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해석 >
반신의 탐색 이적은 일회성이다.
효과는 탁월한데, 사용할 때마다 막대한 에테르를 소모했다. 오행 순환체로도 필요한 에테르를 채우기 힘들었다.
그래서 떠올린 게 쌍둥이.
영혼 군단은 스스로의 힘을 다른 군단병에게 전이할 수 있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쌍둥이 중 한 명을 헬기에 태우고, 다른 한 명을 지상에 놔둔 뒤 탐색 이적을 발동하게 하면 어떨까?
근원의 나무를 헬기에 싣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상에 심고 오색 사슴뿔로 오행 순환체를 이용, 탐색 이적을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남해안 탐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 남해안만 그렇지는 않다. 향후 전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커다란 활약을 하겠지.
생각하면 할수록 그럴 듯했다.
당장 연구에 들어갔다.
먼저 오색 사슴뿔을 이용하여 오행 순환체부터 만들었다. 각각 수정 하나에 몰아넣자, 수정이 에테르로 가득 차 찬란한 빛을 뿜었다.
쌍둥이가 두 개씩 가져가면 되겠다.
각각 하나는 탐색 이적을 내장해야 한다. 다른 두 개는 발신과 송신 역할을 한다.
그럴 거면 쌍둥이가 왜 필요하냐고?
효율의 문제다.
쌍둥이를 통하면 힘의 손실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도 1% 이하다. 반면 두 개의 수정만 쓰면 막대한 손실이 생긴다. 거리가 멀어지면 더 심하니, 하늘을 통해 탐색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좌표를 입력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할 필요가 없다. 수정을 들고 있을 쌍둥이에게 주입하고, 쌍둥이에게 받게 하면 그만이니까.
일단 탐색 이적 대신 탐지 마법을 수정 두 개에 부여했다. 다른 수정에는 발신과 송신 마법을 걸고, 다음날 그걸 한의원에 가져갔다.
근무가 끝나갈 무렵, 쌍둥이만 잠깐 불렀다.
“주호 씨, 수호 씨. 저녁에 시간 좀 어떻습니까? 할 말이 있는데요.”
“괜찮습니다.”
“원장님께서 쏘시는 거죠?”
“당연하죠. 먹고 싶은 것 생각해 두세요.”
외래가 끝나고, 한 초밥집에서 마주했다.
기밀에 속하는 이야기라 방을 예약했다. 쌍둥이는 오랜만에 초밥을 먹는다며 매우 기뻐했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운을 뗐다.
“지금부터 제가 드릴 말씀은 어디 가서도 해서는 안 됩니다. 두 분만 알고 계셔야 하고, 설령 부모님이나 여자친구라고 해도 옮기면 안 돼요. 아셨지요?”
쌍둥이가 슬쩍 눈치를 살폈다.
박수호가 씩씩하게 먼저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사나이 박수호, 목에 칼이 들어와도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박주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두 분을 믿고 말씀드리지요. 저번에 소록도에서 봤던 사슴들 기억하시지요?”
“예. 기억합니다.”
“그 사슴들은 체내에 에테르가 많이 쌓여서 변이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근원의 나무에 왔던 겁니다.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에테르가 정화되거든요. 그렇게 정화된 에테르가 모여서 뿔이 변이된 거고요.”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슴들이 소록도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 협회에서 조사 중인데, 남해안 전반적으로 광범위하게 변이 직전의 동물들이 관찰된다고 합니다.”
쌍둥이의 얼굴에 놀란 감정이 스쳤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정화 계열 이능도 없고, 변신해서 동물들을 때려잡는 것밖에 할 수 없는데요.”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구상해 봤습니다.”
시혁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한 명은 지상에, 한 명은 하늘에 띄워 남해안을 싹싹 훑어보자는 것.
쌍둥이는 계획을 듣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 능력을 그렇게도 쓸 수 있나요?”
“신기하네요. 좋아요. 원장님 말씀인데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간단한 실험을 했다.
박주호는 한의원 건물에, 박수호는 조금 떨어진 광주광역시청에 배치했다. 그 다음 박주호가 수정으로 탐지 마법을 사용하자, 설계된 것처럼 박수호의 위치에서 탐지 마법이 사용되었다.
박수호가 본 것을 박주호가 공유했다.
박주호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이거 신기하네요. 평소에 수호랑 하던 것과는 좀 달라요.”
“뭐가 보입니까?”
“시청이요. 공무원들이 야근하고 있네요. 3층 회의실 청소 중인 분이 정말 예쁘……”
그러더니 박주호가 얼굴을 붉혔다.
뭘 본 것인지 모르겠다.
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성공적이네요. 제가 한 번 협회와 이야기 해볼 테니, 두 분은 준비를 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원장님, 위탁 교육은요?”
“지금까지 한 걸로 충분하지요. 수료증을 써드리겠습니다. 만약 제가 얘기한 대로 일이 진행되면 그게 두 분의 첫 직장이니까, 연봉 협상도 잘 하시고 근로 계약서도 잘 쓰시기 바랍니다.”
“예, 원장님. 감사합니다.”
“저희 목숨도 살려주시고, 위탁 교육에 취직까지…… 어딜 가더라도 원장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어차피 이 일은 두 분 말고는 가능한 사람이 없어요. 남해안에 괴수가 있는지 잘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쌍둥이와 헤어진 후, 바로 손문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그래도 남해안 문제로 골머리를 썩던 와중이었다. 시혁이 계획을 설명하자마자, 반색하며 당장 그렇게 하자고 달려들었다.
다음 날, 협회에서 바로 사람이 찾아왔다.
쌍둥이의 송별식이 열렸다.
위탁 교육이 거의 끝난다는 것은 한의원 직원 모두 눈치를 채고 있었다. 요즘 쌍둥이는 스스로의 변신을 완벽히 통제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날 줄은 몰랐다.
박희정이 섭섭한 얼굴을 했다.
“2달 넘게 같이 있었는데 헤어지려니 아쉽네요.”
민수진도 마찬가지 심정인가 보다.
쌍둥이를 한 번씩 안더니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가. 그럼 이제부터는 뭘 하는 거야?”
쌍둥이는 말없이 시혁의 눈치만 살폈다.
시혁이 대신해서 말했다.
“저랑 협회에서 같이 추진하는 연구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어머, 정말요?”
“예. 두 분의 힘이 꼭 필요한 연구여서요. 거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겁니다.”
“잘 됐네요!”
“주호야, 수호야, 축하해!”
“축하합니다!”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거기 화답하느라, 쌍둥이는 한동안 쩔쩔맸다.
시혁은 오후에 쉬겠다고 하고 쌍둥이와 함께 협회 건물로 향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라가 아는 척을 했다.
“선생님, 오랜만에 뵙네요.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
“미라 씨가 워낙 바쁘시니까 그렇죠. 천왕봉에서 뵌 뒤로는 처음이죠? 협회장님도 오랜만입니다.”
“그 동안 격조했습니다.”
손문철은 물론 강찬과 신아영의 모습도 보였다. 다만 주위에 워낙 쟁쟁한 인물이 많아 살짝 뒤로 물러나 있었다.
시혁은 미리 준비해온 개념도를 보여주었다.
개념도라고 해봐야 별 것 아니다.
지상 기지와 하늘에 뜬 비행기를 그리고, 서로를 잇는 선을 그려놓은 게 전부였다.
설명을 들은 손문철이 한 마디를 했다.
“조기 경보기에 달면 좋겠네요.”
“사거리가 너무 차이 납니다. 기껏해야 반경 십 킬로미터가 한계에요. 조기경보기를 쓰느니, 차라리 헬기 같은 걸 쓰시는 게 나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래도 이거라도 있으니 다행입니다. 안 그랬으면 일일이 동물들에게 측정 장치를 들이댔어야 했는데요.”
대한이능협회에서 만든 측정 장치는 카메라와 비슷한 형태였다. 그 효율 면에서 시혁이 제시한 것과는 차이가 컸다.
당장 제작에 들어갔다.
남해안의 한 해군 기지를 거점으로 삼았다. 근원의 나무를 심고 빠르게 성장시켰다. 반신의 탐색 이적을 재해석한 마법진을 광범위하게 깔고, 오행 순환체를 만드는 한편 쌍둥이가 위치할 곳을 마련했다.
한편 육군에서 제공한 헬기를 개조했다. 대응 마법진을 그리는 것은 물론, 오행 순환체가 깃든 수정도 박아넣은 것이다. 이제 쌍둥이가 탑승해서 탐색을 하는 일만 남았다.
“바로 시작해 보죠.”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시운전은 해봐야 합니다. 이 근방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박수호를 태운 군용 헬기가 높이 날아올랐다.
남쪽 바다를 향해 날아갔다.
시혁은 기지에 남아 대형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지금 근원의 나무 안에는 박주호가 앉아 있다. 박주호는 보라색 수정 장식을 머리에 달고 있는데, 이건 정신 감응 이능력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장치였다.
박주호가 보는 에테르 농도를, 색색의 그림으로 바꾸어 모니터로 쏴주는 기능을 했다.
근원의 나무에서 새파란 빛이 반짝였다.
탐색 이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빛은 곧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공간을 뛰어넘어 헬기 쪽에서 파란 빛이 번쩍이더니, 물결처럼 주변을 향해 번졌다.
이미라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저기 좀 봐요!”
대부분은 녹색이다.
그런데 섬 몇 개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다른 섬도 빨갛지는 않더라도 주황색이 많고, 해안가는 거의 대부분 노란색이었다.
시혁은 모니터를 조작하던 요원에게 손짓을 했다.
“빨간 부분 하나 확대해보세요.”
요원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섬 하나가 크게 확대되었다. 동시에 섬에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점이 어지럽게 찍혔다.
됐다.
시혁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색이 붉은색에 가까울수록 체내 에테르 수준이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고해상도로 변이 위험군의 위치를 알아냈으니, 이제 이능력자들이 출동해서 미리 정화해버리면 된다.
손문철이 발 빠르게 지시했다.
“고흥군에 나가 있는 이능력자들한테 이 사진 파일 좀 보내주세요. 일단 빨간 점부터 해결합시다.”
사실 주황색 위험군까지는 해결을 봐야 한다.
그러나 그 사이 다른 곳에서 동물이 변이되어 괴수가 출현하면 안 되지 않겠나. 일단 발등의 불부터 끄고 볼 일이었다.
시혁은 슬슬 물러났다.
이 정도 멍석을 깔아줬으면 알아서 할 것이다. 대한이능협회는 무능력한 조직이 아니니까.
“전 이만 광주로 돌아가겠습니다.”
“더 도와주시지 않고요?”
“어차피 제가 더 할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끙,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저희한테 맡겨 주십시오. 이런 장비를 선사해 주셨는데, 괴수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있을 제가 아닙니다.”
손문철이 주먹을 꾹 쥔 채 말했다.
선사라고 표현은 했지만, 시혁도 사실 많은 것을 받았다.
현금 수십억 원에, 대한 이능 협회가 보유한 부동산 몇 채.
그 중에는 알짜배기도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것만 갖고도 평생을 먹고 살 정도였다.
광주로 돌아오려는데, 손문철이 슬쩍 따라붙었다.
“원장님, 혹시 저런 물건을 몇 개 더 만들어 주실 수는 없습니까? 사례는 확실히 하겠습니다.”
“글쎄요. 힘들 것 같습니다. 재료는 어떻게든 구하더라도, 쌍둥이를 대체할 수가 없어요.”
“그 문제는 곧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되지요?”
“예? 어떻게요?”
시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혼 군단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있다고?
금시초문이다.
의사소통이야 가능하겠지만 힘의 공유까진 해결하기가 힘들 텐데……
손문철이 목소리를 낮췄다.
“저번에 천왕봉에서 무한의 수정에 에테르를 몽땅 쑤셔 넣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설마 그걸 이용하는 겁니까?”
“예. 몇 년 전에 개발된 에테르 측정 장치로 무작위 검사를 해보면, 발현자나 이능력자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회색 에테르 파동을 가진 이들에게 지원을 받아 간단한 실험을 했지요. 천왕봉 수정에 저장된 회색 에테르를 주입하는 건데, 그들 중 쌍둥이와 같은 변신 능력을 발현하는 사람이 좀 있었습니다.”
“히야, 그런 방법이 있네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다.
영혼병 특기를 가진 이들을 골라 인위적인 능력 발현을 유도한 것이다.
발전하는 이능 기술과, 아르거스에 대한 시혁의 지식이 합쳐져 나타난 발현자 양성 방법.
물론 이능력자 각성은 불가능하다. 반드시 아르거스에서 영웅이 되어야 하니까. 그러나 발현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인류에겐 큰 도움이 된다.
시혁은 노파심에 한 마디를 했다.
“천왕봉 수정은 잘 지키고 계시지요? 도난당하지 않게 조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범죄자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큰일 납니다.”
“걱정 마세요. 최고의 요원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어쨌든 재료와 발현자만 충분하면 또 장비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광주로 돌아오자 벌써 밤이 깊어 있었다.
중요한 일을 했지만, 시혁은 이미 그 일에 대해선 잊어 버렸다.
드디어, 아르거스에서 첫 임관을 했기 때문이다.
< 재해석 > 끝
ⓒ 산호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