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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17화 (117/250)

< 첫 임관 -2- >

철 진영의 함대는 속도가 느려서 그렇지 강력한 전투력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천사들이 더해지면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바리엘과 중급 천사 10명이 합류했다. 전투, 사냥, 회복, 마법 계통이 섞여 있어 마음이 든든해졌다.

바로 패도 장군의 본성으로 갔다.

패도 장군은 방어 태세부터 굳히고 있었다. 주요 건물들을 건설하는 한편, 방어 시설을 갖췄다.

시혁의 제안에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동의했다.

[좋다. 나 또한 바라던 바다.]

새로운 영웅이 합류했다.

벼락쐐기 겐타.

저격수의 상위 병종인 노포수 출신이었다. 소형 노포(발리스타)를 들고 다니다 설치하여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데 능숙했다.

“어서 가자고!”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평소라면 세 번째나 네 번째로 소환되었을 텐데, 이번엔 첫 번째로 소환되어 그런가 보다.

여기까진 순조로웠는데 1시 방향에서 문제가 생겼다.

마나 수집가가 시혁의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내가 그깟 감언이설에 넘어갈 것 같으냐?]

시혁은 반지의 마법을 써서 겨우 도망쳤다.

마나 수집가가 이적을 퍼붓는 통에 처음으로 만든 기범선도 침몰 당했다. 그나마 두 영웅들이 탈출에 성공해서 다행스러웠다.

안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창해 장로가 다른 반신들과 연합한 것 같다.]

강철왕이 그런 말을 했다.

인접한 혼령 지배자와 몇 번이나 사자가 오갔다고 했다. 6시에 있는 흡혈 후작까지 해서, 셋이서 동맹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마나 수집가와 불사마군, 암흑 칼날, 악마 대공의 교류가 빈번하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

크게 3개로 구분되는 연합 중, 강철왕이 속한 연합의 힘이 가장 떨어지는 셈이다.

하나는 4개로 이루어졌고, 또 하나는 바다의 최강자 창해 장로가 주축이 되었으니까.

창해 장로에게 먼저 동맹을 제의할 걸 그랬을까?

아니다. 그랬다간 최후의 순간 승리할 수가 없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창해 장로부터 탈락시키는 게 옳다고 봤다.

시혁은 함대를 이끌고 사냥에 나섰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전장 곳곳의 섬에는 중립 괴물들이 있었다. 중앙 부분으로 갈수록 괴물들도 강해졌다. 가끔은 대형 괴물들이 출현하기도 해서, 레벨을 쉽게 올릴 수가 있었다.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일전을 벌이기에는 힘의 균형이 미묘했다. 섣불리 움직이다가 협공이라도 당하면 낭패를 볼 터였다. 서로 눈치만 보는 가운데 시간이 흘러갔다.

시혁은 구분을 위해 각 동맹에 이름을 붙였다.

북 동맹, 서 동맹, 남 동맹.

약 보름 정도가 지났다.

이렇다 할 일전 없이 흐른 시간이었다. 그 동안 각 반신은 함대와 군대를 확보했고, 영웅도 세 명씩 소환했다.

마나 집중점도 없고, 차지한 게 섬 몇 개인 참이니 더 이상은 성장이 불가능했다.

첫 번째로 소환된 영웅들은 50레벨을 찍었다. 또, 전장의 중앙 지역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냈다.

보고를 들은 강철왕이 놀랍다는 듯 되물었다.

[바다를 다스리는 유물이 숨어 있다고?]

[예. 이 전장에 돌아다니는 소용돌이가 그 유물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다 대종사 그눔의 유물이었다.

대종사에 대해 설명하자면 복잡하니 이렇게만 설명했으나, 이것만으로도 그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강철왕이 입맛을 다셨다.

[그걸 차지하는 자가 이 전장을 제패하겠구나.]

[예. 반드시 우리 진영이 가져와야 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중앙 지역에 접근한 보람이 있었다.

세 동맹 중, 서 동맹이 가장 먼저 그 사실을 밝혀냈다.

바리엘과 겐타의 눈초리도 심상치 않았다. 그눔의 유물에 사활이 걸렸다는 사실을 그들도 아는 것이다.

시혁은 저 멀리 시선을 던졌다.

거대한 탑이 보였다.

세월의 풍상에 곳곳이 낡고 무너진 상태였다. 생기기는 마치 소라 껍데기처럼 생겼는데, 희한하게도 소용돌이 장벽에 의해 보호 받고 있었다.

위치한 곳은 바다 한가운데.

그러나 소용돌이에 의해 물의 벽이 일어나면서 바다 아래의 땅이 드러났다. 그곳에 탑이 위치해 있어서, 가까이 접근한 다음에야 발견해냈다.

“들어가야겠지요?”

바리엘이 날카로운 눈을 한 채 말했다.

겐타가 헛기침을 하며 노포를 쓰다듬었다.

“암, 들어가야 하고말고. 안에서 만나는 쥐새끼들에겐 모조리 내 크고 아름다운 벼락쐐기를 꽂아주겠어.”

그러면서도 둘을 힐끔거리는 게, 안에서 배신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시혁은 그 둘을 일깨웠다.

“여기서 우리끼리 싸웠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됩니다. 일단 유물을 얻고, 예정된 보름 뒤에 다시 생각합시다.”

“유물을 얻는 쪽이 유리해질 텐데?”

“보름 뒤까지는 공동 소유하는 것으로 합시다. 여기 있는 우리, 셋이서요. 그 다음에는 모릅니다. 반신들께서 맹세하신 대로, 보름 뒤 자정에 최후의 결전을 벌이도록 합시다. 일단 10명을 3명으로 줄여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들 수긍했다.

아무리 영웅이라 해도, 반신들이 성역을 걸고 맹세한 이상 간단히 뒤집기는 힘들었으니까.

배가 천천히 접근했다.

가까이 가기는 힘들었다. 소용돌이의 벽 때문이었다. 날아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소용돌이에서 강한 흡력이 발생해서 쉽지는 않았다.

방법은 있었다.

각자 탈것을 소환했다.

짝니가 나타나 으르렁대고, 날개 달린 말이 하늘 위에서 날아왔다. 거대한 독수리가 차원을 통과하여 나타나더니 겐타에게 얼굴을 비볐다.

겐타가 짝니를 위아래로 훑더니 얕보는 표정을 지었다.

“비행 탈것 아니군?”

시혁은 콧방귀를 뀌었다.

파멸 왕자를 공략하면서 다른 권속을 얻을 기회도 있었다.

적색 비룡이나, 숲 독수리 등등.

하지만 짝니만큼 강한 탈것은 없었다. 비행 능력만 없다뿐이지, 짝니는 최상급 탈것이었으니까.

가만히 한 마디를 쏘아붙였다.

“탑 안에서 보시죠. 날개만 달린 탈것보다는 이 녀석이 훨씬 더 낫습니다.”

“흠흠, 뭐 그렇다면야……”

겐타가 슬쩍 시혁의 눈을 외면했다.

짝니가 으르렁댔다.

[저 놈, 잡아먹어도 되오?]

자길 얕봤다는 걸 눈치 챘나 보다.

가만히 짝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안정시켰다.

세 영웅이 배를 떠났다.

말과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짝니는 바다 위를 달렸다. 소용돌이가 집어삼킬 듯 흰 송곳니를 드러내지만, 짝니의 몸에서 나오는 파동이 그것들을 흘려보냈다.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소라껍데기처럼 생긴 탑 아래에 작은 입구가 있었다. 거길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크르릉.”

말과 독수리는 돌아갔지만 짝니는 남았다. 한 차례 울음을 토하더니 벽과 동화되어 눈에 보이지 않게 변했다.

바리엘이 인상 깊다는 눈빛을 보냈다.

“투명화 능력입니까? 아니, 의태 같네요.”

“의태 맞습니다. 제법 고위 능력이라, 관련 특기가 없으면 알아보기 힘들지요.”

바리엘이 선두에 섰다.

시혁은 오행 순환체를 바리엘과 짝니에게 하나씩 넣어주었다. 좁은 통로가 지속될 것 같은데, 그러면 둘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니까.

한편 귀속 오행 순환체는 앞서 보냈다. 미리 정찰을 하기 위해서였다.

한 가지를 알아냈다.

미로가 아니고 일직선이었다. 크게 원을 그리면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중앙부는 어째서인지 비어 있고, 대신 강력한 힘이 휘몰아쳤다.

바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탑 자체가 유물의 힘을 증폭시키는 작용을 하나 봅니다.”

“그럼 유물을 빼면 힘이 약해진다는 소리네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요. 일단 유물을 직접 보고 결정해야겠습니다.”

한참을 걷는데, 오행 순환체가 뭔가를 발견했다.

괴물들.

유물의 힘에 이끌린 족속들이었다. 탑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강하긴 하지만, 50레벨 영웅에 비할 바는 아니다.

쉽사리 뚫고 나갔다. 오행 순환체의 지원까지 있으니, 바리엘의 검을 막아내는 존재가 없었다.

[주인어른, 나 먼저 가도 되오?]

짝니가 그런 말을 했다.

천천히 움직이려니 좀이 쑤셨나 보다.

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먼저 가서 괴물들 좀 잡아먹고 있어. 다른 곳으로 새진 말고.”

[걱정 마오.]

짝니가 휙 몸을 날렸다.

겐타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로 옆에 숨어 있다가 움직이니, 꼭 귀신이 움직인 것 같았나 보다.

계속 전진했다.

한 가지가 달라졌다.

앞을 가로막는 괴물들이 없었다. 대신 갈기갈기 찢어진 시체만 남아 있었다. 좁은 통로에 가득 묻은 핏자국을 보며, 겐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시혁은 소환체 연결 특기를 통해 짝니에게 지시했다.

[함정 같은 거 있으면 전부 박살내 놔.]

[난 함정을 알아볼 수가 없소.]

[걱정 마. 그건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오행 순환체를 통해 다섯 가지 마법을 걸었다.

도굴꾼의 눈, 포식자의 코, 토끼의 귀, 사냥꾼의 직감, 영매의 육감.

함정은 물론, 생명체의 위치 파악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상황을 보고 마법을 바꿔주기도 했다. 전투를 할 때는 강화 마법을, 상처를 입으면 치유 마법을 걸었다. 자연히 짝니 혼자 일당백을 하며 길을 뚫었다.

덕분에 편하게 갔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최상층에 도달했다.

그때, 강철왕이 다급하게 말했다.

[남 동맹의 함대가 접근하고 있다. 몇 시간 후면 본성에 도착할 것이다.]

남 동맹만이 아니었다.

패도 장군의 본성으로 북 동맹 함대가 진격해오고 있었다.

시혁이 그눔의 유물을 찾아 탑을 오르는 동안, 뒤에서 물밑 협상이 이뤄진 것이다.

해결책은 하나뿐이었다.

“얼른 가죠.”

어차피 이제 다 왔다.

눈앞에 있는 문만 열면 끝이었다.

거대한 문.

높이가 10미터는 넘어갔다. 좌우 폭이 5미터가 되었다. 중앙에는 그눔의 문양을 형상화한 조각이 있고, 거기서 푸른빛이 넘실거렸다.

바이엘이 문을 보고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열려면 순수한 물의 힘이 필요합니다. 거의 이적 하나 쓰는 수준이에요. 바다 진영 반신이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려울 거 있나?

시혁은 약침을 소환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행 순환체 세 개의 도움을 받았다.

폭포수처럼 마나가 흘러들었다.

그것을 몽땅 약침에 부여했다.

물의 힘이 증폭되었다.

이내 거센 파도가 되었다. 시혁의 주변을 맴돌며 회전하자, 마치 물의 용이 생성된 것과 같은 광경을 연출했다.

물의 용을 날려 보냈다.

순수한 물이 거세게 문을 후려쳤다.

아슬아슬했다.

겨우 임계점을 넘었다.

조각에서 푸른빛이 강렬하게 반짝였다. 그 빛이 문 전체로 번지더니, 기하학적인 문양 하나가 떠올랐다.

끼기기긱.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였다. 문에 가느다란 틈이 생기더니 그 틈이 서서히 벌어졌다. 이내 내부가 완전히 공개되었다.

선명한 청색 광채가 시야를 완전히 물들였다.

확 트인 공간.

제단이 하나 있었다.

문어 대가리처럼 둥글게 생긴 제단인데, 그 위에 푸른 구슬 하나가 보였다.

바리엘이 탄성을 질렀다.

“심해의 보주다!”

제단에 쓰여 있는 이름을 읽은 듯했다.

구슬이 쉬지 않고 파란 빛을 뿌렸다.

빛은 탑으로 스며들었다. 내부 공간에서 증폭되어, 탑 주위 소용돌이를 생성시키는 작용을 했다.

시혁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을 내딛었다.

칼날 같은 시선이 쏟아졌다.

바리엘과 겐카, 둘이 벌서부터 견제를 하는 것이다.

시혁은 쓰게 웃었다.

“이러지 말고 같이 심해의 보주를 취하도록 하죠. 어차피 소용돌이를 움직이려면 저 자리에서 빼낼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조종해야 됩니다.”

“좋습니다.”

“좋아. 동시에 손을 대는 거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했다.

짝니도 몸을 숨긴 채 시혁의 명령을 기다렸다.

한 발짝, 두 발짝, 서로의 발을 살피며 보주를 향해 다가갔다.

마침내 보주 앞에 섰다.

숫자를 세고, 동시에 보주를 잡았다.

번쩍!

빛이 터졌다.

푸르른 빛이 사방을 휩쓸더니, 셋의 몸에 흡수되었다.

순간, 이 드넓은 전장의 상황이 시혁의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펼쳐졌다.

서 동맹을 향해 진격하는 남 동맹과 북 동맹의 함대들.

그에 맞서는 서 동맹의 함대.

방어 준비에 전념하는 강철왕의 본성.

그 모든 것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 첫 임관 -2-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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