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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세계의 한의사-114화 (114/250)

< 오색 사슴뿔 -2- >

수백 명의 환자들이 소록대교까지 따라 나왔다. 시혁과 한의원 직원들이 탄 버스가 멀어진 다음에야 집과 병원으로 복귀했다.

박희정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참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종종 있었으면 좋겠어요.”

반면 민수진은 신중한 얼굴을 했다.

“봉사를 가는 건 좋은데 다음부터는 좀 띄엄띄엄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원장님이야 가고 싶은 사람만 가자고 하셨지만, 솔직히 업무의 연장처럼 느껴졌거든요.”

시혁도 느꼈던 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처음 봉사 활동을 간 거니 시행착오를 좀 겪은 거지요. 다음에는 더 철저히 준비하고, 일정도 더 생각해서 짜야겠습니다.”

광주에 도착했다.

시혁은 상자 하나만 들고 오피스텔로 들어왔다.

오색 사슴뿔을 봉인한 상자였다.

에테르가 새어나가지 않게 마법진을 그린 다음 상자를 개봉했다.

찬란한 보광이 시혁의 눈을 찔렀다.

신기한 일이었다.

뿔은 뿔인데, 마치 보석을 보듯 묘한 광택이 흘렀다. 처음에는 그냥 빛만 났는데, 상자에 담아오는 동안 경질화가 진행된 모양이다.

손으로 만져 보았다.

부들부들했다.

겉은 딱딱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더 부드러워져서, 솜을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통찰 마법으로 자세히 살폈다.

오행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단지 그것뿐.

걱정했던 오행 순환체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도 사슴의 체내에 흡수된 에테르를 정화한 뒤, 그 에테르를 가을마다 떨어지는 뿔로 몰아넣었나 보다.

오행 순환체의 태생 자체가 치료 목적이었으니 이런 식으로 작용을 한 모양.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형국이다.

안심하면서도 생각에 잠겼다.

이걸 어디에 써먹는다?

녹용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보약이다. 성장, 노화 방지, 면역력 향상, 뇌기능 향상 등 다양한 효능이 있었다. 오죽하면 보약의 대명사로 쓰이겠나.

다만 국산 녹용은 광록병의 위험이 있어 약재로는 쓸 수가 없다. 식약처에서도 식품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못을 박아두었다. 오색 사슴뿔은 변이가 되었으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약으로 쓰더라도 신중하게 써야겠다.

아니, 잠깐만.

이 뿔을 가지고 오행 순환체를 만드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함유한 에테르 자체가 오행 순환체의 것과 판박이다. 조금만 손을 보면 오행 순환체의 첫 개체를 만들지 싶었다.

바로 해보려다가 겨우 진정했다.

기왕이면 한의원에서 만드는 게 좋지 싶어서였다.

치료실 하나를 오행 순환체로 가득 채워 둔다고 생각해 보라. 밀려오는 환자들을 아주 간단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시혁이 파김치가 될 일도 적어지겠지.

다만 오늘처럼 불청객이 찾아오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겠다. 아예 오행 순환체가 치료실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좋고.

거기까지 생각하고, 오색 사슴뿔을 상자에 봉인한 뒤 잠을 청했다.

월요일에 상자를 가지고 한의원에 출근했다.

직원들이 생생해진 얼굴로 시혁에게 인사를 했다.

“원장님, 오셨어요?”

“네. 입원 환자들은 좀 어떻습니까?”

“다들 좋으세요.”

한의원에는 별일이 없었다.

시혁은 평소보다 병동 회진을 빠르게 돌았다. 그 다음 7층으로 올라가 이능 치료실을 살펴보았다.

공간이 좀 남는다.

그도 그럴 것이 시혁과 두 치유 계열 이능력자만 쓰는 공간이니까. 1/3 정도는 시혁이 생각한 대로 오행 순환체 치료실로 써도 되겠다.

주말을 이용해야겠지.

구조 변경을 할 필요는 없지만, 꼬박 하루는 그 일에 매달려야 할 것 같으니까.

상자는 원장실의 금고에 두었다. 통째로 봉인을 해서, 누가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그 다음 경보 마법까지 걸고 진료를 시작했다.

평탄한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 동안 고흥 지부와 전라남도 지부에 사슴들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했다. 시혁의 말이라 협회도 무시하지 못 했고, 곧 소록도를 비롯한 고흥 일대의 섬에 전방위적인 탐색이 시작되었다.

강찬을 통해 결과를 들었다.

[원장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사슴만 아니라 멧돼지, 토끼, 다람쥐 등등 많은 동물들의 몸에 에테르가 차 있었어요.]

[고흥 주변에 뭔가 일이 있었나 봅니다.]

[아직 어느 정도 범위인지는 잘 모릅니다. 어쩌면 남해안 일대, 특히 다도해 전체가 포함될지도 몰라요.]

[예? 다도해 전체요?]

[지금 신안과 완도, 여수 돌산읍 쪽에 공격대 몇 개가 파견되어 나갔습니다. 동물들 체내의 에테르 함량을 조사하는 중인데, 썩 결과가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방법은 간단했다.

예전에 시혁이 성현 도서관의 매점에서 찾았던 작은 솥.

그걸 계기로 에테르 탐지 장치를 만들었는데 이 장치를 대대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탐지 장치를 쓰기만 하면 변이 위험 수준을 알 수 있다나.

[그럼 사람한테도 쓸 수 있겠습니다.]

[안 그래도 남해안 일대 주민들 전원을 조사하고 있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체내 에테르가 위험 수준인 주민은 없다는데,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육지 동물들은 그렇다 치고 바다 동물들이 걱정이네요. 한 번 변이하면 피해가 큰대요.]

[그러게 말입니다. 원래는 비무장 지대에 괴수들이 더 많이 출현했는데, 요즘엔 남쪽 지방에 더 사건이 많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미리 알아내기만 하면 된다. 정화 계열 이능력자들이 가서 정화해 버리면 끝이니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인류가 모르는 사이, 상어나 고래 같은 게 변이되어 해안을 습격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인간형 괴수가 출현해도 문제다. 인간의 지능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교묘히 인간 사회에 숨어 각종 사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시혁은 자기도 모르게 푸념을 했다.

[가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네요. 경제도 어려운데 괴수들에, 에테르에, 신경 쓸 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체내 에테르 측정 장치가 있어서 다행이지요. 안 그랬으면 탐지 계열 이능력자들이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조사를 했어야 됩니다. 누가 짠, 하고 대단위 측정 방법이라도 발명했으면 좋겠네요.]

강찬의 말에 시혁이 몸을 움찔했다.

그런 비슷한 걸 아르거스에서 본 것 같은데?

바로 반신의 탐색 이적이 그런 작용을 했다.

이적의 원리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소규모 탐색 마법을 대규모로 사용한 것뿐이었다. 지구에서도 에테르만 확보된다면 사용 가능하고, 그럴 방법은 이미 시혁이 갖고 있었다.

그걸 응용해서 어디 헬기나 경비행기에 달고 탐색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일단 전화를 끊었다.

생각에 잠겼다.

지금 시혁이 가진 오색 사슴뿔은 다섯 개.

처음에는 다섯 개로 치료실을 하나 만들까 생각했는데, 굳이 다섯 개 모두를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뿔이 워낙 크고 아름다워서 하나만 있어도 충분했다.

결정했다.

치료실에는 하나만 쓰자. 그리고 나머지로는 탐색 이적을 구현해 보자.

물론 공짜로 협회에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그만한 대가를 받을 생각이었다. 현금으로 받든, 아니면 뭔가 다른 혜택을 받든지 간에.

강찬과 통화를 끝낸 후 한의원으로 갔다.

오늘은 일요일.

다들 쉬는 사이 얼른 치료실을 만들 생각이었다.

“어, 원장님!”

“주말인데 나오셨어요?”

뜻밖에도, 7층 이능 치료실에 쌍둥이가 와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시혁은 둘을 훑어보았다.

쌍둥이가 빠르게 손을 뒤로 숨기지만, 시혁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 상처, 뭡니까?”

둘 다 손등에 자잘한 상처가 나 있었다.

더구나 옆에 도침이 하나 보였다. 칼처럼 생긴 끝에 피가 묻어 있는 게, 그걸로 상처를 낸 모양이다.

시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해하신 건 아니죠?”

“그게……”

쌍둥이가 난처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다 박수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저희 곧 위탁 교육 종료되잖아요. 그래서 그때 대비해서 무슨 일을 할지 의논하고 있었어요.”

“의논을 하는데 도침이 필요합니까?”

“그게, 저희가 취직을 하려면 저희 능력을 살려야 하잖아요? 저희가 가진 재생 능력을 어떻게 써먹을 수 없을까 고민 중이었습니다.”

재생 능력이라니?

박수호가 한쪽 손을 내밀었다.

아까 봤던 상처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시혁은 감탄하는 대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두 분끼리만 통하는 능력이잖아요.”

“그래도 노력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에휴, 불가능하다니까요.”

둘이 발현자가 된 것은 영혼병 특기가 천왕봉의 영향을 받아 지구에서 발현됐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서로에게 힘을 나눠줄 수 있었다. 재생력 또한 그 때문에 나타나는데,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는 쓰는 게 불가능했다.

몇 번이나 설명했지만 납득을 못 한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두 분의 능력은 딱 두 가지에요. 변신하고 연결이요. 이능력자가 되시면 모를까, 그 전에는 그래요.”

“쩝.”

“원장님. 위탁 교육 끝내고 저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경호원을 하려고 해도 이능력자랑 경쟁하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불법적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요즘은 정말 갑갑해요.”

시혁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일반인보다는 훨씬 낫겠다고 생각하지만 쌍둥이들 생각은 또 다른가 보다.

옆에서 시혁을 보다보니 야망이 생긴 모양.

잘 해 보라고 격려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쌍둥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집으로 돌아갔다.

시혁은 입맛을 다셨다.

쌍둥이의 능력은 발현자 중에서는 최고급에 속했다. 그런데 그 기준을 시혁에 맞추면 아무래도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시혁은 발현자로서나 이능력자로서나 최고 중의 최고니까.

치료실 개조에 들어갔다.

필요한 물건은 다 준비해 온 다음이었다. 미리 계획한 대로, 차근차근 시공을 했다.

오행 순환체와 에테르가 못 나가게 마법진을 깔고, 오색 사슴뿔을 오등분한 뒤 담은 유리 상자를 치료실 곳곳에 설치했다. 당연히 훼손되거나 도난당하지 않게 각종 마법을 걸어 놓았다.

잠시 쉬고, 오행 순환체를 만들었다.

쉬웠다.

시혁이 생각한 대로였다.

금방 다섯 줄기 광채가 치료실 안에 어렸다. 회전하며 치료실 안을 맑게 점멸하는 빛 덩이로 가득 채웠다.

충분히 숫자를 불린 후, 한 가지 기능을 첨가했다.

수면.

시혁이 퇴근하면 오행 순환체들은 오색 사슴뿔로 흡수된다. 거기서 자기들끼리 순환하며 수를 보충하다가, 시혁이 출근하면 다시 치료를 개시하는 것이다.

벌써 저녁이 다 됐다.

혼자 작업하려니 힘들긴 했어도 뿌듯했다. 허공을 떠도는 빛 무리를 보다가 가볍게 손짓을 했다.

오행 순환체가 다섯 개의 수정, 즉 오색 사슴뿔로 분산되어 들어갔다.

이것으로 끝.

시혁은 기왕 한의원에 온 김에 병동 회진을 한 번 하고 오피스텔로 돌아갔다.

TV를 켰다.

화면 속의 세상은 평온했다.

어떤 정치인이 무슨 소리를 했다더라, 강원도 어디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더라, 서울 누군가가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저질렀다더라, 그런 소리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시혁은 오피스텔 한쪽에 놔둔 오색 사슴뿔을 쳐다보았다.

저걸 활용하면 괜찮은 물건이 나올 텐데……

문득 아까 한의원에서 마주쳤던 쌍둥이가 떠올랐다.

쌍둥이가 왜?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

둘의 능력을 활용한다면, 단순히 헬기나 경비행기에 장치를 매달아 탐색하는 것보다는 더 나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한참을 고민했다.

TV에 예쁜 아이돌 그룹이 나와 엉덩이를 흔들어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시선을 허공에 고정한 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결국 그 둘이 연결되었다.

반신의 탐색 이적과 영혼 진영의 영혼 군단이, 시혁의 머릿속에서 하나로 조합되었다.

< 오색 사슴뿔 -2- > 끝

ⓒ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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