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색 사슴뿔 -1- >
자원봉사자들이 빗자루를 허공에 대고 흔들었다.
“훠이! 훠이!”
“저리 가, 요놈들아!”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출발하기 전 전화 통화를 했을 때도 별 말 없었는데……
일단 버스에서 내렸다.
시혁이 묻기도 전, 민수진이 먼저 다가가 자원봉사자들에게 말을 붙였다.
“무슨 일이에요?”
자원봉사자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30분 전에 갑자기 저놈들이 몰려와서 근원의 나무로 들어가지 뭡니까? 쫓아 보내려고 했는데, 물러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원장님, 어쩌죠?”
민수진이 시혁을 쳐다보았다.
죽일 수는 없다. 멧돼지와 다르게, 사슴은 유해 동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쫓아내는 수밖에.
쌍둥이가 나섰다.
“저희가 하죠.”
“가볍게 한 대 쥐어박으면 다 도망칠 겁니다.”
시혁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하겠습니다.”
가만히 정신을 집중했다.
창창한 에테르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처음에는 약하다가, 사슴들에게 가까워지자 파도처럼 강해졌다. 거의 눈에 보일 정도가 되어 강하게 사슴들을 후려쳤다.
사슴들이 몸을 움찔했다.
위협을 느낀 듯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망치지를 않는다.
호랑이나 늑대 앞에 선 느낌일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시혁이 에테르 파동의 강도를 더 올리려는 찰나, 근원의 나무 안에서 사슴 한 마리가 걸어 나왔다.
그냥 사슴이 아니다.
웅장하게 솟은 뿔이 오색의 빛을 뿜고 있었다.
익숙한 색채다.
오행 순환체가 뿜는 빛과 똑같았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웅성거렸다.
“뭐야 저거?”
“변이된 거 아냐?”
“설마!”
시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르거스에서 본 적이 없는 사슴이었다. 무지개 사슴이라고 몸 전체가 일곱 가지 색으로 물든 사슴은 있지만, 뿔만 색깔이 화려한 사슴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통찰 마법으로 살펴보니 상태가 이상했다.
변이된 것은 오직 뿔 하나였다. 뿔을 제외한 다른 부위는 일반적인 사슴과 똑같았다.
“키이잉.”
사슴 하나가 근원의 나무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슴들은 위협하듯 머리를 내밀었다. 다들 나이가 꽤 들었는지, 뿔이 나뭇가지처럼 갈라져 있고 꽤 웅장했다.
박희정이 발을 동동 굴렀다.
“원장님, 어떻게 해요?”
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통찰 마법을 이용, 사슴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사슴들의 몸에 에테르가 쌓여 있었다. 오행 순환체와는 확연히 다른, 잡다하고 혼탁한 성질의 에테르였다.
검은 천체가 크게 일렁이면 따라서 움찔하고, 쪼그라들면 덩달아 약해졌다.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 했지만, 익히 설명을 들었던 현상이다.
다름 아닌 상귀네우스 웨사니아를 일으켰던 솥에서.
문득 소록도로 들어오던 때 생각이 났다.
사슴들을 보고 원인 모를 이질감을 느꼈었지. 그때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이걸 보니 이유를 알겠다.
쉽게 말해서 이 사슴들은 변이 직전이라는 얘기.
녀석들도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이대로 있으면 자기들이 괴수로 변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걸 정화할 수 있는 근원의 나무를 찾았겠지.
지금껏 조용하다가 오늘 갑자기 그런 것을 보면, 검은 천체가 최근에 에테르를 더 많이 뿜어냈나 보다.
시혁은 사슴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키이익.”
사슴들이 괴상한 소리를 냈다.
오색 뿔을 가진 사슴이 앞으로 나섰다. 머리를 휘젓자 뿔이 위협적으로 흔들렸다.
그래봐야 시혁에겐 귀여울 뿐이다.
“괜찮다, 괜찮아.”
약하게 이능을 발현하며 움직였다.
사슴은 불안한 기색이었지만 곧 옆을 내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었다.
뿔이 손에 걸렸다. 백색 빛을 뿜자 밑동이 잘렸다.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은 채, 오색 사슴뿔이 시혁의 손에 들렸다.
사슴이 길게 울음을 토했다.
“삐이익!”
그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버렸다.
다른 사슴들이 불안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면서도 도망치지 않는 게, 기어코 근원의 나무에 들어가려는 모양이었다.
시혁은 근원의 나무 안으로 들어갔다.
사슴 한 마리가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웅장한 뿔이 참 멋진데, 그 색깔이 점차 변하는 중이었다.
한쪽에 마련해 놓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사슴을 향해 손짓을 했다.
오행 순환체가 폭발하듯 움직였다.
변화를 가속시켰다. 평소라면 30분은 걸렸어야 할 변화를 겨우 3분으로 단축했다.
시혁이 손을 뻗어 뿔을 떼어내자 사슴이 한 차례 울음을 터뜨렸다. 그 다음 달음박질을 하여 근원의 나무에서 멀어졌다.
사슴들은 참 똑똑했다.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차례대로 들어왔다.
겨우 다섯 마리.
시혁이 도착하고 채 30분도 안 되어 모든 일이 끝났다. 오색 사슴뿔 다섯 개만 시혁의 손에 남고, 사슴들은 에테르를 정화한 뒤 보금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보던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참 별 일이 다 있네요.”
“쟤네들이 왜 여기 온 걸까요?”
“그야 모르죠.”
시혁은 먼저 오색 뿔부터 봉인했다. 상자에 넣고 여러 마법을 걸었으니, 다른 사람이 빼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유해하진 않을 것 같지만 모르는 일이다. 한의원에 가져가서 자세히 살펴봐야 할 듯했다.
시혁은 손뼉을 쳐서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자, 얼른 마무리 짓죠. 차례는 정하셨죠? 순서대로 들어오세요.”
오행 순환체 주입은 거의 다 끝났다.
남은 것은 환자들의 변형된 신체를 재생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김덕자 할머니가 들어왔다.
“아녀하세여.”
인사를 하는데, 발음은 부정확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했다.
휠체어를 타지도 않았다. 지팡이를 짚고 걸어왔다. 자원봉사자가 부축을 하긴 했지만 1달 전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시혁은 웃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많이 좋아지셨네요. 여기 앉으세요.”
“네, 서새니.”
김덕자 할머니는 인사를 한다고 허리를 꾸벅꾸벅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앉혀놓자, 자원봉사자가 들뜬 얼굴로 말했다.
“요즘 정말 많이 좋아지셨어요. 이제는 지팡이만 있으면 조금씩은 걷고 그러세요.”
“잘 됐네요. 이제 손가락이랑 발가락 재생시키고 나면 한센병 후유증은 다 사라질 겁니다. 뇌졸중 때문에 좀 불편하시긴 할 텐데, 그것도 조금씩 호전될 거고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가시긴 힘들어도, 혼자 화장실 가시고 식사하는 정도까진 가능하다고 봐요.”
그 말에, 김덕자 할머니가 시혁의 손을 붙잡았다.
“서새니, 가사하니다……”
“감사하기는요. 자, 저한테 손이랑 발 좀 보여주세요. 다른 곳은 괜찮다고 하셨죠?”
자원봉사자가 김덕자 할머니의 신발과 양말을 벗겼다.
손가락은 네 개가, 발가락은 일곱 개가 없었다.
잠깐 심호흡을 한 뒤 치료에 들어갔다.
새롭게 한의원에 주문했던 도침(刀鍼)을 꺼냈다. 다른 침과 다르게, 침 끝이 칼처럼 생긴 침이었다. 그래서 도침이라고 부르는데, 그 끝에 힘을 집중했다.
쇠 속성 에테르가 맺히고, 섬뜩한 빛이 쏟아졌다.
그걸 김덕자 할머니의 없어진 손가락과 발가락 연결 부위에 한 번씩 그었다. 간단한 마취 마법을 쓴 뒤라, 김덕자 할머니가 움찔하긴 했어도 고통을 호소하진 않았다.
오행 순환체를 1천 개체 이상 집어넣었다.
오로지 치료사의 마나만 썼다. 그러자 급속 치료의 힘이 최대한으로 발현되었다. 눈앞에서 뼈가 자라나더니 인대가 붙었다. 근육이 생기고 살이 차오르더니 피부가 덮여졌다.
조금 이상하긴 했다.
주름이 가득하고 검버섯이 핀 다른 부위와는 다르게, 새로 생긴 것들은 아기처럼 하얗고 보드라웠으니까.
김덕자 할머니가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과 발을 내려다보았다.
“할머니, 주먹 한 번 쥐어보세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잘 움직였다.
이어서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게 했다.
즉석에서 가위바위보도 했다. 재생한 손가락이 어색하긴 했어도 멀쩡하게 잘 했다. 발가락도 마찬가지였다.
김덕자 할머니가 울음을 터뜨렸다.
시혁을 붙잡고 뭐라고 하는데 말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목이 멘 탓에 제대로 말을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안아주었다.
등을 쓸어주자, 김덕자 할머니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옆에서 자원봉사자도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환자와 자원봉사자 몇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터졌다.
한센병이 뭐냐.
바로 문둥병 아닌가.
근대 이전에는 신의 저주니, 천형(天刑)이니 했던 병이다. 치료제가 개발되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편견은 사람들의 머릿속 깊이 박혀 있었다.
그걸 수십 년이나 앓았다.
인생 대부분을 고통 받으며 살았다.
그런데 그 병이 완전히 치유되었으니 감회가 오죽할까.
근원의 나무 안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하나둘 진정했다. 민망한 얼굴을 하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시혁은 빙긋 웃었다.
“좀 진정되셨어요?”
“아이고, 원장님 앞에서 속도 없이……”
“다음 분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내일이 마지막인데, 그 전에 다 치료해드리려면 갈 길이 멉니다.”
치료를 재개했다.
김덕자 할머니에게 주입했던 오행 순환체는 조금만 남겨놓고 모두 회수한 뒤였다. 남긴 오행 순환체는 뇌경색 후유증을 치료하다가 자연적으로 사멸할 것이다.
굉장히 바빴다.
하루 종일 치료에 골몰했다. 밤늦게까지 치료를 한 뒤, 일요일 아침 일찍 또 치료를 시작했다. 그 결과, 오후 네 시 경 모든 환자를 치료할 수가 있었다.
이제 소록도에는 한센병 환자가 없다.
신체 부위를 상실했던 사람도 모두 회복되었다.
병원장이 시혁의 손을 꾹 붙들었다.
“원장님, 감사합니다. 원장님 덕에 환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환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됩니까? 제가 알기로 한센병 환자들은 국비 지원을 받는다고 하던데, 이제 완치 되었으니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네요.”
“걱정 마세요. 다 국비 지원이 됩니다. 한센병이 다 나았다고 해서 후유증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음, 원장님께서 후유증을 다 치료해주셔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근시일 내에 어떻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행이었다.
신체 부위를 재생시킨 환자들 모두 당분간 재활 치료가 필요했다. 최소한 몇 달은 재활 치료를 해야 일반인처럼 움직일 것이다. 수십 년을 그 부위가 없이 살았는데 갑자기 생긴 셈이니까.
시혁은 공식적으로 통장 하나를 전달했다.
기부금이다.
병원 측은 너무 많은 걸 받았다며 거절했지만 부득불 맡겼다. 설령 국비 지원이 중단된다 해도 당분간 한센인들이 생활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기자들이 찾아와서 취재를 했다. 환자들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인터뷰도 하는 게 조만간 뉴스가 크게 나올 듯했다.
시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근원의 나무를 해체하느라 바빴다.
원래는 그냥 놔두려고 했다. 소록도 병원을 한센병 치료의 중심지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오늘 사슴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랐다. 최악의 경우 괴수가 생길 수도 있었다. 이번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했지만, 항상 그럴 거라고 볼 수는 없지 않겠나.
‘고흥 지부에 연락해서 사슴들 확인해 보라고 해야겠네.’
이윽고 근원의 나무를 완전히 해체하여 씨앗으로 되돌렸다. 언제 또 필요할지 모르는 일이니까.
저녁은 병원에서 먹었다.
아주 진수성찬을 차려 주었다.
특히 피굴이라는 요리가 맛있었다. 굴을 껍데기째 삶고, 거기서 나온 국물에 굴과 쪽파, 김을 넣고 참기름과 소금을 쳐서 먹는 요리인데 어찌나 시원한지 몰랐다.
급기야 시혁은 피굴만 세 그릇을 비웠다.
“이거 정말 맛있네요.”
“암요. 고흥하면 피굴, 피굴하면 고흥 아닙니까.”
융숭한 대접을 받고 광주로 복귀했다.
< 오색 사슴뿔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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