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 봉사 -1- >
요즘 시혁은 아주 살 판 났다.
두 명의 이능력자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대한이능협회는 시혁의 한의원에 치유 계열 이능력자 둘을 파견했다. 각각 녹색과 백색 이능을 발휘했고, 둘 다 B급 이능력자였다.
둘이 시혁의 일을 크게 덜어주었다. B급 이능으로도 많은 일이 가능했으니까.
그에 힘입어 한의원을 확장했다.
7층.
기존의 2개 층에 더 해 1개 층을 더 임대한 것이다.
“깔끔하네요.”
시혁은 7층을 둘러보고 말했다.
인테리어 업자가 손을 비볐다.
“그럼요. 누가 맡기신 건데요.”
예전에 시혁이 시공을 맡겼던 업체였다. 통일성을 위해 같은 사람에게 맡겼는데, 역시나 잘 해 준 것이다.
7층은 이능 치료를 위한 공간이었다. 원장실도 7층으로 옮겼다. 기존의 원장실은 부원장실로 이름만 바꾸고, 새롭게 남자 한의사를 한 명 뽑았다.
자연히 사람도 더 뽑아야 했다. 원무과 직원은 물론, 간호사도 몇 명 충원 했다. 그러자 시혁의 한의원 직원 수가 총 23명까지 늘어났다.
시혁.
부원장인 한의사 2명.
B급 치유 계열 이능력자 2명.
보존 능력 발현자와 쌍둥이, 합쳐서 발현자 3명.
원무과 직원 3명.
간호사 12명.
7월에 개원할 때는 10명으로 시작을 했는데, 3월이 된 지금은 그 2배로 불어난 것이다.
확장 기념으로 미뤄뒀던 한의원 회식을 했다.
새롭게 합류한 직원들도 함께 한 자리였다. 석간 당직인 간호사 두 명만 빠졌는데, 그들에게는 고급 초밥을 배달시켜 주었다.
민수진이 입을 삐죽였다.
“원장님! 7층으로 가서 좋으시죠? 떽떽거리는 늙은 간호사 더 볼 일도 없고요.”
“하하, 늙다니요. 아직도 한창이신데요. 길거리 다니다 보면 대학생 남자애들이 번호 물어보고 그러지 않아요?”
“잘 아시네요? 오늘도 여기 오는데 세 번이나 번호 따였어요. 정말이지 이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니까요?”
“아휴, 과장님도 참.”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고기, 술이 곁들어지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6시 반에 명성원에 들어왔는데, 벌써 9시가 가까워졌다.
박희정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참, 이번 미국 파워볼 복권 또 이월 됐대요.”
“또요?”
“그럼 당첨금이 1조 넘겠네요.”
“1조는 진작 넘었죠. 이번에는 2조 넘을지도 모른대요.”
미국 파워볼 복권은 2016년 1월에 15억 8600만 달러의 당첨금을 찍은 적이 있다.
올해는 더 했다.
바로 저번 주에 당첨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신기록을 경신했다. 무려 16억 달러가 넘어간 것이다. 만약 이번 주에도 1등 당첨자가 없으면 한화로 2조 이상이 될 지도 몰랐다.
민수진이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2조라니…… 듣기만 해도 황홀하네요.”
“과장님은 만약에 그거 당첨되면 뭐하고 싶으세요?”
“저요? 전 일 그만 두고 지중해로 날아갈 거예요. 해변에 집 한 채 짓고 죽을 때까지 소일이나 하면서 살고 싶네요.”
듣기만 해도 꿈만 같다.
고참 간호사 하나가 소리를 죽여 속삭였다.
“우리 이러지 말고 직구라도 할까? 복권 구매대행 하는 사이트도 있다던데.”
“그럴까요?”
“에이, 복권 같은 거에 기대지 말고 알뜰하게 살아요. 제 주변에 로또만 천만 원 넘게 산 사람 있는데, 3등 1번 당첨된 게 다래요. 차라리 그 돈으로 이자를 받는 게 나을 겁니다.”
새로 고용한 남자 한의사의 말에, 간호사 하나가 또랑또랑 반박했다.
“신 원장님, 모르는 말씀하지 마세요. 요즘 은행 이율 처참하잖아요. 복권은 좀 그렇지만, 차라리 재테크를 하는 게 낫죠. 80년대처럼 10% 넘게 이자 받는 시대가 아니라고요.”
“흠, 그야 그렇죠.”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고참 간호사 하나가 시혁에게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원장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미국 파워볼 복권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거보다 더 많이 벌고 계시잖아요?”
“네? 하하, 그 정도는 아닙니다.”
“뉴스에도 나오던데요? 제약회사한테 받을 로열티가 어마어마하다고……”
시혁은 말없이 어깨만 으쓱였다.
아닌 게 아니라 돈을 많이 벌긴 했다. 제약 회사와 추가로 맺은 계약이 십여 건이 넘으니, 이미 현금 재산이 수백억으로 불어난 것이다.
그렇다 해도 조 단위는 아니다. 아마 평생 벌어야 그 정도 되지 싶었다.
민수진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우리 원장님이야말로 인생의 승리자네. 얼굴도 잘 생겼지, 키도 크지, 능력도 있지…… 그런데 왜 한의원에만 계세요? 밖에 나가서 연애를 하시지.”
“글쎄요. 지금은 별로 생각이 없네요. 그냥 환자들 보는 게 좋아요.”
“워커홀릭이시구나. 남자들은 돈 생기면 차나 시계부터 사던데 원장님은 거기에도 관심 없으세요? 저번에 면허증도 따셨잖아요.”
“차는 하나 사려고요. 처음에는 많이 긁는다고 해서 적당한 거 살 생각이에요.”
“원장님은 페라리 사서 긁고 다니셔도 되겠는데요?”
“하하. 그래도 그건 과하죠.”
시혁은 멋쩍게 웃었다.
돈도 써본 사람이 잘 쓰는 법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통장에 백만 원도 없던 시혁인데, 지금 수백억이 있다고 뭘 쓸 거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기부라도 할까?’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었다.
돈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시혁은 나중에 한방병원을 개설할 생각이다. 환자들은 계속 늘 테고, 의원급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시점이 분명히 올 테니까.
꽤나 돈이 들겠지만, 지금 있는 정도로 충분했다.
사치를 하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고, 부모님에게 집도 한 채 사드린 뒤였다. 이렇게 쌓아만 두고 있느니, 적당히 기부를 하는 게 좋겠다.
그 얘기를 하자, 직원들이 잘 생각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역시 원장님이세요! 한 1%만 기부하셔도 엄청나겠는데요?”
“우리나라가 기부 문화가 좀 약하기는 해요. 선진국들 보면 진짜 기부 많이 하던데요.”
“기부하실 때 잘 알아보고 하세요. TV에서 봤는데, 기부금으로 11억 모금 받아 놓고 6백만 원만 실제로 장애인들한테 기부한 단체도 있대요.”
“11억 중에 6백이요? 맙소사, 그럼 1%도 아니고 겨우 0.5% 정도만 기부한 셈이네요.”
“그럼 나머지는 다 어디로 갔대요?”
“어디긴 어디겠어요. 기부 단체 만든 놈들 호주머니로 들어갔겠죠.”
“차라리 원장님이 재단을 하나 만드시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괜히 기부 단체 통하지 마시고, 원장님이 직접 기부하는 것으로 하세요. 원장님 바쁘셔서 재단 운영을 못 하시면, 부모님들께 맡기면 되잖아요?”
박희정이 그런 말을 했다.
좋은 아이디어다.
안 그래도 아버지가 명예퇴직 후 집에 있는 게 마음에 걸리던 참이다. 어머니도 전업 주부로 평생을 사셔서 심심해하는 것 같고.
말년에 복지 재단 이사장을 하면서 사시면 심심하지는 않겠지.
취약 계층이라고 괴수 질병이 발병하지 않는 게 아니니까. 돈이 없어 이능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 외에 시혁의 모교에 장학금을 주는 것도 가능하겠고.
시혁은 가만히 오른손 엄지를 치켜들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야겠네요.”
슬슬 일어나기로 했다.
2차는 직원들끼리 가라고 하고 빠졌다. 법인 카드만 하나 주었다. 벌써부터 고급 참치집을 가자느니, 바에 가서 양주를 마시자느니 들떠 있었다.
두 부원장이 시혁을 따라 나섰다. 민수진은 애를 봐야 한다며 먼저 집에 갔다. 아닌 게 아니라 2차에는 대부분 미혼자들만 뭉치고 있었다.
세 한의사끼리만 인근 이자까야에서 간단히 술자리를 가졌다.
시혁은 박희정과 남자 부원장, 신용준에게 사케를 넘치도록 따라주었다.
“신 원장님이 우리 한의원에 오신지 딱 1주일째지요? 좀 적응하셨습니까?”
“아직 정신이 없습니다. 괴수 질병 전문 한의원인데, 제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박 원장님께 많이 물어보세요. 우리 한의원이 괴수 질병 전문이긴 하지만, 일반 환자들도 많이 옵니다. 두 분이 하실 일이 꽤 많아요.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괴수 질병 중에 세 질병은 이능 치료 할 때 빼고는 원장님들께 보낼 거예요.”
“아, 우리나라에도 약이 들어오나 보네요.”
“미국이랑 유럽에서 시판 중인데 안 들어올 수가 없죠.”
시혁이 발현자 검증을 받으면서 만들었던 세 개의 치료법.
드디어 상용화되었다.
시혁이 각성하던 때쯤 미국과 유럽에서 시판이 개시되었고, 일본도 저번 주부터 시판을 시작했다. 자연히 대한민국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처방할 수 있는 것은 치유 계열 이능력자와 발현자, 그리고 의사와 한의사.
조만간 수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 최소한 수만 명이 회복되어 일상생활로 복귀할 테고, 사회적 비용도 감소하겠지.
그 얘기를 한참 하다가, 박희정이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런데 원장님은 휴가 안 가세요? 개원하시고 하루도 안 쉬었잖아요.”
지리산 천왕봉 문제 때문에 며칠 쉰 게 다였다. 사실 대한이능협회의 공식 요청을 받아 간 거니, 쉬었다고 할 수도 없고.
반면 직원들은 적당히 쉬었다. 법으로 정해진 연차 15일은 보장해 주었으니까.
“박 원장님은 소록도 다녀오셨다고 했죠?”
“네. 제 학교 동아리에서 매년 겨울에 봉사 활동 다녀오거든요. 졸업하고는 처음이었죠. 감독 받는 입장에서 감독 하는 입장이 되기도 했고요.”
“그게 기독교 동아리라고 했죠? 저 다니던 학교에선 천주교 동아리가 소록도에 여름마다 가던데.”
“아무래도 종교 단체가 많이 가죠. 전 요즘 이 앞에 있는 운천 교회 다니는데 거기서도 주말마다 장애인 복지시설에 봉사 활동 간다고 하더라고요.”
박희정은 2월 초에 휴가를 다녀왔다.
약 1주.
알고 보니 매년 그랬다고 했다. 멋모르는 예과 1학년 때부터 시작하여, 벌써 7년째라는 것이다.
대단한 사람이다.
소록도가 뭐기에 그러냐고?
전라남도 고흥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자연 경광이 아름답지만, 그것보다도 어떤 질병에 걸린 환자들이 많이 있어 유명해졌다.
한센병.
다른 말로 나병(癩病)이라고도 한다.
신용준이 인상을 썼다.
“그거 전염병 아니에요?”
“거의 전염 안 돼요. 걸려도 약 먹으면 99.9%가 낫는 걸요? 애초에 성행위를 해도 전염이 안 되고, 수직 감염도 안 되는 병이에요.”
“그래도 좀……”
신용준이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박희정이 울컥하는 게 보였다.
한센인(한센병 환자와 회복자를 함께 부르는 말)에 대한 편견을, 같이 근무하는 한의사가 갖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시혁은 가만히 질문을 했다.
“소록도에는 아직도 한센병 환자가 많나 보죠? 최근에는 치료제가 개발되어서, 환자가 많이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균을 죽이는 약이지, 증상 치료제는 아니어서요. 이미 변형된 신체를 어쩔 수는 없대요. 그나마 이능 치료는 먹히는데 완전히 치료될 때까지 치료비를 낼 수 있는 한센인은 거의 없고요.”
가끔 치유 계열 이능력자들이 봉사를 온다고 했다.
그들 덕분에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다 낫지는 않았다. 그나마 더 진행이 안 되고 조금씩 호전이 되는 게 위안거리라고.
시혁은 집게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톡톡 두드렸다.
“이능 치료로도 완치가 안 된다고요?”
“네. 논문을 찾아보니까 S급 치유 계열 이능력자도 힘들대요. 피부는 확실히 좋아지는데 이미 떨어져나간 발가락이나 손가락을 재생은 못 시키니까요. G급이면 가능할 것 같다고 하는데, 전 세계를 통틀어도 G급 치유 계열 이능력자는 2명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환자분들은 조금씩 좋아지는 걸로 만족하고 계세요.”
이유는 간단했다.
치료에 쓸 에테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약 에테르가 무한으로 공급된다면, S급이 아니라 A급 이능력자만 되어도 한센병 후유증을 완치시킬 수 있었다.
시혁은 잠깐 고민했다.
자신이라면 한센인들을 치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넌지시 운을 뗐다.
“우리 한의원도 정기적으로 의료 봉사를 다닐까요? 소록도도 좋고, 다른 의료 취약 지역이나 해외에 다녀와도 좋고요.”
박희정이 반색을 했다.
“좋죠! 원장님이 가시면 환자분들이 엄청 좋아하실 거예요! 우리나라 모든 치유 계열 이능력자와 한의사 중에서 가장 유명하시잖아요!”
반면 신용준의 얼굴에는 떨떠름한 기색이 떠올랐다.
“저는 좀…… 가자고 하시면 가겠습니다만 좀 그렇습니다.”
뭐, 강제할 수는 없는 법이다.
봉사도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해야지, 그냥 가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 환자들도 느끼지 않겠나.
이 사람은 우릴 위해서 여기 온 게 아니구나 하고.
시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가 봉사 갔을 때 신 원장님이 한의원 지키시면 되지요. 한의원 문을 아예 닫을 수는 없으니까요.”
“아아, 예……”
< 의료 봉사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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