가 수집하는 정보는 셋이 공유한다. 그런데 보주의 힘을 사용하려고 하면, 이 셋 모두가 동의를 해야 했다.
얼른 그들을 일깨웠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한 시가 급합니다. 소용돌이를 만들어서, 북 동맹과 남 동맹의 진격을 막아야 돼요.”
둘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시혁은 금방 보주의 사용법을 익혔다. 뇌에 펼쳐지는 광경에, 점을 찍듯 소용돌이를 그리면 그만이었다. 아주 간단한 일인데, 바리엘과 겐타는 얼른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벅벅댔다.
결국 즉석에서 간단한 마법을 하나 만들었다.
셋이 지각하고 있는 전장의 상황이 허공에 그려졌다. 전장을 그대로 축소하여, 지구의 컴퓨터 게임 지도를 보는 듯했다.
손가락으로 점을 찍는 것으로 소용돌이를 일으킬 장소를 정했다. 얼마나 마나를 많이 퍼뜨리느냐에 따라서, 소용돌이의 위력도 결정될 것이다.
시혁이 먼저 손을 뻗었다.
패도 장군의 본성 근처에 3개, 강철왕의 본성 근처에 3개.
“이렇게 하는 건가?”
겐타도 따라서 했다.
간단한 작업이었다. 손가락을 대고 적당히 마나를 주입하기만 하면 됐다. 시혁이 미리 찍어놓은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되니 편했다.
바리엘까지 점을 찍자, 보주가 찬란한 섬광을 뿜었다.
탑 전체가 진동을 일으켰다.
셋의 의식 속에서 여섯 개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소용돌이는 정확히 북 동맹과 남 동맹의 함대 앞에 생겼다. 한참 전진하던 함대들이 놀라 회군하는 게 보였다.
바리엘이 흐뭇하게 웃었다.
“효과가 있네요.”
“이렇게 된 거 본성을 직접 공격해 버리는 게 어때?”
“서두르지 맙시다. 반신들의 본성이 있는 섬은 꽤 큰 편입니다. 소용돌이를 발생시켜도 별로 영향이 없을 겁니다. 차라리 함대들을 먼저 박살내 놓고, 항구를 공격하는 게 낫지요.”
옳은 의견이라고 둘 다 동의했다.
반신들에게도 알렸다.
당연히 모두 반색했다. 어서 소용돌이를 발생시켜 함대를 박살내라고 재촉까지 했다.
북 동맹의 함대부터 박살냈다.
함대가 보이는 곳마다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러자 함대가 얼마 버티지 못 하고 침몰했다. 네 반신이 이적을 써서 소용돌이를 잠재우려 했지만, 보주가 반신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북쪽은 그렇게 잠재웠는데, 남쪽에서 문제가 생겼다.
남 동맹의 함대가 멀찍이 돌아서 강철왕의 본성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함대가 나서서 막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밀렸다.
남 동맹에는 창해 장로가 소속되어 있을뿐더러, 지금 영웅 세 명이 자리를 비운 탓에 영웅의 수도 부족했으니까.
겐타가 방방 뛰었다.
“뭐해? 얼른 소용돌이를 불러서 박살을 내야지!”
“곤란합니다. 그러다 아군까지 휩쓸리게 생겼어요. 소용돌이를 만들면 창해 장로만 유리해집니다. 창해 장로의 괴수들은 소용돌이에 영향을 받지 않아요.”
바리엘의 말대로였다.
다른 진영은 대부분 배를 이용하지만, 바다 진영은 바다 괴수를 해군으로 써먹었다. 톱날 상어, 대왕 오징어, 외뿔 바다뱀, 용머리 거북이 그에 해당했다.
따라서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소용돌이가 생기든 해일이 닥치든, 바다 깊이 숨었다가 나오면 그만이니까.
탑에 앉아서 소용돌이를 부르는 것만으로는 한계에 부딪친 셈.
시혁은 고민하다가 해결책을 내놓았다.
“보주를 들고 나갑시다. 우리 함대에 합류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소용돌이를 부르지는 못할 텐데요?”
“나중에 탑에 가져오면 소용돌이를 쓸 수 있습니다. 보주 자체가 강력한 물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 직접적으로 공격하기에는 그게 더 나을 겁니다. 북 동맹의 함대는 모두 박살냈으니까, 두 동맹의 항구에 소용돌이를 불러놓고 가면 복구하는데 시간이 걸릴 거고요.”
바리엘과 겐타가 생각하기에도 그것 말고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즉시 시혁의 의견대로 움직였다.
7개의 초대형 소용돌이를 불렀다.
신전에 모인 힘을 대부분 소진하는 소용돌이였다. 이 정도면, 본성 전체는 아니더라도 항구와 선박 생산 시설은 모두 끝장날 것이다. 창해 장로의 바다 괴수 조련소도 마찬가지고.
거기까지 하고, 하늘을 통해 대기하고 있던 함대에 돌아왔다.
시혁은 보주를 통해 해류의 흐름을 바꾸었다.
함대가 급물살을 타고 9시로 질주했다. 신전에서 떨어진 까닭에 대규모 이적은 힘들어도, 거의 반신 하나에 해당하는 힘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이다.
“끼아아아!”
쿠웅, 쾅쾅!
치열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난장판이었다.
증기선이 멀찍이서 대포를 쏘았다.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포탄이 갤리선의 측면을 뚫어놓았다.
침몰하는 갤리선 아래에서 대왕 오징어가 나타났다. 증기선을 칭칭 휘어감아 선원들을 잡아먹었다.
천사들이 오징어의 발을 난도질했다. 오징어가 비명을 지를 때, 범선에서 날아온 박쥐들이 붉은 안개로 변하여 천사들을 덮쳤다.
인간 성직자들이 날려대는 흰색 섬광이 화려하게 뱀파이어들을 난타했다. 그러면 뱀파이어는 재가 되어 흩날렸다.
시혁의 함대는 그 뒤편으로 조용히 접근했다.
증기선 1척과 기범선 4척이 전부.
하지만 병력은 충실했다. 모두 10레벨이고, 세 종족의 연합 부대인데다 숫자도 수백이 넘어갔으니까.
“끼아아아!”
함대가 접근하자, 경고하듯 새된 소리가 울렸다.
물밑에 잠복해 있던 바다 괴수들이 일제히 방향을 돌렸다.
강철왕의 본성을 직접 공격하면서도 여력이 남아 있었나 보다. 이렇게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면.
시혁은 느긋하게 보주를 들어올렸다.
셋과 협의하여, 탑 밖에서는 시혁 혼자 보주를 다스리기로 결정한 다음이었다. 바리엘과 겐타는 직접 공격을 하는 게 나으니까.
“자, 시작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기다리고 있다고!”
보주에 물의 힘을 불어넣었다.
창창한 힘의 파동이 바다로 스며들었다.
연이어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바다가 일어났다.
아니, 물의 기둥이 섰다.
물밑에서 함대로 접근하던 바다 괴수들. 그것들을 움켜쥔 채 허공으로 띄워놓은 것이다.
바다 괴수들이 놀라 발버둥을 쳤다.
“키에에엑!”
“끼아악!”
바리엘이 돌진했다.
검을 긋자, 백색 선이 그어졌다.
백색 선이 지그재그로 바다 괴수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괴수들의 몸에 큰 상흔이 생기더니, 그대로 조각 나 피를 뿌렸다.
독수리 돌격.
바리엘의 궁극기.
겐타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이미 노포를 설치한 뒤, 신나게 벼락쐐기를 날려대고 있었다.
“죽어라, 이 더러운 것들아!”
벼락쐐기는 실로 무서웠다.
일격 일격이 괴수들의 몸통을 관통했다. 커다란 구멍을 뚫고 몸을 마비시키기까지 했다. 그런 겐타의 몸에 빛과 바람, 연기가 일렁이는 게 역시 궁극기를 발동시킨 듯했다.
수많은 바다 괴수가 이 연계 공격으로 죽어나갔다.
하지만 보주의 결박에서 빠져나간 괴수도 있었다.
외뿔 바다뱀.
물과 동화되더니 몸을 빼냈다. 멀찍이서 고개만 내밀더니, 뿔을 번뜩였다.
거대한 파장이 첩첩이 일어났다.
“크아아악!”
“아악!”
파장에 맞은 드워프들의 몸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아무리 상급 병종이라 해도 견디지 못했다.
원래 외뿔 바다뱀의 장기는 이 파장으로 물을 진동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큰 파도를 치게 해서 배를 뒤집게 하곤 했는데, 심해의 보주 때문에 직접 공격을 하는 것 같았다.
“제법인데?”
시혁은 심해의 보주를 세심하게 조작했다.
외뿔 바다뱀을 다시 붙잡았다. 이번에는 마나까지 부여해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 다음 지팡이를 겨누고 저장해 둔 마법을 몽땅 날렸다.
쩌저저정!
오로지 연쇄 벼락 마법.
한두 번만 날렸으면 견뎠을 것이다. 그런데 무려 일곱 번이나 동일한 마법이 날아갔다. 자기들끼리 영향을 받아 더 강해졌다. 거대한 외뿔 바다뱀들이, 이 한 방에 노릇노릇 구워져 뱀고기 신세가 되었다.
바다 괴수들이 삽시간에 전멸했다.
남 동맹의 함대가 술렁이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시혁은 다시 보주의 힘을 이용했다.
해류를 조작하여 함대를 더욱 접근시켰다.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남 동맹 함대의 절반이 머리를 돌렸다.
가장 앞쪽에, 세 명의 영웅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파도 선봉장.
강령법사.
피의 마도사.
다들 50레벨을 달성했고, 상위 계급 이상의 강력한 영웅들이었다.
파도 선봉장이 흰 고래의 머리에 탄 채 외쳤다.
“이 비루먹은 놈들! 모조리 바다에 쳐 넣어주마!”
“글쎄, 누가 수장될지는 두고 봐야겠지.”
한 바탕 전투가 벌어졌다.
처음에는 시혁 측이 밀리는 성싶었다. 세 영웅이 궁극기를 쓰는 까닭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혁의 지원 하에, 천천히 승기를 잡았다.
오행 순환체와 심해의 보주 덕이 컸다. 물의 힘은 죄다 심해의 보주가 지배하는 까닭에, 파도 선봉장의 능력은 거의 봉인되고 만 것이다.
짝니도 활약을 했다.
물밑으로 헤엄을 쳐서 뱀파이어 범선으로 기어 올라가더니, 피의 마도사 뒤에서 나타나 습격을 한 것이다.
“이크!”
방어 마법을 썼지만, 그림자 발톱이 발동한 뒤였다.
묵색의 선이 피의 마도사를 난도질했다. 간신히 피했으나 상당한 상처를 입고 말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림자 이동으로 또 뒤를 공격했다. 비록 죽이지는 못했어도, 전장에서 이탈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남 동맹은 더 버티지 못했다.
한 차례 강한 공격을 퍼붓고 자기네 영역으로 돌아갔다.
바로 추격을 개시했다.
강철왕이 마뜩치 않아 했지만 추격하자는 의견이 대세였다. 최소한 창해 장로만큼은 지금 끝장을 보자는 것이다.
소용돌이로 다른 반신들을 공격해 놨으니 시간이 있었다. 이번에도 해류를 조종해가며, 남 동맹의 함대를 쫓아갔다.
하나하나 박살을 냈다.
창해 장로는 거칠게 저항을 했다.
흡혈 후작과 혼령 지배자는 이미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났다. 창해 장로를 서 동맹에게 먹이로 내준 것이다. 심해의 보주가 서 동맹에게 있는 이상,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늘이 파란 옥빛으로 물들었다.
창해 장로가 탈락한 것이다.
시혁은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역시 쉽진 않았다.
바다에 특화된 진영다웠다. 거의 다른 진영의 2배에 달하는 전투력으로, 최후의 최후까지 물고 늘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소환된 아홉 영웅 중 세 명이나 죽었다. 일반 소환자 같으면 부활 이적으로 살려내련만, 영웅이어서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네 궁극기는 영웅도 부활시킬 수 있다고 했지?]
[예. 좀 미뤄두는 게 좋겠습니다.]
[후후, 알겠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영웅 소환을 준비해야겠군.]
강철왕이 음흉하게 웃었다.
시혁은 동맹 영웅들에게 자신의 궁극기를 부활이라고만 얘기했다. 당연히 그들은 일반적인 부활이라고 생각했지, 죽은 다음 시간이 오래 지난 영웅까지 살려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동맹이 끝난 후, 그 점이 한 자루의 비수가 될 것이다.
중앙 지역으로 이동했다.
탑으로 들어갔다.
심해의 보주를 원래 있던 자리에 되돌렸다. 그러자 싸늘하게 굳어 있던 탑의 기능이 되살아났다. 빈 부위에서 힘이 증폭되고, 순수한 물의 힘이 보주에 가득 찼다.
어느새 다른 반신들이 항구를 재건했다. 지금은 함대를 복구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느렸다.
서 동맹의 함대가 재건되는 것이 한참은 더 빨랐다.
폭풍을 동반하고, 함대가 바다를 가로질렀다.
남 동맹과 북 동맹이 하나로 합쳐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항구 밖으로 함대를 내기만 하면, 득달 같이 소용돌이가 생겨 함대를 집어삼켰기 때문이었다.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
나머지 여섯 반신의 본성이 차례대로 붕괴되었다.
애초에 손발 다 묶어놓고, 셋이서 하나를 때리는 거였다. 이래서야 어떤 반신이든 당해내는 건 불가능했다.
이제 셋만 남았다.
강철왕, 하늘의 빛, 패도 장군.
동맹을 맺기로 했던 기간이 끝나기 딱 사흘 전의 일이었다.
< 첫 임관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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